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 A to Z]
-메이커다오·카이버네트워크·컴파운드 등이 ‘거버넌스’ 이루는 데 토큰 활용

[김성호 해시드 파트너] 블록체인업계에 있다 보면 거버넌스라는 용어를 자주 듣게 된다. 평소에는 거버넌스라는 말을 쓸 일이 거의 없는데 왜 이 업계에서는 이 단어를 많이 사용할까. 거버넌스는 사회과학에서 많이 쓰는 개념 용어다. 거버넌스는 사회 내 다양한 참여자들이 자율성을 지니면서 함께 속한 사회의 운영에 참여하는 통치 방식을 의미한다. 협치라는 단어로 번역되기도 하지만 협치는 주로 정치 세계에서 사용되는 말로, 거버넌스가 내포하는 의미를 다 담기에는 부족하다. 좀 더 일반적으로는 권력을 한 개인이나 한 조직에 집중시키는 것이 아니라 내부와 외부에 적절히 권력을 분산해 평형점을 이루게 만드는 도구로 해석되기도 한다.

블록체인의 일반적인 정의는 ‘분산 장부를 이용해 데이터가 쉽게 위·변조되지 못하게 막고 특히 자산이 기록된 장부가 자신이 아니면 위·변조되지 않게 만들어 자산의 소유권을 온전히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다.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과 같은 퍼블릭 블록체인을 이용해 본 사람이라면 쉽게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사회적 통치 방식’ 의미하는 거버넌스


하지만 최근에는 블록체인 위에서 어떻게 거버넌스를 구현할지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다. 만약 블록체인을 이용해 참여자들 간의 이견을 좁히고 같이 성장해 나갈 수 있는 거버넌스 체계를 구축할 수 있다면 블록체인의 적용 범위가 단순히 금융 시스템을 넘어 조직이나 사회로까지 넓어질 수 있다.

주변에서 거버넌스가 필요한 사례는 무수히 많다. 얼마 전에 있었던 ‘배달의 민족(이하 배민)’의 애플리케이션(앱) 내 수수료 정책 문제는 앱 내 거버넌스가 필요한 경우였다. 배민은 다수의 소상공인들이 혜택을 받을 만한 정책이라고 생각해 내놓았지만 막상 내놓자 소상공인들의 거센 반대에 부닥쳤다. 만약 배민이 수수료 정책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소상공인과 같이 결정할 수 있는 거버넌스 체계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모두가 만족하는 답을 내놓기는 힘들지만 최대한 양측이 합의하는 정책을 선택했다면 이렇게까지 큰 이슈로 불거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또한 최근 일어난 페이스북의 보이콧 캠페인도 거버넌스 체계가 절실히 필요한 예시다. 페이스북이란 공간은 페이스북이라는 주식회사가 만든 공간으로, 이 공간 안의 정책은 운영사가 얼마든지 자유롭게 정해 운영할 수 있다.

하지만 페이스북 공간을 구성하는 광고주나 유저 등 다양한 구성원들은 페이스북의 소유물이 아니다. 이 때문에 이런 외부 구성원들은 페이스북이 혐오 게시물을 방치하는 정책에 대항해 보이콧하고 다른 플랫폼으로 떠나갈 수 있다. 심지어 페이스북의 내부에 있던 핵심 직원도 사직서를 내며 이 움직임에 동참했다. 플랫폼의 정책은 회사가 정하는 것이지만 다른 참여자에게 막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공간에서 일방적으로 밀어붙였다가는 플랫폼의 핵심 구성원들이 떠나가면서 한순간에 몰락할 수 있다. 만약 구성원들과 게시물 노출 정책에 대해 합의할 수 있는 시스템이 있었더라면 이 정도로 거센 보이콧에 휩싸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블록체인은 자신이 발생한 데이터를 위·변조 없이 분산 장부에 저장할 수 있기 때문에 투표를 하기 쉽다. 이것이 정부가 블록체인 핵심 분야 중 하나로 온라인 투표를 넣은 이유이기도 하다. 블록체인으로 투표가 가능해지면 부정 투표 논란을 불식하고 선거를 더욱 신뢰 받는 민주주의의 축제로 만들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투표할 수 있는 특징은 거버넌스의 가장 기본 요소를 구성한다. 보통 블록체인 프로젝트에서는 누구나 커뮤니티에 제안하고 이 제안의 찬반 투표를 전체 토큰 보유자들에게서 받아 투표가 마무리되자마자 제안의 결과물이 반영되는 것이 일반적인 절차다. 이 모든 과정은 투명하게 공개되기 때문에 반대하는 쪽도 결과를 수용할 수밖에 없다. 이런 과정들을 반영한 예시를 보자.

