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 인사이트]
-정교하고 과감한 정책 펼치는 미국 Fed
-코로나19 재창궐해도 금융시장 충격은 덜할 것

[한경비즈니스=윤지호 이베스트투자증권 리서치본부장] 전염의 시대다. 급한 불은 껐지만 아직 불씨는 꺼지지 않았다. 여전히 우리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비밀을 풀지 못했다. 면역력은 몸의 방어력이다. 사회 전반에 면역력이 자리 잡으면 바이러스에 감염돼도 폐렴으로 죽는 이는 크게 감소할 것이다. 하지만 코로나19 방역의 방법으로 일부 국가에서 집단 면역력을 높이는 방식을 선택했지만 결과는 참혹했다. 코로나19는 치사율은 낮지만 전염성이 높고 면역 회피가 강하다는 게 최근 연구 결과에서 밝혀지고 있다. 인체에 면역력이 빠르게 확산되고 유지되기가 어렵다면 현 상황은 쉽게 개선되기 힘들다.

◆‘공생의 시대’를 시작한 코로나19
‘전염의 시대’…더욱 강력해진 중앙은행의 역할
물론 길게 보면 시간이 지나고 치료제가 나오고 계절마다 다가오는 감기처럼 코로나19도 우리와 함께할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시간이다. 치사율을 낮추는 치료제가 나와 대량 생산이 가능해지거나 사회 전반에 면역력이 확산될 시점이 올겨울도 아니고 내년 상반기도 아닐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당장은 북반부의 겨울과 함께 돌아올 코로나19 재확산의 강도가 어떠할지 그 누구도 예단할 수 없다.

우리의 지식이 아직 코로나19를 정복하기에는 미흡하지만 다행히 지난 금융 위기의 경험을 통해 금융 시장 붕괴를 막기 위한 제도적 안전장치는 준비돼 있다. 전통적 이론에서 벗어난 반전통적 통화 정책으로 무장한 미국 중앙은행(Fed)은 코로나19로 인한 공포를 잠재우고 여전히 남아 있는 시간과의 싸움에서 소방수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

3월 초 코로나19의 세계적 확산이 본격화되면서 Fed는 기준 금리를 1.5%에서 제로 금리로 대폭 인하, 재무부 증권·주택저당증권(MBS) 등 자산 매입 규모를 무제한으로 확대(무제한 QE), Fed법 13조 3항에 근거한 긴급 대출 제도 시행 등 빠르게 대처하기 시작했다. 과거 글로벌 금융 위기 당시에는 위기 해결을 위한 Fed와 미국 재무부의 정책이 대략 1~2년에 걸쳐 텀을 두고 나왔던 것에 반해 이번 코로나19발 위기 때는 대략 2~3개월 만에 대부분의 정책이 발표됐다. Fed의 강력하고 빠른 대처 덕분에 코로나19로 급락한 글로벌 증시가 생각보다 빠르게 반등할 수 있었다.

더 놀라운 것은 Fed의 정책이 금융 위기에 비해 더 촘촘하게 설계됐다는 데 있다. 긴급 대출 제도 가운데 글로벌 금융 위기 당시 사용됐던 제도와 유사하거나 동일한 제도도 있지만 발행 시장 회사채 신용 지원(PMCCF), 유통시장 회사채 신용 지원(SMCCF), 지방채 신용 지원(MLF), 급여 보호 프로그램(PPPLF)과 중소기업 신용 지원(MSLP) 등 과거에 없었던 제도까지 마련했다.

2008년 금융 위기가 서브프라임, 부채담보부증권(CDO) 등 파생 상품 부실로 금융 위기였다면 이번 코로나19발 위기에서는 바이러스 확산 억제를 위한 이동 제한과 경제 봉쇄 등 실물 경제의 위축을 막기 위한 정책을 제시한 것이다. 교역이 줄면 생산이 위축되고 고용이 악화되면서 수요 부진이 불가피해진다. 글로벌 경기 침체·수요 부진은 하이일드 회사채, 저신용 기업 부채 등 크레디트 시장의 위기로 확산될 수밖에 없었다. Fed가 팔을 걷어붙여 크레디트 시장 안정을 도모하고 코로나19로 피해를 본 기업에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한 이유다.

Fed의 정책은 실행한 것도 아직 실행하지 않은 것도 있지만 일단 할 수 있는 것은 다 내놓았다. 단기 자금 시장 안정 측면에 해당되는 제도는 기업어음 매입 기구(CPFF), 유동성 지원 창구(MMLF), 프라이머리 딜러 신용 공여 제도(PDCF)다. 둘 다 금융 위기 당시 도입했던 제도로, 3월 중순 발표됐다.

