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스바겐그룹과 5년간 장기 해상 운송 계약 체결…대형선 확보해 수송 경쟁력 높여
현대글로비스, 유럽에서 중국까지 ‘벤틀리’·‘포르쉐’ 실어 나른다
[한경비즈니스=이명지 기자] 국내 대기업들의 물류 자회사들은 모기업의 물량을 수송하는 ‘2자 물류’의 형태를 띠고 있다. 3자 물류 업체들은 이를 ‘일감 몰아주기’라고 비판하며 물류 시장의 발전을 저해하는 요소라고 지적해 왔다. 대기업 물류 계열사들도 경쟁력 향상을 통해 외부 물량을 늘려야 한다는 과제를 안고 있다.

현대차그룹의 물류 계열사 현대글로비스도 수년간 외부 물량의 비율을 높이는 데 주력해 왔다. 최근엔 유럽 최대 완성차 제조사 ‘폭스바겐그룹’과 5년간의 장기 해상 운송 계약을 하며 성과를 거뒀다는 평을 듣고 있다. 이는 현대글로비스가 글로벌 완성차 메이커와 맺은 해운 계약 중 최대 규모다.
◆완성차 수송의 핵심 항로 물량 확보

현대글로비스는 독일 자동차 제조 기업 폭스바겐그룹 물류 자회사인 ‘폭스바겐 콘제른로기스틱’과 완성차 해상 운송 신규 계약을 체결했다고 7월 2일 공시했다. 폭스바겐·아우디·포르쉐·벤틀리 등 폭스바겐그룹 내 전 승용차 브랜드가 유럽에서 중국으로 수출하는 완성차 전체 물량을 단독으로 해상 운송하는 계약이다. 독일 폴프스부르크에 본사를 둔 폭스바겐 콘제른로기스틱은 폭스바겐그룹 내 12개 완성차 브랜드의 조달·생산·판매 물류를 담당하고 있다.

이번 계약에 따라 현대글로비스는 2024년 12월까지 5년간(기본 3년+연장 옵션 2년) 폭스바겐그룹이 유럽에서 생산한 승용차를 매월 10회에 걸쳐 독일 브레머하펜항과 영국 사우샘프턴항에서 상하이·신장·황푸 등 중국 내 주요 항으로 단독 운송한다. 이는 현대글로비스가 2008년 자동차 운반선 사업에 진출한 이후 비계열 글로벌 완성차 메이커와 체결한 해운 계약 중 물량 면에서 사상 최대 수주 실적이다.

이번에 계약한 해상 운송 구간은 세계 자동차 해운 구간 중 물량 규모 면에서 최대로 평가되는 구간이다. 현대글로비스는 이 계약으로 다른 항로에 비해 상대적으로 화물 운송이 부족하던 유럽에서 극동으로 운송하는 노선의 선복을 대규모로 채울 수 있게 돼 선대 운영이 효율성과 안전성을 높일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그동안 현대글로비스는 한국에서 유럽에 완성차를 수출한 후 극동 지역으로 돌아오는 선박에 선적할 현지 화물 유치에 힘을 쏟아 왔다. 또 극동에서 미주, 미주에서 유럽, 유럽에서 극동으로 연결되는 전 세계 완성차 해상 운송 핵심 항로의 물동량을 모두 안정적으로 확보함으로써 자동차 운반선이 공선으로 운항하는 구간을 최소화하고 선박의 적재율을 높일 수 있게 됐다.
현대글로비스 측은 이번 계약이 5년간의 장기 계약으로 이뤄졌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본다. 통상적으로 완성차 제조사와 선사 간 주요 해상 운송 계약 기간은 약 2년 내외 단기로 이뤄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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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준한 투자로 비계열사 매출 키워

현대글로비스의 완성차 운반선 사업 부문에서 비계열사 매출은 2016년만 해도 약 40% 수준이었다. 이후 2017년 42%, 2018년 44%로 비계열사 매출이 꾸준히 상승했고 지난해에는 53%까지 늘었다.

