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곰의 부동산 산책]
- 계약은 ‘상식’에서 시작
- ‘8년 의무 보유 기간 이후 임대 사업 자동 해지’는 공감 어려워
7·10 조치에 무너진 주택 정책의 신뢰
[아기곰 ‘아기곰의 재테크 불변의 법칙’ 저자] 산업혁명이 한창 진행되던 19세기 영국에서 있었던 일이다. 공장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기자 설비 기술자의 몸값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비숙련공의 월급이 1파운드라고 하면 이들 설비 기술자의 월급은 20파운드에 달했다. 높은 임금도 문제지만 인력 자체를 구하기 어렵기 때문에 공장마다 실력 있는 설비 기술자를 확보하려는 경쟁이 벌어졌다.

이런 인력 수급난에 빠진 리버풀에 있는 한 단추 공장의 사장은 런던에서 기술자를 스카우트해 오기로 했다. 이를 위해 런던 기술자의 평균 연봉인 240파운드보다 훨씬 많은 300파운드를 제시했다.

그런데 고용 계약서를 본 이 기술자는 당황했다. 연봉은 300파운드, 월급은 10파운드, 연간 보너스는 180파운드인데 이 보너스는 열두 달 이상 근무하면 지급한다는 조건이었다. 깔끔하게 한 달에 25파운드씩 주면 되지 왜 이렇게 복잡하게 나눠 주느냐고 묻자 이직이 하도 잦아 장기근속을 유도하기 위해 그런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문제는 이 기술자가 스카우트된 지 6개월이 지나자 불거지기 시작했다. 이 기술자의 연봉 수준이 비숙련 노동자 노조에 알려지자 불만의 소리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누구는 한 달에 1파운드만 받고 누구는 25파운드를 받는 것이 공정한가’라는 불만이다.

이런 여론이 퍼지자 회사 측은 앞으로 어떤 기술을 가진 사람이라도 비숙련 노동자 월급의 10배를 넘지 않게 하겠다고 노조와 약속했다. 문제는 그 불똥이 런던에서 스카우트해 온 기술자에게 튄 것이다.

회사는 이 기술자에게 계약 해지를 통보했다. 본인이 원하면 지금 당장 그만둬도 되지만 의무 근무 기간인 열 달까지는 고용을 보장하되 그 기간이 지나면 자동으로 해고 처리된다는 내용이었다.

처음 약속한 180파운드의 보너스는 어찌 되느냐는 질문에 그것은 열두 달을 모두 근무했을 때 지급하는 것이니 계약 기간이 열 달이므로 회사는 이를 지급할 의사가 없고 회사의 방침이 누구라도 월급을 10파운드 이상 지급하지 않기로 결정했으니 이에 따라 달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이에 크게 실망한 런던 기술자는 다음 논지로 리버풀 노동청에 2가지 사안에 대해 중재를 요청했다.



◆ 리버풀의 단추 공장이 망한 이유

첫째, 런던에 있던 기존 직장에서 계속 일할 경우 연간 240파운드를 받을 수 있지만 리버풀 단추 공장 측에서 일방적으로 계약 해지를 통보해 열 달 동안 근무한 대가로 100파운드밖에 받지 못하게 됐다. 이런 계획이었던 것을 처음부터 회사에서 알려 줬다면 리버풀에 오지 않았을 것이다.

둘째, 회사가 누구에게라도 월급을 10파운드 이상 지급하지 않겠다고 결정한 것은 이 기술자가 입사한 이후 일어난 일이기 때문에 이 기술자에게까지 소급해 적용하는 것은 부당하다.

그런데 놀랍게도 리버풀 노동청에서는 첫째 사안에 대해서는 “양측의 사적 계약의 영역이니 노동청이 개입할 이유가 없다”고 답변했다.

둘째 사안 역시 “‘부진정 소급(형식적으로는 소급이지만 내용적으로는 소급이 아니라는 뜻)’이니 소급 적용으로 볼 수 없다”는 회신이었다. 한마디로 회사를 믿고 계약을 잘못한 기술자 본인의 잘못이라는 논거로, 일방적으로 회사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결국 법을 모르고 평생 기술 연마에만 힘써 왔던 런던 기술자로서는 ‘부진정 소급’과 같은 어려운 법률 용어를 써대는 회사 측 변호사들과의 싸움 자체가 피곤하고 힘든 일이었기 때문에 억울함을 뒤로하고 런던으로 돌아갔다.

◆ “입법 이후부터 적용되는 것이 상식”

그러면 리버풀 단추 공장은 그 이후 어찌 됐을까. 설비가 자주 고장 나 공장이 멈춰 서자 회사는 급히 예전의 숙련된 런던 기술자를 수소문했지만 더 높은 연봉을 약속해도 스카우트 제의를 거절당했다.

런던의 다른 기술자들에게 손을 내밀어도 이미 소문을 접한 기술자들에게서는 냉소만이 돌아올 뿐이었다. 리버풀 노동청에서 회사의 손을 들어준 판결문을 보여줘도 그들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법 이전에 계약은 상식에 기반을 둔 신뢰가 기본인데 약속을 지키지 않은 회사와는 계약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현 정부 들어 주택 임대 사업자의 수가 급증했다. 여기에 부담을 느낀 정부가 7·10 조치를 통해 더 이상 아파트에 주택 임대 사업을 허용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여기까지는 문제가 없다.

상황이 달라진 만큼 정책도 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를 과거에 등록한 사람과 임대 물건에까지 적용한 것이다. 준공공 임대 사업을 신청하는 사람은 재산세 몇 푼을 감면받기 위해 신청한 것이 아니다.

10년을 보유하고 임대하는 경우 정부의 가이드라인을 어기지 않는다면 10년간의 양도 차익에 대해 100% 감면해 주는 획기적인 당근책에 유혹돼 임대 사업이라는 생소한 분야에 발을 들이게 된 것이다.

이런 당근은 이전 정부에서만 준 것이 아니다. 원래 적용 시기는 2017년 말까지였는데 현 정부 출범 이후 한 차례 더 연장해 2018년 말 신청분까지 적용한 것이다.

현 정부로서도 준공공 임대가 현 정부의 정책 방향과 맞는 제도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추가로 연장한 것이지 과거의 제도를 생각 없이 그대로 답습한 것은 아니다.

그런데 현 정부를 믿고 임대 사업을 신청한 사람의 신의를 저버린 것이 바로 7·10 조치다. 8년이라는 의무 보유 기간이 지나면 임대 사업이 자동 해지된다는 독소 조항은 약속했던 양도세 100% 감면의 혜택을 주지 않겠다는 뜻이다.

리버풀 단추 회사가 런던 기술자에게 지급해야 할 보너스를 주지 않기 위해 일방적으로 계약을 해지한 것과 다를 바 없다.

어떤 정책이나 법은 그것이 발표되거나 입법된 이후부터 적용되는 것이 상식이다. 법무부 장관이 아무리 “이건 부진정 소급이기 때문에 소급 적용이 아니다”고 강변해도 사람들 마음속에 있는 “이건 아니지”라는 생각은 바꿀 수 없다.

일부 정치권에서는 이런 정책은 국민의 1%에만 적용되는 것이니 나머지 99% 국민과는 상관없다는 궤변을 늘어놓지만 국민들은 그다음 차례가 본인의 차례가 될 수 있다는 것에 두려움을 느낀다.

정부가 자기 편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늘수록 어떤 정책이 나와도 그것을 믿는 사람은 점점 줄어드는 것이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90호(2020.08.17 ~ 2020.08.23)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