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코로나19가 바꾼 스타트업 투자 지도]
- 서정민 브랜디 대표
“‘디지털·AI로 동대문 업그레이드…어제 주문한 옷 ‘새벽배송’합니다”
[한경비즈니스=이정흔 기자] 반경 10km 내에서 생산부터 유통까지 모두 이뤄지는 동대문은 ‘세계에서 가장 빠른’ 패션 클러스터다. 시장 규모만 15조원, 하루 거래액은 500억원에 달한다. 2016년 7월 창업한 패션 스타트업 브랜디는 일찌감치 ‘세계적 패션 클러스터 동대문’의 가능성에 눈떴다. 브랜디는 여기에 한 가지를 더했다. 다름 아닌 ‘인플루언서’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패션 클러스터인 동대문에서 옷을 생산하고 인플루언서들이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를 통해 이를 고객들에게 판매할 수 있도록 했다. 국내 최초로 동대문과 인플루언서를 연결한 패션 커머스 스타트업 브랜디는 그렇게 탄생했다.

◆5만의 생산업체, 3만의 도매상 갖춘 동대문

서정민 브랜디 대표는 창업 당시 특히 세 가지의 가능성을 눈여겨봤다. 먼저 동대문의 산업 클러스터를 내재화한 플랫폼을 구축할 수 있다면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동대문은 국내 패션 시장의 절반 정도를 차지하는 경쟁력이 높은 산업 클러스터다. 서 대표는 “동대문에서는 5만여 개의 생산 업체, 3만여 명의 도매상인들은 물론 동대문에서 옷을 소싱해 판매하는 30만여 명의 소매상인들까지 매일 같이 엄청난 양의 거래를 하고 있다”며 “문제는 이들이 다 개별적으로 움직이는 시스템이다 보니 산업 자체가 커지지 못하는 한계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동대문 내에서도 오래전부터 ‘정보기술(IT) 혁신’에 대한 필요가 있었지만 실제 이를 구현하기 어려웠던 이유다.

브랜디는 바로 여기에 과감하게 도전장을 내밀었다. 2017년 7월 론칭한 동대문 풀필먼트 서비스 ‘헬피’가 바로 그 결과물이다. 헬피는 동대문 패션 판매자의 샘플 공급과 사입 물류, 소비자까지의 배송, 고객 대응(CS) 전반 등을 대행해 주는 서비스다. 서 대표는 “동대문 상인들은 좋은 옷을 잘 만들지만 이를 판매하거나 영업하는 데는 어려움을 겪고 있었고 반대로 소매상들은 동대문에서 물건을 떼고 다시 주문을 넣고 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는 곳이 많았다”며 “이들을 하나의 플랫폼에 연결하는 것은 물론 복잡한 과정을 단순하고 효율적으로 진행할 수 있게 사용자 환경(UI)을 구축하는 데 중점을 뒀다”고 말했다. 이처럼 소매상인뿐만 아니라 도매상인들도 플랫폼의 장점을 십분 누릴 수 있었던 덕분에 현재 헬피는 동대문 내에서도 가장 많은 상품을 매입하고 물류를 진행하는 ‘큰손’으로 자리매김했다. 헬피의 하루 출고 수는 2만 5000건, 이용 도매상 수만 1500개가 넘는 등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디지털·AI로 동대문 업그레이드…어제 주문한 옷 ‘새벽배송’합니다”
둘째는 인플루언서의 활용이다. 브랜디가 인플루언서에 주목한 것은 처음부터 고객층을 ‘2030 여성’으로 정확하게 타겟팅했기 때문이다. 서 대표는 “지금은 MZ세대
(밀레니얼·Z세대)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지만 당시만 해도 MZ세대라는 용어조차 낯설었던 때”라며 “이미 MZ세대들 사이에서 인플루언서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었고 앞으로 그 영향력이 더욱 커질 것이 분명했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사업 초창기부터 100여 개의 인플루언서 쇼핑몰을 한데 모아 놓고 보니 매출이 잘 나왔고 동대문 도매상인들과 탄탄한 신뢰 관계를 구축할 수 있었다.

서 대표가 인플루언서 커머스 구축에서 특히 중요하게 여겼던 점이 있다. 인플루언서의 영향력을 활용하는 데만 집중한 것이 아니라 인플루언서들이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콘텐츠’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공을 들였다. 서 대표는 “기존의 패션 인플루언서들이 동대문에서 옷을 소싱하고 소비자들에게 판매하기까지 수십 단계의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했는데 브랜디는 인플루언서들이 이 과정을 생략할 수 있게 해줬다”며 “인플루언서들이 자신의 영향력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는 ‘콘텐츠’에 더 많은 공을 들일 수 있는 시간과 에너지를 확보할 수 있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결과는 소비자들의 반응으로도 나타나고 있다. 현재 브랜디의 애플리케이션(앱) 다운로드 수는 660만 건, 일 방문자 수 39만 명, 월 방문자 수 270만 명 정도다. 지난해 11월에는 하루 거래액 10억원을 돌파했다. 월 1억원 이상의 매출을 올리는 인플루언서 셀러만 50명 이상이다.