현대글로비스는 지난해 완성차 해상 운송 사업 부문에서 2조510억원의 매출을 달성했다. 해운 매출 기반이 운송 요금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현대글로비스는 지난해 글로벌 완성차 메이커와 중장비 제조사 등 비계열 기업들로부터 운임으로만 약 1조원을 벌어들였다.

이번 장기 계약으로 현대글로비스의 비계열사 매출은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현대글로비스는 전 세계 대부분의 글로벌 완성차 브랜드인 17개의 자동차 메이커와 물류 계약을 하게 됐다. 특히 덤프트럭·포클레인과 같은 중장비와 중고차 수출입 물량도 운송하며 비계열사의 매출을 꾸준히 늘리고 있다.

완성차 운송 시장의 영향력도 확대할 수 있게 됐다. 2019년 선대 보유 현황 기준 완성차 운송 시장점유율은 일본계 선사(3사) 52%, 유럽계 선사(3사)가 30%를 차지한다. 일본계 선사와 유럽계 선사가 대부분을 점유하고 있는 상황에서 현대글로비스는 18%의 점유율을 기록 중이다. 하지만 이번 장기 운송 계약에 힘입어 현대글로비스의 글로벌 완성차 업체 영업력이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비계열사 부문의 매출을 늘리기 위해 현대글로비스는 완성차의 수송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다. 첫째는 신조선 투자다. 현대글로비스는 해운 사업 진출 이후 자동차 운반 선대를 꾸준히 확대해 지난해 말 기준으로 90여 척의 선단을 꾸렸다. 이 중 소형차 7000대 이상을 선적할 수 있는 대형 선박은 23척에 달한다.

현대글로비스는 2013년 글로벌 완성차 운반 선사 중 최초로 차량을 7300대까지 대량 수송할 수 있는 ‘포스트 파나막스’급 자동차 운반선을 도입한 후 선제적으로 늘려 가고 있다. 이러한 대형 선박 투입을 통해 대량 수송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규모의 경제’를 이룬다는 전략이다. 대형 선박은 운송 원가를 낮출 수 있어 효율성을 극대화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NH투자증권은 현대글로비스의 완성차 해상 운송(PCC) 사업 경쟁력에 대해 “선령(선박의 나이)이 낮아 연비 효율성이 경쟁사 대비 높고 유럽 선주사 대비 상대적으로 역운송 물량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어 탑재율이 높다”고 분석했다.

또 하나는 ‘현지 영업 전략’이다. 현대글로비스는 이번 계약을 위해 지난해 3월 스웨덴 선사 ‘스테나 레데리’와 유럽에 합작사인 ‘스테나 글로비스’를 설립하는 등 철저하게 준비해 왔다. 실제 합자사의 유럽 내 해운 네트워크 인프라가 이번 폭스바겐 물량 수주에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글로비스 관계자는 “지속적인 신조선 투자를 통한 운송 효율성 확보와 글로벌 화주와의 커뮤니케이션 강화 등 치밀한 영업 전략이 신규 수주의 비결”이라고 말했다.

물류 인프라 구축도 필요하다. 현대글로비스는 원활한 환적과 수출입에 유리한 자동차선 전용 터미널을 운영하고 있어 향후 글로벌 완성차 해운 실적은 더욱 늘어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현재 경기도 평택과 전라남도 광양에 자동차선 전용 부두를 운영하며 육상 운송에서 출입 물류, 해상 운송에 이르는 일관 물류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이 밖에 지난해 미국 동부 필라델피아항에 64만㎡ 크기의 자동차 수출입 야드를 개소하는 등 완성차 해상 운송력을 갖추기 위해 투자를 지속 중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팬데믹(세계적 유행)으로 물류업계는 물량 확보에 난항을 겪고 있다. 하지만 하반기 들어 차차 회복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유승우 SK증권 애널리스트는 주요 시장 경제 재개와 록다운 해제로 완성차 공장 가동이 정상화될 것이라고 전망하며 “상반기 해외 공장들의 갑작스러운 셧다운으로 강제로 확보된 재고 물량들이 소진될 때까지는 현대글로비스의 실적 회복이 더딜 수 있지만 하반기 실적은 기저 효과를 볼 것”이라고 전망했다.

mjlee@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86호(2020.07.18 ~ 2020.07.24)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