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 제 1283호 (2020년 06월 29일)

북한산을 병풍으로…자연 품은 ‘은평뉴타운’의 재발견

기사입력 2020.06.29 오전 11:19

[스페셜 리포트Ⅰ]
- 한때 미분양률 30%에 ‘떨이 판매’까지
- 지금은 서울 서북권 주거 지형도의 노른자위로


은평뉴타운 전경./ 서범세 기자

은평뉴타운 전경./ 서범세 기자



[한경비즈니스=차완용 기자] 경관이 장관이다. 북한산을 병풍으로 둔 은평뉴타운의 전경을 바라보고 있으니 눈이 호강이다.

햇볕이 내리쬐는 맑은 날에는 한 폭의 풍경화를 보는 듯하고 구슬비가 내려 안개가 자욱한 날에는 운치가 절경이다. 대규모로 늘어선 아파트들로 인해 자칫 삭막해 보일 수 있는 도시가 자연을 품으니 또 다른 매력이 나타난다.

2002년 뉴타운 시범지구로 선정돼 지금까지 개발을 이어 온 은평뉴타운은 이제 온전한 도시의 풍경을 갖췄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한적한 시골, 고양시 삼송이나 일산으로 넘어가는 통과점이었던 서울의 서북쪽 끝 은평구 진관동은 온통 아파트 천지다. 북한산을 오르는 등산객들만 찾던 지하철 3호선 구파발역은 이제 남녀노소 모두가 이용한다.

역사 주변에 자리 잡고 농작물을 팔던 노점 상인들의 모습은 사라졌고 대형 쇼핑몰과 길게 늘어선 상가를 방문하려는 이들로 북적인다. 은평구 진관동에 조성된 은평뉴타운이 바꿔 놓은 풍경이다.

◆ 18년 우여곡절 끝 마지막 개발 앞둬

은평뉴타운 3-1지구 모습./ 서범세 기자

은평뉴타운 3-1지구 모습./ 서범세 기자



2002년 서울시 강북지역 뉴타운 시범지구로 선정된 은평뉴타운은 현재 대부분의 사업이 완료됐다.

크게 1지구, 2지구, 3-1지구, 3-2지구 등 4개 구역으로 나눠 개발을 진행했고 2008년 4500가구를 처음 공급한 이후 지금까지 총 1만7800가구(아파트·오피스텔·단독주택 등을 포함한 주거 시설)가 공급됐다.

수용 인구만 5만 명 정도다. 이제 남아 있는 사업은 기자촌에 들어서는 주거 시설 485가구
(대방노블랜드)를 비롯해 2022년 완공될 예정인 행정 시설 소방행정타운 정도다.

사실 은평뉴타운은 201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이렇다 할 주목을 받지 못했다. 같은 시기 진행된 길음뉴타운(주거중심 재개발 사업)이나 왕십리뉴타운(도심형 재개발 사업)은 이미 인프라가 갖춰진 상태에서 개발되는데 반해 은평뉴타운은 신시가지형 개발로 진행됐기 때문이다.

이 당시만 해도 은평뉴타운 사업 부지는 서울이라고 믿기 힘들 만큼 시골 풍경이었다. 1971년 그린벨트 지정 이후 개발에서 소외된 영향이다. 이에 따라 길음뉴타운 아파트들에 청약이 몰리고 아파트 가격이 오를 때 은평뉴타운은 미분양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당초 은평뉴타운은 비슷한 시기에 기획돼 건설된 판교신도시처럼 강북에 강남권 수요를 흡수할 만한 주거 지역을 만들겠다는 목표였다.

이에 따라 중·대형 위주의 아파트들을 대거 공급했다. 뉴타운 내에 자립형 사립고(하나고등학교)를 유치한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하지만 은평뉴타운은 시장에서 철저히 외면 받았다.

실제로 은평뉴타운은 2012년까지만 해도 미분양률이 30%(택지 51.4%, 주택 15.8%)에 달했다. 결국 사업 시행사인 서울시와 SH공사는 당초 분양가에서 최대 2억원 이상 파격 할인하며 미분양 털기에 나서기까지 했다.

또 전세를 산 뒤 분양 전환하는 ‘분양 조건부 전세’까지 도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6년까지 미분양이 남아 있었다.

단독 주택 용지와 한옥마을 주택 용지 역시 분양에 어려움을 겪었다. 단독 주택 용지는 2012년부터 101개 필지를 공급했는데 이 중 42개 필지가 주인을 찾지 못했다. 당시 3.3㎡당 평균 920만원에 분양을 시작했던 이들 용지는 730만원까지 낮춘 뒤에야 판매가 완료됐다.

