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고객을 구독자로 만든 뉴 비즈니스 18]
-일회성 판매 벗어나 장기적 관계 구축
-기업은 충성 고객 확보하고 고객은 다양한 혜택
‘구독 불가능한 상품 없다’…윈-윈 모델로 급성장하는 ‘구독 생태계’
[한경비즈니스=김정우 기자] ‘구독이 불가능한 상품이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구독 경제는 전 세계적으로 급부상하고 있는 새로운 트렌드다. 국내외 수많은 기업들이 기존에 영위하던 사업과 관련한 구독 서비스를 속속 선보이면서 ‘구독 열풍’을 일으키고 있다.

먹거리와 같은 소모품과 콘텐츠 등에서 시작해 자동차·그림·주거 공간 등 다양한 분야에서 상상조차 하기 어려웠던 구독 서비스가 등장하고 있다.

구독 서비스가 급부상하는 배경으로는 기업과 소비자 모두 ‘윈-윈’할 수 있는 비즈니스 모델로 부각되고 있기 때문이다.

구독 경제를 활용하면 기업들은 충성 고객을 확보하는 ‘자물쇠 효과(lock-in effect)’를 거둘 수 있다. 별도의 마케팅 비용이나 노력을 들이지 않고도 안정적인 매출을 거두는 것이 가능해지는 셈이다.

◆구독에 지불하는 것 이상의 가치 제공

소비자들 역시 다양한 이득이 있어 구독에 지갑을 여는 것을 망설이지 않는다. 기업들이 유료 회원, 즉 구독자들을 모으기 위해 다양한 혜택을 제공하는 것이 그 이유다.

국내에서 구독 서비스 경쟁이 가장 치열하게 펼쳐지고 있는 이커머스 기업들만 보더라도 이런 흐름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정기 결제를 하는 유료 멤버십 회원들에게 지불한 돈 이상의 가치를 제공하는 조건을 내걸고 가입자를 늘려 나가고 있다.

이커머스 1위인 쿠팡은 월 2900원을 매달 결제하는 ‘와우 클럽’ 회원들에게 별도의 비용을 받지 않고 새벽배송·당일배송 등을 제공한다.

‘스마일 클럽’이라는 유료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는 이베이코리아는 고객이 정기 결제한 금액보다 더 많은 포인트를 지급한다. 또 이들에게 매달 10%가 넘는 상품 할인권을 주고 있다.

두 개의 서비스에 모두 가입한 직장인 A 씨는 “결과적으로 돈을 낸 것보다 더 많은 이익을 얻을 수 있어 앞으로도 서비스를 해지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출혈 경쟁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하지만 구독 경제의 ‘힘’이 얼마나 강력한지는 이미 입증됐다.

미국 최대 전자 상거래 기업 아마존을 통해서다. 아마존은 2004년 유료 멤버십 ‘아마존 프라임’을 출시한 바 있다. 신속한 배송뿐만 아니라 무제한 음악 감상, 영화 시청 등 다양한 혜택을 제공하며 회원 수를 늘려 나갔다. 현재 글로벌 시장에서 1억5000만 명의 회원을 확보했고 매년 연회비로만 21조원을 벌어들이고 있다.

현재 유료 회원들이 매달 내야 하는 회비는 12.99달러다. 2018년 기존에 9.9달러였던 회비를 20% 정도 올려 지금의 가격이 됐다. 당시 비용 인상에 따른 비판도 있었지만 가입자 이탈로까지 이어지지는 않았다. 빠른 배송과 유료 회원 전용 할인 행사인 ‘아마존 프라임 데이’ 등 포기할 수 없는 혜택들이 그만큼 많았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구독 서비스 겨냥한 ‘창업 붐’ 전망도 나와


구독 경제의 성장은 전통적인 비즈니스 모델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 같은 변화를 감지한 하나금융연구소는 지난해 ‘새로운 소비 트렌드로서의 구독 경제’ 보고서를 펴낸 바 있다.

보고서를 보면 과거 산업계를 관통하는 비즈니스 모델은 일회성 판매를 전제로 했다. 기업과 소비자의 관계도 한 번 상품을 팔면 끝나는 관계였고 소비자의 니즈 변화에 대한 대응은 장기간에 걸친 신제품 출시에 주로 의존해 왔다.

