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 레포트Ⅱ] -금융시장 영향력 더 커진 국부펀드…‘저평가된 대형주’들 쓸어 담았다
[한경비즈니스=이정흔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이 장기화되면서 글로벌 금융 시장 또한 전에 없는 혼란을 겪고 있다. 더욱이 요즘 들어서는 코로나19의 2차 확산에 대한 공포가 커지며 금융 시장에 대한 전망 또한 엇갈리는 중이다. 혼란의 시기 ‘포스트 코로나’를 준비하기 위해서는 어디서부터 어떻게 투자의 길을 찾아야 할까.

최근 글로벌 금융 시장의 대표적 ‘큰손’인 국부펀드(SWF : Sovereign Wealth Fund)들이 주목 받고 있다. 든든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한 이들은 특히 코로나19 여파로 글로벌 자산 시장이 흔들리는 와중에도 ‘전략적인 투자’를 통해 자신들의 영향력을 빠르게 키워 가고 있다.

◆ 전 세계 기관투자가 중 가장 빠르게 성장
국부펀드는 정부 자산을 운용하며 정부에 의해 직접적으로 소유되는 기관을 말한다. 연기금들이 대표적이다. 이 밖에 산유국들은 원유나 천연가스 판매를 통해 얻은 ‘오일머니’를 자산으로 한 국부펀드들도 꽤 많다. 중국·싱가포르·한국과 같은 아시아 국가들은 국제 수지 흑자를 달성했을 때 외환보유액 등으로 펀드를 운용하기도 한다.

국부펀드는 전 세계적 기관투자가의 운용 자산 중 가장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는 기관이다. 그만큼 글로벌 금융 시장에 미치는 영향력 또한 빠르게 커지고 있다는 얘기다. 무엇보다 코로나19 이후 글로벌 금융 시장에 미치는 국부펀드의 영향력은 더욱 커질 것이라는 게 대부분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풍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흔들리는 금융 시장을 떠받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가능성이 높다.
코로나19 시대 맞은 ‘세계의 큰손’…국부펀드들은 어디에 투자할까
각 국가들도 국부펀드의 운용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국제 금융 시장에서 자국의 영향력을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 국부펀드들이 ‘국가 전략적인 투자 형태’를 보이는 이유다. 이를 위해 최근에는 포트폴리오 다각화에 특히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는 곳들이 적지 않다. 다만 이들의 운용 자금은 정부 소유 돈을 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상장 기업과 달리 운용 현황과 실적 등을 투명하게 공개하지는 않는다.

미국 국부펀드연구소(SWFI)에 따르면 6월 기준 전 세계 90여 개가 넘는 국가들이 국부펀드를 운용 중이다. 전 세계 국부펀드의 자산 총액은 약 8조2073억 달러(약 9847조원)에 달한다. 북유럽의 산유국인 노르웨이의 국부펀드(GPFG)가 1조1866억 달러(약 1420조원)로 압도적인 규모를 자랑한다. 중국투자공사(CIC)와 아부다비투자청(ADIA) 등이 뒤를 잇고 있다. 한국투자공사(KCI)는 현재 자산 규모 16위에 랭크돼 있다.

◆ ‘최대 낙폭주’에 베팅한 사우디 국부펀드

코로나19 이후 가장 주목받고 있는 국부펀드는 단연 사우디아라비아(이하 사우디) 국부펀드(PIF)다. ‘사우디의 실세’인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직접 3600억 달러(약 431조원) 규모의 전략 투자를 진두지휘하고 있다.

