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국면 맞은 ‘시리즈펀드 제재 심의’...농협은행, ‘미 SEC 룰 개정’ 근거로 연기 요청
[한경비즈니스=이정흔 기자] NH농협은행의 시리즈 펀드 제재 여부와 관련한 논의가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농협은행이 18일 금융당국에 ‘시리즈펀드 제재 심의 일정 연기’를 요청한 것으로 확인했다. 해당 혐의를 제재하는 데 법적 조항의 근거가 된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의 증권법 규정이 최근 전면 개정됐다. 이에 따라 시리즈 펀드 제재 여부를 결정하는 데도 추가적인 논의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시리즈펀드’는 사실상 유사한 자산에 투자하는 펀드를 사모 형태로 쪼개 파는 것을 말한다. 농협은행은 2017년 3월~2018년 3월 파인아시아자산운용 및 아람자산운용과 연계해 사모펀드를 시리즈로 판매한 혐의를 받고 있다. 사모펀드는 공시의무가 면제되는 등 각종 규제에서 공모펀드보다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금융당국은 농협은행이 ‘시리즈펀드’를 통해 공모로 인한 규제를 회피했다고 보고 있다. 이에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이하 증선위)는 20일 심의위원회를 열어 이와 관련한 제재 여부를 심의할 예정이다.

금융당국이 농협은행 시리즈펀드 제재의 근거로 삼고자 하는 법은 일명 ‘미래에셋방지법(자본시장법 제119조 제8항)’이다. 하나의 증권을 둘 이상으로 쪼개서 발행하면 이를 동일한 증권으로 판단하고, 이 경우 사모펀드라도 공모펀드 규제를 적용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증권신고서 제출의무는 발행인인 운용사에게 있다. 하지만 금융당국은 ‘농협은행이 사모펀드 설정을 사실상 주도했다’는 판단 하에 주선인 자격으로 처벌이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농협은행이 증선위의 심의 연기를 요청한 데는 지난 3월 미 SEC의 ‘거래통합지침’ 폐기 결정이 영향을 미쳤다. 거래통합지침은 둘 이상으로 나눠진 증권을 하나의 발행으로 취급하는 기준을 뜻하는 것으로, 미래에셋방지법의 모체가 된 규정이다. 이번 SEC의 개정안에는 개개의 증권발행에 관해 공시의무를 준수했다면 통합을 통해 증권법 위반의 책임을 물을 수 없도록 했다.

이에 따라 학계와 법조계에서도 시리즈펀드 제재 여부와 관련해 보다 신중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지난 16일 진행된 한국증권법학회의 정기세미나에서는 ‘미래에셋방지법으로 대변되는 금융당국의 공시규제가 적정한가’를 주제로 관련 사안에 대해 논의했다. 김연미 성균관대학교 로스쿨 교수는 이날 주제 발표를 통해 “미래에셋방지법 등 현행 규정이 추상적인 문구로 구성되어 증권 발행인과 펀드판매회사 등에게 지나친 불확실성을 부담시킬 위험이 있다”며 “선의의 시장참여자를 보호하는 방향으로 미 SEC 규정안이 전면 개정됐다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증선위가 이례적으로 내부 자문기구인 법령해석위원회의 유권해석 인용을 보류하고 있다는 점도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금융위원회는 이 사안을 두고 작년부터 1년이 넘게 심의를 진행 중이다. 농협은행에 대한 과징금 부과결정을 위해 총 5회(자본조사심의위원회 2회, 법령해석위원회 1회, 증선위 2회)에 걸쳐 심의를 거듭했다. 특히 법령해석위원회 유권해석을 근거로 자본조사심의위원회는 “관련 법규상 펀드판매회사에 대해 과징금을 부과할 수 없다”는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증선위에서는 농협은행이 자본시장법을 우회적으로 위반했다는 의견과 판매회사를 제재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다는 의견이 충돌하며 최종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제재 여부에 대한 판단을 보류했다.

김홍기 한국경제법학회장(연세대학교 로스쿨교수, 금융위 법령해석위원)은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과징금 부과 등의 행정처분은 그 근거가 되는 법규를 엄격하게 해석·적용해야 하고 행정처분의 상대방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확대해석하거나 유추해석해서는 안 된다”며 “농협은행의 펀드들은 투자자 손실이 없었고, 관련 법규와 행정당국의 사전지도가 명확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무리하게 과징금이 부과된다면 법률 불소급 및 확대해석 금지원칙에 반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viva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