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 레이더

-북한이 ‘국가’ 아니라는 전제로 재판 진행…유사 소송 가능성 열려
“북한은 국군 포로에게 위자료 지급하라”  첫 판결…어떻게 가능했을까?
6·25전쟁에 참여했던 한 모 씨는 1951년 국군 포로로 잡혀 북한에 끌려갔다. 1953년 정전협정이 체결됐지만 국내로 돌아오지 못한 한 씨는 각종 탄광에서 강제 노역에 시달리다가 50여 년이 지난 2001년에서야 북한을 탈출해 한국에 귀환할 수 있었다.


한 씨와 함께 북한에 끌려갔던 또 다른 국군 포로 노 모 씨 등은 북한에서 장기간 정신적 충격과 고통을 겪은 점, 청년 시절에 전쟁터에 나섰다가 50년 가까이 지나서야 고국에 돌아온 점, 강제 노역 작업장에 제대로 된 안전 장비가 전혀 없었던 점 등을 고려해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즉 북한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상대로 ‘손해 배상 소송’을 냈다.



불법적인 행위로 육체적·정신적 고통을 겪었으니 위자료를 지급하라는 취지에서였다.



결과는 어땠을까. 원고, 즉 국군 포로 측의 ‘완승’이었다. 북한을 ‘피고’로 세우고 또 손해 배상을 인정받기까지 다퉈야 할 법리적 쟁점들이 많았지만 결국 재판부는 “원고들의 청구를 전부 인용한다”고 판결했다.


국군 포로들이 북한에 민사 책임을 물을 길을 열어준 첫 판결이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47단독 김영아 판사는 7월 7일 한 씨와 노 씨가 북한과 김정은 위원장을 상대로 낸 손해 배상 청구 소송에서 “피고들은 한 씨와 노 씨에게 각각 2100만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승소 판결했다.


애초에 원고 측에서 제시한 원고 소가가 4200만원이었기 때문에 원고들의 청구를 100% 인용한 판결이었다. 변호인단은 강제 노역이 발생했던 시점이 김정은 위원장의 할아버지인 김일성 주석 때였다는 점과 김정은 위원장의 상속분 등을 고려해 원고 소가를 각 2100만원씩으로 정했다.


◆북한의 법적 성격은 ‘국가’ 아닌 ‘비법인 사단’



이 사건 소장은 2016년 10월 접수됐지만 첫 재판은 2019년 6월이 돼서야 열렸다. 북한 정부와 김정은 위원장에게 소송이 제기된 사실을 알릴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법원은 국가정보원을 통해 김정은 위원장의 북한 주소를 묻거나 외국 북한 대사관을 통해 소장을 전달하는 방법도 시도해 봤지만 잘되지 않았다.


고민 끝에 법원은 ‘공시송달(公示送達)’ 제도를 이용해 재판을 진행했다. 공시송달은 소송 상대방이 서류를 받지 않거나 재판에 응하지 않으면 법원 인터넷 홈페이지 등에 소송 관련 서류를 공지하고 2주가 지나면 소장이 당사자에게 전달된 것으로 간주하는 제도다. 이후 소송은 급물살을 탔다.



소송의 쟁점은 ‘북한을 어떻게 피고로 세울 수 있을지’였다. 본격적인 소송을 진행하기에 앞서 기본적으로 ‘재판 관할권의 면제’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국제법상 한 국가의 법원은 다른 국가를 소송 당사자로 삼아 재판할 수 없다. 이에 원고 측은 북한이 우리 헌법상 ‘국가’가 아니라는 전제를 토대로 재판을 끌어 갔다.


북한은 국가가 아니라 사실상 지방정부와 유사한 정치적 단체인 ‘비법인 사단’으로 재판 관할권 면제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취지였다. 법원은 이를 받아들였다.


실제로 원고 측은 청구 취지를 “원고들은 민법상 비법인 사단인 피고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의 대표자 등의 불법 행위로 육체적·정신적 고통을 입었다”며 “피고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에 대해서는 비법인 사단에 준용되는 책임이 있다”고 적었다.



원고 측에서 소송을 진행해 온 사단법인 물망초 국군포로 송환위원회는 이번 판결에 대해 “법원은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과 김정은에 대해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재판 관할권이 있다고 하고 공시송달로 소송을 진행했다”며 “이 판결은 앞으로 북한과 김정은 등을 피고로 하여 우리 법정에서 직접 민사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이정표적 판결”이라고 말했다.


