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포커스]
-‘임상 3상’ 미국 길리어드 5월 중 승인 가능성
-국내서도 셀트리온 등 10여 곳 치료제·백신 개발 뛰어들어
-“주가 상승 노린 ‘공수표’ 남발” 지적도 [한경비즈니스=최은석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확산세가 좀처럼 꺾이지 않고 있다. 지구촌은 코로나19의 ‘팬데믹(세계적 유행)’을 끊을 수 있는 근본 대책인 백신과 치료제가 하루빨리 등장하길 학수고대한다.
글로벌 제약·바이오 기업들은 평균 10년 정도 소요되는 신약 개발 기간을 획기적으로 줄이기 위해 기존에 출시했거나 개발 중이던 약에서 코로나19 치료 효능을 찾는 전략을 펼치고 있다. 기업들은 코로나19 백신 개발에도 속도를 내는 중이다.
다만 이르면 5월께 치료제가 상용화될 것이라는 긍정적 전망이 나오는가 하면 의약품의 상용화까지는 아직 가야 할 길이 멀다는 비관적 전망도 있다.
◆“백신은 올해 내 상용화 어려울 듯”
국가임상시험지원재단에 따르면 3월 중순 기준 미국국립보건원(NIH) 임상 시험 등록 사이트에 올라온 코로나19 치료제 약물 임상 시험은 50여 건이다. 이 중 개발 속도가 가장 빠른 약물은 미국 길리어드 사이언스의 ‘렘데시비르’다.
렘데시비르는 당초 길리어드가 에볼라 바이러스 치료제로 개발하던 약물이다. 지난 1월 미국에서 코로나19 확진자에게 약물을 투여한 결과 하루 만에 증상이 호전되는 사례가 나오자 길리어드는 ‘코로나 신약’으로 렘데시비르의 개발 방향을 틀었다.
길리어드는 미국·중국·한국 등에서 렘데시비르에 대한 6건의 임상 시험을 진행하고 있다. 4월 3일과 10일 중국에서 진행 중인 2건의 임상 3상이 끝난다. 미국·싱가포르·한국에서 이뤄지는 임상은 5월 1일 종료된다.
팬데믹이 시작된 만큼 중국 임상 결과가 좋다면 이른바 ‘패스트트랙(우선 승인한 뒤 추후 임상 자료 등을 보완하는 정책)’을 적용해 이르면 5월께 허가 승인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다만 임상 3상 실패 확률도 만만치 않다는 점에서 섣부른 기대는 이르다는 신중론도 있다. 미국 애브비의 면역결핍바이러스(HIV) 치료제 ‘칼레트라’도 코로나19 신약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중국과 홍콩에선 9건의 임상을 진행 중이다.
강령우 국가임상시험지원재단 선임연구원은 “5월 1일 60명을 대상으로 한 칼레트라의 중국 임상 3상이 종료된 이후 나머지 8건의 결과도 순차적으로 나올 예정”이라며 “미국 존슨앤드존슨의 HIV 치료제 ‘프레지스타’의 중국 내 임상 결과는 이르면 12월께 발표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일본 후지필름도야마화학은 신종 인플루엔자(H1N1) 치료제인 ‘아비간’을 코로나19 신약으로 개발하고 있다. 중국 내 60명의 환자를 대상으로 4월 말까지 임상을 진행한다.
글로벌 기업들은 코로나19 백신 개발에도 고군분투하고 있다. 다만 코로나19의 팬데믹을 멈출 수 있는 백신이 등장하기까지는 시일이 더 걸릴 것으로 보인다.
미국 모더나 테라퓨틱스는 미 국립보건원 산하 알레르기감염증연구소와 공동 개발한 코로나19 백신의 임상 1상을 진행하고 있다. 미국 이노비오의 백신도 임상 1상 단계다.
임상 1상은 파이프라인(신약 후보물질) 도출 후 동물 실험을 마치고 사람을 대상으로 약물의 효능과 부작용 등을 평가하는 첫 단계다. 패스트트랙을 적용해 단숨에 임상 3상까지 간다고 해도 상용화 단계에 도달하기까지는 최소 1년 이상의 기간이 필요하다는 게 학계의 진단이다.
