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점 4사, 올 상반기 명품 매출 일제히 증가
-“2030이 성장 이끌고 이젠 10대까지”
“코로나19도 뚫었다” 불황 모르는 명품 시장


[한경비즈니스=김정우 기자] 직장인 김종민(38·가명) 씨는 올해 결혼기념일을 맞아 큰마음을 먹고 부인에게 명품 시계를 선물하기로 했다. 그가 구매를 원하는 제품은 ‘롤렉스 데이저스트 콤비’다. 이 브랜드에서 가장 인기 있는 모델 중 하나로 가격은 1400만원에 달한다.

하지만 약 한 달 넘게 물건을 구하지 못해 부인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있다. 수시로 백화점 내에 있는 롤렉스 매장을 직접 방문하거나 전화를 걸어 제품이 있느냐고 물어봐도 매번 ‘고객님 제품이 준비돼 있지 않습니다’라는 답변만이 돌아올 뿐이다.

김 씨는 “매장 직원에 따르면 롤렉스의 모든 제품들은 하나하나 수작업으로 제작하기 때문에 소량으로 불시에 입고되는데 인기 모델들은 들어오는 즉시 팔린다고 했다”며 “돈이 있어도 원하는 제품을 사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그는 “한두 푼도 아니고 무려 1000만원이 넘는 시계가 이렇게 갖기 어려울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인터넷에서 롤렉스 구매 후기를 찾아보면 김 씨는 그래도 ‘양반’이다. 수개월 넘게 원하는 제품을 찾지 못하다 운이 좋아 살 수 있었던 ‘롤렉스 구매 무용담’을 적어 놓은 글들도 쉽게 읽을 수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심각한 경기 침체와 소비 위축 속에서도 명품 시장은 여전히 뜨겁게 달아오르며 ‘호황’을 이어 가고 있다.

코로나19 확산세가 가팔랐던 지난 5월에는 ‘샤넬’이 제품 가격 인상을 예고하자 미리 상품을 구매하려던 이들이 백화점 앞에 장사진을 이루기도 했다. 김 씨의 사례와 함께 국내 시장에서 명품의 인기가 어떤지 엿볼 수 있는 단면들이다. 명품 시장을 두고 ‘코로나19 무풍지대’라는 비유까지 등장했다.


◆패션 카테고리 부진 속에서 ‘나 홀로 상승’


숫자로도 확인된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최근 내놓은 ‘주요 유통 업체 매출 동향’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1~6월) 주요 백화점들의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약 14% 감소했다.

코로나19 감염 우려로 외출을 자제하는 분위기가 만연하면서 그 영향을 고스란히 받은 셈이다. 이런 악조건 속에서도 명품에 대한 수요는 오히려 늘어났다. 산업부의 자료를 보면 백화점의 해외 유명 브랜드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9.2% 늘어났다.

명품의 인기는 주요 백화점의 실적에도 고스란히 반영됐다. 신세계백화점은 올해 상반기 명품 매출이 지난해와 비교해 약 20% 상승했다고 밝혔다.

신세계백화점 관계자는 “코로나19가 한창 기승을 부리던 3월 명품 매출이 약 10.1%까지 하락하기도 했지만 이후 빠른 회복세를 보이며 결국 반등했다”고 말했다.

갤러리아백화점도 상반기 명품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17% 늘었다. 특히 지난 6월 명품 매출은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는 게 내부 관계자의 설명이다. 현대백화점과 롯데백화점도 각각 21%, 11% 명품 매출이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코로나19도 뚫었다” 불황 모르는 명품 시장
명품이 잘 팔리는 것은 하루 이틀 된 얘기는 아니다. 한 업계 관계자는 “큰 틀에서 볼 때 2017년 ‘세월호 사건’ 때를 제외하면 약 10년간 명품 판매액은 꾸준히 늘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해 상반기 명품 판매 수치가 남다른 의미로 다가오는 것은 코로나19로 인한 소비 심리 악화 속에서 유독 명품이 가파른 상승세를 이어 가고 있기 때문이다.

