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 리포트Ⅰ]
-제약·바이오, IT 업종에 공격적 투자-지방 금융지주 주식도 쓸어 담아
[한경비즈니스=이정흔 기자] 725조8000억원. 지난 4월을 기준으로 국민연금에 적립된 기금의 규모다. 규모면에서 세계 3대 연기금 중 하나인 국민연금은 국내는 물론 글로벌 금융 시장에서도 영향력이 매우 큰 ‘공룡 중의 공룡’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장기화되면서 금융 시장의 혼란이 지속되고 있다. 하지만 오히려 지금과 같은 시기일수록 애써 숨을 고르고 장기적인 수익률을 높이기 위한 투자 전략을 재정비하기에 더없이 좋은 기회다. 팬데믹(세계적 유행) 시대, 국민연금은 어떻게 투자하고 있을까. ‘장기 투자’를 기본으로 움직이는 국민연금의 투자 바구니를 살펴보는 것은 지금과 같은 혼란의 시기에 투자 전략을 고민하는 이들에게도 좋은 ‘길잡이’가 될 것이다.
‘코로나19 수혜주’ 쏙쏙 골라 담은 국민연금, 투자 전략 뜯어보니
국내 금융 시장에서 국민연금공단의 영향력은 그야말로 막강하다. 국민연금공단의 운용 규모가 처음 100조원을 넘어선 것은 2003년이다. 이후 불과 7년 뒤인 2010년 300조원 규모로 불어났고 2017년에는 600조원을 넘어섰다. 그리고 불과 3년여 만에 운용 규모가 726조원에 이른 것이다. 세계 여느 연기금과 비교하더라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빠른 속도다.

한국경제연구원이 지난해 12월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18년 말을 기준으로 국민연금이 5% 이상 지분율을 보유한 국내 상장사는 273곳이었다. 국민연금이 주식 의결권을 보유한 716개 국내 상장사 중 38.1%에 달하는 비율이다. 이 중 보유 지분이 10%가 넘는 기업만 80개다. 국민연금이 최대 주주로 있는 기업 19개, 2대 주주인 기업 150개, 3대 주주인 곳은 59개였다. 국민연금의 운용 자금이 어디로 어떻게 움직이느냐에 따라 국내 주식 시장의 흐름이 달라질 수 있을 만큼의 영향력이다.

국민연금은 1988년 기금이 조성된 이후 현재까지 연평균 누적 수익률 4.98%를 기록하고 있다. 특히 지난 7월 3일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9년 국민연금의 금융부문 기금 운용 수익률은 11.34%로, 기금 운용 설립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2018년 수익률 마이너스 0.89%보다 12.23%포인트 상승했다. 자산군별 수익률은 국내 주식 12.46%, 해외 주식 31.64%, 국내 채권 3.55%, 해외 채권 12.05%, 대체 투자 9.82%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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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감한 조직 개편과 투자 다변화를 통해 장기적으로 수익률 제고에 성공한 국민연금은 하지만 팬데믹의 여파는 피해 가지 못했다. 지난 1분기 수익률 마이너스 2.57%로 다시 마이너스로 돌아선 것이다. 하지만 이 또한 조금 더 깊이 살펴보면 달리 해석될 여지가 있다. 팬데믹 위기로 인해 국민연금뿐만 아니라 글로벌 최대 연기금인 노르웨이 GPFG(-14.6%)를 포함해 대부분의 해외 연기금들은 마이너스 10%대 수익률을 기록하고 있다. 이와 비교해 보면 국민연금은 지난 1분기 수익률은 ‘선방’한 셈이다.

국민연금은 홈페이지를 통해 ‘기금 운용 계획’과 관련한 정보들을 공개하고 있다. 국민연금의 투자는 해마다 마련되는 ‘중기 자산 배분 계획’과 ‘연간 기금 운용 계획’에 따라 이뤄진다. 이 중 연간 기금 운용 계획은 국내외 투자 여건과 포트폴리오 현황 등을 고려해 세운 ‘전략적인 목표’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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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따르면 2020년 목표 포트폴리오는 국내 채권이 41.9%, 국내 주식 17.3%, 해외 주식 22.3%, 대체 투자 13.0%, 해외 채권 5.5%다. 2017년 채권·주식·대체 투자 비율이 각각 50.6%, 38.6%, 10.8%였던 것을 감안하면 국민연금이 향하고 있는 방향은 명확하다. 채권에 쏠려 있는 투자 비율을 낮추고 주식과 대체 투자의 비율을 확대하는 ‘투자의 다변화’다. 이는 향후 5년을 목표로 한 중기 자산 배분 계획에도 잘 나타난다. 국민연금의 2024년 목표 포트폴리오는 채권 40% 내외, 주식 45% 내외 그리고 대체 투자 15% 이내로 설정돼 있다.

