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 - 가격 폭락으로 담보·청산 시스템 문제 발생…탈중앙화 금융도 아직 ‘인간’이 필요
이더리움 커뮤니티, ‘검은 목요일’에 무슨 일 있었나
(사진) 메이커다오의 로고

[한경비즈니스 칼럼 = 김경진 해시드 심사역] 현재 블록체인 기반 금융 서비스 중 가장 유명한 회사를 하나 뽑으라면 블록체인업계 누구나 지체 없이 메이커다오(MakerDAO)를 선택할 것이다. 그만큼 메이커다오는 최대의 디파이(DeFi : 탈중앙화 금융) 프로젝트로서, 스테이블코인 발행 프로젝트로서 생태계의 맏형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 3월 12일과 13일 주요 담보 자산인 이더(ETH)의 가격이 급락하는 한편 메이커다오의 청산 시스템에서 담보물들이 0달러에 팔려 나가면서 총 69억원 규모의 프로토콜 손실이 발생했다. 사용자들의 손실까지 더하면 손실 규모는 더 큰 것으로 알려졌다. 이더리움 커뮤니티에서는 이더의 가격 급락과 메이커다오의 손실을 두고 ‘검은 목요일’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얼마 전 일어났던 비지엑스(bZx) 공격 사태와 달리 소스 코드의 결함 때문에 일어난 일도 아니었다. 스마트 콘트랙트를 기반으로 중개자 없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탈중앙화 금융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앞으로 이를 방지하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가격 안정적인 스테이블코인까지 ‘휘청’


이 사태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메이커다오의 초과 담보 메커니즘을 알아야 한다. 메이커다오는 이더와 비에이티(BAT)라는 두 종류의 토큰을 담보로 다이(DAI)라는 달러 연동 스테이블코인을 대출해 주는 플랫폼이다. 비에이티가 추가된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대부분의 담보는 현재까지 이더라고 볼 수 있다.

담보를 기반으로 하는 금융 시스템에서는 담보 가치의 하락 가능성을 열어두고 항상 초과 담보율을 설정한다. 그리고 대출금 대비 담보의 가치가 떨어져 담보율이 청산 담보율 이하로 내려가면 채권자가 즉시 담보를 판매해 부채를 상환한다. 주식 시장에서는 담보로 잡은 증권의 가치가 떨어질 때 채권자가 임의로 이를 판매하는 것을 ‘반대매매’라고 부른다. 주식의 가격이 빠르게 하락할 때 반대매매가 일어나면서 가격 하락이 더 가속화된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메이커다오에서는 이 초과 담보율이 부채의 150%로 돼 있고 담보의 가치가 많이 떨어지면 경매를 통해 담보물인 이더를 할인된 가격에 판매한다. 이 시스템을 ‘청산(liquidation) 시스템’이라고 한다. 이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한 프로토콜이 손실을 볼 가능성은 거의 없다. 적어도 이론상 그래야 했고 이번 일이 있기 전까지는 문제없이 잘 작동하는 듯했다.

이렇게 잘 설계된 메이커다오의 담보 시스템과 청산 시스템에 문제가 생겼던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이더 가격의 하락 속도다. 사건이 일어났던 3월 12일 하루 동안 비트코인 가격은 40% 가까이 하락했고 이더는 그보다 더 큰 폭으로 떨어졌다. 이는 변동성이 크기로 유명한 암호 자산 시장에서도 굉장히 드문 수준의 가파른 하락이었다.

둘째, 네트워크 혼잡이다. 이더 가격이 급격히 하락하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더리움 네트워크가 점차 혼잡해지기 시작했다. 거래소로 보내기 위한 송금 거래가 늘기도 했을 테지만 그보다 이더를 담보로 하거나 이더를 주요 거래 대상으로 하는 다양한 디파이 프로토콜들에서 거래가 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더리움에서는 네트워크가 혼잡해지기 시작하면 거래 수수료가 증가한다. 이더리움 네트워크에서 수수료를 계산하는 단위는 궤이(GWEI)다. 평소 2궤이면 되던 트랜잭션 수수료가 3월 12일과 13일 80궤이까지 상승했다. 이에 따라 원화 기준으로 대략 6원이던 건당 트랜잭션 비용이 240원까지 오른 것이다.

복잡한 기능을 수행하는 스마트 콘트랙트 호출은 비용 상승 폭이 훨씬 더 컸다. 트랜잭션 하나에 8000원이 넘는 수수료가 들기도 했다.

이제 본격적으로 메이커다오 청산 시스템에서 어떻게 담보물이 0달러에 팔릴 수 있었는지 알아보자. 답은 생각보다 매우 단순했다. 스마트 콘트랙트의 오류 때문이 아니었다. 단지 이더리움이 급격히 하락하는 몇 시간 동안 경매에 참여하는 사람이나 프로그램이 극단적으로 적었을 뿐이다.