김우주 고대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미국 알레르기감염증연구소의 주도 아래 45명의 건강한 성인을 대상으로 임상에 돌입한 모더나의 코로나19 백신은 개발이 완료되기까지 최소 12개월에서 18개월이 소요될 전망”이라며 “현실적으로 올해 안에 백신이 상용화되기는 어려워 보인다”고 말했다.
◆“국내 기업 임상은 먼 얘기…지나친 기대 금물” 우려하던 코로나19의 팬데믹이 현실화하면서 국내 제약·바이오업계도 백신 개발에 팔을 걷어붙였다. SK바이오사이언스는 코로나19 백신의 후보물질 발굴을 완료하고 동물 실험 단계에 돌입했다고 3월 23일 발표했다. 동물 실험에서 효력이 확인되면 9월께 임상에 돌입할 예정이다.
SK바이오사이언스 관계자는 “기존에 보유한 합성 항원(인체에 투여해 면역력을 위한 항체를 형성하게 하는 물질) 제작 기술과 과거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백신 개발 진행 경험 등을 바탕으로 단기간에 안전성과 효능을 확보한 코로나19 백신을 개발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GC녹십자도 코로나19 백신 개발에 나섰다. 바이러스나 세균 등을 활용한 약독화 백신과 달리 단백질을 활용해 안전성을 확보한 서브 유닛 백신을 개발할 계획이다. 확진자의 혈액에서 B세포(항체를 만드는 세포)를 분리해 코로나19 치료용 항체 후보물질을 발굴한 뒤 궁극적으로는 신약 개발에 도전한다는 목표다.
국내 기업들은 코로나19 치료제 개발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셀트리온이 가장 적극적이다. 셀트리온은 코로나19 치료제 개발을 위한 항체 후보군 300종을 확보했다고 3월 23일 발표했다.
셀트리온은 코로나19 확진자의 혈액을 확보해 2월부터 치료제를 개발하고 있다. 4월까지 바이러스 중화 능력이 뛰어난 항체를 최종 선정한 다음 7월 중순께 임상에 돌입할 계획이다.
일양약품은 최근 백혈병 신약 ‘슈펙트’가 코로나19를 소멸하는 데 효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해 화제가 됐다.
일양약품 관계자는 “고려대 의대 연구팀에 슈펙트의 코로나19 치료 효능 검증을 의뢰한 결과 투여 48시간 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대조군 대비 70% 감소하는 결과를 도출할 수 있었다”며 “과거 발굴한 메르스 신약 후보물질 9종 중 5종은 투여 후 24시간 안에 코로나19 바이러스가 99% 이상 감소하는 탁월한 효과를 보였다”고 말했다.
유전체 분석·진단 기업 테라젠이텍스도 5종의 코로나19 치료제 후보물질 발굴에 성공했다. 이 밖에 한국유나이티드제약 등 10여 곳이 코로나19 치료제 개발에 나섰다.
하지만 국내에는 아직 전염병 치료제 등과 관련해 임상 단계에 돌입한 사례가 없다는 점에서 지나친 기대는 금물이라는 지적도 있다. 과거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와 메르스가 유행할 때마다 수많은 기업이 백신 등 치료제 개발에 뛰어들었지만 성과를 내지 못했다. 세계적으로 사스와 메르스를 치료하는 의약품이나 백신은 아직 없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전염병 관련 의약품은 설사 개발에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확산세가 사그라지면 수익을 내기 어려운 데다 코로나19 등의 변종 바이러스에는 효과를 기대하기도 어렵다”며 “최근 들어 신약 개발 경험이 전혀 없는 기업들이 이때다 싶어 주가를 끌어올리기 위한 목적으로 ‘공수표’를 날리는 것 같아 한편으론 씁쓸하기도 하다”고 말했다.
choies@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70호(2020.03.30 ~ 2020.04.05)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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