CPFF는 기업어음(CP) 금리가 급등해 단기 금융 시장이 경색되자 CP 시장의 차환 리스크를 제거하기 위해 제시했고 MMLF는 MMF의 대규모 환매가 가중되자 이를 완화하기 위해 MMF 매입 자산을 담보로 적격 금융회사에 대출을 지원하기 위해 도입됐다. PDCF는 24개 PD에 최대 90일간 자금을 공급해 원활한 금융 시장 기능을 지원하기 위한 지원책이다.

제도적 안전장치가 마련되면서 지난 3월 이후 미국의 금융 시장은 안정을 찾았다. TED스프레드·OIS스프레드·VIX 등의 지표를 정규화해 만든 블룸버그 금융 여건 지수는 금융 위기 이후 최악의 수치에서 벗어나 기준선 근처까지 반등했지만 6월 중순 이후 코로나19의 2차 확산 우려와 함께 다시 하락했다.

두 가지를 주목하고 있다. 하나는 여전히 엄청난 정책 지원에도 금융 여건은 정상화라고 보기에 미흡하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금융 시장이 미세하게 흔들리자 Fed가 기다렸다는 듯이 준비한 제도를 작동했다는 것이다.

지난 6월 15일에는 16일부터 Fed 자체 지수(회사채지수, Broad Market Index Bond)를 추종하는 회사채 포트폴리오를 구성해 매입한다고 발표했다. 회사채 상장지수펀드(ETF) 매입 시 매입 한도가 규정된 점을 보완할 수 있고 개별 회사채를 선별적으로 매입하면 공정성 관련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에 개별 회사채에 대한 회사채 포트폴리오를 구성해 매입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정리하면 2차 시장 기업 신용 기구(SMCCF)하에서 매입 가능한 자산은 △적격 개별 회사채 △회사채 ETF △광범위 시장 지수 회사채 등 총 3가지이고 회사채 ETF와 광범위 시장 지수 회사채에 대한 매입이 진행되고 있다.

◆‘튤립 버블’ 시대와 지금은 분명 달라

Fed는 하나의 중앙은행이 아니다. 미국의 1달러 지폐에는 워싱턴 대통령의 사진 바로 왼쪽으로 동그라미 안에 알파벳이 써 있다. A(보스턴)에서 L(샌프란시스코)까지 달러를 찍어낸 곳을 알파벳으로 표시한 것으로 지역 Fed가 자리한 곳이다. 1907년 공황 발생 이후 Fed의 필요성이 대두되면서 1917년 미국의 연방준비법에 의해 연방준비제도가 탄생했지만 권력 분산을 염두에 둔 Fed의 의도가 반영돼 미국의 12개의 지역 Fed를 두고 있다. 이사회는 워싱턴에 자리한다. 아이로니컬하게도 미국 헌법에는 중앙은행을 설립할 권한을 명시하지 않고 있다.

Fed의 역사를 언급한 이유는 Fed의 이번 행동이 새롭지 않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1907년 공황을 겪으면서 1913년 Fed가 탄생했지만 1994년까지 Fed는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결과조차 발표하지 않았다. 폴 볼커와 앨런 그린스펀 Fed 전 의장은 FOMC 결과를 발표하지 않고 시장에서 유추하게 함으로써 금융 시장을 제어하고자 했다. 1994년 2월부터 FOMC 결과를 알리기 시작했고 2012년 벤 버냉키 Fed 전 의장은 물가 목표치를 공개하고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사전적 정책 방향인 ‘포워드 가이던스’를 제시하면서 기대를 관리하는 정책으로 진화한다.

앞서 언급한 비전통적 통화 정책의 확대는 이제 Fed의 대차대조표 구성 자체를 바꾸고 있고 코로나19로 인한 불안감을 억제하고 있다. 과거의 Fed로 현재를 속단하지 말자

네덜란드의 튤립 파동도 바이러스가 버블을 키운 사례다. 튤립이 모자이크 바이러스에 감염돼 테두리와 반점이 생겼고 그러한 튤립의 진귀함에 투기 자금이 몰렸다. 아름다움(펀더멘털)이 아닌 희소성(수급)에 대한 베팅이었기 때문에 가격 상승은 지속될 수 없었다.

그때와 달라진 것은 Fed의 역할이다. 튤립 버블 당시 Fed가 있었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투기를 경고했을 가능성이 높다. 뜨거운 여름이 와도 코로나19는 우리 곁에 머물러 있지만 3월의 공포가 재현될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코로나19가 다소 진정되기도 했지만 다시 코로나19 재확산의 불길이 번져도 이미 소방 장치가 준비됐기 때문이다. 전염의 시대, Fed를 비롯한 각국의 중앙은행은 자신의 역할을 충분히 하고 있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83호(2020.06.27 ~ 2020.07.03)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