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EU ‘임시 의장직’ 맡으며 향후 위기 극복 선봉 역할 할 것
코로나19 확산에 다시 하나로 뭉치는 유럽 [글로벌 현장]
[베를린(독일) = 이은서 유럽 통신원]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로 휘청거렸던 유럽의 통합이 3월부터 시작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대유행으로 위기를 맞고 있다. 이탈리아를 비롯해 스페인과 영국 등 유럽의 주요 국가에 코로나19 확진자와 사망자가 속출하면서 ‘유럽은 더 이상 선진국이 아니다’는 오명에 휩싸였고 의료 시스템에는 과부하가 걸렸다.
◆독일이 이끌 EU의 최우선 과제 ‘재통합’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코로나19 회복 기금에 관한 의견 차이로 각국 간 갈등이 심화되면서 EU 통합은 점점 요원한 것처럼 보였다. 독일 헌법재판소는 지난 5월 유럽중앙은행(ECB)이 2015년부터 진행해 온 양적 완화 정책인 ‘국공채 매입 프로그램(PSPP)’에 대해 일부 위헌 판결을 내렸다.

독일 헌재는 이 정책이 EU의 권한을 벗어나는 것이고 경제 활성화를 위한 적절한 조치인지 독일 연방 정부와 연방 하원에서 철저히 분석, 입증하지 않았기 때문에 독일기본법상 민주주의 원리에 반한다고 판결했다.

이는 코로나19와 관계없이 독일 경제학자와 법학자들이 2015년부터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해 온 내용이었지만 공교롭게도 코로나19 위기 속에서 일부 위헌 판결이 나오면서 혼란을 가중시켰다. EU 회원국의 법원이 ECB의 독립성에 제동을 건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와중에 독일이 지난 7월 1일부터 6개월간의 임기로 EU 의장국을 맡게 되면서 EU 통합과 위기 극복에 대해 관심이 쏠리고 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지난 7월 1일 독일 연방의회 대정부 질의 모두 발언에서 “독일이 어려운 시기에 6개월간 EU 이사회 의장국을 수임하고 의장국 업무를 수행하기 위한 핵심 관건은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적 여파를 극복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독일은 EU 이사회 의장국으로서 샤를 미셸 EU 정상회의 의장을 도와 EU 의회에서 EU 경제 회복 전략에 대해 합의를 도출하고 EU를 결속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메르켈 총리가 발표한 EU의 주요 쟁점 사항은 △기후 보호 △디지털 주권 △세계에서의 유럽의 역할 등이다. 또 메르켈 총리는 지난 6월 18일 연방의회 본회의 기조연설에서 “코로나19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유럽 연대와 결집뿐만 아니라 10월 예정된 정상 회담 개최를 통해 아프리카에 대한 파트너십을 형성하고 EU와의 전략적 파트너인 중국에 대해 유럽이 한목소리를 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히며 코로나19를 함께 극복하는 것을 넘어 세계에서 유럽의 역할을 강조한 바 있다.
하이코 마스 독일 외무장관도 “코로나19의 경제적·사회적 여파는 유럽 전체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이를 극복하기 위해 독일이 EU 의장국을 맡는 동안 EU의 동력이자 중재자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결속과 연대’라는 표현을 보면 올 하반기 독일이 이끌어 가는 EU가 유럽의 강력한 재통합을 주요 과제로 삼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코로나19 확산에 다시 하나로 뭉치는 유럽 [글로벌 현장]
◆EU의 코로나19 대응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

이는 코로나19 위기에서 EU의 공동 대응 과정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더욱 명확해진다. EU는 3월 중순 회원국 내 역학자와 바이러스 전문가로 구성된 자문 그룹을 구성해 코로나19에 관한 지침을 마련하기 시작했고 이어 집행위 홈페이지에 코로나19에 관한 가짜 뉴스에 대응하기 위한 ‘파이팅 디스인포메이션’ 섹션을 마련하는 것으로 전례 없는 위기에 즉각적인 공동 대응을 시작했다.