셋째는 동대문의 디자인 프로세스와 커뮤니케이션 방식의 ‘디지털화’다. 이를 위해 브랜디는 최근 동대문에 본사와 물류센터를 통합한 초대형 풀필먼트 센터를 구축했다. 동대문에 통합 물류센터를 구축한 것은 업계 첫 시도다. 동대문 맥스타일 7~8층에 자리한 이 물류센터는 총면적 7339.81㎡(약 2257평)로 브랜디의 모든 물류 처리가 이곳에서 이뤄진다. 동대문 패션 클러스터의 중심인 공장·도매상 등에서 디자인한 상품을 브랜디 앱에 올려 주문을 받으면 물류 창고에 상품을 집결시켜 곧바로 배송된다.

8층에는 셀러들의 쇼룸을 함께 운영하고 있다. 인플루언서 셀러들이 이 풀필먼트 센터를 통해 기획·판매·배송까지 한곳에서 ‘원스톱’으로 해결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한 것이다. 동대문을 기반으로 패션 사업을 꿈꾸는 셀러라면 누구든 ‘몸만 와도’ 창업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내일 뭐 입지?’ 패션업계 새벽배송 첫 론칭

브랜디는 지난 3월 세마트랜스링크·에이티넘인베스트먼트·DSC인베스트먼트·미래에셋벤처투자 등 7개 투자자들에 약 210억원 규모의 신규 투자를 유치하는 데 성공했다. 이번 투자의 핵심이 된 것 또한 ‘동대문을 기반으로 한 풀필먼트’ 사업이었다. 서 대표는 “SPA 대표 브랜드인 자라(ZARA)에서 연간 6만5000개의 옷을 생산하는데 동대문은 하루 동안에만 1만 개를 생산한다”며 “동대문이라는 패션 클러스터를 플랫폼화·디지털화하고 이를 인플루언서 판매로 연결할 수 있다면 세계적으로도 경쟁력이 높은 ‘패스트 패션 플랫폼’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가능성을 높게 평가받은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인플루언서 중심의 패션 커머스 ‘브랜디’ 그리고 동대문 풀필먼트 센터 구축과 이를 활용한 서비스 ‘헬피’를 완성한 브랜디는 현재 또 다른 도전을 준비 중이다. 다름 아닌 ‘새벽 배송’이다. 소비자들이 오후 9시 이전에만 옷을 주문하면 다음 날 오전 7시까지 상품이 배송된다. ‘어제 주문한 그 옷’을 입고 출근하거나 외출할 수 있게 된다. 5월 론칭을 준비 중이다.
“‘디지털·AI로 동대문 업그레이드…어제 주문한 옷 ‘새벽배송’합니다”
브랜디의 ‘새벽 배송’은 동대문 풀필먼트 센터의 구축과 함께 ‘빅데이터’를 활용한 수요 예측 시스템이 정교하게 갖춰져 있어 가능한 시도다. 서 대표는 “매일 수만 개의 패션 상품이 거래되고 이를 통해 판매 데이터를 수집하며 머신러닝을 통해 수요 예측 알고리즘의 정확도를 높여 왔다”며 “각각의 상품별·색깔별로 몇 개의 옷을 선주문하라는 것까지 알려주는 정교한 알고리즘을 통해 물건을 ‘선매입’하고 고객에게 주문이 들어오면 이를 바로 배송하는 시스템”이라고 설명했다. 브랜디는 이미 1년 반 전부터 수요 예측 시스템을 통해 물량의 20%를 선매입하고 있고 실제로 4일 안에 이 물량들의 재고를 소진하고 있다.

서 대표는 앞으로 ‘동대문의 경쟁력’을 세계 시장으로 넓히는 데도 적극적으로 움직일 계획이다. 그 첫걸음으로 중국과 동남아 등의 아시아 시장 인플루언서들이 동대문 클러스터의 옷을 판매할 수 있도록 패션 플랫폼 브랜디의 영향력을 확대해 나갈 예정이다. 서 대표는 “아시아 시장에서 패션 클러스터는 동대문과 광저우 정도만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이고 그중에도 옷을 생산하고 판매하는 모든 과정이 가능한 곳은 동대문밖에 없다”며 “예를 들어 베트남에 사는 인플루언서가 우리 풀필먼트 서비스를 활용해 동대문에서 생산되는 옷을 손쉽게 판매할 수 있는 플랫폼을 구축한다면 동대문의 경쟁력을 세계로 키우는 것이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말했다.
vivajh@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75호(2020.05.04 ~ 2020.05.10)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