PIF는 코로나19 이후 폭락장에 헐값이 된 미국 대형주들을 대규모로 사들였다. 2020년 1분기에만 75억9450만 달러(약 9조3640억원)를 주식 쇼핑에 쏟아부었는데 모두 23개 종목을 새롭게 사들였다. 지난해 12월 말 기준 미 증권거래위원회(SEC) 보고서에 따르면 코로나19 이전 PIF가 지분을 보유한 기업은 테슬라와 우버뿐이었는데 이 중 테슬라는 이번 분기에 지분을 전량 매수했다. PIF가 미국 주식에 투자한 총자산 규모 또한 기존 21억 달러에서 1분기 이후 97억 달러로 대폭 늘었다.
코로나19 시대 맞은 ‘세계의 큰손’…국부펀드들은 어디에 투자할까
PIF가 이번에 투자한 종목들의 공통점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역발상 투자’다. 여행·항공·레저·엔터테인먼트 등 코로나19로 인한 ‘피해주’들을 고르게 골라 담았다. 코로나19는 언젠가 끝날 것이고 사람들은 다시 예전처럼 함께 모이고 여행을 즐기게 될 것이라는 데 과감하게 ‘베팅’한 것이다. 항공기 업체 보잉(7억1370만 달러), 글로벌 호텔 체인 메리어트(5억1393만 달러), 세계 최대 테마파크를 보유한 월트디즈니(4억9580만 달러) 등이다.

이 밖에 세계 최대 크루즈 업체인 ‘카니발’, 세계 최대 라이브 콘서트 기업인 ‘라이브네이션’, 온라인 여행 업체 ‘부킹홀딩스’ 등도 눈에 띈다. 카니발은 코로나19의 여파로 올 1분기에만 주가가 75% 정도 추락하며 파산 위기에 내몰릴 정도였다. 하지만 PIF는 오히려 카니발 전체 지분의 8.2%를 매수하며 카니발 2대 주주가 됐다.
코로나19 시대 맞은 ‘세계의 큰손’…국부펀드들은 어디에 투자할까
전 세계 1위 라이브 콘서트 업체인 라이브네이션은 방탄소년단(BTS)을 비롯한 전 세계 유명 아티스트들의 월드투어나 각종 콘서트 등을 기획하는 업체다. 코로나19로 인해 각종 콘서트가 줄줄이 취소되는 상황에서 피해가 막심할 수밖에 없었다. 라이브네이션 역시 올 들어 주가가 지난해 말 대비 40% 이상 폭락했다. PIF는 이때를 놓치지 않고 과감한 투자를 통해 라이브네이션 전체 지분의 5.73%를 사들이며 최대 주주가 됐다. 카니발과 라이브네이션 모두 PIF의 투자 소식이 알려진 직후 20% 정도 상승하며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PIF는 또 금융주와 기술주 등을 고루 담았다. 씨티그룹(5억2200만 달러)·뱅크오브아메리카(4억8760만 달러)·페이스북(5억2220만 달러) 외에 시스코·퀄컴·IBM 등에 투자했다. 이와 함께 PIF는 영국 프리미어리그 명문 축구팀 뉴캐슬유나이티드도 3억 파운드에 인수하기로 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 ESG 중심 투자하는 노르웨이 국부펀드

노르웨이 국부펀드(GPFG)는 글로벌 국부펀드 가운데 압도적으로 세계 1위 규모를 자랑한다. 운용하는 자산 규모만 1조 달러를 넘어서는 규모로 전 세계 주식 1.3%를 보유한 큰손이다. GPFG는 노르웨이 석유 사업의 수익금을 통해 재원을 마련하는 ‘오일펀드’다. 1960년대 이후 북해에서 대규모 유전을 발견하며 산유국으로 부상한 노르웨이 정부가 ‘미래 세대를 위한 부의 축적’을 목표로 1990년 GPFG를 설립했다. 1998년 본격적으로 주식 투자를 시작한 이후 연평균 수익률 6%를 기록하며 ‘가치 투자의 정석’을 보여주는 투자 기관으로 잘 알려져 있기도 하다. 국민연금이 롤모델로 삼고 있는 기관이기도 하다.

