[글로벌 현장]-메르켈 총리 “2차 대전 이후 최대 위기”…역사상 최대 규모 경제 부양 패키지 통과
심상치 않은 독일 코로나19 확산세, 피해 막기 위해 헌법도 바꾼다
[베를린(독일)=이유진 통신원] 독일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 증가가 심상치 않다. 3월 25일 기준 코로나19 확진자 수는 3만7000명. 하지만 아직까지도 증가 추세가 ‘최고점’을 찍지 않았다는 게 지배적인 평가다. 코로나19의 여파가 어디까지 갈지 아무도 가늠할 수 없는 상태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대의 위기’라고 경고했다.

코로나19의 급격한 확산세를 막기 위해 독일 연방 정부는 3월 23일 주 정부와의 협의를 통해 독일 전역에 유효한 공통 규정을 발표했다. 몇몇 주에서 이미 외출 금지령이 떨어진 후였다. 4월 5일까지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 3인 이상의 모임이 금지된다. 생필품·주유소·약국 등 필수적인 업종을 제외하고는 모두 영업 중지됐다. 식당 또한 주문 배달 이외에는 영업이 금지됐다. 향후 2~3주간 코로나19 확산세를 잡겠다는 의지다.

동시에 코로나19로 인한 사회·경제적 피해를 구제하는 정책도 빠르게 논의됐다. 독일 역사상 최대 규모의 지원 패키지가 통과됐다. 독일은 그동안 국가의 재정 균형을 중시하면서 헌법(기본법)에 ‘채무 제한’ 조항을 명시해 놓고 있지만 이번 코로나19 피해를 돌파하기 위해 헌법까지 개정한다.

◆프리랜서·자영업자에게 500억 유로 지원

독일 연방의회는 3월 25일 코로나19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총 1560억 유로에 이르는 추가경정예산안을 의결했다. 전체 추경안 중 세출 확대는 1225억 유로, 세입경정분이 335억 유로다. 세출 확대 부문에서 35억 유로는 코로나19 확산 저지와 질병 예방 인프라, 백신 개발 지원 등에 쓰인다. 500억 유로는 자영업자와 소규모 사업자 등 코로나19로 어려움에 처한 이들에게 즉각 지원하는 ‘구호자금’이다. 나머지 550억 유로는 코로나19 여파에 유동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예비비로 편성했다.

연방 정부는 또한 6000억 유로의 ‘경제안정화펀드’를 조성, 보증이나 연방 정부의 지분 등을 통해 큰 규모의 기업들을 지원할 예정이다. 연방 정부는 금융 위기에 빠진 기업의 지분 10% 이상을 가질 수 있고 위기가 끝난 이후 다시 되팔아야 한다.

독일은 이 같은 지원 패키지를 현실화하기 위해 국가의 신규 부채를 국내총생산(GDP)의 0.35%로 제한해 놓은 기본법(헌법)을 개정하기로 결정했다. 독일 연방재무부는 “독일 역사상 최대 규모의 지원 패키지”라면서 “이는 국민의 건강, 일자리와 기업, 나아가 국가를 지키는 조치이며 전례 없는 부양책을 통해 위기를 극복하고 재정적 지원이 필요한 곳에 신속하게 활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연방 정부는 프리랜서, 자영업자, 소규모 사업자를 대상으로 ‘코로나 즉시 지원금(corona-soforthilfe)’을 지급한다. 코로나19가 본격적으로 전파되면서 가장 먼저 타격을 받은 이들이다. 특히 문화·예술·창조 분야에서 프리랜서, 자영업자, 소규모 사업자들의 위기가 심각하다.
지금은 독일 전역에서 필수 업종을 제외한 모든 종류의 상점이 강제로 영업이 중지됐다. 자영업자들의 피해를 가늠할 수 없는 지경이다.

연방 정부는 풀타임 직원 5명을 고용한 회사에는 3개월간 최대 9000유로를 지급한다. 풀타임 직원 10명 규모 회사에는 3개월간 1만5000유로를 지급한다. 신청 요건에 맞으면 즉시 지급되는 ‘현금 지원’이다. 조건은 코로나19로 인해 월세 지불이나 대출 이자 등에서 긴급한 유동성 어려움을 겪는 곳이다. 즉, 코로나19가 본격 확산되기 전인 3월 이전에는 경제적 어려움이 없었어야 한다.

