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 가능한 복지는 ‘공짜’일 수 없다 [차은영의 경제 돋보기]
[한경비즈니스 칼럼 = 차은영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 긴급재난지원금이 지급되기 시작한 지 한 달 정도 지났는데 벌써 여당 정치권에서 2차 지원금과 기본소득을 지급해야 한다는 소리가 들린다. 정부의 현금성 지출은 크게 늘어나고 있는 반면 세수는 급격하게 줄어들어 재정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음에도 무조건 쓰고 보자는 무책임한 포퓰리즘의 극치다.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재정 동향 6월호’에 따르면 올해 1월에서 4월까지 통합재정수지 적자는 43조3000억원으로, 월별 재정 통계를 작성한 2004년 이후 최대 규모라고 한다. 국민연금과 고용보험 등 보장성 기금을 제외한 실질적 재정 건전성 지표인 관리재정수지도 56조6000억원 적자로 최대치를 기록했고 작년 같은 기간 대비 적자 규모는 45%나 커졌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 채무 비율이 지난해 38%에서 올해 45%에 육박할 것이 확실시되는 가운데 국채 발행만으로 적자를 충당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세계적으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재확산 조짐이 나타나고 실물 경제 충격은 하반기부터 본격화될 것으로 보여 당분간 경기 침체가 지속 내지 악화된다면 세수의 감소는 자명하다. 정부로서는 세율 인상 카드를 만지작거릴 수밖에 다른 뾰족한 방도가 없을 것이다.

2019년도 기준으로 국세 수입 중 소득세가 28.5%, 법인세가 24.6%, 부가가치세가 24.1%를 차지하고 있다. 현 정부는 소득세나 법인세와 같은 직접세를 또 올릴 방침이지만 한국의 소득세와 법인세는 극소수가 대부분 부담하는 매우 왜곡된 구조를 갖고 있다.

국회예산정책처와 국세청 자료에 따르면 2017년 기준 근로소득과 종합소득을 합한 통합 소득 상위 1%가 전체 소득세의 41.8%, 상위 10%가 78.5%를 부담하고 있다. 미국 70.6%, 영국 59.8%보다 높다. 그뿐만 아니라 근로소득세를 한 푼도 내지 않는 면세자가 2018년 기준 38.9%에 달한다. 이것은 미국 30.7%, 영국 2.1%, 일본 15.5%를 크게 웃도는 것이다.

지난 10년 동안 고소득자를 겨냥한 소득 세제 개편은 2년에 한 번꼴로 단행됐다. 국민의 40%는 소득세를 전혀 안 내고 고소득자는 35%에서 최대 46%까지 세율이 올랐다.

법인세도 예외가 아니다. 상위 10개 기업이 전체 법인세의 4분의 1을 부담한다. 2017년 말 세법 개정을 통해 법인세율을 22%에서 25%로 인상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평균 법인세율은 21.5%, 홍콩과 싱가포르는 최고 17%다. 미국·프랑스·독일·일본과 북유럽 국가 심지어 중국도 법인세 인하 경쟁에 가세하고 있지만 한국만 역행하고 있다. 2010년 이후 OECD 36개 회원국 중 20개국이 법인세를 내렸다. 법인세를 올린 9개국은 그리스·포르투갈·칠레·터키 등 경제가 열악한 국가들이다.

복지 재원 마련이라는 미명 아래 조세의 보편성과 형평성이 간과됐다. 열심히 일해 벌어들인 소득으로 세금을 한 푼도 내지 않는 사람들의 복지를 무조건 책임지라는 것은 근로 의욕을 상실시켜 버린다. 경쟁사보다 세금을 더 지불해야 한다면 기업의 글로벌 경쟁력은 퇴색될 수밖에 없다.

정부는 소득세와 법인세 인상을 들먹이기 전에 효과가 불분명한 비과세와 조세 감면, 무분별하고 중복적인 복지 지출부터 정리해야 한다. 그러고도 불가피하게 증세가 필요하다면 1977년 도입한 이후 한 번도 세율을 올리지 않은 부가가치세 10%를 인상하는 방안에 대해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지속 가능한 복지는 공짜일 수 없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82호(2020.06.20 ~ 2020.06.26)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