이후 인공호흡기와 마스크를 유럽 내에서 전략적으로 비축하는 레스큐(RescEU) 프로그램을 시작했고 4월 초 의료·보호 장비 수입 관세·부가세 일시적 면제를 결정했다. 5월에는 우르줄라 폰 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의 주도 아래 코로나19에 대응하기 위해 글로벌 기금 모금을 통해 74억 유로(약 9조9148억원)를 마련했고 이 기금을 코로나19 진단·치료·백신 개발에 투자한다고 밝혔다.

EU집행위는 5월 중순 코로나19에 대응하기 위한 실질적 연구·개발(R&D) 지원 사업으로 혁신 의약품 이니셔티브(IMI)의 8개 프로젝트에 1억1700만 유로(약 1578억원)를 지원한다고 발표했다. 이는 코로나19 발생 초기부터 논의해 왔던 유럽의 공동 대응 사업이고 코로나19 확산을 방지하기 위한 백신, 새로운 치료법, 진단 도구를 개발하는데 목적이 있다.

8개의 프로젝트 중 5개는 진단, 3개는 치료에 중점을 두고 있다. 이 프로젝트에는 유럽의 대학·연구소·기업·공공기관 등 94개 기관이 참여하고 있다. 특히 중소·중견기업이 전체의 20%를 차지하고 예산의 17%를 지원 받으면서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치료·백신 개발뿐만 아니라 위기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중소·중견기업을 지원하는 역할도 하게 된다.

이 지원 사업은 EU의 연구 혁신 프로그램인 호라이즌 2020 예산 증액을 통해 7200만 유로(약 970억원)를 지원하고 제약업계와 IMI 파트너 기관에서 나머지 4500만 유로(약 600억원)를 지원하며 특별 패스트 트랙으로 신속하게 진행될 예정이다.

이후 주목할 만한 EU의 공동 대응으로는 6월 중순 발표한 ‘EU 코로나19 백신 전략’이 있다. EU 집행위는 회원국이 양질의 효과적인 백신을 확보하고 최단 기간 내 공평한 백신 보급을 목표로 개별 백신 회사들과 협상해 사전 구매 협약을 체결하는 것을 내용으로 한다.

이를 위해 EU 내 공동 협상팀을 구성하고 긴급 지원 예산을 활용해 백신 회사를 지원할 예정이다. 추가 지원이 필요하면 유럽투자은행 대출도 활용할 예정이고 신속한 진행을 위해 사용 승인을 발 빠르게 진행하고 포장·라벨링 규정을 완화하며 GMO 관련 규정도 일시적으로 적용을 제외하는 등 규제를 탄력적으로 운영할 예정이다. 이를 통해 최대 12~18개월 동안 백신 개발과 생산을 지원할 방침이고 임상 시험에 임박했거나 이미 착수한 회사들에 참여 요청을 독려하고 있다.

유럽의 코로나19 피해 상황은 국가별 차이가 크고 이에 대응할 수 있는 국가의 의료 시스템 역량도 차이가 두드러지면서 각국의 피해 회복력에도 편차가 커지고 있다. 이에 따른 EU 내부의 갈등을 극복하고 독일이 구원투수 역할을 하게 될지 그 결과가 주목된다.

하나의 대륙으로 연결돼 있는 EU는 바이러스 확산에 취약할 뿐만 아니라 경제적 위기 확산에도 동시에 취약하다. 이 때문에 국가주의와 민족주의를 주장하며 펼치는 국경 봉쇄, 개별 국가 위주의 대응 정책이 의미가 없다. 또 EU는 한국의 가장 큰 투자 파트너이자 제3의 교역 파트너다. EU의 코로나19 공동 대응에 따른 백신 개발 상황과 경제 동향을 면밀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85호(2020.07.11 ~ 2020.07.17)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