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취재] 공직 퇴직 후 ‘유쾌한 반란’ 활동 나선 김동연 전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 대선 얘기에 손사래…“상생·통합 길, 제도권 정치보다 생활정치에서 찾을 수 있다는 희망 봤다”
- '대선 주자로, 서울시장 후보로도 거명된다' 질문에 "애초부터 생각할 것도 없는데 뭐..."
- "유쾌한 반란 취지, 계층 이동 사다리 놓기와 혁신 소통"
- "고위 공직자 퇴임 후 갔던 길 아닌 다른 길 갈 것"
김동연 “‘사회적 임팩트 기업’으로 새바람 일으킬 것”
[한경비즈니스 = 홍영식 대기자] “약 35년간 공직 생활을 하면서 마음속으로 공직을 하는 이유에 대해 답을 찾으려고 했습니다. 찾은 답은 사회 변화에 작게나마 기여하자는 것이었어요. 퇴임 뒤 1년 반 동안 공직 생활을 되돌아보며 성찰과 자성을 했습니다. 전국을 돌아다니며 일반 시민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듣고 희망과 새 가능성을 봤습니다. 생각이 달라도 서로 양보하고 협력하면서 상생하려는 의지와 실천을 봤죠. 변화의 물줄기는 위에서부터가 아니라 아래에서부터 옵니다.”

경북 예천군 가곡1리 쌀아지매 농장은 예천벤처포럼 회원들로 북적였다. 벤처 농업인들의 도전과 변화, 새로운 기회를 모색하기 위해 열린 워크숍에 초청받은 김동연 전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아래로부터의 반란, 혁신’과 이를 위한 실천을 강조했다. 김 전 부총리가 예천을 방문한 것은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그는 지난해 8월 이곳에서 가진 청년 농업인들과의 간담회에서 다시 오기로 약속한 바 있다.

그는 문재인 정부 초대 경제부총리에 발탁돼 약 1년 7개월 재직한 뒤 2018년 12월 퇴임했다. 그 뒤 대학총장, 정치권 영입 등 잇단 제의를 뿌리치고 전국을 돌았다. 언론 접촉도 피했다. 그간 기자는 기자와 취재원으로 오랫동안 인연을 맺은 김 전 부총리와 여러 차례 통화할 기회가 있었다. 그때마다 인터뷰 요청을 했지만 그는 정중하게 사양했다. 지난 1월 그가 주도해 만든 사단법인 ‘유쾌한 반란’ 활동이 자칫 정치적으로 해석될 여지를 남기지 않으려는 뜻으로 보였다. 더욱이 7월 초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이 대선과 관련, “밖에서 꿈틀꿈틀하는 사람도 있는 것으로 안다”면서 그가 주목 받은 터다.

그는 당시 기자와의 통화에서 대선 주자로 거론되는데 대해 “무슨 얘기냐. 금시초문이고 어리둥절하다”며 “지금 단계에서 그런 데 관심을 가질 계제가 아니고 그런 일에 내가 끼어들 일이 뭐가 있겠나”라고 반문했다. 김 전 부총리의 진의가 궁금해 예천 워크숍 현장을 찾았다. 그는 정치와 대선에 대한 거듭된 질문에 손사래를 쳤다. 동행 취재를 하며 간간이 나눈 대화에서 김 전 부총리는 ‘유쾌한 반란’의 설립 취지, 활동 내용, 향후 계획 등을 소개하는 데 주력했다.

▶정치와는 담을 쌓은 겁니까.

“나와 상관없는 일에 부화뇌동할 필요는 없죠. 여기 와서 (농민들과)호흡하고 있는 그대로 얘기하는 것은 정치가 아니고 민생입니다. 이게 삶의 모습입니다.”

▶부총리 퇴직 후 무슨 일을 했습니까.

“2018년 12월 공직에서 물러나고 바로 아내와 같이 지방 여러 곳을 다녔습니다. 공직 생활을 하면서 있었던 일에 대해 성찰과 반성을 하기 위해서였죠. 지난 1년 7개월 동안 경제 활동은 일체 하지 않고 가보지 않은 길을 가보려고 했습니다.”

▶어떤 길입니까.

“고위 공직자들이 퇴임해 (일반적으로) 갔던 길이 아닌 다른 길입니다. 현직에 있었던 일들을 되돌아보면 보람과 아쉬움이 교차합니다. 아쉬움이 남는 부분에서 부족한 것을 채우려고 하는데 서울에 있으면 아무래도 연락도 많이 와서…. 강연과 간담회는 재능 기부 차원에서 하고 있습니다. 생활은 공무원 연금으로 충당합니다.”

