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 리포트Ⅰ = 서울 중심에 미니 신도시 개발…‘잠자던 용산’ 깨우다]

[편집자 주] 대한민국 부촌의 축은 바뀔 수 있을까. 들판에는 똥파리가 들끓고 전기조차 들어오지 않던 서울 강남이 지난 반세기 동안 대한민국 부촌의 대장 노릇을 했다. 1960년대 말 정부가 강북에 몰려 있던 도심 집중화를 분산시키고 지방과 서울을 연결하는 수출 주도형 경제개발계획을 추진하면서 강남으로 기업들이 모여들었다. 일자리가 넘쳐나는 곳에 아파트들이 줄기차게 들어서며 땅값과 집값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오죽하면 강남 집값은 떨어지지 않는다는 ‘강남 불패’라는 말이 생겨났을 정도다.
하지만 200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강남을 위협하는 동네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바로 서울 남산을 베개 삼아 한강을 내려다본다는 곳 ‘용산’이다. 당초 서울시 주도로 용산의 대규모 개발 개획이 발표→추진→표류 등을 반복하면서 기대만큼의 변화가 보이지 않았지만 이제는 정부까지 개입했다. 8000가구 규모의 미니 신도시 건립이 핵심인데 이에 따라 용산이 크게 요동치고 있다.
[용산 개발] ② 2전3기 개발에 ‘로또 분양’ 기대감까지
[한경비즈니스=차완용 기자] 요즘 한국에서 가장 ‘핫’한 동네는 바로 용산이다. 정부가 51만5483㎡에 달하는 용산 정비창 유휴 부지에 약 8000가구를 공급하겠다고 밝힌 여파다.

아직 용산 일대에 들어서야 할 고층 빌딩과 호텔 그리고 쇼핑몰 등 상업·업무 시설 개발 계획이 발표되지도 않은 상황이 이정도면 대한민국 최고의 땅이라는 것은 틀림없어 보인다.

사실 용산 정비창 개발은 당초 계획됐던 용산 국제업무지구 개발의 일부분에 불과하다. 국제업무지구 개발 면적이 700만㎡가 넘었으니 비율이 10%도 채 안 된다.

국제업무지구 개발은 2006년 서울시가 용산에 총 31조원의 사업비를 투입해 초고층 빌딩 23개를 짓고 동북아 비즈니스 허브로 키우겠다는 계획과 함께 추진된 사업이다.

이 중 용산 정비창 부지에는 5000가구 규모의 주거 지역을 중심으로 업무지구가 어우러지는 개발이 예정돼 있었다.

하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와 2009년 용산 참사 등의 악재가 이어지며 결국 2013년 사업이 백지화됐다. 이 과정에서 용산 개발 사업 시행자로 선정됐던 ‘드림허브’가 52억원의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 이자를 내지 못하고 부도를 맞기도 했다.

조용하던 용산이 다시 주목받은 것은 2018년 7월이다. 싱가포르 출장 중이던 박원순 서울시장이 ‘여의도 용산 통개발’ 구상을 발표하자 용산과 여의도는 물론 목동 마포 등 주변을 비롯해 서울 전역으로 집값 상승이 이어졌다.

당시 서울 집값을 잡기 위해 연이은 부동산 규제 정책을 펼치고 있던 국토교통부와 갈등을 빚기까지 했다. 약 한 달 동안 이어진 국토부와 서울시의 줄다리기로 인해 결국 여의도 용산 통개발 계획은 전면 보류됐다.
[용산 개발] ② 2전3기 개발에 ‘로또 분양’ 기대감까지
이런 와중에 정부가 서울 용산 정비창 개발을 발표했다. 이전 개발 발표 때와 다른 점은 시장 주도형 개발이 아니라 공공 개발이라는 점이다.

정부는 8000가구 중 오피스텔을 물량 1000가구를 제외한 7000가구 중 30%인 2000가구를 ‘공공 임대’로, 나머지 20%에 해당하는 1500가구는 공공 분양(청년·신혼부부 주택) 형태로 공급하기로 했다.

입주자 모집은 이르면 2023년 말 또는 2024년일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는 내년 말까지 구역 지정을 마치고 2023년까지 사업 승인을 완료할 계획이다.
[용산 개발] ② 2전3기 개발에 ‘로또 분양’ 기대감까지
시장에서는 벌써부터 ‘로또 분양’에 대한 기대감이 확산되고 있다. 도심이지만 분양가 상한제 적용으로 분양가가 주변 시세에 못 미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청약 대기자들의 움직임도 바빠졌다.

