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 리포트 Ⅱ]
-실물 경제 얼어붙은 대신 떨어진 돈의 가치에 부동산·주식 등 자산 가격만 폭등
‘2020 머니 무브’ 돈은 어디로 흘렀나…사상 최대 유동성에 무너진 투자 격언
올해 증시에는 오랫동안 이어져 온 성공 공식이 통하지 않았다. ‘아이를 업은 엄마가 객장에 나타나면 팔라’는 격언도, ‘11월에 사고 5월에 팔라’는 증시 격언도 무색해졌다.



평소 주식에 관심이 없었던 사람이 주식 투자를 하겠다고 나설 정도로 시장이 과열돼 있으면 팔아야 하고 1분기 기업 실적 발표가 마무리된 시점인 5월에는 시장 눈높이를 하향 조정하는 시기여서 팔아야 한다는 그간의 통설을 개미(개인 투자자)가 무너뜨린 것이다.



올 상반기 증시의 주인공은 단연 개미였다. 똑똑해진 개미들이 외국인과 기관의 자리를 채우면서 구원투수 역할을 톡톡히 했다.


상반기 개미들의 유가증권시장·코스닥시장 합산 누적 순매수 금액은 39조3220억원으로 40조원에 육박했다.



이는 전 세계적인 현상이었다. 한국에서는 ‘동학개미’, 중국에서는 ‘부추’, 미국에서는 ‘로빈후더’라고 불리는 개인 투자자들이 글로벌 증시를 쥐락펴락했다. 그 힘은 유동성에서 나왔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불러온 파급력은 전 세계 자본 시장을 흔들었다. 세계 각국이 코로나19로 얼어붙은 경제 ‘백신’으로 유동성 공급을 택하자 실물 경제 대신 자산 가격이 들썩였다.
‘2020 머니 무브’ 돈은 어디로 흘렀나…사상 최대 유동성에 무너진 투자 격언
초저금리와 경기 부양책으로 유동성은 사상 최대를 기록했고 유동성 증가 속도도 갈수록 빨라지고 있다. 블룸버그 통화공급지수에 따르면 6월 말 전 세계 통화량(M₂·광의통화)은 86조 달러로 역대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글로벌 금융 위기 직전인 2008년 6월 말보다 100% 증가했다. 한국 역시 사상 최대 유동성을 공급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5월 국내 통화량(M₂·광의통화)은 3053조9000억원을 기록했다.


지난 4월 사상 처음으로 광의통화량이 3000조원을 넘어섰고 한 달 만에 35조4000억원이 증가했다. 시중에 풀린 돈은 어디로 흘러갔을까.


◆2008년 금융 위기 때보다 통화량 100% 증가



전 세계가 제로 금리 수준으로 금리를 인하하고 산업 지원을 위한 ‘헬리콥터 머니’를 살포했지만 실물 경제를 떠받칠 생산과 투자에는 돈이 흐르지 않는다.


가계 소비가 줄고 기업 투자가 위축되자 국내 통화승수는 역대 최저치로 하락했다. 통화승수는 3월 15.26배에서 5월 15.06배로 떨어졌다. 수치가 낮을수록 돈이 잘 돌지 않는다는 의미다.



생산은 1월부터 5월까지 5개월 연속 감소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5월 제조업 평균 가동률은 63.6%로 11년 4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전 산업 생산은 코로나19의 여파가 본격화된 4월 대비 1.2% 줄었다. 수출 전망이 나빠지면서 설비 투자는 5.9% 줄었다.



현재 경기를 나타내는 동행지수 순환 변동치는 21년 4개월 만에 최저치로 떨어졌고 4월 경상수지 적자는 9년여 만에 최대를 찍었다. 경상수지는 한 달 만에 흑자로 돌아섰지만 전년에 비해 반 토막이 났다.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해 은행에 대기 중인 자금 역시 급증하고 있다. 은행권에 따르면 6월 말 기준 5대 은행(신한·KB국민·하나·우리·NH농협은행)의 요구불 예금 잔액은 582조6976억원으로 전달보다 24조5076억원 급증했다.



반면 5대 은행의 정기 예·적금 잔액은 6월 말 기준 672조153억원으로 전달보다 10조1690억원 줄었다.