구독 경제의 급격한 확산은 이런 산업 생태계를 바꿔 나가고 있다. 소비자와의 관계를 장기적으로 유지해야 하는 만큼 지속적으로 니즈를 파악하고 빠르게 제품을 업그레이드해야 하는 시대가 오고 있다고 분석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정보통신기술(ICT)의 발달을 통해 다양한 개별 소비자들의 니즈를 충족하는 것이 가능해졌고 구독이 대세가 됐다”면서 “대량 생산과 대량 소비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고 말했다.

소비자 니즈를 빠르게 파악한 구독 서비스를 선보이며 대박을 터뜨리고 있는 스타트업들이 속속 등장하는 것도 구독 경제 확산이 가지고 온 특징이다. 구독 경제가 일찍부터 활발하게 펼쳐진 해외에서 이런 움직임이 더욱 도드라진다.

대표적인 곳이 미국에서 2011년 설립된 달러 셰이브 클럽(DSC)이다. DSC는 당시 면도기 시장에서 70%라는 높은 점유율을 차지하던 질레트(P&G)로 인해 면도날 가격이 지나치게 높게 형성돼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또한 반복적인 구매에 따른 피로감으로 소비자들이 면도 과정에서 큰 불만을 가지고 있는 것을 파악했다. 그 결과 저렴한 가격(1~9달러)에 매달 4~6개의 면도날을 배송해 주는 구독 서비스를 내놓았고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수많은 가입자들이 DSC에 몰린 것이다. DSC는 2016년 유니레버에 10억 달러(약 1조2000억원)라는 높은 기업 가치를 인정받고 매각됐다. 현재도 약 300만 명이 넘는 가입자를 확보하며 성장을 이어 가고 있다.

디지털 콘텐츠 유통의 혁신을 가져 왔다고 평가 받는 넷플릭스도 마찬가지다. 급변하는 트렌드를 빠르게 포착해 콘텐츠 구독 서비스라는 새 시장을 만들어 내고 선점한 효과를 톡톡히 누리고 있다는 평가다.

국내에서도 최근 구독 경제가 활발하게 진행되는 만큼 신선한 구독 서비스를 앞세운 스타트업들이 향후 대거 등장하며 산업계 전반에 걸쳐 새 활력을 불어넣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개개인의 취향에 특화된 맞춤형 서비스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고 향후에도 니치마켓을 겨냥한 수많은 구독 서비스 업체들이 나타날 것”이라며 “창업 생태계가 지금보다 더 활발해지는 긍정적 효과를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실제로 최근 국내에서도 구독 경제 바람을 등에 업고 DSC와 비슷한 면도 구독 서비스를 제공하는 ‘와이즐리’, 세탁 구독 서비스를 선보인 ‘런드리고’ 등이 주목받는 스타트업으로 떠올랐다.

물론 순기능만 있는 것은 아니다. 구독이라는 새로운 산업이 급격하게 커지고 다양한 서비스가 등장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문제점들이 발생할 수 있다. 국내에서도 이런 부분들이 서서히 공론화되고 있다.

‘다크 넛지’를 예로 들 수 있다. 일부로 구독자들이 정기 결제를 해지하는 과정을 어렵게 만들어 서비스를 계속 유지하도록 하는 것을 의미한다.

마케팅 차원에서 일정 기간 무료 이용이 가능하다며 고객의 가입을 유도한 뒤 무료 기간이 끝난 뒤에도 자동 결제가 되도록 하는 것이 일반적인 다크 넛지의 사례다. 피해자들이 늘면서 최근 한국소비자원은 다크 넛지 상술의 문제점을 공개적으로 지적하고 나서기도 했다.

디지털 격차가 더 벌어질 것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 업계 관계자는 “온라인 결제나 스마트폰 활용에 익숙하지 못한 고령층에서 새롭게 등장하는 서비스 혜택을 누리기 어려울 수 있다”며 “이들을 대상으로 한 지방자치단체와 정부 차원의 무상 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사회 통합적인 측면에서 어려움이 발생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그는 “개인 취향에 맞춘 구독 서비스가 쏟아지는 과정에서 해당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람들만이 알 수 있는 새로운 용어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며 “점차 이런 현상이 가중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미 세대·계층 간 소통이 원활하지 않은 상황에서 디지털 활용도에 따른 새로운 소통의 부재까지 생겨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enyou@ham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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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85호(2020.07.11 ~ 2020.07.17)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