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제 1275호 (2020년 05월 06일)

[홍영식의 정치판] 與, 개헌 불질러놓고 “국정블랙홀 될라” 발 빼지만…

기사입력 2020.05.04 오전 10:47

[홍영식의 정치판]


여, 5·18·‘촛불 항쟁’·중임제·토지공개념 추진


코로나 여파 등 “지금은 아니다


총선 압승 바탕 21대 국회서 추진할듯


통합당 “시장경제 부정하는 사회주의” 반대


[홍영식의 정치판] 與, 개헌 불질러놓고 “국정블랙홀 될라” 발 빼지만…



[한경비즈니스 = 홍영식 대기자] 개헌은 약방의 감초 같은 존재다. 지난 30년간 잊힐 만하면 등장해 정치권을 달궈 놓고 제대로 된 공론화 과정 없이 금방 사그라지기를 반복했다.



1987년 헌법 개정 이후 개헌론이 처음 등장한 것은 1990년이다. 민정당 총재를 겸하던 노태우 당시 대통령과 김영삼(YS) 민주당 총재, 김종필(JP) 신민주공화당 총재는 3당 합당에 합의하면서 내각제 개헌을 추진하기로 약속하고 비밀 각서까지 썼다. 하지만 대통령 출마 뜻이 강했던 김 전 대통령은 각서가 공개되자 3당 합당으로 탄생한 민자당 대표 업무를 거부하고 마산으로 내려갔고 내각제 개헌 약속은 9개월 만에 없던 것이 됐다.



1997년 대선을 앞두고 김대중(DJ) 새정치국민회의 총재와 JP는 후보 단일화를 선언하면서 내각제 개헌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JP는 DJ가 대통령이 되면 1999년까지 개헌한다는 약속을 얻어냈다. 하지만 DJ는 이를 지키지 않았고 DJP연합은 깨졌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2007년 1월 5년 단임제를 4년 중임제로 바꾸는 ‘원 포인트 개헌’을 제안했지만 한나라당이 반대하면서 무산됐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 경선 때 이명박·박근혜 후보가 집권하면 개헌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지키지 않았다. 국회 차원의 개헌도 여러 번 추진됐다가 번번이 무위로 돌아갔다. 18대 국회에서 국회의장 직속 ‘헌법연구자문위원회’가 만들어졌고 ‘5년 단임 이원정부제’와 ‘4년 중임 정·부통령제’ 등 복수 개편안을 담은 보고서를 내놓았다. 19대 국회 땐 ‘헌법개정자문위’가 출범해 ‘분권형 대통령제’를 제안했다. 하지만 여야 이견으로 개헌안은 국회에서 먼지만 덮어쓰고 있다. 2016년 10월엔 박근혜 전 대통령이 개헌을 전격 제안했지만 야당이 ‘권력형 비리’를 덮으려는 정국 전환용 계책이라고 반대하면서 논의를 시작하지도 못했다.



개헌이 이렇게 무산된 데는 각 정파의 정치적 ‘유불리’ 계산이 앞섰기 때문이다. 현직 대통령들은 불리한 정국 타개용으로 제시하기 일쑤였고 야당은 이를 받아들일 이유가 없었다. 막상 정권을 잡으면 개헌은 자칫 국정 블랙홀을 부를 수 있기 때문에 개헌 공약은 공수표가 됐다.
개헌론의 최대 쟁점은 권력 구조 개편이다. 내각제와 분권형 대통령제(이원집정부제), 대통령 중임제 도입 등을 놓고 정파별 주장이 각각 다르다. 의석 과반을 차지한 정당이 내각을 구성하는 내각제는 의회와 내각의 협력을 통한 책임 정치를 구현할 수 있지만 과반 정당이 없을 땐 정국 혼란을 부를 수 있다. 이원집정부제는 권력 분산에 따른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막을 수 있는 반면 대통령·총리 간 업무 혼선과 힘겨루기로 인해 역시 국정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


[홍영식의 정치판] 與, 개헌 불질러놓고 “국정블랙홀 될라” 발 빼지만…


 

[홍영식의 정치판] 與, 개헌 불질러놓고 “국정블랙홀 될라” 발 빼지만…



◆통합당 “헌법 정신·뼈대 건드리는건 절대 반대”



더불어민주당은 ‘4·15 총선’이 끝나자마자 개헌론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범여권 190석 차지라는 바뀐 정치 지형에 따른 것이다. 청와대는 이미 2018년 3월 자체 개헌안을 국회에 제출한 바 있다. 향후 개헌이 본격 논의에 들어가면 두 가지 점에서 거센 후폭풍이 예상된다. 우선 대통령 중임제다. 청와대 개헌안에는 ‘대통령 임기 4년제 및 1회 중임 허용’ 조항이 들어 있다. 최근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대통령 중임제와 책임총리제를 주장했다.



대통령 중임제는 5년제 대통령의 단점으로 꼽히는 집권 후반기 레임덕을 막고 정책 연속성을 기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국회의원 임기와 맞춰 잦은 선거로 인한 폐단도 없앨 수 있다. 하지만 대통령이 재선을 위해 ‘포퓰리즘적 정책’을 남발할 가능성이 높다. 물론 재선 땐 단임 대통령제와 마찬가지로 임기 후반기 레임덕을 맞을 수 있다.