GPFG는 노르웨이 중앙은행의 자산 운용 조직인 NBIM이 위탁 운영하고 있는데 전통적으로 주식과 채권의 비율을 7 대 3으로 유지하는 투자 원칙으로 잘 알려져 있다. 자국 기업 주식은 전혀 보유하지 않은 채 해외 기업에만 투자하는 것도 특징이다. 최근 글로벌 국부펀드들이 부동산·인프라 등 대체 투자 비율을 적극적으로 확대하는 것과 비교되는 행보다.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와중에도 꿋꿋하게 주식 투자를 늘리는 전략으로 눈길을 끌었다. 당시 GPFG는 주식 시장의 폭락으로 큰 손실을 봤지만 싼값에 주식 포트폴리오를 확대하며 2009년 25%에 육박하는 수익률을 기록한 바 있다.
코로나19 시대 맞은 ‘세계의 큰손’…국부펀드들은 어디에 투자할까
‘투자의 정석’으로 불리는 GPFG도 이번 코로나19의 충격을 피해 가지 못했다. 올 1분기 GPFG의 수익률은 마이너스 14.6%를 기록했다. 저유가에 금융 시장 혼란까지 더해지며 손실만 최대 1조 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노르웨이 정부는 코로나19에 대응하기 위해 올해 1월에서 3월 GPFG의 투자 자산 중 670억 크로네(8조7053억원)의 자산을 매각해 현금화했다. 글로벌 금융 시장의 ‘큰손’인 GPFG의 영향력에 따라 GPFG의 현금 인출 소식이 전해진 뒤 한동안 글로벌 금융 시장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기도 했었다. 현재 GPFG의 주식 투자 비율은 70%에 미치지 못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때의 경험에 비춰 볼 때 향후 비율 70% 목표치까지 주식 투자를 늘려 갈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해 GPFG의 연간 보고서에 따르면 2019년 기준으로 GPFG가 투자한 종목들 가운데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부문은 금융(23.6%)과 IT(14.6%)다.

GPFG의 보유 주식 1위부터 10위는 애플·마이크로소프트·알파벳·네슬레·아마존·로셰홀딩스(스위스 제약회사)·알리바바·로열더치쉘·노바티스·페이스북 순이다.
코로나19 시대 맞은 ‘세계의 큰손’…국부펀드들은 어디에 투자할까
GPFG가 최근 가장 꽂혀 있는 키워드는 ‘환경·사회·지배구조(ESG) 투자’다. 투자 결정 과정에서 재무적 요소와 함께 환경(Environment), 사회(Social), 지배구조(Governance)를 고려하는 투자를 뜻한다. GPFG는 2014년 스튜어드십 코드(기관투자가의 의결권 행사 지침) 도입 이후 빠른 속도로 ESG 투자 비율을 높여 가는 중이다. GPFG는 정부와 독립된 별도의 기구로 운영 중인 윤리위원회의 가이드라인에 따라 무기 또는 담배 생산, 군수 물자 판매, 광업 회사와 전력 생산 업체 등에는 투자하지 않는다. 특히 운영의 30% 이상을 석탄에 의존하는 기업에도 투자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원유와 가스의 탐사·개발 전문 업체들에 대한 투자도 중단했다.

이와 같은 원칙에 따라 지난해에는 플랜테이션 사업이 열대우림 파괴로 이어진다는 판단 하에 싱가포르의 천연고무 업체 할시온 애그리를 주식 운용 대상에서 배제한 바 있다. 석탄을 기반으로 에너지를 생산한다는 이유로 한국전력 역시 2017년 투자 리스트에서 제외했다.
대표적인 오일펀드로 에너지주 업종에 대한 투자가 많았던 GPFG는 2017년 이후 에너지 업종을 지속적으로 축소하고 있다. 현재 전체 투자에서 에너지 업종이 차지하는 비율은 4%다. 에너지 업종에 대한 투자가 줄어들며 그 자리를 대신할 것으로 보이는 분야는 ‘신재생에너지’다. 풍력과 태양광 등에 자금이 흘러들어갈 가능성이 높다. NBIM은 지난 3월 107억 달러 정도를 2022년까지 신재생에너지에 투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 헬스케어·바이오로 대박, 싱가포르 테마섹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대비해 글로벌 국부펀드들에 최근 가장 인기 있는 부문을 꼽으라면 단연 헬스케어와 바이오일 것이다. 싱가포르 국부펀드 ‘테마섹(Temasek)’은 전략적·공격적인 투자를 하는 펀드로 유명하다. 투자 대상의 폭이 좁고 주로 기업 지분에 투자해 ‘높은 수익’을 추구한다. 1974년 싱가포르 정부의 보유 자산을 관리할 목적으로 설립됐다. 1981년 싱가포르의 외환보유액 운용을 목적으로 설립된 싱가포르투자청(GIC)과 함께 싱가포르의 대표적인 국부펀드로 일컬어진다.

