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포커스]
-스테디셀러 ‘크린장갑’ 만드는 크린랲…승문수 대표 취임 후 ‘생활용품 전문 기업’으로 도약 중
주방에서 투표소까지…코로나19 필수품 ‘이것’은 어디에서 만들까


[한경비즈니스=안옥희 기자] 한국이 사상 처음으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속에서 제21대 국회의원 선거(4·15 총선)를 무사히 치르며 세계적으로 주목받은 가운데 투표 현장에서 눈길을 끈 것이 또 하나 있다. 바로 전국 투표소에 비치돼 모든 유권자가 투표할 때 이용했던 크린랲의 비닐장갑인 ‘크린장갑’이다.

감염병으로 인해 감염 예방과 개인위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크린장갑은 때아닌 특수를 맞았다. 1997년 출시된 크린장갑은 지난 23년간 연평균 1450만 세트가 팔려나간 대표적인 장수 제품 중 하나다. 안정성과 편의성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것이 장수 비결로 꼽힌다.

최근 코로나19의 여파로 크린장갑 판매가 급증해 3월 말 기준 크린장갑의 누적 판매량은 2억9000만 세트를 돌파했다. 대한민국 5200만 국민이 1인당 280개(1인당 제품 5.6세트·1세트당 50장 기준)를 사용한 어마어마한 양이다. 1장에 27.5cm인 낱개 제품을 일렬로 펼치면 그 길이가 총 400만km에 달하는데 이는 지구를 100바퀴 돌 수 있는 분량이다.

스테디셀러인 식품 포장용 비닐장갑을 만드는 장수 기업으로만 알았던 크린랲에 최근 변화의 기운이 감지되고 있다. 1980년생인 승문수 대표의 취임 이후 크린랲은 다양한 신사업과 인수·합병(M&A)을 추진하며 명실상부한 생활용품 전문 기업으로 변신하고 있다.
주방에서 투표소까지…코로나19 필수품 ‘이것’은 어디에서 만들까


◆ ‘위생 장갑’ 대명사에서 생활용품 대명사로


크린랲은 국내 최초로 인체에 무해한 무독성 식품 포장용 랩(LLD-PE)을 개발해 국내 랩 시장을 선도했다. 무독성 랩, 절단성 강화, 위생성 강화 등 3대 기술을 통해 식품 포장 분야 시장에서 70%의 점유율을 갖고 있다.

오랫동안 식품 포장 분야 1위 자리를 지켜 온 크린랲은 ‘비닐랩’, ‘비닐백’, ‘비닐장갑’ 등을 말할 때 제품 명칭이 그대로 통용될 정도로 제품 인지도가 높아 일반 명사로 자리 잡았다. 끊임없는 기술 개발과 소비자 니즈 분석을 통해 식품 포장 용품 외에도 크린터치 수세미·샤워타올·고무장갑 등 생활 편의 용품으로 취급 품목을 확대했다.

종이 포일을 개발해 알루미늄 포일 중심의 시장을 종이 포일로 대체하는 데도 앞장섰다. 현재 포일 시장은 8 대 2의 비율로 종이 포일이 대중화된 상태다. 종이 포일 시장은 매년 15% 이상 성장하고 있고 최근 에어프라이어 사용 증대로 종이 포일 수요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주방에서 투표소까지…코로나19 필수품 ‘이것’은 어디에서 만들까

◆ 디테일 살린 친환경 제품 개발 박차


크린랲은 1983년 설립된 37년 장수 기업이다. 재일 교포 사업가로 크린랲의 창업자인 전병수 회장이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을 만들겠다는 목적으로 1983년 7월 부산에 크린랲을 설립한 것이 시작이었다. 크린랲은 1984년 7월 국내 최초로 PE 재질의 무독성 랩을 개발했다. 크린랲의 무독성 제조 공법은 국내외 5개국 특허와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았다.

당시 국내 비닐 랩 시장은 대기업들을 중심으로 환경 부담이 높고 환경 호르몬이 있는 염화비닐(PVC)이 통용되고 있었다. 크린랲은 무독성 비닐을 통해 대기업을 제치고 점유율 1위에 올라섰다. 이후에도 절단성과 위생성을 강화하는 기술력을 적용해 비닐 랩 시장의 선두를 지켜 왔다.

일찍부터 글로벌 시장 진출을 염두에 두고 1993년 중국 시장에 선제적으로 진출했다. 현재는 홍콩·미국·러시아·베트남·일본·호주·뉴질랜드 등 전 세계 28개국에 크린랩 제품을 수출하고 있다. 동남아가 이머징 마켓으로 떠오르는 만큼 베트남 등 인접 국가로 시장 진출을 확대해 한류 열풍이 지속되는 동남아에서는 품질력을 바탕으로 가파른 상승 곡선을 타고 있다.