실물 경제는 위태로운데 증시에는 광풍이 불었다. 국내 주식 시장 하루 평균 거래액은 다달이 늘어났다.
‘2020 머니 무브’ 돈은 어디로 흘렀나…사상 최대 유동성에 무너진 투자 격언
올해 1월 하루 평균 주식 거래 대금은 11조18813억원으로 예년과 비슷한 수준이었지만 코로나19발 폭락장으로 변동성이 크게 확대된 3월(18조4922억원)부터 거래가 급증했다. 4월(20조7803억원), 5월(20조2235억원), 6월(24조3772억원)에는 하루 평균 거래 대금이 20조원을 넘어섰다.



그러자 주식 시장 거래 대금이 반년 만에 지난해 연간 누적 거래 대금을 넘어섰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1월부터 7월 2일까지 국내 주식 시장 누적 거래 대금은 약 2293조6000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해 연간 누적 기준 거래 대금(2287조6000억원)을 0.3% 정도 웃도는 수준이다. 6개월 만에 작년 한 해 거래 대금을 돌파한 만큼 올해 연간 거래 대금은 2000년대 들어 역대 최대치를 경신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세계 각국이 ‘돈 풀기’에 나서자 시장 심리에 작용해 유동성이 증시에 대거 유입되는 유동성 장세가 펼쳐졌기 때문이다.


경기가 좋아질 때까지 정부는 계속 돈을 풀 것이라는 믿음이 생기자 6월까지 국내 증권 계좌에서 입금된 투자자 예탁금은 총 50조5100억원으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투자자 예탁금은 투자자가 주식을 구매하기 위해 증권사에 일시적으로 맡겨 놓은 돈이다. 투자를 위한 대기성 자금이라고 할 수 있다.
‘2020 머니 무브’ 돈은 어디로 흘렀나…사상 최대 유동성에 무너진 투자 격언
개인 투자자들의 ‘빚투(빚 내서 투자)’ 정도를 보여주는 신용 거래 융자 잔액은 6월 말 기준 12조5500억원으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이처럼 실물과 괴리된 증시는 세계 증시에 공통적인 현상이다. 증시는 유동성과 심리를 반영하기 때문에 실물 경제와 무관하게 움직일 때가 있다.


이를 두고 월가의 전설적인 투자자 제시 리버모어는 “시장 여건이 강세일 때는 심지어 전쟁조차 주식 시장이 오르는 것을 막을 수 없다”고 말했다. 시장 심리에 따라 움직이는 증시 특성상 실물 경제와 무관하게 상승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증시 상승 이끈 ‘BBIG’



전문가들은 개인이 증시를 떠받치는 전문가들은 개인이 증시를 떠받드는 기간이 단기에 그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준석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국내 기관을 살펴보면 국민연금이 무턱대고 들어올 수 있는 환경도 아니고 공모펀드는 규모 자체가 많이 쪼그라들었기 때문에 당분간 개인이 매수의 주체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존 리 메리츠자산운용 대표는 “리먼브라더스 사태 이후 유동성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헤지펀드와 외국인 투자자가 변동성이 큰 한국 시장에서 미리 빠진 것”이라며 “앞으로 얼마만큼 개인 투자자 열풍이 이어질지 모르지만 결국 중요한 것은 지속성”이라고 말했다.



올해 한국 증시를 이끈 키워드는 BBIG(바이오·배터리·인터넷·게임)였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1~6월) 동안 시가총액 상승 상위 1~10위 기업은 모두 BBIG 기업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셀트리온·카카오·네이버·엔씨소프트·LG화학·삼성SDI는 코스피지수 저점이었던 3월 19일 대비 주가 상승률이 평균 118%에 달한다. 특히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상반기 시가총액이 22조6300억원 뛰며 바이오 대장주 역할을 했다.



‘언택트(비대면)주’ 열풍에 올라탄 카카오·네이버·엔씨소프트 같은 정보통신기술(ICT) 기업의 주가도 파죽지세다. 카카오 주가는 13만4000원(3월 19일)에서 7월 35만5500원까지 뛰었다. 전기차·배터리 관련주인 LG화학·삼성SDI의 주가도 저점과 비교할 때 7월 초 100% 넘게 반등했다.



개인 투자자들의 돈은 해외 주식에도 흘러들어갔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지난 1월부터 6월까지 해외 주식 결제 대금은 709억1000만 달러(약 85조원)를 기록했다.
‘2020 머니 무브’ 돈은 어디로 흘렀나…사상 최대 유동성에 무너진 투자 격언
지난해 상반기(180억7300만 달러, 약 21조원)와 비교할 때 4배 가까이 증가한 것이다. 특히 6월 한 달 동안 외화 주식 결제액만 186억4970만 달러(약 22조원)로 지난해 상반기 해외 결제액을 넘어섰다.