신속한 지원을 위해 가능한 한 온라인 신청을 받을 예정인데, 실행은 주 정부를 통해 이뤄진다. 이는 연방 정부에서만 투입하는 자금 규모다. 각 주정부에서 자체 예산으로 준비 중인 즉시 지원 정책까지 더하면 현금 지원 규모는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심상치 않은 독일 코로나19 확산세, 피해 막기 위해 헌법도 바꾼다
◆자국뿐만 아니라 유럽 전체 도와야 할 독일

독일 정책 금융회사인 독일재건은행(KfW)을 통해 대출과 신용 보증 지원 등에 총 6000억 유로가 투입된다. 자영업자·중소기업·대기업 등 모두를 대상으로 한다. 자영업자나 중소기업에는 대출 요건을 완화하고 대출 조건도 개선한다. KfW가 대출 규모의 80~90%를 책임지고 연방 정부가 이를 보증한다. 사업체당 최대 대출 금액은 10억 유로, 대출 기간은 최대 5년이다. 이자는 중소기업 1~1.46%, 대기업 2~2.12%다. 신청 절차도 간편해진다. 대출 규모 300만 유로까지는 자체 위험 평가를 아예 실시하지 않는다. 1000만 유로까지도 평가가 간소화된다.

직원 250명 이상인 대기업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유동성 지원과 파산 방지를 위한 ‘경제안정성펀드’를 조성한다. 유동성 보증을 위해 4000억 유로, 파산 위기에 놓인 기업의 주식 인수 등 재자본화를 위한 신용 승인을 위해 1000억 유로, 이러한 정책을 실시하는데 필요한 KfW의 재자본화를 위한 신용 승인에 또 1000억 유로가 투입된다.

독일은 코로나19 사태가 본격화되자마자 가장 먼저 ‘조업 단축 지원금’ 규정을 완화해 고용 안정을 꾀했다. 단순히 경기 위축이 아니라 정부의 강제 영업 중지 규정으로 아예 운영이 불가능한 사업체가 생김에 따라 노동자들의 해고 위협이 높아졌다. 독일 실업 부조 중 하나인 조업 단축 지원금은 한국의 고용 유지 지원금과 비슷하다.

기존에는 전체 노동자의 30%가 노동 시간 축소로 감소한 임금이 10% 이상 되는 경우에만 신청할 수 있었다. 이번 개정을 통해 전체 노동자의 10%만 해당돼도 신청할 수 있도록 했다. 단축 근무를 실시하면 감소한 임금의 60%, 부양 자녀가 있으면 67%까지 정부가 지원한다.

예를 들어 평소 세후 2000유로를 받던 노동자가 근무 시간을 50% 줄이면 회사 측은 임금 1000유로, 나머지 1000유로의 60%인 600유로를 정부가 지원한다. 노동자는 총 1600유로를 수령하게 된다. 이는 근무 시간 감축 비율이 100%, 즉 완전 휴직일 경우에도 신청할 수 있다. 최대 12개월간 지원되고 경우에 따라 12개월 더 연장할 수 있다.

기업을 위한 세금 지원 정책도 발표됐다. 납세 유예, 선납 유예, 강제 집행 금지 등을 통해 기업의 세금 부담을 줄일 예정이다. 코로나19 여파로 올해 세금 납부가 힘들면 신청을 통해 이자 없이 납부를 유예할 수 있다. 소득세·법인세·부가가치세가 적용된다. 연체된 세금의 강제 집행은 올해 말까지 실시되지 않는다.

독일은 역사상 최대 규모의 지원 패키지를 발표했지만 이게 끝이 아니다. 현재 최악의 상황을 겪고 있는 이탈리아를 포함해 유럽연합(EU) 국가들이 모두 휘청거리고 있기 때문이다. EU에서 재정이 가장 안정적인 독일의 역할이 크지만 독일은 지금까지 유로존 공동 채권 발행, 공동 펀드 조성 등에 비판적인 시각을 보여 왔다. 자국뿐만 아니라 EU까지 살려낼 부양 정책에 독일의 고민이 크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70호(2020.03.30 ~ 2020.04.05)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