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진 압박, 순교자로 만들어 체급 높여줘”…방어하는 통합당은 “주자감 되는지는 두고 봐야”
-“대한민국 먹여살릴 비전과 죽기 살기로 몸 던질 세력, 이들의 충성심 끌어낼 힘·리더십 있어야

[한경비즈니스 = 홍영식 대기자] “대권 주자는 절반은 (자신이) 만드는 것이고 절반은 만들어지는 것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생전 사석에서 한 말이다. 대선 주자는 무엇보다 자신의 권력 의지가 중요하고 그에 못지않게 자신을 대선 주자로 키워 주는 외부 환경과 여론도 중요하다는 의미다. 물론 그런 환경을 만드는 것도 대선 주자의 몫이다. ‘정치 9단’이라는 김 전 대통령의 발언을 언급한 것은 윤석열 검찰총장을 두고 벌어지는 공방 때문이다. 윤 총장을 겨냥한 범여권의 공격은 지난해 하반기 조국 전 법무부 장관 관련 의혹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시작된 이후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최근엔 그의 사퇴를 압박하자 정치권 안팎에선 여권이 윤 총장의 정계 등판 구실을 만들어 주고 있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일찌감치 “추미애 (법무부) 장관님, 이분(윤 총장)을 자꾸 정치해야만 하는 상황으로 몰아넣지 마시라”고 했다. 더불어민주당의 한 의원도 “여권의 공격이 거셀수록 윤 총장을 순교자로 만들어 존재감을 키워 주는 우(愚)를 범하지 않을까 걱정스러운 면이 있는 게 사실”이라고 했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가 “윤석열을 언급하지 말자”고 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봐야 한다는 분석이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법무부와 검찰의 협력’을 당부했다. 그럼에도 여권은 ‘윤석열 때리기’를 멈추지 않고 있다. 추 장관은?“검찰총장이 며칠전 제 지시를?어기고, 절반?잘라먹었다. 말 안 듣는 총장과 일한 장관은 없었다”고 공격했다.

범여권이 윤 총장을 비판하는 소재는 조국 일가 수사, 검찰의 증언 강요 논란을 빚는 한명숙 전 국무총리 수사, 청와대 울산시장 선거 개입 및 하명 수사 의혹, 윤 총장 측근 검사장 연루 의혹을 받는 ‘검찰-언론 유착’ 사건, 유재수 전 부산 경제부시장 감찰 무마 의혹 등이다. 범여권은 윤 총장이 검찰 권력을 이용해 사적 방어, 계보 챙기기에 나서고 있다고 비판한다. 권력수사에 대해 권한 남용과 정치적 중립성 위반, 제 식구 감싸기, ‘조작 시도’ 라고 날을 세우고 있다.
[홍영식의 정치판] 여권 윤석열 공격, 대선 등판 구실 만들어 주나
[홍영식의 정치판] 여권 윤석열 공격, 대선 등판 구실 만들어 주나

◆“권력 수사 결과 따라 정권에 치명상 안길 수 있어”

범여권이 윤 총장 총공세에 나선 또 다른 배경이 있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검찰의 주요 권력 수사는 휘발성이 크다. 수사 결과에 따라 정권이 치명상을 입을 수 있다. 울산시장 선거 하명 수사 의혹과 유 전 부시장 사건과 관련해 청와대 전직 고위 참모들이 대거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라임자산운용 환매 중단 사건’에도 여권 인사들의 연루 의혹이 제기된다.

여권이 윤 총장 비판에 나선 데는 위기감의 반영이라는 것이 미래통합당의 주장이다. 조해진 통합당 의원은 “터져 나오기 시작한 권력형 비리를 막고 차기 대선을 앞두고 여권에 유리한 판을 만들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또 다른 통합당 의원은 “정권 차원에서 불리한 수사 결과가 나올 경우에 대비해 ‘부당 수사’ 논리를 만들어 내기 위한 정지 작업”이라고 비판했다.

관심은 윤 총장이 정치판에 발을 들여 놓을 것이냐다. 관건은 김영삼 전 대통령이 지적한 대로 자신의 권력 의지와 그를 대선 주자로 만들어 주는 외부 환경이다. 여권의 사퇴 압력은 역설적으로 윤 총장의 체급을 올려주고 있다. 그를 대선 주자로 만들어 주는 외부 환경이 조성되고 있는 셈이다.