◆여전히 실험 중인 블록체인 거버넌스

탈중앙화 스테이블 코인 프로젝트로 가장 오랫동안 운영된 메이커다오(MakerDAO)는 프로젝트가 론칭된 이후 매주 커뮤니티 콜이라는 온라인 미팅을 해 왔다. 누구나 이 미팅에 참여하고 의견을 낼 수 있고 미팅 이후 녹화한 비디오를 유튜브에 업로드해 모든 사람에게 이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한다. 그리고 거버넌스 포털이라는 사이트를 통해 메이커다오의 거버넌스 토큰인 MKR 토큰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여기에 올라온 안건들에 대해 토큰의 수만큼 투표를 행사해 이 프로젝트의 중대한 결정에 참여할 수 있다. 이런 식으로 메이커다오는 MKR 토큰 홀더들을 거버넌스에 참여시킴으로써 커뮤니티가 분열하지 않고 안정적으로 새로운 기능들을 추가해 나가며 발전하고 있다.

장기적으로 프로젝트의 의사 결정에 도움을 주는 참여자도 있지만 단기적으로 거버넌스에 참여하지 않고 수익만 바라는 참여자들도 있다. 프로젝트에 대해 두 참여자의 공헌도가 크게 차이 나기 때문에 거버넌스에 참여하는 토큰 홀더에게 이 프로젝트에서 나오는 이득을 나눠 주려는 움직임도 나오고 있다. 예를 들어 카이버 네트워크(Kyber Network)가 새로 발표한 카탈리스트(Katalyst) 업데이트에는 ‘카이버다오’에 대한 내용이 들어 있다. 카이버다오는 기존의 KNC 토큰에 거버넌스 기능을 부여한다. 토큰을 카이버다오에 스테이킹하면 스테이킹한 만큼 투표를 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게 된다. 그리고 투표를 행사한 전력에 따라 카이버 네트워크에서 나오는 거래 수수료 중 일부를 받을 수 있다.

굳이 모든 의사 결정을 탈중앙화하는 것이 아니라 회사의 많은 부분을 중앙화한 상태로 일부분만 탈중앙화하더라도 굉장히 많은 사람들의 참여를 이끌어 낼 수 있다. 예를 들어 바이낸스의 BNB 토큰에는 굉장히 다양한 기능이 포함돼 있다. 그중 초기 수요를 많이 만들어 냈던 기능 중 하나가 바로 거래소 상장 여부를 BNB 토큰 보유자들의 투표로 결정할 수 있는 것이었다. 모든 중앙화된 거래소들이 가지는 가장 큰 권력 중 하나는 바로 거래 토큰을 상장할 수 있는 힘이었다. 이 힘을 토큰 보유자들에게 나눠줌으로써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보유한 토큰을 상장하기 위해 BNB 토큰을 구매하고 자신이 상장하고자 하는 토큰에 투표했다. 이런 간단한 탈중앙화조차 때로는 엄청나게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기도 하는 것이다.

가장 최근에는 디파이(DeFi)에서 거버넌스 토큰의 인기가 치솟고 있다. 디파이에서도 가장 널리 알려진 담보 대출 플랫폼인 컴파운드는 최근 거버넌스를 위한 콤프(COMP) 토큰을 출시했다. 토큰을 나눠 주는 방식이 특이했다. 단순히 토큰을 판매하거나 거래소에 상장해 토큰을 유통한 게 아니라 서비스 사용자들에게 빌리거나 빌려준 토큰의 가치에 비례해 나눠 주는 방식이었다. 콤프 토큰이 출시되자마자 수많은 사용자들이 이 플랫폼에 기꺼이 자산을 예치했다. 심지어 대출의 실수요자가 아닌 사람들도 이 토큰을 받기 위해 대출을 받았다. 엄청난 열풍과 함께 콤프 토큰의 가격은 63달러에서 시작해 330달러까지 올라갔다. 3주가 지난 지금은 191달러에 안착했지만 여전히 300%의 수익률을 기록하고 있고 거래량이 크게 늘어나 현재는 하루에 2000억원 이상이 거래되고 있다. 최대 크립토 은행이 되고자 하는 컴파운드의 거버넌스에 참여할 수 있는 토큰의 가치는 오늘도 치솟고 있다.

인류가 이뤄 놓은 거버넌스 모델 중 가장 최신 모델인 민주주의 모델이나 주식회사 모델을 보면 아직도 많은 문제점들이 존재한다. 그런 문제점들이 눈덩이처럼 많이 쌓여 결국 운영 주체가 제 기능을 못하게 된다. 블록체인에서는 기존의 모델을 떠나 플랫폼 운영자와 유저, 투자자들이 서로 균형을 이루며 영속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다양한 거버넌스 실험이 진행 중이다. 분명히 수많은 거버넌스 모델들이 출시되고 무너지고 또 재건되겠지만 빠르게 합의할 수 있는 블록체인이라는 멋진 도구는 분명히 우리가 최종 정답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85호(2020.07.11 ~ 2020.07.17)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