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포커스]
-현대차그룹, 삼성·LG·SK와 ‘전기차 동맹’
-금융·화학·통신·제약 등 전방위 협력 확산

[한경비즈니스=최은석 기자] 국내 주요 기업들이 경쟁사들과의 협업을 강화하며 ‘선택과 집중’에 나서고 있다. 경쟁사 대비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 핵심 사업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에 따른 글로벌 경기 침체 등을 감안한 ‘적과의 동맹’ 추세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배터리 3사와 협력해 전기차 2위 달성
경쟁보다 생존이 먼저...재계에 부는 ‘적과의 동맹’ 바람
현대차그룹은 최근 삼성·LG와 ‘전기차 동맹’ 움직임을 보이며 주목받고 있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총괄수석부회장은 6월 22일 구광모 LG 회장과 만나 전기차 배터리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두 사람이 사업 목적으로 만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정 수석부회장은 이날 알버트 비어만 연구개발본부장(사장)과 김걸 기획조정실장(사장), 서보신 상품담당(사장), 박정국 현대모비스 사장 등과 함께 충북 청주에 있는 LG화학 오창공장을 방문했다. LG에서는 구 회장과 권영수 LG 부회장, 신학철 LG화학 부회장, 김종현 LG화학 전지사업본부장(사장), 김명환 LG화학 배터리연구소장(사장) 등이 참석했다. 두 그룹 경영진은 3시간가량 전기차와 배터리 산업에 대해 논의했다.

LG 측은 이날 장수명 배터리와 가격이 저렴하고 주행 성능이 뛰어난 리튬황 배터리, 더욱 안정적인 전고체 배터리 등 개발 중인 제품에 대해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차그룹 경영진은 오창공장 생산 라인 등을 둘러봤다. 업계에서는 이번 만남을 계기로 두 그룹이 글로벌 전기차와 배터리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합작법인 설립 등의 방식으로 힘을 모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시장 조사 기관 SNE리서치에 따르면 LG화학은 올해 1~4월 기준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시장점유율 25.5%로 1위를 기록했다.

정 수석부회장은 글로벌 전기차 시장을 잡기 위해 배터리를 제조하는 삼성·SK와의 협업도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5월 13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만나 전고체 배터리 개발 방향 등을 논의한 데 이어 조만간 최태원 SK 회장과도 회동할 것으로 알려졌다. 전기차 전문 매체 EV세일즈에 따르면 현대·기아차는 올 1분기 글로벌 시장에서 전기차 판매량 4위를 기록했다. 현대차그룹은 2025년까지 전기차 시장점유율을 10% 수준으로 끌어올려 세계 2위로 올라선다는 목표다.
경쟁보다 생존이 먼저...재계에 부는 ‘적과의 동맹’ 바람
국내 2위 석유화학 회사인 롯데케미칼도 경쟁사와 손잡으며 주력 사업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롯데케미칼과 한화종합화학은 최근 합성섬유와 페트(PET)병을 만드는 데 쓰이는 중간 원료인 고순도 테레프탈산(PTA) 공급과 관련한 업무 협약을 체결했다. 한화종합화학은 협약에 따라 7월부터 롯데케미칼에 연간 45만 톤의 PTA를 공급한다. 롯데케미칼은 PTA 시장에서 손을 떼는 대신 PTA를 생산하던 울산공장의 설비를 조정해 PET·도료·불포화 수지 등의 원료인 고순도 이소프탈산(PIA)에 집중한다. 롯데케미칼은 PIA 세계 시장점유율 1위 기업이다.

롯데케미칼은 지난 2월 GS에너지와 합작법인인 롯데GS화학을 설립하기도 했다. 롯데케미칼은 지분 51%를 보유하며 최대 주주에 올랐다. 롯데GS화학은 8000억원을 투자해 전남 여수공장 부지에 유분 등을 생산하는 공장을 건설 중이다. 롯데케미칼이 현대오일뱅크와 함께 설립한 현대케미칼은 2조7300억원을 들여 올레핀과 폴리올레핀을 생산하는 공장을 짓고 있다. 공장은 내년 완공돼 상업 생산에 돌입한다.

업계 관계자는 “SK이노베이션 등 경쟁사와 달리 정유 부문이 없는 롯데케미칼이 협업을 통한 선택과 집중으로 몸집을 불리고 있다”고 분석했다.

