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반갑다, 집콕 식품업계 ‘왕좌의 게임’]
-수십 년간 오비맥주와 하이트진로 ‘엎치락뒤치락’…“미래의 1등은 우리다”


[한경비즈니스=김정우 기자] 5조원 정도로 추산되는 국내 맥주 시장은 현재 오비맥주가 평정한 상태다. 주력 제품인 ‘카스’를 앞세워 무려 10여 년간 판매 1위를 지켜내고 있다.

하지만 지난해를 기점으로 굳건할 것만 같았던 오비맥주의 독주 체제에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했다. 하이트진로가 5년간의 제품 구상과 2년간 개발 끝에 완성한 야심작 ‘테라’를 출시하면서 판매 돌풍을 일으키며 회심의 반격에 나섰기 때문이다.

업계에서 ‘카스테라(카스 vs 테라) 전쟁’이라는 표현이 등장할 정도로 전통의 라이벌인 두 업체는 팽팽한 기싸움을 벌이고 있다.

◆유흥 시장 제외하면 오비맥주가 압도적


현재 맥주업계는 정확한 시장점유율이 공개되지 않고 있다. 2013년까지만 하더라도 주류협회에서 맥주와 소주의 출고량 통계를 발표했지만 과당 경쟁 문제 때문에 중단한 상태다. 다만 시장 상황을 가늠할 수 있는 몇몇 수치들이 발표되고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시장 조사 업체 닐슨코리아의 통계다.

닐슨코리아에 따르면 지난해 소매 매출액 기준 맥주 시장점유율은 오비맥주가 49.6%를 기록했다. 하이트진로는 점유율 25.3%를 기록한 것으로 집계됐다. 브랜드별로 놓고 보더라도 카스는 지난해 매출 1조1900억원(점유율 36%)으로 1위를 달성했다. 하이트진로의 테라는 2120억원(점유율 6.3%)으로 2위에 이름을 올렸다.
거센 ‘테라 돌풍’…지각변동 시작된 ‘카스 천하’ 맥주 시장
이 수치만 놓고 보면 아직은 하이트진로가 오비맥주를 따라잡으려면 갈 길이 멀어 보인다. 하지만 닐슨코리아의 통계에는 빠진 것이 있다. 식당·주점·노래방 등 유흥 업소에서 발생한 판매량이다. 닐슨코리아 관계자는 “자사 통계는 대형마트·백화점·편의점 등 유통 채널에서 발생한 판매량을 집계한 수치”라고 설명했다.

‘유흥 시장을 장악해야 국내 맥주 시장을 잡을 수 있다’는 말은 오래전부터 맥주업계를 관통하는 정설이다. 실제로 전체 맥주 판매의 약 절반가량이 여기에서 나온다.

하이트진로는 1위가 오비맥주인 것은 인정하지만 이런 부분까지 고려하면 자사의 점유율이 닐슨코리아 통계보다 훨씬 높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증권업계 일각에서 전체 유흥 시장 판매율까지 고려하면 테라를 앞세운 하이트진로의 최근 맥주 시장점유율이 40%까지 상승했을 것이라는 분석을 근거로 제시하며 치열한 신경전을 펼치고 있다.

하이트진로에 따르면 식당·주점·노래방 등에서 테라의 인기는 예상을 웃도는 수준이다. 예컨대 지난해 9월 메리츠종금증권이 서울 주요 지역(강남·여의도·홍대) 식당의 주류 점유율을 설문한 결과 테라의 점유율이 카스를 제친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하이트진로 관계자는 “소주(참이슬)와 맥주(테라)를 타먹는 폭탄주를 빗대 ‘테슬라’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 낼 정도로 테라의 인기가 폭발적”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해 오비맥주 관계자는 “판매량 등을 살펴볼 때 여전히 카스의 아성은 무너지지 않고 있다”고 강조하면서도 “테라가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은 맞다”며 긴장의 끈을 놓지 않는 모습이다.

양 사의 치열한 경쟁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늘 뺏고 빼앗기는 1위 다툼을 벌여 왔다.

예컨대 1990년대 초에는 오비맥주가 자사 이름을 딴 ‘오비’ 제품을 앞세워 시장을 주름잡았다. 하지만 1990년대 중반 들어서는 2인자로 내려앉고 만다.

오비맥주를 제체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던 하이트진로는 천연 암밤수 콘셉트의 하이트를 선보이며 1996년 오비맥주를 제치는데 성공했다. 1993년만 해도 70%대였던 오비맥주 점유율은 1996년 하이트에 역전당한 뒤 2000년 31%까지 추락하기도 했다.