테마섹은 싱가포르 정부가 100% 지분을 갖고 있는 국영 투자회사로 운용 자산은 3753억 달러(449조원)에 달한다. 하지만 법적으로 정부와 독립적인 이사회가 구성돼 의사 결정을 하는 민간 투자 회사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자산을 6 대 4의 비율로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에 투자하고 있고 싱가포르 17%, 중국 26%, 전체 아시아 투자 비율은 68%에 이른다. 그만큼 글로벌 기업들의 아시아 지역 투자 또는 아시아 기업들의 해외 진출 관문으로서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코로나19 시대 맞은 ‘세계의 큰손’…국부펀드들은 어디에 투자할까
테마섹은 100% 주식에 투자하고 있는 만큼 다양한 업종에 고르게 투자하고 있다. 주로 금융 서비스, 텔레커뮤니케이션·미디어, 운수·공업, 컨슈머, 부동산 등의 상장·비상장 주식에 투자해 지난 27년간 연평균 17%의 수익률을 기록한 바 있다. 이 밖에 ‘동남아의 우버’라고 일컬어지는 세계 3대 차량 공유 업체 그랩의 대주주이고 싱가포르의 항공·전력·통신·금융 등 주요 공기업들의 지주 역할을 수행하고 있기도 하다. 특히 바이오 헬스케어 기업들에도 많은 관심을 보이며 과감한 투자를 진행하는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한국의 바이오 기업 셀트리온이다. 테마섹은 2010년 셀트리온에 첫 투자를 시작했다. 당시만 해도 국내에서조차 ‘바이오시밀러’에 대한 개념이 생소할 때다. 셀트리온은 국내에서조차 투자를 꺼리던 시기에 테마섹의 지원에 힘입어 안정적으로 자금을 마련하며 성장의 토대를 마련할 수 있었다. 테마섹은 2010년 셀트리온 보통주 1223만 주를 2079억원에 인수했고 또 2011년 우선상환주 매입 방식으로 셀트리온헬스케어에 170억원 규모의 투자를 단행했다. 2013년 6월에는 3차례 장외 매수로 442만 주를 1495억원에 사들였다. 지난 10년간 장기 투자자로서 셀트리온의 ‘우군’ 역할을 도맡아 왔다.

테마섹은 2018년부터 셀트리온의 주가가 최고점에 오른 후 반등했을 때마다 블록딜(시간외 대량 매매)을 진행해 왔다. 바이오주가 폭등했던 2018년 3월 1차 블록딜을 단행한 데 이어 7개월 뒤인 2018년 10월 2차 블록딜을 실시했다. 그리고 2020년 4월 셀트리온과 셀트리온헬스케어의 셀트리온 257만 주와 셀트리온헬스케어 221만 주를 블록딜로 처분했다. 테마섹의 셀트리온 블록딜 소식이 전해지며 이후 시장에서는 셀트리온의 주가가 하락하는 등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코로나19 시대 맞은 ‘세계의 큰손’…국부펀드들은 어디에 투자할까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번 블록딜 배경에는 코로나19로 인해 셀트리온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며 차익 실현에 나선 것이라는 분석이다. 셀트리온은 현재 질병관리본부와 협업으로 항체 치료제를 개발 중이다. 코로나19 치료제와 백신과 관련한 가장 많은 기대를 받고 있는 업체 중 하나다. 셀트리온은 코로나19 중성화 항체 제품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면서 최근 12개월 만에 주가가 150% 오르기도 했다. 테마섹은 초기 자금 2079억원으로 셀트리온에 투자해 10년 만에 총 2조6000억여원을 벌어들인 것으로 추산된다.

바이오·헬스케어 부문에 대한 투자를 꾸준히 확대하고 있는 테마섹은 지난 6월에도 암 치료제와 코로나19 백신을 개발하는 독일 생명공학 회사 바이오엔텍에 2억5000만 달러(약 3025억원) 투자를 결정했다. 바이오엔텍은 바이오 의약품 신기술을 적용한 차세대 면역 치료제 개발 전문 기업으로 암 등 중증 질환 치료제 개발을 선도하고 있다. 최근에는 코로나19 백신 개발로 주목받고 있다.
vivajh@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84호(2020.07.04 ~ 2020.07.10)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