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식자재 등 21곳 사들였지만 실적·재무 악화
- M&A 실무 책임자 허태영 상무는 퇴사
LF의 사업 다각화, 5년 성과는 아직도 ‘빈손’
[한경비즈니스=차완용 기자] 패션 전문 기업에서 종합 문화생활 기업으로의 진화를 추진해 온 LF에 이상 징후가 감지되고 있다.

최근 몇 년간 사업 다각화를 추진하며 부동산신탁·외식·호텔·주류 등의 기업들을 인수하며 인수·합병(M&A) 시장의 큰손으로 떠올랐지만 이렇다 할 성과를 올리지 못하면서 재무 구조마저 흔들리는 모양새다.

급기야 올해 초에는 그동안 M&A를 주도해 온 임원마저 돌연 퇴사했다. 업계에서는 이 임원의 퇴사로 그동안 추진해온 LF의 사업다각화 전략에 변화가 있을 것이란 이야기도 나온다.

경영진에 대한 내부 직원들의 불만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수년간 패션업계의 불황으로 사업 구조의 변화를 모색해야 하는 것은 맞지만 충분하지 못한 시장 조사나 기존 사업과의 시너지를 고려하지 않은 무리한 M&A라는 지적이다.

◆ 인수 기업 중 의미 있는 이익 내는 곳 없어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LF는 지난해 실적으로 매출 1조8517억원, 영업이익 875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은 8.5% 신장했지만 영업이익은 26.8% 감소했다. 당기순이익도 694억원으로 14.6% 하락했다.

전체적으로 매출은 늘었지만 M&A로 계열사가 늘어남에 따라 판매관리비용이 증가해 전체 연결 실적이 타격을 받은 것으로 풀이된다.

현재(2019년 12월 말 기준) LF 계열사는 총 41개사다. 사업 다각화 전략은 2014년 패션업계의 불황을 극복하기 위해 추진한 전략이다. 당시 20개사였던 계열사는 M&A가 이어지면서 매년 늘어났다.

2015년 30개사, 2016년 29개사, 2017년 35개사, 2018년 36개사였고 현재에 이르렀다. M&A를 통해 늘어난 계열사는 대부분 비패션 사업 분야다. 뷰티·리빙·방송·교육·외식·식자재·주류·부동산 등으로 다양하다. LF는 일부 패션 기업도 인수했는데 이는 해외 사업이다.

현재까지 상황만 놓고 보면 지난 5년간 추진해 온 사업 다각화 전략은 사실상 실패에 가깝다. 인수한 기업 중 의미 있는 이익을 실현한 곳이 거의 없다. 순익을 올리고 있는 계열사조차 인수 당시보다 매출이 크게 줄어든 상황이다.
LF의 사업 다각화, 5년 성과는 아직도 ‘빈손’
2016년 인수한 주류 기업 인덜지는 인수 첫해 30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는데 2018년에는 40억원, 지난해에는 57억원 정도로 적자 폭이 확대되고 있다. 2018년 인수한 교육 서비스 기업 아누리도 지난해 12억원의 손실을 기록했다.

이탈리아 현지에서 의류를 판매하는 폴라리스 S.R.L도 영업손실액이 2017년 15억원, 2018년 35억원, 2019년 65억원으로 급격히 늘고 있다. 이 밖에 적자를 보고 있는 계열사가 10여 곳이 더 있는데 이들은 매출 규모 자체가 작아 앞으로 큰 성장세를 기대하기 어려워 보인다.

흑자를 보이고 있는 기업들 역시 상황은 그리 좋지 않다. 가장 대표적인 곳이 2016년 자회사 LF푸드를 통해 인수한 해외 식자재 전문 유통 업체 모노링크다.

인수 첫해 45억원의 순이익을 올린데 이어 2018년 69억원으로 그 폭이 더 확대돼 기대를 모았지만 지난해 18억원으로 이익이 확 줄어들었다.