◆ 보유 주식 톱10, 삼성전자·마이크로소프트

홈페이지에 공개된 자료를 바탕으로 자산군별 투자 현황을 살펴보면 국내 주식 투자 규모는 2020년 1분기 말 기준으로 110조원 규모다. 국민연금은 이 중 54.7%에 해당하는 60조원의 자산을 직접 운용하고 있다. 세부적인 포트폴리오 구성(2018년 말 기준)은 전기전자 30.2%, 금융업이 17.9%, 화학(9.1%), 서비스업(7.5%) 등에 투자돼 있다. 톱10 투자 종목을 살펴보면 국민연금이 지분율 10%를 보유하고 있는 삼성전자가 압도적인 1위(평가액 23조882억원, 전체 자산군 내 비율 21.5%)다. 뒤를 이어 SK하이닉스(평가액 3조9915억원, 3.7%), LG화학(2조4038억원, 2.2%), 포스코(2조2685억원) 등으로 나타나 있다.

해외 주식의 투자 규모는 지난 1분기 기준으로 총 141조원4000억원으로 이 중 54조6000억원의 자산을 직접 운용하고 있다. 포트폴리오를 살펴보면 지역별 투자 비율은 북미가 56.82%로 압도적으로 높다. 이어 유럽 21.77%, 일본 6.58% 등에 투자하고 있다.

업종별로는 금융업에 대한 투자 비율이 16.9%로 가장 높다. 뒤를 이어 정보기술(IT) 업종에 14.26%, 헬스케어 12.97% 등에 투자하고 있다. 톱10 투자 종목은 1위가 마이크로소프트(평가액 1조7800억원, 자산군 내 비율 1.57%), 공동 2위는 애플(1조3700억원, 1.21%)과 아마존(1조3700억원, 1.21%), 4위 알파벳(9700억원, 0.86%), 5위 텐센트(8300억원, 0.74%)로 주로 글로벌 IT 기업들을 중심으로 투자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단 국민연금이 홈페이지에 공개하고 있는 세부 포트폴리오 구성과 톱10 종목은 ‘국민연금 기금 운용 지침 및 규정’에 따라 현재 2018년 말을 기준으로 공개돼 있다. 국민연금과 같은 국내외 금융 시장에 막강한 영향력을 미치는 공룡 투자 기관의 장기적인 투자 전략에 대한 뼈대를 파악하기에 이보다 정확한 정보는 없다고 볼 수 있다.
‘코로나19 수혜주’ 쏙쏙 골라 담은 국민연금, 투자 전략 뜯어보니
그렇다면 팬데믹 이후 국민연금의 투자 종목에는 어떤 변화가 있을까. 금융 정보 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지난 7월 20일을 기준으로 국민연금이 5% 이상 지분을 보유한 국내 상장사는 총 323개로 지분 가치는 총 126조5800억원에 달한다. 지난 1분기 말(100조4500억원) 대비 26조1300억원이나 급증한 규모다. 코로나19 이전인 작년 말(121조8500억원)과 비교해도 4조7300억원 증가한 규모다.

먼저 국민연금의 ‘주식 보유 톱10 종목’들을 중심으로 살펴보면 국민연금은 대부분의 종목들에서 투자를 늘린 것으로 확인됐다. 1위인 삼성전자는 2018년 말 지분 보유율 10%에서 지난 7월 29일 기준 지분 보유율이 11.1%로 증가했다. SK하이닉스는 2018년 말 지분 보유율 9.1%에서 11.6%로 증가했고 LG화학(9.8%→11.6%), 포스코(10.7%→11.6%로), SK텔레콤(9.8%→11.7%)으로 보유 지분을 늘렸다. 뒤를 이어 현대차 또한 8.2%에서 11.53%로 보유 지분을 크게 늘렸다. 특히 네이버에는 지분 보유율이 9.5%에서 12.84%로 대폭 뛰며 ‘주식 보유 톱10 종목’들 가운데 가장 적극적인 투자를 진행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민연금은 현재 네이버의 최대 주주다. 국민연금의 ‘주식 보유 톱10’ 종목 가운데 투자를 줄인 기업은 삼성SDI가 유일하다. 2018년 말 기준 국민연금 보유 지분 11.9%에서 7월 29일 기준 9.94%로 1.96%포인트 줄었다.