윤 총장이 정치에 뜻이 있는지, 권력 의지가 어느 정도인지는 확인하기 어렵다. 그는 지난해 국정 감사 답변 도중 “정무 감각이 없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고 했다. 올해 초 한 여론 조사에서 윤 총장은 이낙연 민주당 의원에 이어 대선 지지율 2위를 기록한 결과가 나오자 언론사에 자신을 여론 조사 후보군에 넣지 말아 달라고 요구했다. 이를 두고 정치인 변신 가능성을 낮게 보는 전망이 나왔다. 반면 검찰 수장으로서 정치적 중립을 지키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지 변수는 늘 있다는 주장도 있다. 민주당의 한 중진 의원은 “윤 총장이 강단 있는 모습을 보여준 것이 정치권에 강한 인상을 심어준 측면이 있고 대선 주자 가뭄 현상을 빚고 있는 통합당 상황과 맞물려 그가 대선판에 휩쓸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통합당은 아직 의문 부호를 던지고 있다.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의 생각은 “두고 봐야 한다”는 것이다. 김 위원장은 기자 간담회 등을 통해 “아직 현직에 있는 사람을 이러쿵저러쿵 얘기하는 건 실례”라며 “자기가 생각이 있으면 (대선에) 나오겠지. 일반인으로 돌아와 (대선) 채비를 하고 경쟁에 뛰어들면 결과는 지켜봐야 한다. (대선 후보로) 가능할 거냐, 아닐 거냐는 그때 가봐야 안다”고 했다.

대선 킹메이커로 나선 김무성 전 통합당 의원은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내 주변에도 (대선 주자로) 윤석열을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다”며 “좌파 정권 하에 임명직 검찰총장이 어려운 상황에서 꿋꿋이 버티고 있다.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는 “다만 정치는 사고의 유연성과 민주성이 굉장히 중요하다”며 “검찰은 센 권력이다. 평생 그 자리에서 소신으로 인기를 얻었는데 정치인으로 변신할 수 있을까. 변신하면 그것(대선 출마)도 가능한 이야기다. 이 사회에 영웅이 탄생하면 좋겠다”고 했다. 가능성을 열어 두면서도 변신 가능성에 대해선 의문 부호를 달아 놓은 것이다. 홍준표 무소속 의원은 “검찰총장은 인생의 꿈이 완성되는 것인데 그 이상 욕심을 부려 제대로 된 사람을 보지 못했다”고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反文 넘어 권력 의지, 지역·세대·이념 기반 갖춰야”

전문가들은 윤 총장이 정치인으로 변신하려면 넘어야 할 과제가 만만치 않다고 지적한다. 배종찬 인사이트케이 연구소장의 분석이다. “아직은 미완의 대기로 보인다. 지역과 세대, 이념적 기반이 있어야 하는데 검증할 길이 없다. 그럼에도 주목받는 이유는 반문재인을 대표할 수 있는 인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검찰 개혁을 둘러싸고 대결 구도가 되면서 윤 총장이 부각되고 있는데 이는 보수층의 ‘언더독 이펙트(약자라고 생각될 때 동정하는 현상)’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반문 대표 주자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은 열려 있다. 하지만 반문 대표 주자가 되기 위해서는 본인의 강한 대권 의지와 정치 능력 등이 담보돼야 하기 때문에 앞으로 과제가 많다.”

정치 평론가인 서성교 건국대 초빙교수는 “여권이 윤 총장을 거세게 몰아붙이는 것은 사퇴하더라도 그가 정치적으로 성공할 역량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서 교수는 “윤 총장이 보수층에게 인기가 있는 것은 문재인 정권과 맞서 있기 때문”이라며 “하지만 검찰총장 직을 내려놓고 거품이 빠지면 대선 주자로 성공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 “보수 일부 세력들은 윤 총장을 이용하려고 하겠지만 대선 주자로 입지를 다지려면 권력 수사를 둘러싼 문 정권과의 싸움에서 벗어나 대한민국의 미래를 만들어 가기 위한 비전을 갖고 여권과 맞 붙어야 한다”고 했다. 이어 “그러기 위해선 윤 총장을 위해 죽기 살기로 몸을 던질 세력과 충성심을 끌어낼 힘과 리더십이 있어야 하지만 현재로선 의문 부호를 찍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통합당의 한 중진 의원도 “상명하복을 생명으로 하는 일사불란한 검찰 조직과 다양한 의견이 상시적으로 충돌하고 이를 통합, 조정해야 하는 정치는 판이하게 다른 영역”이라며 “윤 총장이 정치에 발을 디디면 정치 지도자로서 갖춰야 할 이런 조건을 검증하는 절차를 통과하는 게 관건”이라고 했다.
yshong@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83호(2020.06.27 ~ 2020.07.03)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