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 5월에만 닛산·GU·영애슬릿·올림푸스 등 4곳
- 철수 발표, 매출 악화에 철수 검토 기업도 여럿
불매운동에 코로나19까지…짐 싸는 일본 기업들
[한경비즈니스=차완용 기자] 일본 기업들이 한국을 떠나고 있다. 지난해 7월 일본의 수출 규제로 시작된 ‘일본 불매 운동’의 여파로 매출액이 많이 감소한 데다 올 2월 말 시작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에 따른 경제 불황까지 겹치자 더는 버티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자동차 기업부터 의류 기업까지 지난 5월에만 4개 기업이 철수를 발표했다. 3월에도 1개 기업이 철수했으니 총 5개 기업이 철수 또는 철수 수순을 밟고 있다. 여기에 실적 악화에 시달리는 기업들도 여럿이어서 앞으로 한국을 떠나는 일본 기업들은 더욱 늘어날 것으로 예측된다.

◆ 일본 ‘도착 투자액’ 감소의 현실화

산업통상자원부가 발표한 올해 ‘1분기 외국인 직접 투자 도착 금액 동향’에 따르면 일본은 8000만 달러(약 962억원)로 작년 1분기에 비해 72% 감소했다.

도착 투자액 감소는 예전에 한국에 직접 투자하겠다고 신고했다가 실제 투자는 집행을 미루거나 철회했다는 뜻이다. 이는 코로나19로 세계 경제가 불안함에 따라 줄어든 1분기 전체 외국인 직접 투자 도착 금액 감소율 17.7%를 크게 웃도는 금액이다.

일본의 도착 투자액 감소는 시장에 곧바로 반영되고 있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지난 5월 28일 닛산은 2019 회계연도 실적 발표와 함께 한국 시장에서 철수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닛산은 지난 회계연도에 6710억 엔(약 7조7000억원) 규모의 순손실을 기록했다. 그러면서 강도 높은 구조 조정을 결정하게 됐다.

한국 시장에서는 일찌감치 철수할 것으로 예상됐다. 지난해 일본의 반도체 부품 수출 제한 조치로 불매 운동에 직접적인 타격을 입으면서다.

한국닛산은 “국내 시장에서의 상황이 더욱 악화되면서 본사는 한국 시장에서 다시 지속 가능한 성장 구조를 갖추기 어렵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닛산은 올해 12월 말까지만 한국 시장에서 닛산과 인피니티 브랜드 판매를 유지하기로 했다.

1년 8개월 전 한국 시장에 들어온 유니클로의 자매 브랜드 지유(GU)도 5월 21일 철수를 공식화했다. 지유는 현재 롯데월드몰점, 롯데몰 수지점, 영등포 타임스퀘어점 등 3개 매장을 운영 중인데 오는 8월까지만 영업하기로 했다.

국내 온라인 스토어는 7월 말까지만 운영한다. 이후엔 유니클로 온라인 스토어를 통해 일부 제품만 판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유는 진출 당시 올해만 3~5개 매장을 신규 론칭한다는 계획이었지만 일본 기업 제품에 대한 불매 운동의 영향으로 시장에서 좀처럼 자리를 잡지 못했다.

특히 한국 시장에 안착한 유니클로의 지원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유니클로 일본 임원의 “한국의 불매 운동은 절대 오래가지 않을 것”이라는 망언과 한국인들을 자극하는 광고로 인해 엄두도 낼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심지어 유니클로도 지난해와 올해 매출 부진으로 일부 매장의 문을 닫았으며 고강도 구조 조정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5월 27일에는 데상트코리아의 주니어 스포츠 브랜드 영애슬릿이 47개 단독 매장의 영업을 중단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매장 철수 시기는 8월로 대부분 매장의 계약 기간이 남아 있지만 회사 측은 롯데·신세계·현대백화점과 쇼핑몰 등 입점 채널에 철수 의사를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영애슬릿은 데상트 매장 내 ‘숍인숍(상점 안에 입점한 상점)’ 형태로 판매를 이어 갈 방침이다.

카메라 기업 올림푸스도 지난 5월 20일 한국을 떠난다고 발표했다. 최근 몇 년간 국내 카메라 시장이 급격히 축소되는 상황에서 일본 브랜드에 대한 이미지가 좋지 않은 데다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소비 심리도 회복되지 않아 사업을 이어 가는 게 무리라는 판단에서다.

이에 앞서 지난 3월에는 초콜릿 브랜드 로이즈초콜릿을 운영하는 로이즈컨펙트코리아가 사업을 접었다.

◆ 실적 악화 심각한 일본 기업 줄줄이
불매운동에 코로나19까지…짐 싸는 일본 기업들
일본 기업 중엔 매출 압박에 시달리며 위태로운 나날을 보내는 곳도 여럿이다. 언제 철수를 결정해도 이상할 것이 없는 상황이다.