국내 투자자가 가장 많이 매수한 종목은 미국의 테슬라다. 이어 아마존, 애플, 구글 모회사 알파벳 등 세계 ICT 트렌드를 이끄는 기술주가 강세다.



◆대출 늘자 부동산 거래량 증가



유동성이 증가했다는 것은 대출도 늘었다는 뜻이다. 6월 은행의 가계 및 개인 사업자 대출은 전월 대비 11조9000억원 증가했다. 이는 지난해 평균 대출 순증 금액 대비 68% 많은 수준이다. 특히 2월부터 6월까지 지난해 대출 규모의 3분의 2에 달하는 65조원이 순증했다.



대출로 늘어난 자금은 증시뿐만 아니라 부동산 시장으로 흘러갔다. 올해 3월 말 부동산 금융은 2105조3000억원을 기록하며 사상 처음 2100조원을 넘어섰다.


불어난 유동성과 부동산 금융은 집값 상승을 이끄는 주요 요인 중 하나로 작용하고 있다.
‘2020 머니 무브’ 돈은 어디로 흘렀나…사상 최대 유동성에 무너진 투자 격언
올해 상반기 서울 아파트 거래량은 4만1381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만8088건)과 비교해 128.8% 증가했다.


상반기 중 정부가 6·17 대책을 발표한 6월에 거래량이 폭발했다. 대책 시행 전 규제를 피해 서둘러 매매에 나선 수요에다 집값이 더 오를 것으로 판단한 수요가 더해지면서 거래가 급증한 것으로 보인다.



서울시의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7월 16일까지 신고된 6월 서울 아파트 거래량은 1만3681건으로, 연중 최고치를 기록했다. 자치구별로는 노원구가 1587건으로 거래량이 가장 많았다.



정부가 규제 대책을 발표하고 있지만 집값이 오를 것이라는 기대감은 유동성 확대와 맞물려 점점 커지고 있다.


국토연구원이 시행한 ‘6월 부동산 시장 소비자 심리 조사’ 결과에 따르면 6월 서울의 주택 매매 심리지수는 한 달 전보다 28.6포인트 오른 150.1을 기록했다. 수도권 주택 매매 심리지수는 한 달 사이에 20.3포인트 오르면서 35개월 만에 최고로 치솟았다.



정부가 넘치는 유동성에도 ‘아파트’를 대상으로 각종 대책을 내놓으면서 오피스텔에도 돈이 흘러갔다.


직방이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자료를 바탕으로 올해 오피스텔 거래 시장을 분석한 결과 오피스텔 매매 건수는 전국 기준 올해 1~5월까지 1만5769건이 공개됐다.



매매 실거래가가 최초 공개된 2006년 이후 같은 기간 평균 거래량(1만4155건) 대비 11.4%, 작년 같은 기간(1만2010건) 대비 31.3% 증가했다.


◆유동성 버블, 당분간 꺼지지 않는다
‘2020 머니 무브’ 돈은 어디로 흘렀나…사상 최대 유동성에 무너진 투자 격언
전 세계적으로 천문학적인 유동성 공급이 이어지자 시장에선 ‘유동성 거품’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자산시장을 빚으로 떠받치고 있는만큼 자산가격이 떨어지면 쇼크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제통화기금(IMF)도 최근 금융 안정 보고서(GFSR)에서 현재 진행 중인 실물 경제와 금융 시장의 괴리 현상이 자산 가치의 조정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이 같은 유동성 확대 기조가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 미국 중앙은행(Fed)은 최소한 2022년 말까지 금리 인상이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고 유럽중앙은행(ECB)도 소비자 물가가 상당 기간 2% 이상을 유지한 이후에야 금리 인상을 시작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전문가들은 각국의 중앙은행이 무제한 양적 완화 스탠스를 향후 몇 년간 유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광석 한국산업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코로나19가 종식되지 않는 이상 유동성 확대에 따른 버블은 당분간 꺼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그는 “다만 실물 경제가 악화되면서 한쪽에서는 소득이 축소되고 실업자가 증가하는 반면 자산을 보유한 사람들은 유동성 확대로 더 부자가 되는 양극화가 심화될 수 있다”며 “지금까지 보편적으로 헬리콥터 머니를 뿌렸다면 앞으로는 피해가 집중된 취약 계층을 위한 ‘핀셋’ 정책이 이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김영은 기자 kye0218@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86호(2020.07.18 ~ 2020.07.24)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