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나스닥 상장한 신생 기업-고객 중심·입소문·파트너십으로 화상회의 ‘대명사’ 등극
[한경비즈니스=이정흔 기자] ‘Z세대’가 아니라 ‘주머(Zoomer) 세대’라는 용어까지 등장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집 밖을 나가는 외출이 어려워진 상황에서도 사람들은 여전히 다른 사람들과 ‘연결’되길 원한다. 이들은 온라인 화상 회의의 대명사가 된 ‘줌(Zoom)’을 통해 대학 수업을 듣고 직장의 동료들과 회의를 연다. ‘줌’을 통해 먹고 배우고 일하는 것이 너무나 일상적이고 익숙해진 세대의 탄생이다.

실리콘밸리에 기반을 둔 줌은 2011년 창업해 지난해 나스닥에 상장한 스타트업이다. 구글·마이크로소프트(MS) 등 업계 경쟁자들과는 덩치는 물론 모든 면에서 비교하기가 어렵다. 코로나19로 온라인 화상 업체들의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줌은 어떻게 쟁쟁한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시장을 선점할 수 있었을까.

◆‘실리콘밸리 성공 신화’의 주인공
줌은 실리콘밸리의 성공 신화를 가장 잘 나타내 주는 회사다. 창업자인 에릭 위안은 중국 산둥성 출생으로 1997년 그의 나이 27세에 처음으로 실리콘밸리에 발을 디뎠다. 그는 1980년대 칭다오에 있는 중국산둥과학기술대를 졸업했다. 당시 20대 청년이었던 그는 지금의 부인이 된 여자 친구와 연애 중이었는데 중국의 넓은 대륙이 최대의 장애물이었다. 여자 친구를 만나기 위해서는 꼬박 10시간을 기차 타고 여행해야 했기 때문이다. 위안 최고경영자(CEO)가 집에서도 여자 친구와 얼굴을 보고 대화를 나눌 수 있는 ‘화상 통화 서비스’를 꿈꾸기 시작한 것은 이때부터였다고 한다.
코로나19 속 활짝 웃는 ‘줌’, 온라인 점령한 비결은
1990년대 초반 석사 학위를 위해 중국 베이징에서 공부와 일을 하던 그는 미국에서 인기를 끌던 야후·넷스케이프 등을 통해 ‘인터넷’의 가능성에 푹 빠져들었다. 그러다 우연히 보게 된 빌 게이츠 MS 창업자의 강연이 그의 인생을 바꾸는 계기가 됐다. ‘인터넷과 디지털이 미래를 바꾼다’는 강연이었는데 이후 그는 실리콘밸리로 이민을 가겠다는 결심을 굳히게 된다.

하지만 이후에도 과정이 순탄치는 않았다. 영어 실력이 짧아 2년간 무려 8번이나 비자 발급을 거절당해야 했다. 9번을 끈질기게 시도한 끝에 결국 실리콘밸리 에 입성했다. 실리콘밸리에서 그의 첫 직장은 화상 회의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2년 차 스타트업 웹엑스(WeBex)였다. 이 회사는 2007년 미국 시스코에 인수됐고 이후 그는 시스코의 엔지니어로 남아 웹엑스 사업부를 총괄하는 부사장 자리에까지 올랐다. 당시 그가 이끌던 웹엑스 개발 엔지니어만 800여 명에 달했을 정도다.

위안 CEO는 밤을 새워 가며 더 좋은 온라인 화상 회의를 만들기 위해 애쓰고 있지만 정작 웹엑스를 사용하는 고객들은 여전히 서비스를 이용하는 데 불편한 점이 많았다. 결국 2011년 위안 CEO는 웹엑스의 개발자 40여 명과 함께 ‘독립’을 선언한다. 바로 ‘줌’의 시작이다.
위안 CEO가 줌을 창업했을 당시 이미 온라인 화상 회의 시장은 레드오션이었다. 그의 친정이라고 할 수 있는 시스코의 웹엑스, MS의 스카이프, 구글의 행아웃, 시트릭스의 고투미팅 등 글로벌 대기업들이 각축을 벌이고 있었다. 하지만 위안 CEO는 그 누구보다 그들의 ‘약점’을 잘 알고 있었다. 그 약점을 극복한다면 오히려 큰 기회를 만들 수 있다고 판단했다.

◆‘고객 행복’ 키워드로 통했다

그의 판단은 적중했다. 먼저 그는 ‘고객 친화적인 서비스’에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줌은 경쟁자들과 확실히 차별화되는 지점이 있었다. 사용하기 쉽고 모바일 친화적이라는 것이다. 서로의 고유 주소만 알고 있어도 손쉽게 회의나 수업에 참석할 수 있고 40분간 100명까지 무료로 회의에 참가할 수 있다. PC든 스마트폰이든 어떤 기기로 이용하더라도 끊기지 않는다는 것 또한 큰 장점으로 꼽힌다.

