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돋보기]
미국과 중국 사이의 한국 경제

[한경비즈니스 칼럼 = 강문성 고려대 국제학부 교수] 지난 1월 합의된 ‘미국과 중국의 경제 및 무역협정 1단계(Phase One)’에 대한 중국의 성적표가 최근 나오기 시작했다. 지난 2월 14일 발효된 이 협정에 따르면 중국은 미국의 상품과 서비스를 2020~2021년 2년 동안 2017년 기준(1643억 달러)보다 2000억 달러(약 238조원) 추가 수입하기로 합의(2020년 1643억 달러+767억 달러=2410억 달러, 2021년 1643억 달러+1233억 달러=2876억 달러)했다.

미국의 피터슨국제경제연구원(PIIE)이 미국 통계청의 미국 수출 통계와 중국 관세국의 중국 수입 통계를 분석한 결과 올 4월까지 미국의 대중 수출과 중국의 대미 수입은 각각 204억 달러(약 24조3000억원)와 260억 달러(약 31조원)를 기록했다.

미국과 중국의 통계 작성 기관에 따라 약간의 차이를 보이지만 이러한 실적은 2020년의 연간 달성 합의 수준인 2410억 달러(약 286조8000억원)에는 훨씬 못 미친다. 단순 계산하더라도 4월까지 연간 합의 수준의 3분 1인 803억 달러(약 95조6000억원) 수준에 도달해야 하지만 4월까지 중국의 실제 수입 실적은 803억 달러 기준 25.0~32.4% 수준으로 매우 낮다.

중국으로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확산으로 국제 무역이 급감하고 글로벌 가치 사슬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하겠지만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구체적인 성과를 보여줘야 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으로서는 전혀 만족할 수 없는 실적이다.

따라서 대통령 선거가 치러지는 11월까지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을 계속 압박할 것이고 추가해 1단계 협정에서 합의한 지식재산권 보호, 기술 이전 강요 금지, 환율 조작 금지, 중국 금융 시장에서의 지분 제한 철폐 등의 합의 이행을 강력히 촉구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이러한 중국 압박은 다른 통상 정책에서도 적극적으로 표출되고 있다.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의 재협상을 통해 오는 7월 발효되는 미국·멕시코·캐나다 협정(USMCA)에서는 북미 경제 협력을 보다 강화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다. 미국은 여기에서 더 나아가 글로벌 가치 사슬에서 중국을 제외하고 부품 조달·생산·무역 시스템을 구축하려고 한다.

이를 반영한 것이 ‘경제 번영 네트워크(EPN)’인데 미국은 한국을 비롯해 호주·인도·일본·뉴질랜드·베트남 등의 국가에 이를 설명하고 참여를 독려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는 코로나19 이후 붕괴된 글로벌 가치 사슬을 재건하는 것이 명목적인 이유이지만 궁극적으로 중국을 제외한 가치 사슬 체계를 수립, 중국을 봉쇄(containment)하겠다는 것이 미국의 기본적인 전략이다. 이러한 전략은 오는 11월 미국 대통령 선거 결과와 상관없이 추진될 가능성이 높다.

한국 정부 역시 미국으로부터 EPN 참여 요청을 받은 상황이어서 정부의 고민이 커지고 있다. 물론 미국과 중국의 마찰이 심화되지 않는 것이 한국에는 가장 좋은 상황이지만 이는 한국이 통제할 수 없는 것이다. 결국 한국 정부는 한국의 원칙을 설정하고 이를 바탕으로 의사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대한민국 수립 이후 한국이 걸어온 경제 성장과 정치 시스템의 민주화 역사와 과정을 살펴볼 때 그 답은 이미 정해져 있다. 다만 그 결정을 대외적으로 공표하는 과정에서 한국의 전략적 사고가 뒷받침돼야 한다. 한국의 상황을 대내외적으로 설득하고 한국의 결정과 그 과정에서 파생될 위험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체계적이고 치밀한 대응 체제를 구축하는 것이 당면 과제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81호(2020.06.13 ~ 2020.06.19)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