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지호의 머니 인사이트]
-코로나19와 유가 하락으로 기업 ‘유동성 위기’ 가능성 솔솔
-대응책 많은 만큼 ‘패닉’은 금물
낙관도 말고 절망도 말고 다만 ‘경계’해야 한다 [윤지호의 머니 인사이트]
[한경비즈니스=윤지호 이베스트투자증권 리서치본부장] 유동성(liquidity)은 거기에 있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다. 유동성 위기를 말하기 전에 유동성이라는 단어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한국은행의 딱딱한 정의에 따르면 유동성은 ‘자산을 현금으로 전환할 수 있는 정도를 나타내는 용어로, 기업의 자산을 필요한 시기에 손실 없이 화폐로 바꿀 수 있는 정도’다. 이보다 간단하게 설명하면 유동성은 ‘자산의 가치가 시장 가격으로 전환되는 빠르기’다.

◆글로벌 부양책에도 출렁이는 주식 시장

증권의 유통 시장(한국거래소·유가증권시장 등 눈에 보이는 여러 가지 개념을 포함해)은 왜 존재해야 하고 정부는 왜 증권시장안정펀드를 조성해야 했을까.

금융 시장을 청과물 도매 시장으로 생각해 보자. 청과물 상인끼리는 보유한 과일이 상하지 않았는지 등 상품성을 측정하며 과일에 알맞은 가격을 매기고 거래가 이뤄진다. 만약 어떤 상인이 자신의 상품을 과대 포장하거나 불량품을 숨긴다면 다른 상인이 이를 알아차리게 되고 거래가 원만하게 이뤄지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거래가 원만하게 이뤄지는 것’, 즉 어느 청과물 상인의 과일이 원활하게 거래돼 ‘과일의 가치대로 즉각 현금화된다’면 이러한 과일은 유동적 상품이고 이러한 시장은 유동적 시장이다.

증권 시장으로 보면 기업들은 기업공개(IPO) 등의 절차로 발행 시장을 통해 신규로 자금을 조달하고 그 자금으로 재고 자산을 매입하거나 설비에 투자한다.

유통 시장에서는 기업이 자금을 조달한 대가로 발행한 증권의 가격이 정해진다. 그리고 유동적 유통 시장에서는 증권의 적정 가치를 탐색하려는 시도가 활발히 일어나며 이러한 증권 거래 또한 풍부하다. 즉 유동적 유통 시장에서는 기업의 정보 공개가 투명하고 신뢰가 존재한다.

안타깝게도 최근의 상황은 이와 대조적이다. 많은 사람은 기업의 새 자금 조달이 어려워졌다는 ‘유동성 위기’를 말한다. 현재의 금융 시장은 신뢰가 무너져 어느 기업이 파산할지 모른다는 불안감과 공포로 투자자들이 증권 투자를 꺼리고 극단적 현금화를 보이고 있다.

처음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따라 3월 3일 미국 중앙은행(Fed)의 50bp(1bp=0.01%포인트) 긴급 금리 인하와 해당 주말의 유가 하락으로 시작됐다.

전자는 미국 헤지펀드 등의 급격한 레버리지 포지션 언와인딩(되감기)으로 인해 현물 가격의 변동성 확대를 야기했다고 알려졌다. 후자는 미국 하이일드 채권(신용 등급이 ‘BBB-’ 이하인 투자 부적격 등급 채권) 내 10~15% 비율을 차지하는 미국 셰일 기업들의 채산성 악화와 연쇄 부도 가능성이 대두됐다.

정상적 시장 환경이었다면 이러한 쇼크는 흡수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코로나19의 신규 확진자 수가 눈에 띄게 증가하며 공장의 가동이 중단되고 국경이 폐쇄되는 등 글로벌 공급망의 훼손과 사회적 거리 두기 등 소비와 수요가 위축된 점이 심리적 균열을 일으켰다.

‘유동성 위기’는 자기 실현적(self-fulfilling)이 됐고 2003년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와 2015년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의 경험과 현재가 차이를 보이는 점은 코로나19가 투자자들의 신뢰를 확실히 무너뜨렸다는 점이다.

저금리 기조가 지속되며 기업의 이자 상환 부담보다 원금 차환 어려움에 따른 흑자 도산이 더 우려되는 상황이다. 이자 상환 부담은 기업이 사업을 안정적으로 운영해 영업 현금 흐름이 꾸준히 유입된다면 별다른 걱정이 없다.

