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크 관리 ABC]
- 리스크 관리 실패하면 230년 기업도 한번에 무너져…‘유기적 결합’ 이뤄야
제2·제3의 베어링스 사태를 막으려면  [장동한의 리스크 관리 ABC]
[한경비즈니스 칼럼 = 장동한 건국대 국제무역학과 교수·한국보험학회 회장] 올해 초 유명한 미 프로농구 선수 코비 브라이언트가 헬기 사고로 유명을 달리했다. 브라이언트 선수는 현란한 개인기로 전 세계에 많은 팬들을 가지고 있었는데 범상치 않은 그의 이름 또한 유명세에 한몫했다. 역시 농구 선수였던 브라이언트 선수의 아버지가 일찍이 일본 고베(Kobe)를 방문했다가 고베산 와규 맛에 반해 아들 이름을 ‘코비’라고 지었다는 것이다. 오사카 인근에 있는 아름다운 항구 고베는 1995년 1월 새벽 발생했던 악몽과 같은 대지진으로도 유명하다. 리히터 규모 7.3의 고베 대지진은 사망자만 6400명에 재산 피해 10조 엔의 엄청난 재해였다.

지진과 같은 자연재해는 주가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두말할 것도 없이 일단 떨어진다. 사태가 어느 정도 수습된 후의 주식 시장은 어떻게 될까. 그때부터 주식 투자는 그야말로 도박이 된다. 상당 기간 침체에 빠질 수 있고 도시 인프라 재건이 본격화되면 주가 상승의 요인도 된다.

1995년 1월 고베 대지진의 여파로 닛케이225지수는 급락했다. 이때 바다 건너 싱가포르 금융선물거래소(SIMEX) 시장에서 닛케이225지수 거래를 하던 영국 베어링스은행 소속 닉 리슨은 동물적 본능으로 닛케이225지수 선물을 대거 매입했다. 세계 제2위 경제 대국인 일본이 대규모 재정을 투입해 고베 재건에 나설 것이란 매우 상식적인 분석에 의거한 투자였지만 선물 매입에 올인한 ‘투기성’ 투자였다.

2월 초 닛케이225지수가 반등에 성공하면서 리슨은 기존의 투자 피해를 말끔히 지울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지만 예상외로 큰 지진 피해에 2월 말 닛케이225지수는 재차 폭락했고 베어링스은행의 손실은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났다.

졸지에 14억 달러라는 전대미문의 막대한 손실을 본 230년 전통의 영국 베어링스은행은 이웃 나라 네덜란드의 ING에 단돈 1파운드에 팔렸다.

일본 고베에서 발생한 지진의 여파로 싱가포르에서 일본 주가지수를 대상으로 선물 거래를 하던 영국 은행이 망하고 네덜란드 금융그룹이 망한 영국 은행을 인수했다는 글로벌한 스토리다. 금융 국제화의 어두운 이면인데 베어링스은행이 망하는 과정을 들여다보면 리스크 관리의 실패가 중첩돼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말 그대로 ‘토털’ 리스크다. 자연재해 리스크, 사기 리스크, 내부 통제 리스크, 투기 리스크, 관리 감독 리스크, 거버넌스 리스크 등등….

일개 선물 딜러가 트레이딩 업무와 백오피스 업무를 같이 관장했다. 리슨의 사기 행각이 근본적인 문제였지만 베어링스은행 현지 지점 매니저의 관리 감독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아시아 지역 본부장과 본부의 층층시하 상관들은 도대체 무엇을 했을까. “당신들은 잘했나”라는 리슨의 손가락질을 피하기 어려웠다.

최근 들어 GRC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GRC는 거버넌스·리스크·컴플라이언스(Governance·Risk Compliance)의 영문 앞 글자를 따 만든 말로 조직의 지배 구조, 리스크 관리, 준법 활동을 총체적으로 다루는 전략을 의미한다.

GRC는 한 조직이 비즈니스 목표에 맞춰 발전·운영 방향을 전사적으로 설정하고 조직이 당면한 제반 리스크를 효율적으로 관리하며 법·규제의 준수를 충족시키는 기능을 한다.

리스크 관리 기능이 한 조직에 내재화돼 체화되고 타 기능들과 유기적으로 결합될 때 소기의 성과를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다. 반면 리스크 관리가 조직에 정착되지 못하면 제2·제3의 ‘베어링스 사태’는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88호(2020.08.01 ~ 2020.08.07)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