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돋보기]
‘방심은 금물’ 경기 침체 이제 시작이다 [강문성의 경제 돋보기]
[한경비즈니스 칼럼 = 강문성 고려대 국제학부 교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전 세계 경제를 수렁으로 밀어넣고 있다. 선진국·개도국 할 것 없이 전 세계의 경제 시스템이 멈춰 있고 코로나19의 확산을 막기 위해 모든 나라가 온 힘을 다해 보건 의료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이에 따라 한국 경제 역시 침체에 접어들고 있다. 그동안 우리는 ‘사회적 거리 두기’를 적극적으로 시행했고 이제 ‘생활 방역’으로 전환했지만 경기 침체는 이제 시작 단계다. 특히 수출이 국내총생산(GDP)의 41.6%(2019년 기준)를 차지하는 한국 경제로서는 세계 경기가 아직도 하락하고 있어 수출 실적이 더욱 악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국제 원유가 역시 사상 최초로 마이너스를 기록하면서 지난 4월 상장지수증권(ETN) 시장의 하루 평균 거래 대금이 역대 최대치를 경신할 만큼 투자 자본이 집중됐다. 하지만 국제 원유가가 왜 급락하는지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

셰일오일의 수급 시스템을 붕괴하려는 중동 국가와 러시아 등 원유 수출국의 감산 거부에도 원인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경기 악화로 원유에 대한 수요가 급격히 하락했다는 것이다. 원유 소비를 줄일 만큼 경기가 좋지 않다는 얘기다.

그리고 여당의 유례없는 대승으로 마무리된 총선 이후 정치권과 경제 부처는 긴급재난지원금 범위를 놓고 승강이를 벌였다. 결국 여당의 압박에 기획재정부가 기존의 태도를 선회했지만 전 국민을 대상으로 지급되는 ‘긴급재난지원금’의 규모는 무려 14조3000억원이다.

하지만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경기 침체는 이제 시작이다. 14조원이 넘는 재정을 사용하고 나서 만약 경기가 회복되지 않는다면 더 이상 재정 정책의 여유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으다)’ 긴급재난지원금을 통해 총알을 미리 다 써버렸기 때문이다.

더 걱정스러운 것은 정부가 경제 주체에 보내는 정책 시그널이다. 긴급재난지원금을 전 국민에게 제공하면서 상위 30%에게는 ‘자발적 기부’를 권유한다는 것이 정부의 계획이다.

‘긴급재난지원금’의 원래 취지는 코로나19로 인한 취약 계층의 소비 위축을 지원하기 위해 정부가 현금을 지급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수혜 대상이 하위 70%에서 전 국민으로 확대되면서 현금 지급을 통해 소비 확대를 전 국민으로 확산하자는 것이다.

국내 민간 소비가 GDP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48.6%(2019년 기준)여서 이 비율이 60~70%인 선진국보다 낮은 수준이다. 또 일반적으로 가계는 경제 위기 상황에서 소비보다 저축을 더 하는 습성이 있다.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를 경험한 우리로서는 이러한 습성이 다른 나라보다 더 강할 것이다.

결국 정부 정책은 현금 지급을 통해 소비 심리를 높여야 하는데 상대적으로 소비 여력이 높은 상위 30% 가구에 ‘자발적 기부’를 독려하는 것은 잘못된 정책 시그널이다. 차라리 ‘자발적 기부 독려’보다 ‘현금을 지원하니 받은 현금에 더 보태 소비를 많이 하라’고 ‘소비 독려’의 시그널을 보내야 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이 와중에 그렇게 흥청망청 써야 하느냐’고 고소득자를 욕하기보다 오히려 고소득자의 소비를 장려하는 것이 경기를 더 빨리 회복시키는 길이다.

재정 적자가 우려스러워 ‘자발적 기부’를 독려했다면 재정 당국은 아무런 대안 없이 ‘자발적 기부’라는 불확실성에 베팅한 것에 불과하다. 원래 취지와 어긋난 정책 디자인, 경제 주체에게 주어지는 잘못된 정책 시그널이 이 정책의 효과를 반감시킬 것으로 보인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76호(2020.05.09 ~ 2020.05.15)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