가장 대표적인 곳이 햄버거 브랜드 모스버거다. 2018년 국내에 23개까지 매장 수를 늘렸지만 일본 상품 불매 운동 이후 매장을 순차적으로 폐점시켜 현재 전국에 10여 개도 남지 않은 것으로 파악된다.

화장품 브랜드 DHC 역시 불매 운동으로 H&B스토어를 비롯한 이커머스 등 주요 온·오프라인 판매 채널에서 퇴출당해 제대로 된 영업을 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미니스톱 역시 불매 운동의 여파로 부진한 성적표를 받아 들었다. 일본미니스톱의 유가증권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미니스톱은 2019 회계연도(2019년 3월~2020년 2월)에 전년 대비 9.4% 감소한 1조1953억원의 매출을 올리는 데 그쳤다.

영업이익은 28억원으로 2018년 대비 50.8% 급감했다. 당기순손실은 13억원으로 전년 대비 적자 전환됐다.

이 밖에 일본 기업들의 실적 악화는 심각한 수준이다. 데상트코리아는 불매 운동이 있기 전까지 큰 폭의 성장세를 자랑했다. 2002년 207억원에 달했던 매출액은 2018년 7270억원까지 성장했다.

하지만 불매 운동으로 국내 스포츠 시장의 메카인 강남대로에서 매장을 철수하는 수모를 겪었다. 지난해 매출액은 6156억원으로 전년 대비 15.3%, 영업이익은 90억원으로 86.7% 대폭 급감했다.

유니클로와 지유를 전개하는 에프알엘코리아 역시 지난해 매출이 전년 대비 31.3% 감소한 9749억원, 영업이익은 적자 전환돼 손실액이 19억원에 달했다. 유니클로가 국내에서 연매출 1조원 미만을 기록한 것은 2014년 이후 처음이다.

일본의 대표 생활용품 브랜드로 꼽히는 무인양품도 실적 부진을 겪고 있다. 지난해 매출이 9.8% 하락한 1243억원에 불과했고 영업이익은 적자 전환돼 손실액은 71억원에 달했다.

일본 맥주 역시 한국 시장에서 맥을 못 추고 있다. 지난해 일본 맥주 수입액은 49.2% 감소하면서 3976만 달러(약 478억원)를 기록해 중국에 1위 자리를 내줬다. 일본 맥주 수입액이 줄어든 것은 14년 만에 처음이다.

이에 따라 업체들도 실적 부진이 심각한 상황이다. 롯데아사히주류의 지난해 매출은 623억원으로 전년 1248억원 대비 절반으로 줄었다. 당기순이익은 66억원에서 182억원 손실로 돌아섰다.

물론 불매 운동의 여파를 거의 받지 않은 브랜드도 있다. 일본 ABC마트가 99.96%의 지분을 소유한 신발 편집숍 ABC마트코리아는 지난해 매출이 전년 대비 6.7% 늘어난 5459억원으로, 시장점유율 1위를 지키고 있다.

타 브랜드의 신발을 매입해 판매하다 보니 일본 브랜드라는 인식이 적어 불매 운동의 영향을 받지 않고 있다.
불매운동에 코로나19까지…짐 싸는 일본 기업들
◆ 일본에 나가 있는 한국 기업도 어려워

일본에 나가 있는 한국 기업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난해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실시한 ‘한·일 관계 악화에 따른 주일 한국 기업 영향 설문 조사’에 따르면 주일 한국 기업의 53.1%가 최근 한·일 관계가 악화됨에 따라 영업 환경에 부정적 영향을 받고 있다고 응답했다.

‘매우 부정적’이 6.2%, ‘부정적’이라는 답변이 46.9%였다. 악화된 분야로는 ‘신규 거래처 및 신사업 발굴의 곤란’이 37.3%로 가장 많았다. ‘일본 소비자의 한국산 제품 인식 악화(28.8%)’, ‘증빙 서류 강화 등 일본 정부의 재량 권한의 엄격화(15.3%)’가 뒤를 이었다.

이번 조사에 응답한 기업 중 31.2%는 실제로 매출이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매출 감소의 범위는 ‘20% 이내’가 85.0%로 가장 많았다. ‘21~40%’에 이르는 기업도 10.0%를 차지해 한·일 관계 냉각에 따른 일본 내 한국 기업들의 피해도 심각한 상황이다.

또한 주일 한국 기업의 절반 이상(53.1%)은 향후 한·일 관계가 지금과 큰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는 ‘개선될 것’이라는 전망(20.3%)을 두 배 이상 웃도는 수치다. ‘악화될 것’이라는 응답도 26.6%를 차지했다.

cwy@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81호(2020.06.13 ~ 2020.06.19)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