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 레이더] -하이마트 “이사회 결의 안 거쳐 부당” vs 선종구 전 회장 “대주주 동의 거쳐 문제없어”
보수 182억원 반환할 처지 놓인 선종구…하급심과 대법원 판단 논리 변화는
[한국경제=이인혁 기자] 하이마트 전 회장이 과거 받았던 182억원 상당의 보수를 롯데하이마트에 반환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재직 당시 이사회 결의 절차를 거치지 않고 자신의 보수를 대폭 증액한 것은 부당하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기 때문이다.

1·2심 재판부는 이 같은 보수 수령이 문제가 없다고 봤지만 대법원에서 뒤집혔다. 이를 두고 기업이 임원들의 보수를 산정하는 과정과 기준이 보다 투명해지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2008년 이후 급증한 선종구 전 회장의 연봉

8년째 이어지고 있는 이번 소송전의 기초 사실 관계부터 알아보자. 2000년부터 2012년까지 하이마트의 대표이사를 지낸 선 전 회장의 보수는 2008년 2월을 기점으로 크게 뛰었다.

2005년부터 2008년 1월까지 연간 약 19억2000만원을 받던 선 전 회장은 2008년 2~12월 11개월 동안 51억8000만원의 보수를 받았다.

2009년과 2010년엔 각 55억5000만원과 60억9000만원을 받았다. 2011년 1~4월 동안엔 14억4000만원을 받았다.

2008년 2월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하이마트 측은 선 전 회장이 지분 유지를 위해 대출받은 900억원의 이자 부담 때문에 자신의 연봉을 임의로 증액했다고 봤다.

사유를 떠나 하이마트는 선 전 회장이 이사회 결의란 적법 절차를 거치지 않고 자신의 보수를 늘렸다는 점을 지적했다. 하이마트가 2013년 총 130억원대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며 지난한 소송전이 시작됐다.

하이마트는 선 전 회장이 2008년 2월부터 2011년 4월까지 수령한 182억6000만원을 ‘부당 이득액’이라고 계산했다. 이 가운데 선 전 회장의 퇴직금 채권 50여억원을 제외한 132억원을 청구한 것이다. 선 전 회장은 법무법인 세줄이 대리했고 하이마트는 법무법인 광장이 대리했다.

2015년 7월에 1심 판결이 났다. 결론은 선 전 회장의 ‘완승’이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제22민사부(부장판사 박형준)는 선 전 회장의 보수 증액이 합당하다고 판결했다. 1심의 논거를 따라가 보자.

상법 제388조에선 “이사의 보수는 정관에 그 액을 정하지 아니한 때에는 주주총회 결의로 이를 정한다”고 규정한다.

이사의 자의에 의한 회사 손실을 막고 주주와 채권자 등을 보호하기 위해 이사의 보수를 정하는 권한을 주주총회에 부여하는 것이다.

하지만 하이마트는 주주총회에서 이사의 보수에 관해 구체적인 액수가 아닌 보수의 한도만 결정해 왔다.

그렇다면 구체적인 연봉 수준은 누가 정할까. 이사회다. 하이마트 정관에 따르면 임원 보수의 결정 및 변경은 반드시 이사회 결의를 거쳐야 한다(제31조의2). 다만 2010년 12월 정관이 개정돼 이 조항이 삭제되긴 했다.

그럼에도 1심 재판부는 “주주총회가 이사의 보수 총액만 정한 경우엔 이사회가 그 범위 안에서 구체적인 보수를 정할 권한을 가진다고 봄이 상당하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선 전 회장은 자신의 연봉을 올리면서 이사회 결의를 거치지 않았다. 외관상 법령과 정관을 위반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도 어떻게 1심에서 선 전 회장이 승소할 수 있었을까. 재판부의 논거를 이해하기 위해선 먼저 하이마트의 주주 구성을 살펴봐야 한다.

하이마트가 문제 삼고 있는 시기는 2008년 2월부터 2011년까지다. 2008년 2월 선 전 회장의 보수 증액이 정해질 당시 하이마트의 주주는 유진하이마트홀딩스 1인이었다.

