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빗장 걸어 잠근 지구촌…트럼프, 대선 이후 이민 문턱 낮출까
까마득하게 높아진 이민 장벽…자국민 우선주의에 유학생도 ‘컴백홈’
#뉴욕에서 사진학을 전공한 김정민(가명·27) 씨는 뉴욕에서 스튜디오를 열겠다던 꿈을 접고 한국에 돌아왔다. 유학 후 영주권 취득을 꿈꿨지만 미국에서의 취업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미국 사진학과에서는 졸업 전시회를 통해 유명 에이전시나 스튜디오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오던 관행이 이어져 왔다. 하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해 졸업 전시회는 열리지 않았다. 미국 정부가 취업 비자를 막으면서 앞길은 더 깜깜해졌다. 김 씨는 모든 한국인 동기가 올해 한국에 돌아왔다고 말했다.

#영국 런던에서 대학을 졸업한 이서연(가명·26) 씨도 최근 한국에 돌아왔다. 이 씨는 “영국에서 아무리 좋은 학교를 나와도 취업 1순위는 좋은 학교를 나온 자국민”이라며 “런던대나 옥스퍼드대를 나와도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영주권을 따기 힘들고 정부가 외국인 취업 비자를 쉽게 내주지 않기 때문에 기업도 무리해 외국인 유학생을 채용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코로나 19로 국경이 봉쇄되고 교역이 중단되면서 멈춰 선 것은 산업뿐만이 아니다. 전 세계가 빗장을 걸어 잠그자 이민과 유학길 역시 막혔다.

이민 대행업계에 따르면 이민 문의도 3분의 1로 줄었다. 최여경 예스이민 대표는 “코로나19 이전에 투자 이민 세미나를 개최하면 70~80명이 신청했는데 최근에는 20명도 모이지 않는다”며 “6~7년 전까지만 해도 취업 이민이나 기술 이민 상담이 많았지만 최근에는 취업 이민이 ‘하늘의 별 따기’ 수준이라 투자 이민만 홍보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최 대표는 "미국 투자이민 비용이 50만달러에서 90만달러로 상승하자, 저렴한 가격에 3세대 이민까지 가능한 포르투갈 이민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까마득하게 높아진 이민 장벽…자국민 우선주의에 유학생도 ‘컴백홈’
◆지난해까지 미국 취업 이민 증가

자국민 우선주의를 내세운 나라들은 이민의 문턱을 높였고 코로나19로 인해 ‘선진국’이라고 여겨지던 나라의 민낯이 여실히 드러났다.

코로나19로 인한 동양인 인종 차별과 식료품 사재기 등으로 인해 세계 각국이 혼란에 빠지자 ‘헬조선’이라고 불리던 대한민국의 위상이 달라졌다. 의료 시스템의 선진화, 공공 기관의 빠른 일처리 등을 깨달으며 ‘한국이 살기 좋은 나라’라는 인식도 높아지고 있다.

그동안 이민과 유학은 글로벌 시대에서 누릴 수 있는 다양한 선택지 중 하나였다. 누군가는 한국의 수직적인 기업 문화 때문에, 누군가는 더 많은 기회를 찾아서, 누군가는 더 좋은 환경을 찾아 한국을 떠났다.

작년까지만 해도 미국 이민은 크게 증가했다. 연방 국무부가 최근 발표한 2019 회계연도 비자 발급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미 대사관에서 이민 비자를 승인받아 미국으로 이민 온 한국 국적자는 5313명으로 집계됐다. 전년에 비해 5.7% 증가한 것이다.

부문별로는 취업 이민 비자가 2824명으로 가장 많았다. 취업 이민 비자 승인자는 전년보다 440명 늘어 18.4% 증가했다. 직계 가족 초청 이민 비자를 받아 입국한 한국인은 1729명이었고 연간 쿼터 제한을 받는 순위별 가족 이민 비자는 747명이었다.