한옥마을 주택 용지 역시 상황은 비슷했다. 강북 아파트의 매매 가격이 3.3㎡당 2000만원까지 치솟은 지금에는 상상도 하기 힘든 일이다.

지금은 상황이 역전됐다. 웰빙이 주거 문화의 중요한 축으로 자리 잡으면서 은평뉴타운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단독 주택 용지와 한옥마을 주택 용지를 구매하려고 해도 물건을 찾기 힘들고 아파트들은 분양 당시보다 수억원이 오른 상태에서 거래되고 있다.

◆ 자연을 품은 뉴타운의 넘치는 장점

은평뉴타운 은평한옥마을./ 서범세 기자

은평뉴타운 은평한옥마을./ 서범세 기자



은평뉴타운의 가장 큰 매력은 자연을 품고 있다는 점이다. 북한산 자락 바로 아래에 있어 조망이 좋고 한적하다. 은평뉴타운 지구 정중앙에 이말산이라고 불리는 산도 품고 있다. 조경에 많은 공을 들였다는 것을 몸으로도 느낄 수 있다.

특히 1지구와 2지구의 일부 동은 중정형 스타일의 아파트가 들어서 있는데 도로에 접하는 1층 부분은 근린 상업 시설이 들어서 있고 중정에는 놀이터와 공원 등의 편의 시설을 배치하는 유럽식 중정형 블록을 모델로 도시가 설계됐다.

아파트 단지를 걷다보면 공원이란 착각이 들 정도다. 북한산에서 흘러내리는 4km가 넘는 실개천도 은평뉴타운의 매력을 더한다.

은평뉴타운에는 경기도 신도시처럼 입주민들이 자전거를 자주 이용한다. 상당수 가구가 자전거를 보유하고 있고 곳곳에 공공 자전거(따릉이)가 배치돼 있다. 349만2421㎡에 이르는 넓은 도시인 만큼 많은 이들이 이용하고 있다.

다른 뉴타운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저층 아파트도 은평뉴타운에 잘 어울린다. 은평뉴타운 인근에 군사 시설이 밀집돼 있어 대부분의 아파트들이 15층 이하로 구성돼 있다. 요즘 새로 지어지는 아파트들이 20~30층을 넘는 것과 대비된다.

몇 년 전만 해도 은평뉴타운의 단점으로 꼽히던 생활 인프라 역시 많이 개선됐다. 은평롯데몰 오픈 이후 상권이 몰라보게 형성됐다.

우선 롯데몰이 개장하면서 은평뉴타운 거주자 혹은 북한산 등산객들의 셔틀 역할밖에 하지 못했던 구파발역이 쇼핑을 위한 방문객이 찾을 만큼 변했다.

원래 상업지구 조성 이전에 은평뉴타운 거주자들이 소비 활동이나 문화생활을 즐기려면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고 연신내 혹은 불광, 멀리는 고양시 화정까지 원정을 나가야 했는데 이제는 집 주변에서 편하게 생활할 수 있다.

지하철 3호선 구파발역 앞에 들어선 상권./ 서범세 기자

지하철 3호선 구파발역 앞에 들어선 상권./ 서범세 기자



은평뉴타운의 또 다른 장점 중 하나는 단지간의 계층이 나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은평뉴타운에는 아파트 1만7207가구 중 6914가구가 39.67㎡(12평)에서 82.64㎡(25평) 사이의 국민·공공 임대 아파트일 만큼 임대 주택의 비율이 매우 높은 편(40.1%)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반 분양 아파트와 어우러져 있어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요즘 사회적 문제로까지 대두되고 있는 단지 간 계층 구분으로부터 자유롭다.

은평뉴타운에는 타지 사람들이 찾아오는 핫 플레이스가 있다. 바로 은평한옥마을이다. 은평한옥마을은 북촌과 서촌에 이어 서울에서 셋째로 큰 한옥 단지다. 최근에 전원 마을로 인기가 급부상했지만 시작은 순탄하지 않았다.

북한산을 병풍으로…자연 품은 ‘은평뉴타운’의 재발견


서울시는 2008년 ‘한옥 선언’을 발표하며 한옥 보급을 확대할 계획을 밝혔다. 2011년 은평뉴타운 내 3만㎡ 부지에 한옥마을 조성 계획을 확정하고 이듬해인 2012년 9월 분양을 시작했다. 하지만 땅이 팔리지 않았다. 초기 70%가 넘는 땅이 미분양 상태였다.

한옥의 건축 비용이 일반 주택에 비해 비싼 편인 데다 아파트처럼 보편적인 거주 공간이 아니라는 점 때문에 외면 받았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프리미엄이 4억~5억원 붙을 정도로 귀한 몸이 됐다.

