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웃소싱·적기 생산방식 벗어나 리쇼어링 움직임…인간 역할 강조한 ‘프로덕션 레벨 4’ 확산

생산라인 재정비 나선 독일 제조기업…팬데믹 이후 ‘인더스트리 4.0’ 가속 [글로벌 현장]
[베를린(독일) = 이은서 유럽 통신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초기 독일 내 주요 기업들은 재빠르게 생산 공장 가동을 중단하고 재택근무 시행을 확대했다. 주요 자동차 기업인 폭스바겐과 아우디는 3월 중순 생산을 즉각 중단했다. 이 밖에 오펠·다임러·BMW·포드·도요타도 1~2주 정도 유럽 공장의 가동을 중단했다.

독일의 유력 경제 연구소인 뮌헨의 IFO연구소는 약 8800개 독일 기업들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진행했다. 연구소가 1월과 4월의 생산 시설 최대 가동률, 1·2분기의 예상 매출량 변화를 분석한 결과 코로나19 봉쇄 기간 동안 독일의 경제 생산량은 16% 감소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른 연쇄 반응으로 다임러는 7월 13일 1만5000개 이상의 일자리를 삭감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생산라인 재정비 나선 독일 제조기업…팬데믹 이후 ‘인더스트리 4.0’ 가속 [글로벌 현장]
◆탈세계화로 부상하는 스마트 팩토리

독일 기업들은 제조업 전반에서 생산 라인을 재정비하는 데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독일 주간지 슈피겔은 ‘코로나19 이후 독일 경제의 탈세계화(deglobalisierung)’라는 기사를 통해 코로나19 위기 이후 독일 경제 변화에 대한 전망을 밝히며 공장 자동화 사례를 소개했다.

독일의 사출 성형기 제조업체 아르부르크는 글로벌 기업으로는 이례적으로 본사 소재지인 로스부르크시에만 생산 공장을 보유하고 있다. 이 회사는 부품 제작과 용접 등 사람이 하던 일을 산업용 로봇이 대신하는 등 고도의 자동화를 통해 개별 고객의 주문에 따라 맞춤형 생산을 하지만 대량 생산과 비슷한 가격에 상품을 제공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소개했다.

독일의 공장 자동화는 독일 4차 산업혁명의 표어인 ‘인더스트리 4.0’의 맥락에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특히 로봇 활용에 따른 공장 자동화가 제품 가격 상승을 해결할 수 있을지 몰라도 일자리 확보라는 또 다른 목표에는 반하는 정책이 될 수도 있기 때문에 이는 단순한 완전 자동화가 아닌 인간의 영역도 보장할 수 있는 ‘영리한 자동화’라는 측면에서의 ‘스마트 팩토리’ 개념이 필요한 지점이다.

세계에 4차 산업혁명의 바람을 몰고 온 것은 독일의 ‘인더스트리 4.0’ 정책이다. 독일인공지능연구소(DFKI)는 이미 2004년 인더스트리 4.0의 전신 격인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이 아이디어를 실질적으로 구현하기 위한 전문 비영리 조직을 설립해야 한다는 주장에 따라 2005년 독일 남부의 카이저슬라우테른에 ‘스마트 팩토리 KL’을 창립했다.

이후 스마트 팩토리 KL은 가상 물리 시스템(CPS)을 전담해 개발하기 시작했다. 독일 정부는 2011년 이를 하노버 산업 박람회에서 새로운 프로그램으로 대대적인 홍보를 할 예정이었지만 당시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가상 물리 시스템이라는 말이 어렵기 때문에 좀 더 간단한 용어를 사용하자고 제안했다. 이에 따라 산업적인 혁명을 의미하는 ‘인더스트리 4.0’이라는 용어가 만들어졌다.

스마트 팩토리 KL은 첨단 정보통신기술(ICT)을 이용해 생산 현장에서 한 기업에 종속되지 않고 독립적이며 폭넓게 적용할 수 있는 모듈형 스마트 팩토리를 개발하기 위한 플랫폼을 운영하고 있다. 이를 통해 어느 공장에나 적용할 수 있는 표준화된 자동화 기술과 솔루션을 제공해 독일의 인더스트리 4.0을 가속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공장의 디지털화·자동화를 고도화하고 인더스트리 4.0을 업그레이드할 목적으로 ‘프로덕션 레벨4’라는 새로운 기준을 정립해 발표했다. 이는 공장의 디지털화와 자동화 과정에서 인간의 역할을 강조한 개념으로 자동차의 자율주행 단계를 차용해 만들어졌다.

가장 높은 자율주행 단계인 레벨5는 운전자의 개입이 불필요한 완전 자율주행을 의미하며 레벨4는 대부분의 상황에서 운전자 개입이 불필요하지만 특정 조건이나 긴급 상황에서는 개입·제어가 요구되는 단계다.

