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영식의 정치판]
-부동산 실정·내홍 덮고 잇단 악재들 희석, 충청 표심 잡고 통합당 분란 재촉 등 ‘1석5조’
[홍영식의 정치판] 노무현의 “재미 좀 봤다” 2탄 노리는 與 ‘수도 이전’
[한경비즈니스 = 홍영식 대기자] 2004년 17대 총선에서 ‘노무현 대통령 탄핵풍’에 힘입어 과반 의석을 얻은 당시 열린우리당은 득의양양했다. 특히 당 소속 의원 3분의 2 이상(108석)을 차지한 초선 의원들의 기세가 등등했다. 선배들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고 천둥벌거숭이처럼 제각각의 목소리를 낸다고 해 ‘108번뇌’로 불린 이들은 ‘개혁’ 드라이브를 거는 데 앞장섰다. 그래서 추진된 것이 국가보안법 폐지 법안, 사립학교법 개정안, 언론개혁법안, 과거사진상규명법안 등 이른바 4대 개혁 입법안이었다. 열린우리당은 야당의 격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일방적으로 밀어붙였다. 열린우리당 내부 계파 간 다툼까지 겹쳐 여론은 싸늘해졌다. 지지율이 급락했고 재·보궐 선거에서 연전연패했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4·15 총선’ 압승 직후 “열린우리당의 아픔을 깊이 반성한다”며 “7선을 한 사람으로서 국민의 뜻에 막중한 책임감과 동시에 서늘한 두려움도 느낀다. 언제든 심판 받을 수 있다는 두려움”이라고 했다. 3개월여 지나 민주당 내에선 그 두려움이 현실화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퍼지고 있다. 민주당이 자초했다. 금태섭 전 의원 징계, 이수진 의원의 ‘판사 탄핵 추진’, ‘n번방’ 공범 변호인의 공수처장 추천 위원 지명, 인천국제공항의 비정규직 직접 고용 문제를 두고 벌어진 불공정 논란, 남북한 사무소 폭파로 돌아온 대북 정책, 윤미향 의혹 함구령,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윤석열 검찰총장 압박, 국회 상임위원장 18개 자리 전부 차지, 오거돈 전 부산시장에 이은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추행 의혹과 뒤늦은 대처, 성추행 피해 호소인 표현 논란, 이해찬 대표의 ‘XX자식’ ‘서울, 천박한 도시’ 발언 파문 등은 ‘거여(巨與)’ 독주 이미지를 굳혔다.

◆열린우리당 시절 반성한다 해놓고 그 길 밟는 민주당

특히 신뢰 잃은 부동산 정책, 그린벨트 해제를 두고 벌어진 엇박자는 민심 저항까지 부르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민주당 중진 의원은 “민심 경고등이 켜졌다”며 “이러다가 열린우리당 시절의 악몽이 되풀이되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했다.

민심의 경고등은 지지율에서 확인된다. 리얼미터 조사에서 대통령 국정 지지도 긍정 평가는 5월 셋째 주 62.3%에서 7월 셋째 주 44.1%로 하락했다(자세한 여론 조사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부정 평가는 32.6%에서 51.7%로 상승해 긍정 평가를 앞지르는 ‘데드크로스’ 현상이 발생했다. 정당 지지도에서 민주당은 하락세, 통합당은 상승세를 보여 7월 셋째 주에 오차 범위 내로 좁혀졌다.

대통령에게 지지율은 민감한 문제다. 국정 운영의 힘과 직결된다. 여권에선 문재인 대통령의 ‘콘크리트 지지율(어떤 경우에도 쉽게 흔들리지 않는 지지율)’을 40% 안팎으로 보고 있다. 이 선 가까이로 내려왔다는 것은 위험 신호다. 역대 대통령 지지율 추세를 보면 이 선 밑으로 내려가면 회복하기 쉽지 않다. 정권 후반기 지지율이 30%대로 떨어지면 공직자들부터 잘 움직이지 않고 ‘차기 유력 주자’에게 관심을 갖는다. 특히 대선 주자들이 대통령에게 반기를 드는 사례가 잦아진다. 정부의 그린벨트 개발 공언에 대해 대선 주자인 정세균 총리와 이재명 경기지사가 반대의 뜻을 피력한 것은 시작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있다.