◆조선중앙TV 저작권료에서 추심할 듯



사단법인 물망초 국군포로 송환위원회와 국군 포로 변호인단은 선고 직후 중앙지법 앞에서 기자 회견을 열고 위자료 청구 금액을 2100만원으로 정하게 된 경위, 앞으로 해당 금액을 어떻게 국군 포로들에게 전달할 것인지 등에 대해 밝혔다.



원고 소가를 각 2100만원씩으로 정한 과정은 다음과 같다. 우선 원고들은 김일성에 대해 1953년부터 1994년 김 주석 사망까지 약 40여 년간의 불법 행위에 대한 손해 배상 책임으로 각 5억1000만원을 산정했다.


그리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대해서는 1994년부터 원고들이 북한을 탈출한 2001년께까지 불법 행위에 대해 각 9000만원을 산정했다.


두 금액을 합하면 원고 한 명당 각 6억원의 손해 배상 의무가 있게 된다. 하지만 원고 측은 김정은이 김일성과 김정일의 수령의 지위를 상속했다는 점, 청구액 중 일부만 지급을 구하기로 한 점 등을 고려해 2100만원씩만 청구했다. 애초에 국군 포로 한 씨 등은 이 소송에서 중요한 것은 돈 액수가 아니라고 밝힌 바 있다.



물망초 측은 임종석 전 대통령비서실장이 대표로 있는 ‘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이 법원에 공탁해 둔 약 20억원에서 원고들에게 해당 금액을 지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 돈은 당초 조선중앙TV에 지급할 저작권료 명목으로 공탁한 것이다.


임 전 실장은 2005년 북한과 ‘저작권 사무국’ 협약을 맺고 대한민국이 북한의 조선중앙TV 영상을 비롯한 모든 저작물을 사용할 때 저작권료를 지급하기로 했다.



물망초 측은 기자 회견에서 “현재 법원에 있는 공탁금 출급 청구권에 대한 채권 압류 및 추심 명령을 받아 추심한 금액을 원고들에게 지급할 계획”이라며 “향후 계속적으로 북한과 김정은의 재산을 추적해 집행함으로써 북한의 불법 행위로 피해를 본 피해자들에게 손해 배상이 조금이라도 이뤄질 수 있도록 노력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돋보기] 사단법인 물망초 “다른 국군 포로들에게도 소송 제기 권유할 것”


2012년 설립된 사단법인 물망초는 한국 근현대사에서 국가의 보호를 받지 못했던 사람들을 ‘역사의 조난자’로 일컬으며 그들을 돕는 일을 하는 단체다.


대표적으로 이번 소송의 당사자였던 국군 포로들을 돕고 있다. 7월 7일 있었던 기자 회견에서 국군 포로 한 모 씨는 “국군 포로 문제에 대해서는 물망초를 제외하고 정치권·사회·정부 등 그 어떤 곳에서도 관심을 갖지 않는다”며 “그것이 참 섭섭하지만 어쨌든 성과를 내게 된 점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 드린다”고 말했다.


실제로 물망초 측은 이번 소송 진행 과정에서 정부의 비협조적인 태도가 가장 아쉬웠다고 밝혔다.


물망초 측은 국군 포로와 관련된 기록들에 대해 국가정보원·통일부·국방부에 사실 조회를 요청했는데 관련 기관들이 협조적이지 않았던 터라 입증하기가 어려웠다고 전했다.



물망초는 앞으로 또 다른 국군 포로들의 소송도 주도적으로 도울 계획이다. 김현 초대 물망초 국군 포로 송환위원장은 “탈북 국군 포로가 80여 명인데 그중 20여 분이 살아 있다”며 “그분들에게도 관련 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권유할 것이고 유족들도 소송을 진행할 수 있도록 물망초가 도울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번 소송을 대리했던 또 다른 변호사도 “판결이 확정되면 북한의 재산, 김정은의 재산을 특정해 강제 집행을 신청할 것”이라며 “현실적인 문제점이 있긴 하겠지만 우선 (원고 승소로) 판결이 난 만큼 강제 집행 절차라는 새로운 고민을 또 시작해야 할 때”라고 설명했다.


남정민 한국경제 기자 peux@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85호(2020.07.11 ~ 2020.07.17)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