제약 바이오 업종에서도 활발한 협업이 이뤄지고 있다. 백신과 혈액 제제 등 바이오 의약품에 집중하던 GC녹십자는 합성 의약품 사업에도 드라이브를 거는 중이다. GC녹십자는 한미약품과 머리를 맞대고 유전성 희귀 질환인 리소좀 축적 질환(LSD) 치료제를 개발하고 있다. GC녹십자는 유한양행의 자회사인 애드파마와도 협력 중이다. 애드파마가 합성 의약품 제제 개발을 맡고 GC녹십자는 개발 기술을 이전받아 제품 생산과 상업화를 담당하는 식이다.

GC녹십자는 최근 코로나19 치료제 개발을 위해 세계 선두권 혈액 제제 기업들과 손잡기도 했다. GC녹십자는 혈액 제제 기업으로 구성된 ‘코로나19 혈장 치료제 개발 얼라이언스(협의체)’에 합류했다고 5월 8일 발표했다. 협의체에는 BPL(영국)·CSL(호주)·다케다(일본)·바이오테스트(독일)·옥타파마(스위스) 등 혈액 제제 톱10 기업이 참여했다. 협의체는 올해 하반기 상용화를 목표로 혈장 치료제를 개발해 공동 브랜드로 판매한 뒤 수익을 배분할 계획이다.

생존을 위한 동맹에는 금융 업종도 예외는 아니다. 순이익 기준 국내 1, 3위 금융그룹인 신한금융과 하나금융은 최근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손잡으면서 눈길을 끌었다. 해외 시장에서 과도한 경쟁 대신 협력을 통해 영업 기회를 발굴한다는 전략이다. 신한금융과 하나금융은 각각 20개국 222개, 24개국 216개의 해외 지점과 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다. 신한·하나금융은 동남아시아 시장 공략을 위해 협업하고 그 밖의 신규 시장에도 공동 진출한다는 계획이다.
경쟁보다 생존이 먼저...재계에 부는 ‘적과의 동맹’ 바람
◆KT&G는 필립모리스와 ‘전자담배 동맹’

KT&G는 올해 초 해외 전자 담배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경쟁사인 필립모리스와 손을 잡기도 했다. 아이코스 제조사 필립모리스가 KT&G의 전자 담배 ‘릴’을 한국을 제외한 세계 시장에서 판매하는 방식이다. 필립모리스는 한국 등 세계 50여 개국에 전자 담배 판매·유통망을 구축하고 있다.

KT&G 관계자는 “3년간 제품을 우선 판매하고 성과가 좋으면 장기 파트너십으로 전환할 계획”이라며 “하반기 글로벌 시장 출시를 목표로 필립모리스인터내셔널과 막바지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동종 기업을 넘어 다른 업종 기업과 손잡는 ‘합종연횡’ 움직임도 일고 있다. KT는 최근 산학연 협의체 ‘인공지능(AI) 원팀’에 LG전자와 LG유플러스가 합류했다고 발표했다. AI 원팀은 ‘AI 1등 대한민국’을 목표로 지난 2월 출범했다. KT를 비롯해 현대중공업그룹·한양대·카이스트·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등이 참여하고 있다.

AI 원팀은 각자 보유한 기술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여러 사업 분야에서 협업한다. KT와 현대중공업그룹은 정보통신기술(ICT)과 스마트 선박·제조·로봇 등의 분야에서 협력해 왔다. 여기에 LG전자와 LG유플러스가 합류하면서 스마트 가전과 스마트 기기 등 더욱 다양한 산업 영역에 AI를 접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각사의 제품과 서비스·솔루션을 접목하는 시도에도 나설 계획이다. KT의 AI 플랫폼 ‘기가지니’와 LG전자의 ‘LG 씽큐’를 상호 연동하는 방식이다.

박찬희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는 “기업 간 경쟁과 협력의 단위가 세계로 넓어진 만큼 좁은 범위의 경쟁에 갇혀 각자도생하는 방식으로는 미래를 장담할 수 없게 됐다”며 “정보기술(IT)과 통신 업종 등은 물론 금융과 유통 등 더 많은 분야에서 협업하는 추세가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choies@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83호(2020.06.27 ~ 2020.07.03)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