반대로 하이트진로는 이후 15년 가까이 최강자의 자리를 지키며 2000년대를 ‘하이트 시대’로 만들었다.

◆정확한 점유율 통계 없어 양 사 전망 엇갈려


이때만 해도 영원할 것 같았던 하이트진로의 인기도 세월이 흐를수록 서서히 식어갔다. 결국 2012년 오비맥주에 다시 1위 자리를 내주고 만다. 특히 당시엔 오비맥주의 1위 탈환 전략이 돋보였다.

2007년을 기점으로 오비맥주는 주력 제품을 ‘오비’에서 ‘카스’로 전격 교체했다. ‘톡 쏘는 맛’이라는 개념을 앞세운 카스 후레쉬를 선봉으로 레몬 과즙 맛을 살린 카스 레몬(2008년 출시), 저칼로리 맥주인 카스 라이트(2010년 출시) 등을 잇달아 내놓으며 소비자들을 점차 공략해 나간 것이다.

이와 함께 미각을 자극하는 광고 등 마케팅에 투자를 아끼지 않으며 결국 ‘맥주=카스’라는 공식을 다시 만들어 냈다. 압도적인 위용을 뽐내며 지금까지 1위를 수성 중이다.
거센 ‘테라 돌풍’…지각변동 시작된 ‘카스 천하’ 맥주 시장
이대로 하이트진로는 만년 2인자에 머무르는가 싶었지만 마침내 지난해 반전의 계기를 만들어 냈다. 테라를 통해서다.

다시 1위를 탈환하겠다는 목표를 갖고 심혈을 기울여 제작한 제품이다. 테라의 출발은 오비맥주에 1위를 빼앗긴 201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오비맥주 카스의 판매가 계속 높아지는 만큼 하이트진로의 실적은 내리막을 걷는 상황이었다.

기존의 주력 제품인 하이트로는 한계가 뚜렷해 보였다. 이에 내부적으로 판세를 뒤집기 위한 신제품 출시를 결정하고 만든 것이 테라다. 제품 방향을 잡는 데만 약 5년이 걸렸다.

또 기획한 제품의 맛을 구현하는 데만 2년이라는 시간을 투입했다. 그렇게 2019년 마침내 테라가 시중에서 판매되기 시작했다.

이런 노력 때문이었을까. 시장의 반응도 폭발적이었다. 출시 39일 만에 100만 상자를 돌파하며 국내 맥주 브랜드 중 출시 초기 가장 빠른 판매 속도를 기록했다. 지난 1월 기준 누적 판매 5억 병을 돌파하는 등 빠르게 대세 맥주로 자리 잡았다.

테라의 흥행 성공으로 하이트진로는 지난해 2012년 이후 7년 만에 매출 2조원을 넘기는데 성공했다. 현재 테라의 판매량은 기존 하이트를 완전히 앞서며 완벽한 ‘세대교체’가 이뤄진 상황이다.

하이트진로 관계자는 “올해도 테라의 고공 행진이 이어지고 있다”며 “증권업계서 내놓은 보고서를 보면 올해도 테라 판매 돌풍이 이어지면서 1위와의 점유율 간격이 4%포인트 이내로 좁혀질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1위 탈환이 머지않았다”고 전망했다.
거센 ‘테라 돌풍’…지각변동 시작된 ‘카스 천하’ 맥주 시장
반면 오비맥주 관계자는 “테라가 인기를 끄는 만큼 기존 하이트진로의 주력 제품인 하이트의 판매량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부분을 주목해야 한다”며 “올해도 오비맥주가 변함없이 1위 자리를 지킬 것”이라고 내다봤다.

향후 오비맥주는 카스의 마케팅을 강화하는 동시에 지난해 말 ‘뉴트로’ 열풍에 힘입어 재탄생시킨 ‘오비 라거’로 맥주 시장의 새바람을 일으키며 추월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각오다.

하이트진로는 테라와 함께 하이트·맥스 등 기존 맥주 라인업을 앞세워 함께 반드시 1위를 재탈환하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맥주 시장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유흥 시장 통계가 정확하게 집계되지 않는 점유율을 둘러싼 양 사의 기싸움 역시 계속해 치열해질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 부분 또한 주목할 만한 관전 포인트다.

enyou@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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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78호(2020.05.23 ~ 2020.05.29)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