취업 이민 비자를 받은 2824명 중 취업 이민 2순위(EB-2)로 비자를 받은 한국인이 1341명으로 가장 많았고 전체 취업 이민 비자를 받은 한국인의 절반에 달했다. EB-2는 고급 인재를 대상으로 하는 2순위 취업 이민이다.

EB-2 내의 NIW(National Interest Waiver)는 노동 허가(LC)나 현지 고용주가 없어도 미국 국익에 도움이 되는지를 판단해 미 국무부가 이민 비자를 발급한다. 한국에서 EB-2를 통해 미국에 이민하는 사람의 90%가 NIW를 통해 영주권을 얻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재학 도을(Doeul) 대표 변호사는 “취업 이민 2순위 비자에 속하는 NIW 신청자는 반도체와 스마트폰 등 정보기술(IT) 분야에 종사하는 대기업 소속 직장인들이 압도적으로 많다”며 “주로 8~15년 정도의 경력을 갖춘 30~40대로, 40대 후반에 벌써 은퇴를 준비해야 하는 선배들의 모습을 보면서 ‘플랜 B’를 고민하다가 이민을 준비하는 사례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1순위 취업 이민 비자인 EB-1은 최우선 전문직 취업 이민으로, 노벨상 수상자 등 각 분야 최고 인재나 미국 사회에 꼭 필요한 기능을 가진 사람들에게 주어진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최고급 인재에게 발급하던 EB-1 취득자가 줄고 있다. EB-1 이민 비자를 받은 한국인은 200명으로 전년의 281명에 비해 28.8%나 감소했다.

김 변호사는 이 같은 현상은 최근 영주권 문호 축소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변호사는 “취업 이민 1순위인 EB-1C의 신청자 증가로 장기간 문호가 닫혀 있었다”며 “취업 이민 1순위 카테고리는 영사관에서 인터뷰 자체를 하지 않아 이민 비자 발급 숫자가 전년도에 비해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이에 따라 국내 대학 정교수 등 EB-1A 자격 조건이 되는 사람도 EB-1A 대신 NIW로 낮춰 지원하는 사례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까마득하게 높아진 이민 장벽…자국민 우선주의에 유학생도 ‘컴백홈’
◆트럼프, 지지층 집결 카드로 反이민 꺼내

코로나19로 자국민 보호 정책이 더 강화되면서 미국 트럼프 행정부는 4월 20일 60일간 이민 비자 입국 금지 행정 명령을 발표한 바 있다.

이어 해외 유학생들이 대학 졸업 후 미국 내 취업을 하지 못하게 막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지난 5월에는 트럼프 정부가 미국인 대학 졸업자를 위해 해외 유학생들이 받는 ‘OPT(Optional Practical Training)’ 프로그램을 제한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이 보도했다.

OPT는 유학생들이 미국 대학을 졸업한 후 학생 비자 상태에서 미국 기업에 1년간, 과학·엔지니어 전공자는 3년까지 취업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OPT는 ‘전문직 단기 취업(H1B)’ 비자로 가는 ‘징검다리’ 역할을 한다. OPT 프로그램에 따라 졸업 후 미국 기업에 취업한 해외 유학생은 2018~2019학년도에 22만3000명 이상으로 집계됐다. 5년 전 10만6000명에서 급증했다.

이 같은 이민 제한 정책이 일시적일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11월 대선을 위해 지지층 결집 카드로 반이민 정책을 꺼내들었다는 분석이다.

김 변호사는 “미 영사관의 이민·비이민 비자 인터뷰는 해외 공관에 나가 있는 영사의 보호를 명분으로 3월 중순께부터 전 세계적으로 중단됐다”며 “일자리 보호보다 코로나19 사태 대응 실패로 재선 가도에 빨간불이 켜지자 자신의 전통적 지지층인 반이민 세력을 결집시키기 위해 이 같은 행정 명령을 내렸다는 것이 미국 내의 대체적인 해석”이라고 말했다.

