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포커스]
-결혼은 ‘필수 아닌 선택’이 된 시대…은행권 중심으로 ‘미혼 복지’ 적극 도입 중
‘싱글을 위한 회사는 없다’…기혼자 중심 기업 복지에 소외감 느끼는 싱글들
[한경비즈니스=안옥희 기자] “결혼과 출산은 개인의 선택이고 옳고 그름의 문제도 아닌데 직장에서는 결혼·출산을 기준으로 미혼·기혼 직원 간 복지 역차별이 존재한다.”

경력 9년 차 직장인 김 모(35) 씨는 비혼주의자다. 직장 동료들이 하나둘 결혼하는 모습을 보면서 김 씨는 ‘복지 역차별’을 느꼈다. 김 씨의 회사는 직원이 결혼하면 결혼·출산·육아기에 맞춰 결혼기념일 선물부터 배우자 건강검진, 직장 어린이집, 근무시간 단축 등 다양한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결혼·출산하지 않으면 누릴 수 없는 기혼자만을 위한 혜택이다.

김 씨는 “사내 복지 우선순위에서 미혼 직원은 제일 마지막인 것 같다”며 “최근 개인의 삶을 중시하는 경향이 짙어지면서 가정을 이루지 않고 혼자 사는 비혼 인구가 증가하고 있는데 시대 변화에 맞춰 사내 복지도 개인의 다양한 라이프스타일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 1인 가구와 비혼 느는데 ‘정상 가족 이데올로기’ 그대로

통계청에 따르면 2019년 혼인율은 역대 최저를 기록했다. 지난해 인구 1000명당 혼인 건수를 따지는 조혼인율은 4.7건으로 1970년 통계 작성 이후 사상 최저로 떨어졌다. 통계청은 인구 감소에다 결혼을 기피하는 현상이 겹치면서 혼인이 줄어들고 있다고 설명했다.

2018년 통계청 사회 조사 결과를 보면 13세 이상 국민의 과반이 결혼이 필수가 아닌 선택이라고 여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결혼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비율도 2012년 62.9%에서 2018년 48.1%로 급감했다. 특히 미혼 여성은 결혼해야 한다는 응답이 22.4%에 불과했다.

젊은 층의 만혼과 비혼 증가로 혼자 사는 1인 가구도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2015년 500만 명을 돌파했던 1인 가구 수가 매년 증가해 지난해 600만 명을 넘어섰다. 1인 가구 비율은 30%에 육박하고 있고 2030년에는 세 집 중 한 집이 1인 가구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1인 가구의 가파른 증가는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이처럼 혼자 사는 싱글족이 늘자 이들을 겨냥한 ‘솔로 이코노미’ 시장도 커지고 있다. 비대면 소비 경향과 소용량 상품 소비, 코리빙 하우스도 솔로 이코노미의 한 축을 담당한다. 각종 통계가 증명하듯이 중요한 것은 이제 우리 사회에 미혼과 1인 가구는 더 이상 소수가 아니라는 점이다.

미혼 직원은 각종 경조사뿐만 아니라 자녀 학자금 지원부터 기성세대가 ‘13월의 월급’이라고 부르는 연말 정산에서도 부양가족이 없어 혜택을 받지 못한다. 이 때문에 사실상 ‘싱글세’를 내고 있다는 불만을 토로하는 미혼자가 적지 않다.

미혼 직원은 정책적으로도 소외돼 있다. 대출도 신혼부부나 다자녀 가구를 우대하기 때문에 보유 자산이 넉넉한 싱글이 아니라면 내 집 마련도 어렵다. 정부 정책은 저출생·고령화 등으로 인한 인구 감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결혼, 출산 장려, 육아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출산 장려금, 임신기 노동시간 단축, 돌봄 지원, 육아기 노동시간 단축 등이 대표적이다.

핵가족을 넘어 1인 가구가 급속도로 증가하며 사회 구조가 빠르게 변화하고 있지만 기업의 복리후생제도는 여전히 배우자·자녀 등 3~4인 가족의 생애 주기에 맞춰져 있다. 배우자와 자녀로 이뤄진 4인 가족 중심으로 설계된 각종 사회 제도가 이제 가족이 아닌 개인을 중심으로 바뀌어야 할 필요성도 대두된다.

포스코는 최근 직원들의 출산 장려와 육아기 경력 단절을 방지하기 위해 국내 기업 최초로 ‘경력 단절 없는 육아기 재택근무제’를 시행했다. 만 8세 또는 초등학교 2학년 이하 자녀가 있는 직원이면 직무 여건에 따라 ‘전일(8시간)’ 또는 ‘반일(4시간)’ 재택근무를 신청할 수 있다.

