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현장]-지자체와 기업의 합작품…연간 190만 명 방문하며 성공 모델 된 ‘덴엔플라자카와바’
유통 혁명의 중심에 선 일본 ‘휴게소’ [글로벌 현장]
[도쿄(일본)=전영수 한양대 국제학 대학원 교수] 혁신은 필수다. 획기적인 전환이 없으면 도태될 뿐이다. 성장이 멈췄고 재정은 나빠지며 인구는 줄어드는 삼중고 앞에서 성장 전략은 재검토되는 게 바람직하다.

한국보다 일찍이 트릴레마(trilemma)에 빠진 일본은 곳곳에서 함정 탈출을 위한 새로운 시도를 실행 중이다. 일선 소비의 격전지인 유통 현장의 변화다. 골목 상권 붕괴, 대형 점포 고전, 클릭 쇼핑 심화 등을 넘어서는 차원이다.
◆병원·우체국·호텔 등도 입점 시작

주목할 새로운 성공 예감은 ‘휴게소’다. 일본 전역에선 휴게소를 둘러싼 남다른 변신이 화제다. 새로운 유통 채널로 안착한 사례가 많아 매서운 속도와 규모로 기반 상권을 장악하고 있다. 한국처럼 고속도로휴게소를 떠올리면 곤란하다. 절대 다수는 일반 도로변 입지다. 고속도로휴게소와 달리 ‘미치노에키’로 부른다. 1991년 실험 운영한 이후 전국휴게소연합회 회원 멤버만 올해 2월 기준으로 1173개에 달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타격을 받고 있지만 완화되면 관광·구매 목적의 발길이 몰릴 것으로 기대된다.

독특한 것은 운영 방식이다. 어떤 식이든 해당 권역의 기초 지자체가 개입한다. 대개는 토지 대여와 건축 지원이 많다. 인프라 기반 제공이다. 그 대신 운영은 민간 주체가 도맡는다. 즉 관·민 연대 프로젝트가 일반적이다. 연합회 이사진만 봐도 10명 전원이 기초 지자체의 장이다. 휴게소의 운영·기능에 공공성이 포함된 배경이다.

최근엔 지역 활성화의 거점 공간으로 승격된다. 과소 지방을 되살려 돈·사람·정보가 흐르는 관문으로 활용한다는 전략이다. 휴게 기능 위주로 민간·영리적으로 운영하는 한국과 달리 휴게(Refresh), 지역 연계(Community), 정보 발신(Information)의 3대 기능이 강조된다.

공공성은 영리성을 만나 지속 모델이 된다. 지역 재생발 도농 격차의 해소 공간으로 휴게소가 안착하자면 돈 버는 사업 모델이 필수불가결하다. 실질적인 지역 진흥(관광 거점, 특산품 판매, 식당 운영, 주민교류센터 등)이 성과를 내려면 비즈니스 마인드의 실현이 급선무일 수밖에 없다. 그래야 ‘모객 증가→매출 증대→지속 고용→소득 증진→역내 소비’의 순환 경제가 이뤄진다.

이 때문에 휴게소의 생존 전략은 민간 경쟁과 다를 게 없다. 판을 까는 데 지자체가 도와줬을 뿐 이후엔 무한 경쟁에 가깝다. 지자체도 개입보다는 응원이다. 재정 절감과 자활 거점의 일석이조는 영리 구조가 동반돼야 가능해서다.

성공 모델은 쏟아진다. 엄청난 흑자는 아니지만 적어도 휴게소 도입 전후를 비교해 새로운 소비·유통 현장으로 직간접적인 부가 가치를 공유하는 곳이 많다. 적으나마 재정 보조도 한몫했다. ‘공공성+영리성’의 실현 무대답게 일상 소비와 행정 수요의 발길을 끌어당겨 소외당한 지역 자원과 방치된 주민을 흡수했다. 운영 주체도 주민 단체뿐만 아니라 관·민·산·학에 금융까지 가세, 협치 성과를 강화한다. 상품·서비스도 다종·다양화된다. 병원·우체국·호텔·영화관 등 시설 연계로 대형화도 꾀해진다.

최근 단연 돋보이는 휴게소는 ‘덴엔플라자카와바’다. 단순한 휴게소를 넘어 유명 관광지로 변신하는 데 성공했다. ‘집객에 성공한 프리미엄 혁신 공간’이란 평가가 잇따른다. 수치로 뒷받침된다. 수도권 북부의 군마현에 자리한 인구 3300명의 가와바무라의 연간 방문자는 190만 명에 달한다. 세계 유산 타이틀을 움켜쥔 웬만한 유명 관광지를 압도하는 수치다. 7개의 주차장이 주말이면 만원이다.

그 덕분에 사장인 나가이 쇼이치는 다양한 일본 언론에 불려 다니며 유명 인사로 급부상했다. 휴게소는 1993년 지자체와 민간이 함께 출자·건설했다. 140명 임직원이 슈퍼마켓·레스토랑·공방·호텔·체험교실·놀이시설·공원 등 20여 시설에서 근무한다.
유통 혁명의 중심에 선 일본 ‘휴게소’ [글로벌 현장]
◆휴게소의 킬러 콘텐츠는 ‘먹거리’

입지로는 그저 그런 과소 지역이다. 특별할 게 없는 시골 동네다. 출산율이 줄고 외부로 나가는 사람은 많아 인구수가 적은 폐허 직전의 소멸 지역에 가깝다. 인구 감소와 자원 방치가 반복돼 지역 경제와 역내 상권이 완전히 얼어붙었다.