위안 CEO는 홍보를 하는 데도 ‘입소문 전략’을 최대한 활용했다. 온라인 화상 회의는 최소 2명 이상의 인원이 필요하다. ‘40분 동안 무료 이용’을 통해 줌을 경험해 본 이들이 제품의 장점에 공감할 수만 있다면 막대한 비용을 들인 대규모의 홍보는 불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창업 2년 만인 2013년 줌을 통해 온라인 화상 회의에 참여한 사람들은 300만 명이었지만 이는 2014년 3000만 명, 2015년 1억 명으로 증가했다. 줌은 2015년까지 별도의 마케팅 부서를 두지 않고 오로지 ‘입소문’에만 의지해 고객을 모았다.
코로나19 속 활짝 웃는 ‘줌’, 온라인 점령한 비결은
줌은 특히 성장하는 과정에서 다른 기업들과의 ‘파트너십’을 강화하는 데도 많은 공을 들였다. 가장 먼저 공략한 대상은 줌과 같은 스타트업들이었다. 실리콘밸리의 스타트업들이 회의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경쟁을 벌이고 있을 때 줌은 이들에게 ‘온라인 화상 회의’라는 대안을 제시하며 이들을 우군으로 끌어들였다.

예를 들어 줌으로 온라인 화상 회의를 하는 과정에서 파트너사의 서비스를 통해 일정을 조정하고 자료를 저장하는 식이다. 이를 통해 다른 업체들의 서비스까지 긍정적인 사용자 경험을 얻으며 다 같이 성장할 수 있는 생태계를 구축한 것이다. 기업 고객들의 증가는 다른 기업 고객들의 증가로 이어졌다. 이미 코로나19 전 미국의 델타항공·우버·존슨앤드존슨 등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큰 기업들이 줌을 사용 중이었다.

빠른 성장을 거듭한 줌은 지난해 4월 나스닥에 상장하며 다시 한 번 화제에 올랐다. 상장 첫날 주가가 72.22% 폭등하며 흥행 대박에 성공한 것이다. 당시 줌과 함께 나스닥에 상장한 핀터레스트의 상승 폭(28.42%)보다 컸다. 상장 당시 줌의 시장 가치는 92억 달러(약 10조74700억원) 정도로 내다봤다.

코로나19 이후 줌은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지난 1월 중국 내 코로나19가 확산되기 시작하면서 줌의 사용량이 급격히 늘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구글·페이스북 등 중국 내 직원들과 소통이 필요한 글로벌 기업들의 수요가 급격히 증가한 영향이다. 4월 1일 기준 2억 명이던 줌의 화상회의 애플리케이션 사용자 수는 4월 21일 기준 3억 명 이상으로 증가했다. 불과 20일 만에 전 세계적으로 1억 명 가까운 사용자가 늘어난 셈이다. 주식 시장에서도 현재 줌은 가장 ‘핫’한 종목이다. 올 들어서만 80% 이상 상승하며 4월 23일 기준 150달러 선에서 거래되고 있다. 현재 줌의 시가 총액은 419억 달러(약 51조원) 정도다.

◆돋보기-미·중 갈등에 불똥? 줌을 둘러싼 ‘보안 논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바꾼 시장 환경에서 ‘최고의 승자’로 떠올랐지만 최근 들어 줌을 둘러싼 논란도 높아지는 중이다. 무엇보다 ‘보안에 취약하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이른바 ‘줌 폭탄(Zoom Bombing)’이라고 일컬어지는 것인데 화상 회의 도중 제삼자가 침입해 인종 차별 메시지나 음란물 사진 등을 투척하는 행위가 빈번하게 일어나며 문제가 되고 있다. 최근에는 ‘차이나 게이트’도 불거졌다. 줌에서 생성되는 화상 회의 정보가 중국에 있는 데이터센터를 거친다는 것이다. 먼저 미국 교육부와 미국항공우주국(NASA)이 보안을 이유로 줌 대신 다른 애플리케이션을 사용할 것을 적극 권장하고 나섰다. 구글 또한 회사 소유의 PC에서 줌의 사용을 금지했다.

줌의 창업자인 에릭 위안 최고경영자(CEO)는 자신과 같은 중국 출신의 개발자를 대거 채용했다. 중국 내에서만 개발자 700여 명이 근무 중이다. 이에 실리콘밸리에 본사를 두고 있지만 ‘중국 기업’이나 마찬가지라는 논란이 제기돼 왔다. 코로나19 이후 줌의 빠른 성장에 MS의 ‘팀즈’를 비롯해 온라인 화상 회의 시장에 공을 들이고 있는 경쟁자들의 견제가 한층 강해진 상황이라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 논란이 지속되자 위안 CEO는 공식적으로 사과하며 보안 강화를 약속했다. 특히 모든 유료 이용자에게 자신이 접속하는 데이터를 어느 곳에 저장할지 선택할 수 있도록 하고 중국 이외 지역의 데이터는 절대 중국 서버를 거치지 않게 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글로벌 기업들과 줌의 ‘보안 논란’은 한동안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vivajh@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74호(2020.04.27 ~ 2020.05.03)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