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 A to Z]
-스마트 콘트랙트로 국경없는 자유로운 금전 거래 가능…‘충격’ 커 도입 쉽지 않을 듯
중국도 아직 모르는 위안화 CBDC의 파괴력
[한경비즈니스 칼럼 = 오태민 지놈체인 대표, 비트코인은 강했다’·‘스마트콘트랙 : 신뢰혁명’ , '비트코인 : 지혜의 족보' 저자] 국제결제은행(BIS)은 종이돈이 바이러스를 옮기는 매개체가 될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중앙은행들은 때맞춰 디지털 통화로의 완전한 전환을 적극적으로 검토할 것으로 보인다. 중국 중앙은행이 가장 앞서나갔다. 베이징과 선전을 비롯한 몇 개 도시부터 디지털 위안화를 시험적으로 운영하기로 했다. 언론들은 중국이 디지털 화폐를 선점함으로써 국제 무역 결제에서 달러가 차지하는 위상에 도전하려 한다는 분석까지 내놓고 있다.

중국에선 이미 알리페이·위챗머니와 같은 QR코드로 이뤄지는 지불 수단이 널리 확산된 상태다. 중앙은행이 전자화폐를 발행한다고 하지만 QR코드 단말기를 그대로 사용할 수 있으므로 추가 인프라와 심리적 거부감을 해소하기 위해 지불해야 할 비용도 많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비트코인을 주제로 강연할 때마다 ‘중앙은행 디지털 화폐(CBDC : Central Bank Digital Currency)’가 비트코인을 위협하지 않겠느냐는 질문을 받는다. 중앙은행들은 비트코인을 비롯한 블록체인 암호화폐에 자극 받아 CBDC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CBDC는 블록체인 기반의 암호화폐와는 지향하는 바와 속성이 다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놓치는 경우가 흔하다.

CBDC가 블록체인 기술을 일부 차용하더라도 비트코인의 핵심적인 속성을 따라 하기는 어렵다. 게다가 중국이 시도하고 있는 CBDC는 블록체인 기술을 사용하지도 않는다. 당국자들은 블록체인 기술을 일부 사용할 수도 있지만 블록체인에 연연하지 않겠다고 했다. 중국의 CBDC는 중앙화된 시스템을 지향한다는 의미다.

위안화 CBDC로 이뤄지는 모든 거래는 중앙의 서버에 자취를 남긴다. 거래 당사자들 간에는 서로 모를 수 있지만 중앙 서버는 지갑 소유자의 신원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에 모든 거래를 투명하게 들여다볼 수 있다.

설사 블록체인 기술을 일부 차용한다고 하더라도 중국의 중앙은행은 불특정 다수가 노드를 운영하게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노드에 대한 통제력을 양보하지 않는다는 사실의 의미는 작지 않다. 비트코인의 핵심 속성 중 하나가 바로 정부 통제에 대한 제어 장치다. 설계상으로만 보면 위안화 CBDC는 비트코인과 관련이 없다고 단정할 수 있다.

◆위안화 CBDC의 특징은 ‘암호 체계’


사용자는 위안화 CBDC가 온라인 뱅킹을 활용한 계좌 이체와 근본적으로 차이가 없다고 느낄 수도 있다. 금융망을 거쳐 가는 계좌 이체도 스마트폰의 QR코드를 통해 얼마든지 이뤄질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국경과 관련해서는 두 체제의 차이가 확연히 눈에 띌 수 있다. 만약 중국 정부의 의도가 위안화를 중국 국경 밖에서도 결제 수단으로 사용하도록 하는 데 있다면 위안화 CBDC는 환율 위험이 큰 국가의 시민들의 상거래에 도움을 줄 수 있다.

CBDC의 특징은 블록체인보다 암호 체계다. 비트코인과 같이 공개 주소와 개인 암호 쌍으로 이뤄져 있다. 이 때문에 은행망을 거치지 않고도 안전하게 결제가 이뤄진다. 즉 아프리카의 수출 업자가 중국 수입 업자에게 위안화 CBDC를 스마트폰으로 바로 받을 수 있다. 위안화 CBDC를 자국 은행에 가져가 자기 나라 돈으로 환전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기도 하다. 이 위안화로 알리바바에서 물건을 구입할 수 있다면 이 수입 업자에게 월급을 받는 노동자들도 자국 화폐 대신 위안화 CBDC로 임금 받으려고 할 것이다. 물론 중국의 중앙은행이 아프리카 수입 업자와 노동자들에게도 위안화 CBDC를 받고 보낼 수 있는 지갑을 승인해 준다는 전제가 필요하다.