홍콩을 포함한 동남아 매출 비율은 44%에 달한다. 러시아 시장 진출 효과도 가시화하고 있다. 크린랲은 2018년 12월 타쉬르놀람코리아를 통해 타쉬르그룹 계열사가 현지에서 운영 중인 생활용품관 체인스토어 입점을 시작으로 홈쇼핑에도 진출했다. 주력 품목은 크린랩·크린백·크린지퍼백·고무장갑 등이다. 러시아 시장의 성장세를 바탕으로 유럽 시장 진출도 타진 중이다.

크린랲은 지속적인 변화와 혁신으로 디테일에 공을 들이고 있다. 생활연구소를 통해 제품 사용 시 발생할 수 있는 작은 불편함도 개선하는 디테일한 제품을 출시하고 있다. ‘작은손 크린장갑’과 ‘손목이 긴 크린장갑’을 비롯해 어린이 전용 장갑까지 사이즈를 다양화한 제품들이 바로 그것이다.

엠보싱 처리해 땀이 차지 않아 주부 습진 예방에 도움을 주는 ‘프리미엄 크린장갑’과 랩을 안전하고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기존 톱날 대신 절취선을 적용한 ‘뜯어 쓰는 크린랲’도 호응을 얻고 있다.

친환경 트렌드에 발맞춰 친환경 소재 개발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사탕수수에서 추출한 식물성 원료의 바이오매스 합성수지 제품인 ‘친환경 크린장갑’은 탄소 배출량을 저감해 친환경 인증을 받았다.

제품 제조 전 단계, 제조 단계, 수송 단계, 사용 단계, 폐기 단계 등 제품의 모든 과정에 걸쳐 환경 오염을 최소화하고 유해 물질을 줄여 나가고 있다. 글로벌 화학 기업인 바스프와 손잡은 것도 친환경 경영을 위해서다.

크린랲은 바스프와 협업해 친환경 생분해 비닐을 상용화한 제품 출시를 준비 중이다. 크린랲은 바스프의 독보적인 생분해 플라스틱 원료를 활용한 친환경 필름 제품 개발을 통해 지속 가능한 혁신 제품의 사업 비중을 높일 계획이다.
주방에서 투표소까지…코로나19 필수품 ‘이것’은 어디에서 만들까

[돋보기 : 승문수 크린랲 대표]

-“37년 장수 기업의 대변신…생활가전 시장 진출”


크린랲은 2018년 승문수 대표 취임 이후 기존 주력 사업에 안주하기보다 신사업과 인수·합병(M&A) 추진을 통한 새 먹거리 찾기에 적극적인 모습이다. 그 결과 2018년 하반기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129% 늘어나기도 했다.

1980년생인 승대표는 전병수 창업자의 조카이자 중국 사업을 이끌며 현지 시장점유율 30%를 달성해 낸 승병근 전 크린랲 상하이법인장의 아들이다. 승 대표는 중국에서 학창 시절을 보낸 뒤 두산그룹 전자소재사업부를 거쳐 중국에 진출하려는 한국 기업을 돕는 컨설팅 업체도 운영했다.

승 대표는 과거 전문 경영인들과는 다른 공격적인 경영 행보를 펼치며 크린랲의 미래가 달린 신사업에 승부수를 띄웠다. 건전지 사업을 강화하기 위해 건전지 제조 업체인 ‘알이배터리’ 지분 100% 인수를 진행해 5월 인수를 완료할 예정이다.

또 크린랲이 가진 핵심 기술을 활용한 신사업 전략으로 공기 살균기, 소형 공기청정기 등 생활 가전 분야 진출도 검토하고 있다. 크린랲은 지난 40년간 필름 분야에서 쌓은 노하우를 바탕으로 자회사인 주식회사 클랩(CLAP)을 설립해 광학필름 분야도 공략하고 있다. 승 대표가 두산그룹 전자소재사업부에서 신사업 담당으로 재직할 때 광학필름 분야의 가능성을 본 것으로 알려졌다.

클랩은 2019년 글로벌 화학 기업 바스프와 액정 광학필름 기술과 유기반도체 잉크젯 기술의 이전 협약을 체결했다. 두 가지 기술을 융합해 플렉시블 화면 내장 지문 인식(FOD) 센서를 사업화할 계획이다.


ahnoh05@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74호(2020.04.27 ~ 2020.05.03)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