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호석유화학, 포토레지스트 사업 400억에 매각
- ‘주업’ 화학과 시너지 중심 사업재편
‘전자 소재’ 팔고 ‘건자재’에 힘주는 박찬구 회장
[한경비즈니스=차완용 기자] 정중동의 행보를 보이며 내실을 다져 왔던 금호석유화학이 올해 들어 분주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지난 2월 전자 소재 사업부문을 SK머티리얼즈에 매각하며 사업 구조에 변화를 준 데 이어 최근에는 프리미엄 건축 자재 시장에 힘을 주는 모양새다.

최근 몇 년 동안 이렇다 할 신규 사업 전개나 조직에 큰 변화를 주지 않았던 금호석유화학인 만큼 이번 행보는 상당히 이례적이다. 세계 각국의 보호무역주의와 주요국의 무역 갈등이 지속되는 등 대내외 불확실성이 짙어진 상황을 대비하기 위한 장기적 관점에서의 움직임으로 풀이된다.

◆ 육성하기 버거웠던 포토레지스트 사업
‘전자 소재’ 팔고 ‘건자재’에 힘주는 박찬구 회장
금호석유화학의 변화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전자 소재 사업 매각이다. 금호석유화학은 지난 2월 포토레지스트 연구·생산 관련 인력·시설·장비 모두를 SK머티리얼즈에 넘기며 400억원의 자금을 확보했다.

업계에서는 이번 전자 소재 사업 매각이 다소 의외라는 반응이다. 불화아르곤 포토레지스트 국내 최초 양산, 3D 낸드 공정용 불화크립톤·반사방지막 포토레지스트 소재·부재료 개발, 극자외선용 포토레지스트 관련 자체 특허 보유 등 높은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금호석유화학이 매각을 결정한 데는 크게 두 가지 요인이 작용했다. 우선 미국·일본 경쟁사들과 시장에서 제대로 경쟁하기 위해 투자해야 하는 자금이 부담이었다.

포토레지스트는 일본·미국 기업들과 기술 격차를 좁히기 위해 지속적인 대규모 투자와 인내심이 요구되는데 금호석유화학과 같은 화학 기업이 육성하기엔 버거웠던 것이 사실이다.

둘째는 합성고무와 합성수지 등이 주력 사업인 금호석유화학이 전자 소재 사업을 품고 가기엔 계열사 간의 시너지가 부족했다.

전자 소재 사업의 주력 제품인 포토레지스트는 빛의 노출에 반응해 화학적 성질이 바뀌는 감광액으로 반도체 웨이퍼 위에 정밀한 회로 패턴을 형성하는 노광 공정에 쓰이는 핵심 소재다.

현재 금호석유화학의 주요 업종인 합성고무·합성수지·정밀화학·나노탄소·에너지·건자재 등 사업과의 연계성이 낮다. 한마디로 전자 소재 사업을 주력으로 키우기엔 모험이 필요했다.

그 대신 금호석화그룹은 주력 사업을 한층 더 공고히 하는 전략을 세웠다. 이는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의 경영 스타일과 맥을 같이한다. 박 회장은 2009년 금호그룹과 결별한 직후 확고한 경영 스타일을 고수해 왔다.

재무 건전성에 중점을 둔 한 우물 경영이다. 이를 토대로 금호석유화학을 2012년 자율 협약에서 졸업시킨 이후 통상 제조업의 양호한 부채비율로 여겨지는 ‘100% 이하’를 달성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총자산 5조8000억원을 보유하면서 재계 순위 55위까지 끌어올렸다.

하지만 지난해 하반기부터 금호석유화학의 주력 사업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합성고무·합성수지 등의 사업이 수요 약세와 가격 경쟁 심화 그리고 원료 가격 하락까지 겹치면서 변화가 필요해졌다.

금호석유화학은 라텍스 장갑의 원료로 사용되는 NB 라텍스 제품의 견조한 수요에 발맞춰 수익성을 극대화하는 전략으로 영업·생산의 청사진을 그리고 있다.

기존의 의료용 장갑 소재는 물론 산업 현장에서 작업자의 손을 보호하는 산업용 장갑 NB 라텍스 소재 판매를 확대하고 있고 사용 목적에 따른 제품 다변화를 논의 중이다.