◆더블유게임즈·한독 등 새로 ‘찜’

‘주식 보유 톱10’ 종목 외에도 팬데믹을 기점으로 새롭게 투자 바구니에 담긴 목록들도 적지 않다. 기업 평가 사이트 CEO스코는 7월 17일 국민연금이 5% 이상 지분을 보유한 상장사들의 지분 현황을 조사해 ‘지분율 증가 톱30’ 기업과 ‘지분율 감소 톱30’ 기업을 발표했다. CEO스코어의 자료에 따르면 올 상반기 국민연금에서 5% 이상 신규 취득한 곳은 24곳이었고 5% 미만으로 지분율을 낮춘 곳은 37곳으로 나타났다.

먼저 국민연금이 신규 편입한 종목들 가운데 가장 공격적으로 투자를 확대한 대표적인 기업은 더블유게임즈다. 올 들어 10.12%의 지분을 확보하며 신규 편입한 종목들 가운데 가장 높은 지분을 보유하게 됐다. 소셜 카지노 게임 사업을 진행하는 더블유게임즈는 대표적인 ‘코로나19 수혜주’로 꼽힌다. 슬롯 게임을 비롯해 소셜 네트워크에 기반한 카지노 게임을 운영하고 있는데 지난해부터 시작된 북미 시장에 대한 공격적인 마케팅 효과와 함께 코로나19로 인해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모바일 게임에 대한 수요가 크게 증가한 것이다. 실제 더블유게임즈는 올 2분기 1888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는데 전년 동기 대비 45.3% 늘어난 수치다. 영업이익은 593억원으로 47%를 훌쩍 넘었고 순이익은 442억원으로 48.1% 증가했다.
‘코로나19 수혜주’ 쏙쏙 골라 담은 국민연금, 투자 전략 뜯어보니
이 밖에 제약·바이오 부문에 대한 신규 투자가 늘어난 것이 눈에 띈다. 한독(8.52%)과 JW중외제약(5.27%)이 대표적이고 종근당바이오도 새롭게 국민연금의 투자 바구니에 담겼다.
한독은 코로나19 사태에도 탄탄한 실적을 유지하고 있는 대표적인 제약 업체다. 당뇨병 치료제 테렐리아 등의 매출 증가와 함께 지난해 한독과 제넥신이 투자한 미국 바이오 벤처 레졸루트에 대한 투자도 기대감을 높이는 요인이 되고 있다. 한독은 바이오 기업 제넥신의 대주주이기도 하다. JW중외제약은 국내 독점 판권을 보유한 ‘악템라’가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코로나19 중증 환자를 대상으로 치료 효과와 안전성을 평가하는 임상 3상 착수를 승인받았다는 소식이 전해지며 주목 받은 바 있다. 혈액 응고제인 ‘나파벨탄’을 생산하는 종근당바이오도 코로나19 치료제 개발 소식과 함께 주목 받고 있는 대표적인 바이오 기업이다.

심텍(6.25%), 현대에너지솔루션(5.04%), 성광벤드(5.03%) 등의 기업도 국민연금의 주식 대량 보유 투자 기업 목록에 오르며 화제를 모으고 있다. 반도체용 인쇄회로기판(PCB)을 개발, 생산하는 심텍은 서버와 그래픽 관련 제품의 매출 증가에 힘입어 올 2분기 영업이익률이 10% 정도 늘어났다. 현대중공업그룹의 태양광 부문 계열사인 현대에너지솔루션은 태양광 스마트 팩토리를 완공하며 각광받고 있다. 충북 음성에 750MW 규모의 새 공장을 증설해 총 1.35GW 규모의 태양광 모듈 생산 능력을 갖추게 됐다.

성광벤드는 용접용 금속관 이음쇠를 제조하는 회사다. 금속관 이음쇠는 조선업·석유화학·조선해양·발전플랜트 등에 주로 사용된다. 코로나19로 인해 조선사와 건설사가 직격탄을 맞으며 성광벤드의 주가 또한 하락세를 보였지만 장기적인 성장 가능성을 높게 보고 투자를 진행한 것으로 분석된다. 국민연금은 성광벤드와 함께 금속관 이음쇠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태광에도 투자를 늘렸다. 지난해 말 기준 3.89%였던 지분을 5.01%까지 늘렸다.