하지만 원금 차환은 금융 시장의 여건에 달려 있다. 여러 기업의 동시다발적 대출 또는 회사채 발행 수요가 몰리면 금융회사나 금융 시장 또한 자체적 여건상 어려움이 따르기 때문이다.

만기가 도래하는 부채만큼 보유한 현금성 자산으로 충당할 수 있거나 기업 실적이 안정적이어서 영업 현금 흐름이 꾸준히 유입돼야 차환 우려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이를 금융 시장 관점에서 생각해 보자. 모든 종목이 상장돼 있고 속도가 생명이기 때문에 전자 거래 시스템이 활성화한 주식 시장과 달리 채권 시장은 딜러 중심의 네트워크로 구성돼 있다.

비유하면 전자가 최첨단 자동 결제 방식이라면 후자는 전통적 물물 교환 방식이다. 시장 구조상으로도 현금화하는 속도와 유동성이 부족하다. 여기에 채권 투자자들은 보수적이다.

이러한 제반 사항이 모두 합쳐져 현재의 ‘유동성 위기’를 구성한다. 코로나19로 인한 실물 경제 위축이 우려되는 가운데 미국 경제의 약한 고리인 셰일 기업의 채산성 악화가 대두됐다.

이 때문에 미국 하이일드 채권 시장 매수 심리가 취약해지며 거래가 위축되는 등 시장 유동성이 급격하게 저하됐다. 하이일드 유통 시장 내 유동성이 저하되자 투자자들의 외면으로 기업의 신규 발행도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가 확산된다. 점차 상위 등급 회사채 시장도 신용 경색의 영향권 내에 놓이게 된다.

◆Fed의 회사채 매입에 따른 반전 시그널 주목

회사채 시장의 패닉은 단기 자금 시장으로 불이 옮겨 붙었다. 기업들이 크레디트(신용) 한도 내 최대 금액을 인출하는 등 동시다발적으로 현금 수요가 증가했다. 안정적 금융 자산을 운용하는 머니마켓펀드(MMF)에서도 펀드런이 발생했다.

달러화가 안전 자산이라고 알려진 미국 국채나 금보다 귀해지는 이상 현상이 발생하면서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사태가 악화됐다. 안전 자산 선호(flight-to-quality)가 현금 선호(flight-to-liquidity)로 바뀐 순간이었다.

이는 한국 증시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외국인들의 주식 매도, 국채 선물 매도, 달러 조달 여건 악화 등 삼박자가 맞아떨어지며 주식·채권·원화 가치가 하락하는 트리플 약세를 기록하는 등 극심한 변동성과 금융 시장 불안정성이 대두됐다. 이는 국내 회사채 유통 시장과 단기 자금 시장에도 신용 경색이 점염되는 효과를 가져왔다.

미국에서와 마찬가지로 국내 회사채 유통 시장이 얼어붙기 시작했고 기업어음(CP) 금리가 폭등하고 가격이 폭락하는 등 유동성에 대한 패닉이 정상적 범주를 초월하기 시작했다. 이에 증권가에는 ‘4월 위기설’까지 흘러나오며 회사채 발행 시장 전면 셧다운 이후 기업이 만기가 도래하는 원금을 갚지 못해 연쇄 부도로 이어질 것이라는 ‘상상의 나래’까지 펼쳐지는 지경에 이르렀다.

모든 루머가 100% 거짓말을 포함하는 것은 아니다. 현실감 넘치는 소설이 더 흥미로운 법이다. 실제로 기업어음은 최근 증권사에서 해외 지수 주가연계증권(ELS) 관련 마진 콜 손실로 인해 발행 물량이 확대됐고 이는 발행 금리 상승을 야기했다.

다만 우려가 현실화할 정도로 기업들의 연쇄 부도가 가까운 것은 아니다. 일부 극소수를 제외한 대부분 기업의 현금 보유력은 높은 편이다. 또는 절대적 부채 수준이 높지 않거나 적어도 담보로 제시할 펀더멘털과 유·무형 자산이 존재한다. 정말 최악의 경우에도 금융회사가 있다.

투자자는 앞으로 낙관하지도 말고 절망하지도 말고 다만 경계해야 한다. Fed의 회사채 매입 이후 실낱같은 상황 반전의 시그널은 나오고 있다. 국내에서도 100조원 이상 규모의 금융 시장 안정 대책이 패닉을 잠재울 첫 단추가 될 것으로 판단된다.

한 번 무너진 신뢰는 회복에 오랜 기간이 필요한 만큼 일희일비가 아닌 장기적 호흡으로 시장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71호(2020.04.06 ~ 2020.04.12)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