◆글로벌 인재 막자 美 기업 반발

미국과 캐나다에 이어 이민 비율이 높은 호주 역시 외국인 취업과 영주권에 대한 장벽을 높였다.

호주는 그동안 미국·캐나다와 함께 이민 1순위 국가로 꼽혀왔다. 한국에서 대학병원 간호사로 일하던 A(31) 씨 역시 2016년 호주로 떠났다. 높은 근무 강도는 물론 수직적인 조직 문화를 견딜 수 없어서다.

A 씨는 “호주는 간호사가 ‘전문 의료인’ 대우를 받으면서 간호사 1인당 환자 4명을 케어한다(한국은 간호사 1인당 19.5명)”며 “한국과 달리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이나 육아휴직·노후가 보장되고 연봉도 1.5배 높기 때문에 호주로 가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최근 호주의 상황이 달라졌다. 간호사나 배관공처럼 호주 정부가 사회적으로 꼭 필요하다고 판단한 인력을 제외하면 이민의 문턱이 높아졌다.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는 코로나19 사태가 본격화된 이후 기자 회견 자리에서 “호주를 방문하거나 학생 비자를 받고 경제적으로 부유하게 지낼 수 없는 사람들은 이제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라고 말했다.

다양한 비자 약정을 받는 호주 체류자들에게 고국으로 돌아갈 것을 강력하게 권고한 셈이다.
하지만 미국과 호주 내에서도 자국민 보호 정책에 대한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이민자를 기반으로 성장한 나라인 만큼 이민과 유학이 나라의 경제를 뒷받침하는 사업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미국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최근 미국 국무부 산하 이민서비스국(USCIS)이 문을 닫아야 할 정도로 재정이 바닥났다. 트럼프 행정부의 반이민 정책 기조로 이민 신청이 급감했기 때문이다.

영주권이나 시민권 신청인의 수수료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USCIS는 의회에 12억 달러(약 1조4800억원)의 자금 지원을 요청했다.

USCIS는 2020 회계연도(2019년 10월~2020년 9월)에 예산 48억 달러(약 5조9200억원)의 97%가 신청인 수수료로 배정됐다. 하지만 이번 회계연도 수익이 61% 급감할 것으로 예측되면서 의회의 지원 없이는 문을 닫아야 할 판이라는 게 USCIS의 분석이다.

멜리사 로저스 샌프란시스코 이민자 법률구조센터장은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으로 손실을 본 USCIS가 납세자들에게 구제 요청을 하고 있는 셈”이라고 비판했다.

인재 유치가 막힌 기업들도 반발하고 나섰다. 구글·페이스북·마이크로소프트 등 미국 기업 역시 국익을 위해 외국인 취업 비자를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이들 기업은 “전문직 취업 비자인 H1B 비자를 비롯해 학생 비자와 다른 숙련 노동자를 위한 비자를 그대로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호주의 주요 도시 시장들 역시 경제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외국인 유학생 입국이 조속히 허용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중이다.

시드니·멜버른·브리즈번 등 호주 주요 도시 시장들은 코로나19 관련 국경 봉쇄로 타격을 입은 유학 산업을 정상화시키기 위해 연방·주 정부에 대해 유학생 입국 금지를 완화할 것을 요구했다.

애드리안 스크리너 브리즈번 시장은 “교육은 브리즈번 10대 수출품 중 하나로 2019년에만 36억 호주 달러(약 3조원) 규모의 경제 효과를 거뒀다”면서 “유학생들이 돌아와 사실상 무너진 유학 산업을 회복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호소했다.

샌디 버스쿠 애들레이드 시장도 “유학생 한 명을 유치하면 일자리 네 개가 만들어지는 고용 효과가 있다”면서 “경제를 회복시키기 위해 유학생 인구 증가가 필수”라고 말했다.


김영은 기자 kye0218@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80호(2020.06.06 ~ 2020.06.12)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