신세계백화점 관계자는 “코로나19로 의류와 신발 등 백화점의 ‘패션’ 카테고리 매출은 전년 대비 10% 이상 하락하는 등 큰 타격을 입었는데 유일하게 명품만이 패션 부문에서 매출이 늘며 ‘나 홀로 성장’ 중”이라고 말했다.

◆‘해외여행’ 수요 급감에 따른 ‘대리만족’ 분석


업계는 명품 판매가 급증하는 주된 배경으로 ‘해외여행’의 수요 급감을 지목한다. 코로나19로 인해 ‘하늘길’이 사실상 막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항공기 운항이 점차 재개되는 추세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음 놓고 해외여행을 가는 것은 아직 시기상조다.

이런 사실이 주변에 알려졌다가는 따가운 눈총을 받기 일쑤다. 즉 해외여행을 하지 못하게 되면서 생기게 된 ‘여윳돈’을 명품 소비에 지출하며 ‘대리 만족’을 들기는 소비자들이 늘어났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자신의 행복을 위해 소비하는 ‘욜로(YOLO)’와 함께 부를 과시하는 ‘플렉스(flex)’가 새로운 소비 트렌드가 된 것도 명품 소비가 늘어나는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특히 ‘소비의 신인류’라고 불리는 ‘밀레니얼 세대(이하 밀레니얼)’에서 유독 이런 현상이 도드라지게 나타나며 전체 명품 시장의 매출을 증가시키는 ‘견인차’ 역할을 하는 것도 눈여겨볼 만한 특징이다.

신세계백화점과 롯데백화점이 자체적으로 조사한 결과를 보면 올해 상반기 ‘2030’ 고객들의 명품 소비가 뚜렷하게 늘었다.

롯데백화점에 따르면 올 상반기 20대와 30대의 명품 매출 신장률은 각각 25.7%, 34.8%를 기록하며 40대(13.7%)와 50대(10.5%)를 압도했다. 신세계백화점에서도 2030의 명품 매출 신장률은 30.1%로 전 연령대를 통틀어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

“최근 밀레니얼을 보면 취업이나 부동산 상승세와 같은 어려운 현실을 잠시나마 잊고 ‘자아 존중감’이나 ‘자신감’을 갖기 위한 수단으로 명품 소비를 일삼는 성향을 보인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의 진단이다.

그는 “‘미래’가 어떻게 될지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현재’에만 중점을 둔 소비를 하는 밀레니얼들이 증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업계에서는 이런 소비 행태로 인해 명품 시장의 상승세가 향후에도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본다. 지금의 밀레니얼이 나이를 먹을수록 늘어난 경제적 여유를 바탕으로 명품 소비를 늘릴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게다가 최근에는 명품 수요가 점차 10대들로 옮겨 가는 추세이기도 하다. 실제로 지난해 말 한 교복 업체가 10대 청소년 350여 명을 대상으로 ‘명품을 구입한 적이 있느냐’고 물었는데 50%가 넘는 응답자가 ‘그렇다’고 대답했다.

최근 주요 백화점의 전략이 명품 강화를 통한 ‘집객 효과’에 맞춰지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중저가 브랜드를 빼고 밀레니얼이 좋아하는 명품 브랜드를 추가로 입점 시키는가 하면 일부 백화점들은 리뉴얼을 통해 인기 있는 명품 매장 크기를 더욱 늘려 나가고 있다.

한 백화점 관계자는 “웬만한 상품은 모두 온라인 구매하는 시대가 됐지만 명품은 고가라는 특성 때문에 여전히 오프라인에서 눈으로 직접 보고 신중하게 고를 수밖에 없다”며 “백화점들의 명품 강화 전략은 앞으로도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물론, 명품을 구매하는 트렌드가 무차별적으로 확대되는 것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이은희 교수는 “요즘엔 10대들까지 아르바이트를 수개월 해 고가의 명품 신발이나 티셔츠를 사는 데 혈안이 되는 모습을 찾을 수 있다”며 “자신이 처한 여건을 고려하지 않은 채 명품을 무리해 구매하려고 하는 것은 ‘허세’이자 잘못된 소비문화다. 공익 광고나 캠페인을 통해 이런 허황된 명품 소비를 억누르기 위한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enyou@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89호(2020.08.08 ~ 2020.08.14)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