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영식의 정치판]
- 친문 일각 “대표직 맡겨 대선 후보 자격 미리 검증
… 잘하면 GO, 미흡 땐 본인이 책임져야”
- 여론 주목도 높이고, 수권 능력 발휘 통한 대세론 확대 필요성도
[한경비즈니스 = 홍영식 대기자]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7개월짜리 당 대표를 맡으려는 이유는 뭘까. 민주당 당헌엔 ‘당 대표 및 최고위원이 대선에 출마하고자 할 땐 대선 1년까지 사퇴해야 한다’고 규정돼 있다. 대표 임기는 원래 2년이지만 대선 주자는 차기 대선이 실시되는 2022년 3월 9일에서 1년 전까지 대표직을 내려 놓아야 한다.

당내에선 ‘어대낙(어차피 대세는 이낙연)’이란 용어가 퍼져 있다. 8월 전당대회에서 이 의원이 대표 경선에 나서면 승리할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문제는 그 이후다. 당권 경쟁자들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대표 도전에 나서 이긴다고 하더라도 대선 가도에서 득(得) 못지않게 실(失)이 적지 않다. 정치적 변수에 따라 대세론·대망론이 언제든지 흔들릴 수 있다는 것은 과거 사례에서 쉽게 확인된다. 그런 만큼 대선 경선 국면에 들어가면 의원 한 명의 지지가 아쉬운 판에 당권 경쟁자들의 마음을 잃는 것은 큰 손실이다. 벌써부터 당권 경쟁이 ‘친낙(친이낙연)’ 대 ‘반낙(반이낙연)연대’ 구도로 흘러가면서 민주당 분화 얘기까지 나오고 있는 것도 이 의원에게는 큰 부담이다.

‘반낙’ 당권 경쟁자들은 연일 이 의원을 공격하고 있다. 김부겸 전 의원은 “당 대표가 되면 대선에 출마하지 않고 임기(2년)를 모두 채우겠다”고 했다. 이 의원의 대표 경선 불출마를 압박한 것이다. 김 전 의원이 친문(친문재인) 핵심인 양정철 전 민주연구원장과 만난 사실이 알려지고 정세균 국무총리의 김 전 의원 물밑 지원설까지 나왔다. 당권 경쟁이 대권 물밑 경쟁으로 이어지는 양상이다.

당권 주자인 홍영표 의원은 이 의원을 겨냥, “과거 사례를 보면 대선 주자들이 당권까지 가지면 대선이 조기 과열되고 줄 세우기와 사당화, 대선 경선 불공정 시비 등으로 많은 갈등을 겪었다”고 비판했다. 역시 당권 주자인 우원식 의원은 “전당대회가 대선 후보들 간 각축장이 된다면 대선 후보들에게 큰 상처만 남을 수 있다”며 이 의원과 김 전 의원 모두에게 출마하지 말 것을 요구했다.
[홍영식의 정치판] 이낙연, 왜 7개월짜리 당 대표에 출마할 수밖에 없나
◆“이낙연, 코로나委 활동 마친 뒤 6월 말~7월 초 출마”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의원은 출마를 강행할 예정이다. 이 의원 측 관계자는 “이 의원이 위원장을 맡고 있는 코로나19국난극복위원회 활동 보고회를 6월 24일 가진 뒤 6월 말 또는 7월 초 대표 출마를 선언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의원 측은 7개월짜리 대표 경선에 출마하는 이유에 대해 소명의식을 꼽고 있다. 이 의원 측근인 이개호 의원에게 물어봤다.

▶대권 주자의 당권 도전에 대한 반대 목소리가 작지 않은 데도 이 의원이 출마하려는 이유가 뭔가.
“문재인 정부 4년 차에 들어갔는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등 국정 운영과 관련한 중요한 사안들이 굉장히 많다. 절대 다수 의석을 확보한 민주당이 역량 있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국민들에게 해야 할 도리라고 생각한다. 이 의원이 당을 맡아 책임 있게 국정 운영을 뒷받침하라는 많은 당원들의 요구를 거절하기 어려워 불가피하게 이를 받아들이려는 것이다.”