그랬던 게 지금은 휴게소 인기 랭킹 1위를 독점, 지역 활성화의 성공 모델로 평가된다. 지역 공헌 성과를 인정받아 2014년 국토교통성의 ‘전국 모델 휴게소 6선’에도 선정됐다.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의 벤치마킹 시찰단까지 찾아온다. 도쿄돔의 1.5배에 달하는 방대한 부지·점포에서 고급 지향의 다양한 식당 음식, 재료 구매, 체험 활동 등이 제공돼 일일 관광의 최적지로 입소문을 탔다.

최대 매력은 먹거리다. 어느 점포든 궁극의 맛과 서비스를 실현한다. 줄 서지 않고 먹을 수 없을 정도다. 또 여름엔 기간 한정 무료·무한정 블루베리 시식 행사가 유명하다. 자녀를 동반해도 걱정 없는 놀이존까지 충실하다.

휴게소와 어울리지 않는 점포도 많다. 도심 번화가에 있음직한 고급형 베이커리가 그렇다. 바구니에 담으면 화상 인식으로 결제되는 시스템도 도입했다. 지역 농산물을 섞어 만든 한정 판매 빵은 낙양지가(洛陽紙價 : 낙양의 종이 값이란 뜻으로 종이의 수요가 증가해 값이 오름)가 따로 없다. 인접 목장의 생유를 부지 내 공방에서 수작업해 만들어 낸 치즈와 스위츠 등도 인기다. 하나같이 ‘프리미엄’이 붙는다. 지역 재료의 맛을 철저히 반영해 낸 상품력의 힘이다.

처음부터 승승장구한 것은 아니다. 10년 넘게 고전을 반복했다. 2007년엔 적자까지 냈다. 상황이 역전된 것은 새로운 리더십이 출현하고서부터다. 취임 10년 만에 일본 굴지의 휴게소로 변모시킨 현지 출신, 외부 수혈 최고경영자(CEO)가 한몫했다. 혁신 전략의 핵심은 ‘지역자원+고급가치’로 요약된다. 휴게소면 어디든 있는 지역 농산물로 만든 평범한 먹거리를 새롭게 고급화해 차별화를 꾀하는 식이다.

언론은 이를 ‘나가이식 마케팅론’으로 부른다. 모든 것을 고객 시선에 맞춰 생각한다는 취지다. 지역 농산물의 강조 지점인 신토불이는 공급자의 자기 만족일 뿐 고객의 취향과는 다르다는 게 기본 자세다. 벤치마킹은 도심·고급형 경쟁 상품이다. 이들을 철저하게 분석해 고객이 즐거운 점포를 지향한다. 점포 개발도 고급화가 포인트다. 유럽 체인과 대형 백화점을 좇아 세련된 판매 공간을 고집한다. 비싸도 좋은 것은 팔릴 수밖에 없고 직원도 지역도 얼마든지 값어치를 낼 수 있다고 본다.

나가이 쇼이치 사장은 2007년 부임 이후 2개월에 한 번씩 경영 전략 회의를 개최하며 의식 개혁과 소통 라인을 강화했다. 이 과정에서 연간 1000여 건의 개선 사항이 수정됐다. 감동적인 고객 만족을 위해 디즈니랜드에 직원 시찰을 보냈는데 그들의 임무는 온종일 스태프들의 응대 관찰에 한정하는 에피소드도 있다.

접객 품질의 향상은 그렇게 도출됐다. 사장 취임 당시 연간 62만 명의 내방객은 190만 명으로 불었다. 전체 사업의 매출액은 점포별로 2~6배 늘었다. 취임 후 2년 만에 흑자를 냈고 3년 차엔 목표를 초과 달성했다. 그 덕분에 주말 주차장엔 역외 넘버의 고급차가 줄을 잇는다. 70%는 단골손님이다. 10회 이상 방문율도 40%가 넘는다. 매년 새로운 점포·시설 강화는 반복된다. 언제 와도 늘 바뀌었다는 이미지 덕분이다.

2007년 5억 엔(약 57억2030만원)대의 연매출은 2019년 20억 엔(약 228억8320만원)을 돌파하는 기염을 토했다. 매출 증진은 직원 변화라는 호순환을 낳는다. 스스로 정리하고 인사하며 감사하는 직원이 포진했기에 고객 만족이 자연스럽다.

이곳에 납품하는 지역 농가도 변하기 시작했다. 상품 래핑과 패키지 등을 스스로 발전시켜 고객의 시선을 사로잡는 식이다. 휴게소도 매출 일부를 지역 농가에 환원한다. 휴게소가 유명세를 타면서 성공 경험을 전수받으려는 관심도 높아진다. 여세를 몰아 해외 진출까지 모색한다. 로스앤젤레스에 일본 특화적인 대형 쇼핑몰을 건설, 일본 식재료와 문화를 수출한다는 포부다. 2021년 일본 전역의 명산물을 모아 개업할 예정이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77호(2020.05.16 ~ 2020.05.22)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