◆ 정통 제조업과 항공·유통 주식 비율 낮춰

신규 편입한 종목들을 제외하고 국민연금이 투자를 가장 확대한 기업은 DGB금융지주다. 7월 29일을 기준으로 한 국민연금 보유 종목 현황에 따르면 현재 국민연금은 DGB금융지주의 지분 10.28%를 보유하고 있는 최대 주주다. 지난 1년 새 보유 지분을 2배 정도 늘린 결과다. 지난해 6월 30일 기준 국민연금의 DGB금융지주 지분은 4.97%였다. 눈여겨볼 것은 DGB금융지주 외에도 지방 금융지주에 대한 국민연금의 관심이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는 점이다. 같은 기간 JB금융지주의 지분은 9.2%로 1년 전(5.03%)과 비교해 4.19%포인트 확대됐다. 이 밖에 BNK금융지주 또한 현재 국민연금이 최대 주주로 지분 13.60%를 보유 중이다.

지방 금융지주들의 주가는 지지부진한 흐름을 보이고 있지만 국민연금이 이들 지방 금융지주 쇼핑을 지속하는 데는 ‘배당 성향’이 주요인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동안 지방 금융지주들은 국내 대형 금융그룹에 비해 배당에 다소 소극적인 성향을 보여 왔지만 최근 들어 꾸준히 배당 성향을 높이고 있다. BNK금융지주와 DGB금융지주의 배당 성향은 지난해 20%를 돌파했다. JB금융지주 역시 최근 김기홍 회장을 중심으로 배당 정책을 강조하며 17%까지 배당 성향이 개선됐다. 이와 함께 대형 금융지주들과 비교해 지방 금융지주의 지분 보유 한도 규제가 더 느슨한 것도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분석된다. 현행 은행법과 금융지주회사법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시중은행을 보유한 대형 금융지주 주식을 10%까지만 보유할 수 있다. 이와 비교해 지방 금융지주 지분은 15%까지 획득할 수 있다.
‘코로나19 수혜주’ 쏙쏙 골라 담은 국민연금, 투자 전략 뜯어보니
지분 확대 30개 기업 가운데 가장 많은 투자를 진행한 업종은 IT·전기전자였다. 신규 편입 종목을 포함해 총 9개 IT·전기전자 기업에 투자를 확대했다. 세라믹 칩과 안테나 부품 회사로 전장 부품의 성장성이 부각되고 있는 아모텍과 반도체 공정에 쓰이는 저압 화학 증착 장비(LPCVD)와 플라스마 처리 장비, 반도체 증착 장비(ALD) 등을 생산하는 유진테크가 대표적이다.

국민연금은 아모텍의 지분을 전년 대비 3.47%포인트 늘리며 현재 8.61%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유진테크는 현재 국민연금의 보유 지분이 9.97%로 전년 대비 3.31%포인트 늘어났다.
이 밖에 코로나19 이후의 산업 지형 변화를 염두에 둔 비대면 관련 서비스 업종과 배터리 관련 석유화학 업종에서도 투자를 대폭 확대했다. 비대면 방식의 새로운 마케팅 서비스를 개발하고 있는 제일기획(전년 대비 3.44%포인트 증가)과 전기차 부품 소재 사업에 진출한 SK케미칼(전년 대비 2.82%포인트), 수소 탱크 사업을 운영하며 ‘수소차 관련주’로 꼽히고 있는 일진다이아(2.44%포인트)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반대로 국민연금이 투자를 줄인 종목들도 있다. 조선·기계·설비와 자동차 부품 등 정통 제조업과 항공, 유통·교육 업체에 대한 투자가 대체로 축소된 것으로 나타났다. 서비스 업종에서는 신세계I&C의 지분(5.26%)이 지난해 대비 5.97% 줄었고 SBS콘텐츠허브(전년 대비 -5.29%포인트), CJ CGV(전년 대비 -5.01%포인트), 메가스터디(전년 대비 -2.26%포인트)도 투자 비율을 줄였다. 대한항공(-4.63%포인트)과 한진(-2.25%포인트), 호텔신라(-2.83%포인트) 등의 지분 감소도 눈에 띈다.
vivajh@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88호(2020.08.01 ~ 2020.08.07)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