CBDC는 로컬 은행망을 건너뛰고 단말기에서 단말기로 이동할 수 있으므로 환율 위험을 최소화하는 대안으로 부상할 수 있다. 하지만 바로 이 때문에 유력한 국가의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CBDC도 페이스북 리브라와 마찬가지로 개별 국가들과 이해 조정 문제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페이스북 리브라가 미국 금융·통화 당국의 승인을 얻는다고 하더라도 미국 이외의 개별 국가들의 승인을 획득하기 어려운 이유는 개별 국가 정부 측에서 보면 리브라의 승인이 외환 보유와 거래를 자유화하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리브라가 국가마다 다른 화폐 단위가 된다면 개별 국가들과의 협상이 훨씬 수월하겠지만 세계 단일 시스템을 포기하면 신용카드와 별 차이가 없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을 비롯해 한국이나 유럽의 중앙은행들이 암호 체계에 기반을 둔 CBDC를 본격화한다면 비트코인을 비롯한 블록체인 암호화폐들이 널리 확산되는 계기가 될 것이다. 비록 CBDC가 블록체인 기술과 별로 관계가 없는 데다 국경을 자유롭게 넘지 못하고 모든 거래를 중앙 정부에 노출한다고 하더라도 온라인상에서 담보물로서 기능할 수 있기 때문에 암호화폐의 활용성을 크게 높여주기 때문이다.

CBDC는 블록체인 플랫폼에서 다른 토큰과 아토믹 스와프가 가능하다. 아토믹 스와프는 두 개 이상의 암호화폐가 정해진 교환 비율에 따라 일정한 조건이 충족되면 중재자 없이 거래가 이뤄지는 일종의 스마트 콘트랙트다. 이것이 바로 CBDC가 은행 계좌와 다른 점이다. 계좌에 담긴 현금은 법적인 절차 없이는 계약상 담보로 설정하기 어렵다. 그렇게 계약했다고 하더라도 통장을 저당잡고 출금을 제한하기 위해서는 법원의 결정과 도움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CBDC는 암호를 잠그는 방법을 통해 법원의 도움 없이 소유권을 제한할 수 있다.

◆CBDC 도입 시 암호화폐 확산의 계기 될 것


만약 중국의 위안화 CBDC를 사용할 수 없는 상대와 거래한다고 해 보자. 위안화 CBDC를 가지고 있는 중국인은 자신의 CBDC 암호로 잠근 토큰을 위안화 CBDC 대신 지급할 수 있다. 이 토큰은 CBDC 지갑을 가진 중국인에게는 위안화와 동일하므로 이 외국인은 이 토큰을 모아 다른 중국인에게 지급할 수 있다. 토큰을 받은 중국인은 잠겨 있는 위안화의 암호를 풀어 자기 지갑으로 옮긴다. 중국 당국이 보기에는 이 위안화는 전혀 상관없는 중국인들 간의 거래로 인식된다. 중간에 있었던 외국인과의 거래는 위안화 CBDC 거래 기록에 자취를 남기지 않기 때문이다.

아직은 중국 당국도 CBDC의 암호 체계를 활용한 약정 거래를 진지하게 검토하지 않은 것인지 모른다. 외국인에게 지갑을 발부하지 않는다고 해도 위안화 CBDC는 거래 수단이 될 수 있고 결과적으로 중국의 중앙은행은 CBDC로 이뤄지는 모든 거래를 추적할 수 없게 된다. 하지만 이를 깨닫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중앙은행들이 쉽사리 CBDC를 채용하지 못할 것이라고 합리적으로 예측할 수 있다.

사람들은 정부 통제에 대한 제어 장치를 가지고 탄생한 비트코인이 이미 의미 있는 가격대를 형성하고 있고 블록체인 생태계의 구심점이 돼 글로벌한 생태계와 함께 성장하고 있다는 사실의 의미를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정부가 무슨 선택을 하건 국경을 초월한 결제가 이미 거스를 수 없는 대세라는 것을 인정하려고 하지 않는 셈이다. 그 충격이 상상을 초월하기 때문일 수 있는데 그렇다면 그 현실 인식만큼은 정확하다고 평가하고 싶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84호(2020.07.04 ~ 2020.07.10)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