이 제도를 활용하면 육아기 자녀 1명이 있는 직원은 최대 4년, 자녀가 2명이면 최대 6년까지 재택근무를 할 수 있다. 일과 가정의 양립을 통해 직원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사회적인 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한 제도 취지는 좋지만 이 역시 미혼자는 해당 사항이 없는 기혼 직원만을 위한 제도다.

기혼 직원이어도 자녀가 없다면 누릴 수 있는 복지가 많지 않다. 결혼했지만 자녀 계획이 없는 ‘딩크족’인 임 모(43) 씨는 “회사를 오래 다녔는데 자녀가 없으니 누릴 수 있는 복지가 없었다”며 “자녀에 대한 복지 혜택에 상응하는 다른 복지가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다양한 가족 형태가 출현하는 시대상을 반영해 복리후생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형평성 차원에서라도 미혼·기혼·1인 가구 여부와 상관없이 개인이 원하는 혜택을 선택할 수 있는 맞춤형(선택형) 사내 복지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회사에서 복지로 기혼 직원의 배우자까지 건강검진을 지원해 준다면 배우자가 없는 미혼 직원에게는 ‘본인 외 가족 1인’의 건강검진을 지원하는 식이다. 달라진 사회 구조 변화에 따라 최근 가족 대신 반려동물의 건강검진을 지원하는 제도를 도입하려는 회사도 있다.
‘싱글을 위한 회사는 없다’…기혼자 중심 기업 복지에 소외감 느끼는 싱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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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욜로 지원금·가족 건강검진…미혼 복지 늘리는 기업들


복지가 좋기로 소문난 주요 그룹을 비롯해 아직 대부분의 기업에는 미혼 복지의 개념조차 없는 것이 현실이지만 기혼자와 미혼자 간 복지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미혼 복지 확대를 고려하는 기업들이 조금씩 느는 추세다.

은행권이 선제적으로 미혼 복지를 도입하고 있다. 주요 은행은 최근 노사협의회에서 미혼 직원의 복지를 늘려 달라는 요구에 따라 미혼 직원에게 ‘욜로 비용’을 주거나 (배우자가 아닌) 가족 외 1인의 건강검진 비용을 지원하는 등 사내 복지 변화의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

신한은행은 올해부터 연초에 나이와 상관없이 미혼 직원에게 ‘욜로(YOLO) 지원금’을 10만원씩 주고 있다. 기혼 직원의 결혼기념일 축하금과 같은 액수다. 욜로는 ‘인생은 한 번뿐(You Only Live Once)’의 준말로, 현재의 행복을 중시하는 세대의 생활 방식을 가리키는 말이다.

우리은행은 미혼 직원 우대 프로그램으로 드론 배우기, 요리 특강, 필라테스 교육 등 직원 본인만 신청할 수 있는 다양한 특강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또 2018년부터 만 35세 이상 미혼 직원의 부모 중 1인에 대해 종합건강검진을 격년으로 지원한다. KB국민은행도 2018년부터 미혼 직원의 부모 중 1인에 대한 건강검진을 지원하고 있다.

IBK기업은행은 최근 결혼을 늦게 하거나 아예 하지 않는 비혼 직원이 늘면서 미혼·비혼 직원에 대한 복지를 증진해야 한다는 직원들의 의견을 수렴해 결혼기념일에 지급했던 축하 선물을 미혼 직원의 생일에도 동일하게 제공하고 있다. 또 그동안 미혼 직원에게 주지 않았던 단신 격지 부임 여비(타지로 발령 시 지급하는 비용)도 지급하고 있다.

미혼에 특화한 복지 제도는 아니지만 미혼 직원의 연애와 결혼을 장려하는 행사를 상시로 진행하는 기업들도 있다. 미혼자들의 만남을 주선해 주거나 결혼 정보 회사 가입비를 지원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하나은행은 지난해 사내 미혼자들을 위해 ‘싱글들을 위한 청춘열차’라는 테마 행사를 기획해 미혼 직원들에게 네트워킹 기회를 제공했다.

NHN은 지난해 미혼 직원을 위한 ‘위프렌즈’를 신설했다. 위프렌즈는 친구를 회사로 초청하는 채용 행사의 일환으로 직원들이 NHN 입사에 관심 있는 친구들을 초대하면 취업 특전과 다양한 사내 복지 제도 소개, 사옥 투어를 제공한다. 밤에는 클럽 파티를 열어 젊은 직원들의 뜨거운 호응을 얻은 바 있다.

펄어비스는 본격적인 1인 가구 시대를 맞아 미혼 직원을 위한 복지 마련에 공을 들이고 있다. 지난해 9월 ‘시집장가 보내기 프로젝트’ 사내 이벤트를 통해 1인당 300만원 한도에서 결혼 정보 회사 가입비를 지원하기도 했다.



ahnoh05@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84호(2020.07.04 ~ 2020.07.10)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