합성수지 부문의 역량 강화도 모색 중이다. 자동차업계의 소재 경량화와 전장 기술에 필수적인 차세대 플라스틱 PS(PolyStyrene)와 ABS(Acrylonitrile Butadiene Styrene), 엔지니어링 플라스틱(PS 및 ABS Alloy 제품) 등의 연구·개발(R&D)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 건자재, 외형 확대와 신규 시장 진출 박차
‘전자 소재’ 팔고 ‘건자재’에 힘주는 박찬구 회장
이 밖에 금호석유화학은 사업 영역 전반의 체질 개선 노력에 집중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건자재 사업이다. 10년 동안 한 번도 선보이지 않았던 톱스타를 내세운 TV 광고를 비롯해 다양한 방법으로 마케팅에 적극 나서고 있다.

사실 금호석유화학에는 건자재 사업이 오래된 숙제다. 2008년 건자재 사업부를 신설하고 2009년 휴그린 브랜드를 론칭하며 사업에 뛰어들었지만 성과가 부족했다.

사업 초기만 해도 주력 제품인 창호재와 단열재 중심의 친환경 건축 자재 휴그린으로 LG하우시스·KCC·한화L&C 등 ‘건자재 빅3’와 견주겠다고 했지만 12년이 지난 지금의 위치는 매출 4위인 이건창호도 넘지 못하고 있다.

금호석유화학이 건자재 사업에 뛰어든 것은 석유화학 업종과 건자재 업종 간의 유사성 때문이다. 창호 등에 사용되는 폴리염화비닐(PVC)은 석유화학 업체에서 생산한다. PVC-건자재라는 수직 계열화가 가능했던 것이다.

그동안 건자재 사업이 빛을 보지 못한 이유는 외부적인 문제의 영향이 크다. 건설업계와 건자재업계에 따르면 건자재 사업 부진은 금호가의 경영권 분쟁에 따른 계열 분리가 가장 큰 원인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금호그룹은 2009년 경영권 분쟁 이후 금호아시아나그룹과 금호석유화학으로 나뉘었다. 사업 시작 당시만 해도 납품이 당연시 됐던 금호산업과 대우건설 납품이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건자재 시장 진입 초기 계열사의 캡티브(계열사 간 내부 시장) 물량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뼈아픈 현실이었다. LG하우시스·KCC·한화L&C 모두 자사 건설 계열사의 캡티브 물량을 선점하고 있어 틈새를 찾기도 어려웠다.

더욱이 휴그린 론칭 이후 이어진 글로벌 금융 위기로 부동산 경기까지 주저앉으면서 사업이 지지부진한 상태가 이어졌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분위기가 바뀌었다.

박 회장과 갈등을 빚어 오던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전 회장이 그룹 회장직 및 금호산업 등 계열사의 대표이사직과 등기이사직을 내려놓았기 때문이다.

금호석유화학 건자재사업부를 이끌고 있는 허권욱 상무는 올해를 신성장 동력을 확보하는 원년으로 정하고 외형 확대와 신규 시장 진출에 박차를 가할 예정이다.

한편 금호석화그룹은 사업 영역 전반의 체질 개선을 위해 전사적인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우선 금호피앤비화학은 올해 BPA(Bisphenol-A)와 에폭시(Epoxy) 등 주력 제품의 수익성 중심 판매 포트폴리오 전략을 수립하고 있다.

또한 주요 판매처 중 하나인 중국에서의 지속적인 신·증설로 경쟁이 심화됨에 따라 시장 다변화 전략을 모색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금호미쓰이화학과 금호폴리켐은 시장의 저성장 기조에 대비해 시장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방향으로 사업 구조를 최적화하고 있다.

금호미쓰이화학은 국내 MDI(Methylene Diphenyl Diisocyanate) 시장점유율을 현재의 50% 이상으로 유지하고 미주·동남아 지역 판매를 점진적으로 확대하고 석유화학 기업들의 기술 고도화에 따라 PH계 MDI 등 고부가가치 제품 중심의 영업 확대를 논의 중이다.

금호폴리켐은 주력인 고기능성 특수 합성고무 EPDM(Ethylene Propylene Diene Rubber)의 자동차 부품 시장(호스·피복 등)에서의 수요 증대에 대비하고 있고 작년 신규 도입된 펠릿 제품의 아시아 지역 판매 확대에 집중하고 있다.

cwy@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71호(2020.04.06 ~ 2020.04.12)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