서울뿐만 아니라 수도권이나 지방의 가점 높은 청약 대기자들이 목표를 변경, 용산 정비창 부지 청약 자격을 얻기 위해 서울로 거주지를 옮기려는 분위기가 나타나고 있다.

현재 서울 등 수도권 투기과열지구는 해당 지역에서 2년 이상 거주해야 청약 1순위 자격을 얻을 수 있다. 용산 정비창 부지는 2023년 말에서 2024년 분양 계획이기 때문에 지금 거주지를 이전하면 분양 시점에 1순위 자격을 얻을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일각에서는 금싸라기 땅에 공공 임대 아파트를 짓는 것은 땅 낭비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동부이촌동에 있는 공인 중개사무소 관계자는 “한국을 대표하는 고급 아파트가 들어설 지역에 공공 임대 아파트촌은 어울리지 않는다”며 “동부이촌동 주민 중 상당수가 이번 계획에 불만이 많다”고 말했다.

◆ 투기 차단 초강수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
[용산 개발] ② 2전3기 개발에 ‘로또 분양’ 기대감까지
이번 용산 개발을 위해 정부는 준비를 많이 한 것으로 보인다. 대책 발표 이후 개발 기대감으로 매물이 회수되는 등 가격 상승 움직임을 보이자 곧바로 용산 정비창과 주변 재개발·재건축 단지를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했다.

앞으로 이들 지역에서 대지 면적이 18㎡를 초과하는 주택을 거래할 때 구청장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서울 도심에서 토지거래허가제가 부활하는 것은 11년 만이다.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된 곳은 용산 정비창 부지와 인근 재개발·재건축 7곳, 용산역 주변 재개발 구역 6곳이다.

이촌동 중산아파트와 이촌1구역, 한강로동 재개발과 삼각맨션, 신용산역 북측 1~3구역, 용산역 전면 1-2구역, 국제빌딩 주변 5구역, 정비창 전면 1~3구역, 빗물펌프장 등이다.

토지거래허가제는 부동산을 거래할 때 시·군·구청의 허가를 받은 뒤 매매하는 게 골자다. 주거·상업용지별로 땅의 목적에 맞게 이용할 때만 거래가 허가된다.

주거 용지에 들어선 집을 사면 2년 동안 실거주하겠다고 확약해야 한다. 이 기간 동안 매매나 임대도 금지된다. 이를 어기면 취득가액의 30%를 과태료로 낸다.

토지 거래 허가 여부는 면적에 따라 다르다. 국토부는 대상 구역에서 주거 지역이라면 토지 면적이 18㎡를 초과할 때, 상업 지역은 20㎡를 초과할 때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규정했다.

이는 ‘부동산 거래 신고 등에 관한 법률 시행령’이 정한 기준 면적 범위(주택 기준 180㎡의 10~300%) 가운데 가장 작은 규모다. 사실상 대부분의 주택이나 상가를 거래할 때 토지 거래 허가를 받아야 하는 셈이다.

서울 도심에서 토지 거래 허가 구역이 강력하게 작동한 것은 3차 뉴타운을 개발하던 2009년 3월이 마지막이다. ‘도시 재정비 촉진을 위한 특별법’에 따라 재정비촉진지구로 지정받은 뉴타운들은 이 시점까지 주거 용지에 20㎡ 기준이 적용되다 180㎡로 완화됐다.

이후 구역별로 허가제가 해제됐다. 국토부는 이번에 지정이 제외된 곳들에서 가격 불안 움직임이 보이면 토지거래허가구역을 확대할 방침이다.

김영한 국토부 토지정책관은 “지가 상승의 기대 심리를 사전 차단할 필요가 있어 토지거래허가구역을 지정했다”며 “다른 개발 사업에 대해서도 규모나 투기 가능성 등을 고려해 허가 구역 지정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번 토지거래허가구역에서 빠진 용산 일대 재개발·재건축 지역은 반사이익을 톡톡히 누리고 있다. 대표적인 곳이 재개발을 추진 중인 청파1구역인데 투자 수요가 몰리는 분위기가 곳곳에서 감지된다.

5월 12일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 열린 용산구 청파동1가 지상 3층짜리 꼬마빌딩(총면적 273㎡) 1회 차 경매에 42명이 응찰하며 14억6000만원에 낙찰됐다. 감정가(최저가)는 9억143만원이었지만 응찰자가 몰리며 감정가의 160%까지 올랐다.

cw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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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78호(2020.05.23 ~ 2020.05.29)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