▶대선 주자로도 거론되고 서울시장 후보로도 거명됩니다.

“애초부터 생각할 것도 없는데 뭐….”

▶유쾌한 반란은 언제 구상했는지요. 또 취지는 무엇입니까.

“작년 가을부터입니다. 우리 사회에 좋은 말은 많지만 정작 실천은 부족합니다. 집사람과 버스 타고 기차 타고 지방을 다니면서 서로 협력하고 상생하려는 의지와 실천을 봤습니다. 우리 사회의 상생과 통합의 길도 제도권 정치보다 생활 정치에서 찾을 수 있다는 희망을 봤죠. 그래서 공감 공유 연대를 기본 철학으로 하고 ‘작은 실천이 모여 큰 변화를 만든다’는 모토로 지난 1월 사단법인 유쾌한 반란을 만들었습니다. 취지는 첫째, 계층 이동 사다리 놓기를 통해 사회적 이동성을 원활하게 하자는 겁니다. 둘째는 혁신입니다. 여러 분야에서 혁신이 필요하지만 농업과 어업 분야부터 시작했습니다. 지난 5월엔 대전 선진 농업 마스터 클래스 강연, 전남 벌교 유기농 농업 청년 간담회, 7월엔 경남농업기술원 강연, ·경남 거제 다대포 어촌계 간담회, 경남 통영 어촌계 간담회, 경남 밀양 얼음골 사과 마을 간담회 등을 열었습니다. 부산 벤처기업인 대상 강연과 간담회도 했죠. 셋째는 소통과 공감입니다. 이를 위해 ‘영·리해’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영·리해’는 ‘젊다’는 ‘영(young)’과 언더스탠드(understand)의 ‘이해’를 합성한 말입니다. 세대 간 소통을 해보자는 취지로 이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어요. 의견이 다르다고 여겨지는 사람을 이해하고 이들과 소통하는 것은 우리 사회 변화를 이끌어 내는 유효한 작은 실천 중 하나입니다.”

▶유쾌한 반란에 누가 참여하고 있고 운영은 어떻게 합니까.

“재단법인이 아니고 사단법인이라 사람들의 모임이죠. 무료 회원과 유료 회원을 합해 400명 가까이 됩니다. 4·15 총선 전까지는 활동을 별로 하지 않았습니다. 정치한다고 오해할까봐…. 순수하게 회비로만 운영합니다. 출범 때 이런 약속을 했습니다. ‘정부 지원은 일절 받지 않는다. 임원들은 무보수 자원봉사로 한다. 운영과 재정은 투명하게 한다’는 것이죠. 순수하게 자원봉사로 운영합니다. 전국을 직접 찾아다니며 소요되는 경비는 전적으로 내 돈으로 씁니다.”

▶향후 계획은 무엇입니까.

“농·어업 혁신을 지속적으로 추진할 겁니다. 또 준비하고 있는 것은 기업 혁신입니다. 굉장히 파장을 일으킬 겁니다. ‘소셜 임팩트(social impact) 기업’ 포럼을 만들 예정이에요.”

▶‘소셜 임팩트 기업’ 은 무슨 뜻이고, 포럼을 만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사회적 기업보다 차원이 높은 거죠. 사회적 가치와 경제적 가치를 함께 추구하는 기업입니다. 기업이 경제활동을 하며 사회에 기여하는 역할을 하는 거죠. 매출을 많이 올리고 수익을 많이 내는 게 경제적 가치고 사회적 가치는 사회를 위해 좋은 일을 하는 겁니다. 사회적 기업과 개념이 비슷해 보이지만 정부 지원을 받아 장애인 지원 등을 하는 것이 사회적 기업이라고 한다면 사회적 임팩트 기업은 경제적 활동을 잘하면서 사회적 가치도 추구하는 것이죠.”
김동연 “‘사회적 임팩트 기업’으로 새바람 일으킬 것”
▶사회적 가치는 구체적으로 어떤 겁니까.

“모든 분야가 다 됩니다. 비즈니스도 잘하고 사회를 위해 기여하는 기업들이 많습니다. 그런 기업들 100개 정도를 모으려고 하고 있고 이미 10개 기업과 준비하고 있습니다.”

▶어떤 형식으로 합니까.

