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써프라이드’란 이름 더 이상 못 써…단어의 조합 역시 창작물로 정당한 대가 지급 필요
계약 없이 아이디어만 갖다 쓴 BBQ, 광고 대행사에 손해 배상해야
2017년 인기 배우 하정우 씨가 출연한 한 치킨 광고가 있었다. 제너시스BBQ의 ‘써프라이드 치킨’이다. 역동적이고 감각적인 영상 구성과 ‘먹방’으로 유명한 하정우 씨의 연기가 더해져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이 CF는 저작권법 위반 논란에 휩싸였다. ‘써프라이드’라는 네이밍과 광고 영상 콘티 등은 원래 한 광고 대행사가 BBQ에 제안한 아이디어와 유사했다. 하지만 BBQ가 다른 광고 대행사와 계약하면서 이 아이디어를 가져다 썼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른바 ‘먹튀’ 논란이다. 3년에 걸친 소송 끝에 BBQ의 5000만원 배상 책임을 인정하는 확정 판결이 나왔다. 또 BBQ는 더 이상 ‘써프라이드’란 네이밍을 사용하지 못하게 됐다.


◆아이디어 냈는데 돌연 계약 취소



광고 대행사 A업체는 2016년 9월 BBQ와 계약하고 광고 기획과 제작 업무 등을 수행했다. 2016년 하반기에 진행된 ‘BBQ 캠페인’과 2017년 상반기의 ‘BBQ 코코넛치킨 캠페인’ 등이 A사의 작품이었다.


신제품 출시를 준비하던 BBQ는 2017년 6월 A사에 또 하나의 업무를 맡겼다. 신제품의 마케팅 방향을 설정하고 네이밍(제품명)을 만들어 줄 것을 요청했다.



A사는 ‘써프라이드’라는 네이밍을 제안했다. 하정우 씨 측과 광고 촬영을 위한 협의도 진행했고 구체적인 영상 콘티를 만들어 BBQ에 보고했다.


하지만 BBQ는 돌연 신제품 출시를 연기하고 2017년 8월 A사에 계약 기한 만료를 통보했다. 그러자 A사는 자사가 제안한 네이밍과 콘티 등을 사용하지 말 것을 BBQ에 요구했다.

하지만 BBQ는 2017년 9월 또 다른 광고 대행사인 B업체와 계약하고 ‘써프라이드’란 이름을 사용한 각종 신제품 광고물을 제작했다. 영상 콘티도 A사의 제안과 비슷했다.



A사는 BBQ에 소송을 제기했다. BBQ가 자사의 저작인격권과 저작재산권을 침해했고 부정한 이익을 얻을 목적으로 영업 비밀을 사용했다는 주장이다.


A사는 BBQ가 ‘써프라이드’란 네이밍을 사용할 수 없도록 요청하는 동시에 손해 배상금 5000만원을 달라고 했다.



1심은 BBQ의 손을 들어줬다. 법원은 “BBQ의 광고는 A사의 저작물과 구체적인 표현에 있어 차이가 난다”며 “일부 유사한 부분이 있다고 해도 이는 치킨 제품의 광고에서 전형적으로 수반되는 장면이거나 기존 광고에서 흔히 사용되는 방식에 불과하다”고 했다.



구체적으로 광고에 사용된 ‘세상에 없던 치킨’이란 문구는 흔한 수식어구에 불과하다고 봤다. 클럽과 익스트림 스포츠 대회를 배경으로 하는 콘티에 대해서도 “젊은 고객층에 대한 구매욕을 자극하고자 하는 광고들에 흔히 사용되는 장소”라고 판단했다.



콘티의 각 장면들이 전환되는 순서에도 상당한 차이가 있다고 봤다. 네이밍에 대해선 “BBQ가 ‘써프라이드’를 사용한 사실은 인정되지만 계약에 따라 원고로부터 제공받은 용역 결과물을 사용한 것”이라며 문제가 없다고 봤다.



항소심에선 두 회사의 희비가 바뀌었다. 2심은 BBQ가 ‘써프라이드’ 등 문구를 광고에 사용하지 말고 A사에 5000여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A사 아이디어의 창작성을 인정했다.



재판부는 “‘써프라이드’는 기존에 존재하지 않던 명칭으로, 신제품이 식감·외형 등에서 기존 제품들과 차별화된 새롭고 놀라운 제품이라는 콘셉트에 맞도록 단어를 조합해 새롭게 창작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또 “이 사건 콘티는 주인공이 화면 중심부에 등장해 걸어 나오면서 배경이 역동적인 여러 장면으로 전환되는 상태에서 제품에 대한 설명을 이어 가는 방식으로 구성된다”며 “이러한 광고 기법이 이미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A사는 다양한 광고 기법 중 제품의 특성과 이미지 등을 고려해 특정한 구성 방식을 채택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특정 광고 기법을 채택하고 그 기법을 구체화하는 방법을 정하는 것도 원고의 축적된 경험과 노하우를 통한 창작물이라는 얘기다.

◆대법원, A사에 최종 승소 판결



재판부는 BBQ가 A사에 제작비를 지급하지 않은 점에도 주목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은 BBQ의 요구로 A사가 신제품 광고 용역을 진행하는 도중 광고 용역을 마치지 못한 상태에서 계약 기간 만료로 종료된 상황”이라며 “BBQ는 네이밍과 콘티 등 광고 용역 결과물에 대한 제작비를 전액 지급해야만 사용 권한을 갖게 된다”고 지적했다.


항소심 판결은 지난 7월 대법원 제2부(주심 박상옥 대법관)에서 확정됐다. 대법원은 “‘써프라이드’라는 네이밍과 콘티 등은 부정경쟁방지법 제2조 제1호 차목의 경제적 가치를 가지는 원고의 아이디어가 포함된 정보이고 같은호 카목의 원고의 상당한 투자나 노력으로 만들어진 성과”라고 판단했다.



이어 “BBQ는 A사에 제작비를 지급하지 않은 채 A사의 이의 제기에도 불구하고 신제품 명칭 등을 광고에 무단으로 사용했고 그 사용 행위가 원심 변론 종결일에도 계속되고 있다”며 “공정한 상거래 관행이나 경쟁 질서에 반한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항소심 판결이 최종 확정되게 됐다.



한편 A사의 역전은 김앤장 법률사무소가 이끌어 냈다. A사는 1심에서 패소한 후 2심부터 김앤장을 대리인으로 새로 선임했다. 김앤장 지식재산권(IP)그룹의 박성수·김원·장지웅 변호사 등이 A사의 대리인으로 이름을 올렸다.


이인혁 한국경제 기자 twopeople@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89호(2020.08.08 ~ 2020.08.14)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