여당이 대통령 중임제를 거론하는 것에 대해 야당은 문 대통령 집권 연장 방편이라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현행 헌법에 따르면 대통령 중임제 개헌은 제안 당시의 대통령에겐 효력이 없다고 돼 있다. 하지만 중임제 개헌이 이뤄진다면 문 대통령 퇴임 뒤 임기 한 번을 쉰 다음 재집권에 나설 수 있다고 야당은 의심한다. 하지만 여권은 그럴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주장한다.



또 다른 쟁점은 헌법의 뼈대를 건드리는 것이다. 청와대가 제안한 개헌과 총선 뒤 여당 인사들이 주장한 개헌 내용을 보면 우리 사회를 좌·우 거대한 이념 논쟁 소용돌이로 몰아넣을 가능성이 높다. 청와대 개헌안 전문에는 ‘5·18 광주민주화운동’, ‘부마항쟁’, ‘6·10항쟁’이 들어갔다. 여권은 ‘촛불 항쟁’도 넣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여권은 토지공개념과 동일노동 동일임금, 공무원 노동3권 인정, 지방 분권 강화 등도 추진하고 있다. 청와대 개헌안에는 토지공개념을 새로 규정했다. 128조 2항에 “국가는 토지의 공공성과 합리적 사용을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만 법률로 특별한 제한을 하거나 의무를 부과할 수 있다”고 했다. 하위 법률에 토지 소유에 한도를 두거나 매매 제한, 개발 이익 환수 등을 담을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한 것이다. 이인영 민주당 원내대표는 지난 2월 “헌법에 토지공개념을 명확히 했으면 좋겠다”고 했고 이용선 민주당 당선자도 토지공개념 도입을 주장했다. 민주당은 기업 이익 공유제까지 거론하고 있다.



여권의 이런 개헌안 추진에 대해 미래통합당은 권력 구조 개편 이외에 헌법 정신과 뼈대를 건드리는 것은 국론 분열을 가져올 수 있다며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다. 청와대 개헌안이 국회에 제출될 당시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는 “자유시장경제를 막고 명백한 사회주의 체제로 가자는 것”이라고 반대했다. 박형준 통합당 총선 공동선대위원장이 선거 전 “제발 개헌 저지선을 확보하게 해달라”고 한 것도 여당의 이런 개헌안에 대해 반대한다는 의미다.



[홍영식의 정치판] 與, 개헌 불질러놓고 “국정블랙홀 될라” 발 빼지만…



◆민주당 “개헌, 당장은 힘들어”…정권말 국정 블랙홀 우려



개헌은 당장은 추진하기 어렵다. 여당도 21대 국회 개원 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잦아들면 본격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이인영 원내대표도 "불필요한 개헌 논란을 통해 갈등이 생기거나 국력을 소진할 이유가 전혀 없다"고 밝혔다. 지금은 코로나19 극복이 우선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민주당이 ‘국민개헌발안제’ 국회 처리를 주장해 주목된다. 개헌안은 국회 재적 의원 과반(150석) 또는 대통령 발의로 제안된다. 여당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발의가 가능한데도 민주당이 굳이 ‘국민개헌발안제’ 카드를 꺼내 든 이유는 뭘까. 개헌을 전 국민적인 여론몰이를 통해 추진해 국회를 압박하겠다는 것이다.



개헌안 통과는 재적 의원 3분의 2(200석)가 필요한데 범여권을 합한 의석은 190석이다. 통합당과 미래한국당 의원 10명이 개헌에 가담해야 한다. 통합당 의원 가운데 개헌이 필요하다는 것 자체엔 동의하는 의원이 적지 않다. 하지만 이념적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여당 안에 찬성하는 통합당 의원은 거의 없다. 여당의 국민발안제에 동참했던 통합당 의원들도 헌법의 뼈대를 건드리는 것에 대해선 반대하고 있다. 그런 만큼 국민발의라는 우회로를 통해 여론을 몰아가면 통합당 개헌 찬성 의원들도 압박을 받을 것으로 여당은 보고 있다. 이 때문에 여당은 21대 국회 개원 뒤 코로나19 사태가 진정되면 개헌을 본격 추진할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년 가량 남은 문재인 대통령 임기 내에 개헌이 본격 추진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적지 않다. 문재인 정권 후반기에 접어드는 마당에 개헌론은 모든 국정 이슈를 잡아먹는 블랙홀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여당으로선 부담이다. 경제 상황 악화로 국민들이 먹고살기 힘들어지고 대북 문제도 잘 풀리지 않을 경우 개헌론으로 갑론을박한다면 여론이 뒷받침되기 어렵다. 더욱이 개헌론 핵심 쟁점이 이념 문제가 될 공산이 크기 때문에 여야 간 격돌이 더욱 심화될 수 있다. yshong@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75호(2020.05.04 ~ 2020.05.10)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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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일시 : 2020-05-04 1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