▶대표직을 7개월밖에 수행하지 못하는데….

“짧은 기간이 아니다. 7개월이 갖는 중대함을 얘기하는 것이다. 국정 운영의 골든타임이다. 이 의원으로선 7개월 동안 얻을 게 없다. 공천 하나 행사할 기회가 없다. 일만 해야 한다.”

▶대선 주자 불출마를 주장하는 다른 당권 주자들을 적으로 돌려놓는 것은 대선 경선 때 불리할 수 있다.

“다른 당권 주자들이 출마하지 말라고 요구할 수 있지만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니다. ‘친낙 대 반낙’ 프레임을 만드는 것은 민주당에 유리한 게 아니다. ‘친낙 대 반낙’ 프레임이 아니고 ‘친(親)대권 주자 대 비(非)대권 주자’ 프레임으로 만들어야 맞다.”

이 의원의 한 측근 참모도 “7개월이면 짧은 기간이 아니다. 코로나19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골든타임”이라며 “이런 엄중한 시기에 대통령과 ‘케미(호흡)’가 잘 맞는 이 의원은 당에서 힘 있게 국정을 뒷받침해야 한다는 소명의식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이 의원이 당권 도전에 나서는 배경과 관련해 총선 이후 여론의 관심도가 떨어지는 점도 주시할 필요가 있다. 이 의원은 국무총리 시절은 물론 ‘4·15 총선’ 때 정치 1번지 서울 종로에 출마하고 당 공동선대위원장도 맡아 꾸준히 여론과 국민의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총선 이후 이 의원이 두드러지게 시선을 끄는 상황은 아니다. 반면 코로나19 방역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하는 정세균 총리와 이재명 경기지사 등은 여론의 주목을 끌고 있다.

여론 조사에서 확인된다. 리얼미터가 오마이뉴스 의뢰로 지난 5월 25~29일 실시한 조사(전국 2518명 대상, 95% 신뢰 수준에 표본 오차 ±2.0%포인트.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 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에서 이 의원은 34.3%의 지지율을 나타냈다. 지난 4월 조사 때 40.2%에 비해 5.9%포인트 하락했다.

이 밖에 전문가들은 취약한 당내 기반 확보, 민주당 핵심 세력인 친문재인 지지 유인, 수권 능력 발휘를 통한 대세론 확대 등을 이 의원의 당권 도전 이유로 꼽는다.

◆“좋든 싫든 ‘모 아니면 도’ 진검 승부할 수밖에”

또 다른 분석도 있다. 대선전에 본격 들어가면 혹독한 검증이 필요하다. 언제 어디에서 의외의 변수가 불쑥 튀어나와 선거판을 흔들지 모른다. 민주당의 한 의원은 “대선 전 미리 검증받는 게 유리하다는 판단도 당권 도전의 한 이유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눈여겨볼 대목은 친문 주류 쪽에서 이 의원을 출마시켜 시험대 위에 올려놓으려는 의도가 있다는 당 일각의 분석이다. 대표를 맡아 코로나19 사태 등 국정 난제들을 잘 극복해 내고 살아남는다면 대선 후보로 지원할 것이고 그러지 못하면 본인이 책임져야 된다는 것이다. 대표직 수행을 통해 이 의원이 대선 후보로 자격이 충분한지 미리 시험하겠다는 것이다.

민주당의 한 의원은 “지금은 코로나19 국난 극복에 올인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코리안 시리즈 7차전까지 왔는데 선동열을 내야지 방법이 없다. 이 의원의 출마는 그게 가장 큰 요인으로 봐야 한다”고 했다. 이어 “잘해내면 ‘고(GO)’하는 거고 그렇지 못하면 본인이 책임을 져야 한다”며 “이 의원이 좋든 싫든 ‘모 아니면 도’인 진검 승부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한 친문 의원은 “유력 대선 주자가 엄중한 시기에 뒷짐만 지고 있다가는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기 때문에 이 의원으로서는 당권 주자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대표 출마 이외에 달리 선택할 수 있는 게 없는 상황”이라며 “본격 시험대에 오르는 형국”이라고 했다.
yshong@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82호(2020.06.20 ~ 2020.06.26)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