프로덕션 레벨4는 기계와 인간의 능동적인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할 수 있게 하는 기술에 초점을 맞추고 있고 이는 자동화 기계를 통한 생산 공정의 투명성과 용이성을 담보함과 동시에 인간의 개입을 통한 안정성을 높일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경제적인 측면에서 보면 이러한 프로덕션 레벨4 개념의 스마트 팩토리는 맞춤형 제품의 생산 단가를 낮출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인간의 역할을 명확히 하기 때문에 일자리 확보 측면에서도 의미가 있다.
◆독일 스마트 팩토리의 주목할 만한 사례들

슈투트가르트 근교의 진델핑엔 메르세데스-벤츠 공장에서는 S클래스·E클래스·마이바흐를 생산한다. 생산의 80%를 로봇이 맡고 로봇이 하기 힘든 세부적인 업무를 사람이 작업하는 시스템으로 가동되고 있다. 메르세데스-벤츠는 2020년 9월 가동을 목표로 진델핑엔 공장에 100% 디지털화한 차세대 공장 ‘팩토리 56’을 추진 중이다.

팩토리 56은 축구장 30개 크기에 해당하는 22만㎡ 면적에 트럭과 전기자동차, 새로운 S클래스 모델(223 시리즈), EQS 모델을 생산한다. 전 세계 자동차 공장 최초로 5G 네트워크가 도입됐고 인공지능(AI)과 각종 스마트 디바이스가 적용된다.

‘팩토리 56’도 완전한 자동화 공장이 아니라는 점에서 앞서 언급한 프로덕션 레벨4의 기준에 부합한다. 즉, 작업을 조직하고 배송하고 품질을 보증하는 모든 과정에서 인간과 기계가 협력하는 구조이며 이를 디지털화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를 통해 기존 생산 체계에서 발생할 수 있는 오류나 비효율적 상황을 최소화하고 직원 간 원활한 소통을 도모하며 친환경적이고 높은 연료 효율성을 달성해 공장의 능률을 높이는 것이 주된 목적이다.

또한 공급 업체·개발·설계·생산에서 고객에게 배송되기 위한 물류센터 이동까지 전체 가치 사슬을 망라하는 360도 네트워킹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는 무인 운송 시스템(FTS), 무선 인식(RFID), 5세대 이동통신(5G) 기술의 합작품이다. 고객은 메르세데스-벤츠 애플리케이션(앱)에서 차량 생산 과정을 직접 확인할 수 있다.

또 다른 측면에서의 ‘영리함’은 공장이 태양광 발전 시스템 등 재생에너지를 통해 전기를 생산한다는 점이다. 이를 통해 매년 5000MWh의 전기가 절약된다. 메르세테스-벤츠는 2022년까지 모든 공장을 이산화탄소(CO₂) 중립으로 운영할 계획이다.

이 밖에 독일 인더스트리 4.0의 선두 업체인 보쉬의 사례도 주목할 만하다. 특히 최근 개발한 넥시드는 제조·물류의 전 과정에서 전체적인 가치 흐름에 필요한 소프트웨어와 서비스를 집약한 것이다. 보쉬는 전 세계 270개 이상의 공장에서 체계적으로 관련 지식을 심도 있게 습득해 이를 소프트웨어 솔루션으로 바꿨다. 이를 통해 노동자가 쉽고 빠르게 의사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지원함으로써 생산 과정을 지속적으로 개선해 나간다. 이를 통해 기계 능력은 기존 대비 15%, 생산 능력은 5~10%로 향상할 수 있다.

노동자들은 앱을 참조해 기계의 상태 보고서를 얻을 수 있고 유지·보수 작업 또는 자재 공급과 같은 작업을 명확하고 쉽게 얻을 수 있다. 또한 모든 작업 과정이 디지털 문서와 이미지·비디오의 형태로 쉽게 저장되고 누구나 접근할 수 있기 때문에 고장 시 수리 시간을 20% 정도 단축할 수 있고 예측 유지·보수가 가능하다. 독일 홈부르크의 보쉬 공장에서는 넥시드를 사용해 전체 물류 시스템을 최적화했다.

이를 통해 창고부터 생산 라인을 거쳐 워크 스테이션으로의 이동까지 전 과정을 투명하게 보여준다. 기존에는 재료 흐름과 상태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는데 반 이상의 시간을 소비했다. 보쉬는 넥시드 프로그램이 기존 대비 효율성을 35% 높일 수 있다고 소개했다.

코로나19로 경제 전망은 비관적이지만 새로운 대안으로서의 스마트 팩토리는 나날이 발전해 나가고 있다. 이 가운데 지난 6월 초 유럽 시장을 겨냥해 독일 뮌헨에 유럽 지사를 설립한 현대로보틱스의 행보가 흥미롭다. 산업용 로봇에 특히 강점이 있는 현대로보틱스가 유럽 시장에서 어떠한 활약을 펼치느냐에 따라 코로나19 위기가 스마트 팩토리업계에서는 위기가 아닐 수 있다는 것을 방증해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독일은 유럽의 로봇 전체 수요 중 약 37%를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크고 타 지역보다 로봇 수요가 압도적으로 많은 독일·이탈리아·프랑스·스페인 등 서유럽 4개국과 인접해 지리적 이점이 있다. 또한 독일 정부에서 정책적으로 디지털화와 자동화에 대해 기업에 지원을 아끼지 않기 때문에 유럽에도 특별히 의미 있는 시장이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88호(2020.08.01 ~ 2020.08.07)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