선 전 회장의 2009년 보수가 정해진 그해 3월 하이마트의 주주는 유진기업과 선 전 회장 2인이었다. 2010년 보수가 정해질 당시 유진기업과 선 전 회장이 보유한 의결권 있는 주식의 지분율 합계는 80%였다. 2011년에는 이 비율이 65%로 떨어지긴 했다.

유진하이마트홀딩스와 유진기업의 실질적 지배자는 유경선 유진그룹 회장이었다. 선 전 회장 보수 문제가 논란이 됐던 기간 내내 유 회장과 선 전 회장이 갖고 있던 하이마트 지분율은 절반이 넘었다.

유 회장은 인사팀으로부터 이사들에 대한 연봉 기안을 먼저 보고받고 이를 결재했다. 즉 하이마트 대주주인 유 회장은 선 전 회장 연봉안에 동의한 것이다. 더구나 이사회 대부분도 유 회장 혹은 선 전 회장이 지명한 사람들로 구성됐었다.

1심 재판부는 “임원들에 대한 구체적인 보수가 주주총회 전에 이미 대주주의 실질적 지배인인 유 회장 등에게 보고돼 승인되는 절차를 먼저 거쳤다”며 “당시 이사회 및 주주의 구성에 비춰볼 때 선 전 회장의 ‘구체적 보수’에 대해 이사회 또는 주주총회 결의를 거치더라도 모두 승인 결의가 이뤄졌을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선 전 회장이 받은 182억원 상당은 부당하지 않다고 봤다.

2016년 항소심 판결도 1심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만 서울고등법원 제14민사부(부장판사 정종관)는 2011년 진행된 선 전 회장의 보수 증액분(14억4000만원)에 대해선 부당하다고 봤다.

2심 재판부는 “2011년 선 전 회장의 보수 증액이 정해질 당시 유진기업과 선 전 회장의 지분율이 정관 변경을 위한 주주총회 특별결의 요건인 의결권 있는 주식의 3분의 2에 미달하는 65%에 그쳤다”고 했다.

그러면서 “주주들이 위 기간 동안 선 전 회장의 보수액 결정·지급에 찬성할 것이 명백하다고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다”고 설명했다. 즉 유진기업과 선 전 회장 지분율이 80%를 넘어 절대 다수를 차지했던 나머지 기간 동안 지급된 보수는 문제가 없다고 본 것이다.

◆기업의 이사 보수 책정 관행 변화 올까

하지만 6월 4일 대법원 제1부(주심 박정화 대법관)는 하급심을 완전히 뒤집었다.

대법원은 “1인 회사가 아닌 주식회사에서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주주총회의 의결 정족수를 충족하는 주식을 가진 주주들이 동의하거나 승인했다는 사정만으로 주주총회에서 그러한 내용의 결의가 이뤄질 것이 명백하다거나 또는 그러한 내용의 주주총회 결의가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라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하급심의 ‘갈음 논리’를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면서 “2008년 2월부터 2011년 4월까지 대표이사로서 최고경영책임임원에 해당하는 선 전 회장의 구체적인 보수 액수에 관하여는 하이마트 이사회와 주주총회의 결의가 없었다”며 이번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파기 환송심에서 판결이 확정되면 선 전 회장은 182억원을 뱉어내야 한다.

한 대형 로펌의 변호사는 “대주주가 동의했다는 이유로 주주총회 등을 갈음한 것으로 본다면 주주총회 자체가 무력화될 수 있기 때문에 어찌 보면 당연한 판결”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비교적 재량권이 보장되는 것으로 인식되던 사내 보수 책정 문제에 대해 법원이 점점 엄격한 법적 잣대를 들이대고 있는 트렌드를 보여주는 사례라는 분석도 있다.

다른 변호사는 “대부분의 회사가 주주총회에서 이사 보수 총액을 결정하고 구체적 수준을 이사회 결의로 정하긴 하지만 구체적 액수 산정 기준이 불투명하다는 지적이 많다”며 “앞으로 구체적 보수 수준 산출 근거를 보다 명확하게 하는 식으로 기업 관행이 바뀔 수 있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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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81호(2020.06.13 ~ 2020.06.19)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