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정에 대한 요구·타자혐오·포퓰리즘 정치로 흔들리는 세계-새 대안 찾아야


[서평]‘정체성’에 대한 탐구가 민주주의 쇠퇴 막는다
◆존중받지 못하는 자들을 위한 정치학
프랜시스 후쿠야마 지음 | 이수경 역 | 한국경제신문 | 1만6000원


[한경비즈니스= 김종오 한경BP 출판편집자]‘역사의 종말’의 저자이자 세계적 정치철학자인 프랜시스 후쿠야마 스탠퍼드대 교수가 인류의 진보가 쌓아올린 민주주의의 정신이 쇠퇴하고 있는 현재의 상황을 분석하고 이를 타개할 방향을 모색한다. 지금 전 세계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세 가지 현상이 이 책의 중심 테마다. 인정에 대한 요구, 타자 혐오, 포퓰리즘 정치가 그것이다. 이 현상들의 근원에는 현대 사회의 필연인 정체성의 혼란과 불안이 자리하고 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에 속하는가’라는 질문으로 대표되는 정체성에 대한 물음에서 시작된다.

멀지 않은 과거만 해도 사람들은 정당·교회·학교와 같은 거대 집단을 기반으로 강하게 통합돼 있었다. 개인에게 주어진 자유는 별로 없었지만 적어도 소속감에 대한 불안과 정체성의 혼란을 느낄 일은 없었다.

하지만 세계화, 인터넷의 발달, 자동화에 따른 일자리 감소, 대규모 이주, 불평등의 심화, 소수자 운동, 인권 운동 등이 일어남으로써 과거에 존재감을 지탱해 주던 소속과 기존에 유지되던 삶의 방식은 더 이상 가능하지 않게 된다.

이는 매일매일 새로운 존재가 될 수 있는 자유가 생긴 것이기도 하지만 변화에 따라가지 못하는 것 또한 오롯이 자신의 책임이 됐다는 의미다. 한마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소속감과 정체성의 안정을 제공해 주던 단단한 토대가 사라진 것이다.

이렇듯 정체성의 안전지대가 사라진 이들은 더욱더 자신의 정체성을 지켜줄 집단에 몰입하게 된다. 정체성의 강조와 재등장은 곧 정체성의 결핍을 의미한다. 이와 같은 상황은 앞서 언급한 세 가지 현상이 일어나는 배경이 된다.

소속감을 갖기 어렵고 인정의 결핍을 겪어 온 이들이 민족·인종·성별·종교에 몰두하게 되고 이는 자신이 속한 집단과 다른 정체성을 가진 대상에 대한 혐오로 번지게 된다. 그리고 이처럼 개별 정체성을 기반으로 빗장을 걸어 잠그는 상황은 민족을 비롯해 특정 정체성을 기치로 내건 포퓰리스트 정치인들이 출연하기 좋은 토양이 돼 준다는 것이 그의 분석이다. 지금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백인 민족주의, 급진 수니파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IS) 문제, 힌두 민족주의 등이 그 증거다.

저자는 다원화된 사회에서 여러 목소리가 등장하는 것은 불공평과 부당함에 대한 자연스럽고 불가피한 반응이며 그것의 긍정적인 측면 또한 살펴봐야 한다고 말한다. 대표적으로 ‘미투 운동’은 성폭력에 대한 대중의 인식과 이해를 높였을 뿐만 아니라 기존 법규의 문제점에 대한 논의를 활성화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또 흑인 인권 운동은 소수 집단 시민을 대하는 방식에 대한 강한 자각이 형성되는 데 기여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서로의 존엄을 인정하면서 동시에 다를 수 있을까. 후쿠야마 교수가 찾고자 하는 답이자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질문이다. 후쿠야마 교수의 균형 감각이 돋보이는 대목인데 그는 정체성에 대한 혼란이 없던 시기, 정체성의 정치가 발흥하기 이전의 세계로 돌아가는 것은 바람직하지도 가능하지도 않다고 말한다. 다만 우려를 표하는 것이 있다면 “사회경제적 불평등이 갈수록 심화돼 온 30년간의 추세를 반전시킬 방법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대신하는 편리한 대용물”로 정체성과 정체성 정치를 이용하는 것이다. 그럴수록 그동안 외면 받아 온 집단은 관심에서 더욱 멀어지고 이들의 처지는 더욱 나락으로 떨어질 것이라고 경고한다.

책에 등장하는 사례 대부분은 미국과 유럽의 사례다. 하지만 이와 같은 모순은 정치적 진영 논리와 종교의 유무와 지역에 따라 균열과 갈등이 증폭되고 있는 한국 사회와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인간 존엄에 대한 보편적 이해를 도모하는 시스템을 구축하지 못한다면 끊임없는 갈등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는 정치학자의 경고를 듣지 못한 척 넘어갈 수 없는 이유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76호(2020.05.09 ~ 2020.05.15)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