민주당이 총선 3개월여 만에 왜 이렇게 됐을까.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는 현 정권의 핵심을 차지하는 학생운동 세대 엘리트 그룹과 이들과 결합된 문 대통령 극렬 지지층인 ‘빠’세력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이들이 각종 개혁 요구를 정치적 다원주의 방법으로 수용하고 통합하기보다 독점적이고 일방적으로 대응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박 전 서울시장 (성추행 의혹) 문제는 집권 세력의 도덕적 파탄을 의미하고 도덕성이 무너지니 여권 5대 핵심 지지층인 30대와 여성·진보·호남·사무직이 흔들리고 있다”며 “집권당이 무능한 데다 오만하기까지 하니 반감이 강해진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정책적 무능과 도덕적 타락, 권력적 오만 등 세 가지가 묶여 있기 때문에 여권의 지지율 회복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당 내부에서 비판이 나오기 시작한 것은 심상치 않은 징조다. 최고위원에 도전한 이원욱 의원은 여권의 위기 원인으로 ‘내로남불’식 태도를 꼽으며 “민주당이 절체절명의 기로에 서 있다”고 주장했다. 노웅래 의원은 “부동산 정책, 박 전 시장 사건 등을 포함해 국민의 눈높이와 거리가 있는 어색한 당의 대응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잇단 소신 발언으로 ‘미스터 쓴소리’라는 별칭을 얻은 김해영 최고위원도 현 상황을 ‘민주당의 위기’라고 단언했다.

◆악재들 블랙홀처럼 빨아들여…곤혹스러운 통합당

민주당의 행정 수도 이전론은 이런 가운데 불쑥 튀어나와 정치판을 흔들고 있다. 수도 이전은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가 공약으로 꺼냈고 충청 표심을 잡아 승리하는데 결정적 공헌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노 전 대통령이 “재미를 좀 봤다”고 얘기해 논란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수도 이전은 이후 여야 간 극심한 대립을 초래했고 위헌 결정을 받았다. 이명박 정부 때인 2010년 여야 합의로 탄생한 행정중심 복합도시 계획을 되돌리려는 이 대통령과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가 첨예하게 맞부딪치는 결과까지 낳았다. 노 전 대통령의 수도 이전 카드는 8년 뒤 상대 당의 분열을 가져 온 것이다.

이번 민주당의 수도 이전 카드는 다목적이다. 위기를 부르는 주요 원인인 부동산 정책 실패를 희석시키려는 의도가 우선적으로 꼽힌다. 부동산 정책 비판에 대한 국면 전환용이라는 얘기다. 민주당 내 불만 표출을 억제하는 효과를 노렸다는 분석도 있다. 총선 이후 터져 나온 여권발(發) 악재에 대해 당내에선 지도부를 향한 불만들이 적지 않다. 이원욱·노웅래 의원의 비판이 시발점이라는 관측이 많다. 지도부는 이런 비판이 내홍으로 더 번져가기 전에 차단할 필요가 있었고 수도 이전 카드는 그 일환이란 분석이다.

악재 희석용이란 시선도 있다. 수도 이전이라는 대형 이슈를 던져 관심을 그쪽으로 유도해 총선 뒤 불거져 나온 각종 악재들을 뒷전으로 밀어내자는 것이다. 다음 대선도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2002년 대선 때와 같이 수도 이전을 지방 균형 발전의 일환이라는 전략으로 가져갈 때 충청뿐만 아니라 영호남 표심을 흡수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으로 여권은 보고 있다.

민주당이 의도했든 그렇지 않든 미래통합당은 곤혹스러운 처지에 몰리고 있다. 여당의 제안에 따라가자니 수도권 반발이, 반대하자니 충청 표심이 걱정이 된다. 노무현 정권 시절 수도 이전 논란과 판박이다. 당내에선 수도 이전에 대해 찬반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은 “부동산 투기 대책이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원성이 높아지고 대통령 지지율이 급락하니 내놓은 제안이 수도를 세종시로 옮기겠다는 얘기”라며 “과연 이것이 정상적인 정부정책이냐. 웃지 못할 일”이라고 주장했다.

주호영 원내대표는 “헌법재판소가 위헌으로 결정한 것을 무시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위헌성 해소 방안으로는 개헌이나 국민투표 등을 언급했다. 반면 오세훈 전 서울시장과 정진석 의원, 장제원 의원 등은 긍정 검토를 주장했다. 한 당직자는 “민주당이 전격적으로 던진 밑밥에 코를 꿰였다”고 했다. 그렇다면 민주당의 수도 이전 카드는 노 전 대통령의 “재미 좀 봤다”는 발언 2탄이 되는 셈이다.

yshong@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87호(2020.07.27 ~ 2020.08.02)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