입찰자가 한 명뿐인 경매가 있다고 하자. 이때 판매자의 의지와 상관없이 입찰자는 항상 아주 낮은 가격에 물건을 매수할 수 있다. 미리 정해진 최저 입찰가 제한이 없다면 0원에 매수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더 가격은 이날 이례적으로 너무나 급격하게 하락했다. 입찰자가 경매에 참여해 이더를 구매하고 이를 다시 판매하기까지 감당해야 하는 리스크가 너무 컸다. 또 네트워크가 혼잡해 트랜잭션 수수료가 급격하게 증가한 상황에서 많은 입찰자들이 자동 입찰 프로그램을 끈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상황을 막기 위해서는 최저 입찰 가격이나 최저 낙찰 가격에 제한을 두면 된다. 예컨대 최저 입찰 가격 이하로는 애초에 입찰할 수 없도록 막는 것이다. 기존 메이커다오 청산 시스템에는 이러한 조건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결과적으로 메이커다오 청산 시스템에서 100억원의 가치에 달하는 이더 담보물이 0달러에 판매됐다. 그 결과 메이커다오 프로토콜은 69억원 정도의 손실을 봤다. 사용자들 또한 큰 손실을 봤다. 가장 큰 손실을 본 사용자는 약 3만5000이더(1이더를 16만원으로 가정하면 총 56억원 수준)를 잃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더리움 커뮤니티, ‘검은 목요일’에 무슨 일 있었나
◆새 토큰 발행해 ‘부채 경매’ 실시


설상가상으로 해당 사건이 일어난 뒤 다이 가격이 치솟기 시작했다. 담보율을 높이기 위한 다이 소비와 청산으로 다이 소비가 동시에 늘어나면서 시장 내 다이 유동성을 빨아들인 것으로 추정된다. 평상시에는 1달러의 ±1% 범위에서 움직이던 다이 가격은 단기적으로 1.11달러까지 치솟았다.

다이가 계속해 1달러에서 멀어져 있으면 스테이블코인으로서의 위상이 약화된다. 특히 청산 위기에 있는 담보 예치자들이 포지션을 정리하기 위해 다이를 매입하는 과정에서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커뮤니티에서도 이를 심각한 문제로 받아들였다.

원래 다이의 가격을 1달러에 맞추기 위해 안정화 수수료나 다이 예치 보상, 청산 수수료 등 다양한 파라미터(매개변수)를 조절할 수 있다. 하지만 어느 것 하나 적극적으로 다이가 시장에 공급되도록 유도하지는 못했다. 결과적으로 메이커다오 토큰 메이커(MKR)의 탈중앙화 조직은 다이의 가격을 안정화시키기 위해 USD코인(USDC)이라는 법정 화폐 담보 스테이블코인을 새로운 담보로 추가해 결정했다. 하지만 다이 가격은 3월 마지막 날까지도 여전히 1달러에서 ±3% 범위에서 변동하고 있는 것으로 볼 때 완전히 안정화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결국 메이커다오는 프로토콜의 초과 부채를 해결하기 위해 부채 경매라는 것을 실시했다. 부채 경매는 메이커다오 네트워크의 가치를 유지하기 위해 의결권을 가지는 메이커를 새롭게 발행해 경매 방식으로 판매하고 그 판매 수익금을 이용해 부채를 상환하는 방식이다.

다행히 경매는 성공적으로 진행돼 새롭게 발행된 2만여 개의 메이커가 판매됐다. 그 결과 시스템의 초과 부채는 거의 해소된 상황이다. 또 현재 청산 시스템을 더 튼튼하게 만들기 위한 여러 가지 아이디어들이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커뮤니티 주도로 청산 경매 참여를 더 쉽게 해 주는 여러 가지 툴을 개발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자산을 잃어버린 사용자들이 존재하는 상황이다. 비록 스마트 콘트랙트에 따른 정상적인 절차에 의해 담보물이 청산됐다고 하더라도 사용자들이 자신의 손실을 납득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스마트 콘트랙트로 구현할 수 있는 기능에는 아직 확실히 제한이 있다. 그리고 현재까지는 아무리 탈중앙화 애플리케이션(앱)이라고 하더라도 사람이 개입하는 기능이 필요한 것이 많다. 이번 사건은 문제없이 동작하는 탈중앙화 앱이라는 것이 얼마나 만들기 어려운 것인지 알려준다. 앞으로 성숙한 생태계를 만들기 위해 가야 할 길이 얼마나 먼 지도 알 수 있게 한다. 다시는 이런 불상사가 발생하지 않도록 예방하는 한편 손실을 본 사용자들이 실망하고 생태계를 떠나지 않도록 적절한 보상책을 강구해야 한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71호(2020.04.06 ~ 2020.04.12)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