은평한옥마을이 재평가 받게 된 결정적 요인은 뛰어난 입지다. 한국의 100대 명산인 북한산을 병풍처럼 두르고 있어 깊은 산 속에 들어온 것 같은 느낌이다.

집 안에서 북한산 원효봉·백운대·의상봉·문수봉·비봉·등 14개의 봉우리를 감상할 수 있고 북한산 둘레길 9구간과도 붙어 있어 최적의 산책 코스를 갖췄다. 사계절마다 각기 다른 풍경의 산 조망이 가능해 자연의 변화를 그대로 느낄 수 있다.

무엇보다 이곳이 특별한 것은 전통 한옥의 단점을 보완한 현대식 한옥 단지라는 점이다. 앞으로 한옥이 나아가야 할 방향성을 제시한다. 전통 한옥과 현대 건축의 장점을 접목해 단열·방음·보안 등의 측면에서 주택 못지않은 편리성을 갖췄다.

골목을 걷다 보면 ‘건축상’을 받은 한옥들을 쉽게 볼 수 있다. 현관과 주차장을 갖추고 있는 한옥은 독특한 느낌을 내면서도 과거와 미래가 공존하는 모습을 잘 보여준다.

은평한옥마을 주변엔 역사 문화 시설이 많다. 진관사와 삼천사 같은 고찰과 세종대왕의 여섯째 아들 금성대군을 모신 금성당이 매우 가깝다. 금성당은 샤머니즘 박물관으로도 활용되고 있다.

방문자들을 위해 시범으로 지은 한옥도 있다. 조상들이 발전시킨 한옥의 구조나 내부를 감상하고 어떻게 생활했는지 가늠할 수 있다.

다만 은평뉴타운에는 고질적인 문제가 있다. 바로 교통이다. 은평뉴타운이 자리 잡으면서 서울 서북권의 주거 지형도를 바꿔 놓고 있지만 교통 환경은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반 차이가 없다.

대중교통망은 지하철 3호선 구파발역 한 곳과 간선버스 몇 개 노선 정도다. 은평뉴타운에만 5만 명이 거주하는 것을 고려하면 턱없이 모자란다.

◆ 시속 15km를 넘지 못하는 교통 문제는 여전

 출퇴근 시간대에는 교통 체증이 심한 통일로./ 서범세 기자

출퇴근 시간대에는 교통 체증이 심한 통일로./ 서범세 기자



게다가 은평뉴타운 주변에 경기 고양 삼송지구와 지축지구, 원흥보금자리 주택지구까지 들어선 상황이라 출퇴근 시간대면 대중교통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 특히 도심으로 이동할 수 있는 유일한 도로인 통일로는 최악이다.

출퇴근 시간이나 주말이면 주차장으로 변한다. 하루 평균 교통량이 5만2866대에 이르면서 출퇴근 시 통행 속도가 시속 15km를 넘지 못하는 상황이다.

서울시와 은평구는 은평뉴타운의 교통 여건 개선을 위해 여러 방안을 모색하고 있지만 이렇다 할 진전이 없는 상황이다. 대표적인 것이 은평뉴타운의 간선도로망 계획인 은평새길이다.

은평새길은 은평구 불광동 통일로에서 종로구 부암동 자하문길을 잇는 왕복 4차로, 길이 5.78km 도로다.

서울시가 이 지역 교통난 해소를 위해 내놓은 핵심 교통 대책으로 당초 2010년 초 착공해 2013년 말 개통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북한산국립공원 훼손을 우려하는 환경 단체의 반발과 자치구와의 이해 대립 등으로 아직까지 착공 일정조차 잡지 못하고 있다.

은평새길은 현재 기존 통일로의 교통 정체를 완화하는 동시에 서울 접근성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대안으로 꼽히지만 종로구 주민의 반대로 차질을 빚고 있다.

은평새길이 생기면 도심 접근 도로인 자하문길에 교통 혼잡이 야기된다는 이유에서다. 그도 그럴 것이 자하문길은 지금도 포화 상태다.

또 다른 대안으로 신분당선 서북부 연장선의 조기 착공도 추진했지만 이 역시 불발됐다. 서울 용산에서 고양 삼송지구까지 약 18.5km를 연결하는 내용의 해당 사업 계획이 지난해 기재부의 예비 타당성 중간 점검에서 경제성이 현저히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에 은평뉴타운을 비롯한 이 일대 입주민들 사이에선 “지하철 등 교통 인프라를 먼저 확충하고 아파트를 분양해야지 계속 대규모 아파트 단지만 짓고 교통은 나 몰라라 하고 있다”는 불만의 목소리가 높다.

cwy@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83호(2020.06.27 ~ 2020.07.03)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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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일시 : 2020-06-30 10: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