그나마 모노링크와 같은 해 인수한 유럽 식자재 업체인 구르메가 선방하고 있는데 영향력은 미미한 상황이다. 구르메는 2016년 12억원, 2018년 25억원, 2019년 26억원의 순이익을 달성했다.

2015년 인수한 온라인 쇼핑몰 트라이씨클은 인수 첫해 3억원의 적자를 본 이후 2017년 33억원, 2018년 33억원, 2019년 40억원의 순이익을 거뒀지만 LF그룹 차원에서 온라인 사업 강화를 위해 쏟아부은 노력과 자금에 비하면 기대에 못 미치는 수준이다.

이 때문에 주주들 사이에서는 불만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지난 3월 열린 주주 총회에서 일부 주주들은 “무리한 M&A로 회사 경영 실적이 악화됐다”며 “경영진이 이에 책임 있는 행동을 보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LF 측은 “인수 이후 실적 개선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계열사들은 안정화를 준비 중인 단계로, 아직 본격적인 실적을 기대할 상황이 아니다”며 “안정화되면 그룹 유통망을 통해 각 사업별 시너지 효과가 나타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 LF의 사업 다각화 전략, 결국 바뀔까

LF의 M&A 후유증은 회사 재무 상황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LF는 지난해 투자 명목으로 순유출된 현금 규모는 약 3000억원에 달한다. 부동산 투자 사업에 진출하기 위해 2000억원의 자금을 투입해 코람코자산신탁을 인수한 결과다.

그 결과 매년 LF가 유지하고 있던 현금성 자산 보유금(약 3000억~5000억원)은 지난해부터 2000억원대로 줄었다. 또 부채 비율은 2018년 27.0%에서 지난해 33.67%로, 차입금 의존도 역시 6.8%에서 13.8%로 확대됐다.

물론 아직 2000억원의 현금성 자산이 있어 경영엔 큰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자세히 뜯어보면 실상은 빠듯한 상황이다. 올해 주주 환원 정책으로 자사주를 매입한 데다 매년 약 5000억원 안팎의 고정비, 오는 7월 500억원 규모의 회사채 만기 등 자금 계획이 줄줄이 대기하고 있다.

이 밖에 자회사의 회사채 만기가 올해 약 900억원 정도 돌아올 예정이어서 자금 압박은 앞으로 더욱 심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올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코로나19) 사태까지 닥치면서 내부적으로 재무 전략에 대한 고심이 클 수밖에 없다. 매출이 두 자릿수 비율로 감소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따라 현금 흐름 악화가 불가피할 것이기 때문이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LF도 조용히 움직임에 나선 것으로 관측된다. 우선 M&A 실무 책임자였던 허태영 LF그룹 경영기획실장(상무)이 회사를 떠났다. 허 상무는 구본걸 LF 회장이 사업 다각화를 추진하며 책임자로 직접 데려온 인물이다.

그는 그간 LF그룹의 안살림을 비롯해 주요 M&A를 챙겨 왔다. 그는 미국 일리노이 주에 있는 노스웨스턴대 경영대학원(MBA) 과정을 밟았고 두산중공업을 거쳐 2014년 LF에 합류했다. 인덜지·구르메·모노링크·퍼플리크 등을 포함해 지난해에는 코람코자산신탁 M&A에 중추적 역할을 담당했다.

허 상무는 회사 내에서도 상당한 영향력 발휘한 인물로 구 회장은 물론 오규식 LF 사장에게 상당한 신임을 받아 왔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LF그룹 관계자는 “올해 초 허 상무가 퇴사했다”며 “자세한 내용이나 이후의 행적에 대해선 아는 바가 없다”고 말했다.

허 상무가 떠나면서 LF그룹의 사업 다각화 전략도 재수정이 예상되고 있다. LF 사정에 정통한 관계자는 “허 상무는 구 회장의 전폭적인 지지로 사실상 LF그룹의 M&A 실무를 주관해 왔던 인물”이라며 “허 상무의 퇴사로 LF의 사업 다각화 전략에 상당한 변화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cwy@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74호(2020.04.27 ~ 2020.05.03)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