“일단 포럼을 만들 겁니다. ‘영·리해’ 프로그램의 일환이죠. 우선 이런 기업들의 홍보도 하고 마케팅도 좀 도와주려고 합니다. 우리 사회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켜 이런 기업들이 더 발전할 수 있게 지원할 예정입니다. 사회적 임팩트 기업의 기본 바탕은 기업가 정신이죠. 이런 혁신의 바탕 아래 사회적 이동과 소통을 원활히 하자는 게 사회적 임팩트 기업의 취지입니다.”

▶대기업들도 포함되는 겁니까.

“소셜 임팩트를 가장 비슷하게 하는 곳이 포스코와 SK입니다. 대기업 말고 이름 없는 기업을 좀 더 발전시킬 수 있게 지원하자는 겁니다. 사연이 있습니다. 부총리 때 삼성·현대자동차·SK 등 현장에 갔어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만날 땐 청와대에서 가지 말라고 했지만…. SK 현장을 갔을 때죠. ‘백팩’을 하나 선물 받았습니다. 그 가방을 만든 회사가 모어댄입니다. 엄청난 공해가 발생하는 폐차 시트로 가방을 만드는 회사죠. 스토리가 재미있어요. 내가 받은 가방이 얼마짜리냐고 물었더니 22만원이라고 하더라고요. 공직자는 5만원 이상 선물을 받지 못합니다. 그래서 내가 현금을 주고 샀어요. 몇 달 전에 모어댄 최이현 대표에게서 페이스북을 통해 주례를 좀 서 달라는 연락이 왔습니다. 주례는 안 선다고 하고 한 번 만나자고 했더니 왔습니다. 내가 가방을 산 사실이 신문에 나고 매출이 10배 정도 늘어났다고 했습니다. 몇 달 동안 재고가 없어 팔지 못할 정도가 됐다고 말했어요. 그 회사가 확 큰 겁니다. 내가 준 현금을 액자에 보관해 걸어 놓았다고 합니다. 최 대표와 함께 6개의 소셜 임팩트 기업 대표도 같이 왔었습니다. 이들의 얘기를 들어보니 감동적이었어요. 그래서 기업을 혁신해야겠다고 구상한 거죠. 8월 또는 9월에 포럼을 출범시킬 예정입니다.”

▶향후 프로그램이 있습니까.

“일단 정보도 교환하고 함께 모여 공부도 하고 홍보와 마케팅을 도와주는 방법 등을 통해 사회적 임팩트 기업의 취지가 많이 확산되도록 할 예정입니다.”

▶좀 전에 언급한 대로 김 전 부총리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만날 때 청와대에서 가지 말라고 해 논란이 일었습니다. 청와대에서 왜 가지 말라고 했습니까.

“그 얘기는 더 이상 안 하겠습니다. 지금 얘기할 것은 아닌 것 같고…. (김 전 부총리는 이내 화제를 사회적 임팩트 기업으로 돌렸다) 사회적 임팩트 기업 바탕이 혁신과 기업가 정신인데 기업 혁신 쪽에 관심을 갖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정치권에서 대선 주자로 발돋움하기 위해 갖춰야 할 조건으로 크게 세 가지를 꼽는다. 정치적 리더십과 콘텐츠, 스토리다. 김 전 부총리의 정치적 리더십은 아직 미지의 영역이지만 콘텐츠와 스토리는 갖췄다는 게 정치권의 시각이다. 여야가 지난 총선을 비롯해 줄곧 김 전 부총리에게 눈독을 들인 이유다. 초등학교 때 사업하던 부친이 갑자기 돌아가시는 바람에 청계천 무허가 판잣집에서 자라 주경야독 끝에 입법고시와 행정고시에 모두 합격, 관료 성공 신화를 이뤘다는 것은 대선판에 먹히기에 충분한 스토리다. 오랜 경제 관료 생활은 ‘경제난을 돌파할 적임자’라는 타이틀을 내거는 데 손색이 없는 경력이다.

그는 그러나 부총리에서 물러난 뒤 정치와 거리를 두고 있다. 지난해 7월 여야 영입설이 불거졌을 때 김 전 부총리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여러 곳에서 제안이 많이 오는데 다 거절하고 있다. 정치권에서 연락도 많이 오지만 지금은 공직 생활을 되돌아 보며 반성과 성찰을 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페이스북에서 정치에 대해 이렇게 언급했다. “34년 넘는 공직 생활 동안 제도권 정치를 가까이에서 경험하면서 정치는 시대적 소명의식, 책임감, 문제 해결 대안 없이는 할 수 없는 일이라고 느꼈다.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아무나 해서도 안 되는 것이 정치란 생각이다.”

yshong@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88호(2020.08.01 ~ 2020.08.07)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