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린젠 이어 SK바이오랜드까지 인수…화장품 사업 ‘수직계열화’ 완성

유료 방송 팔고 헬스케어·뷰티 기업 인수한 현대백화점그룹
[한경비즈니스=김정우 기자] 현대백화점그룹이 헬스케어·뷰티(H&B)를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낙점하고 공격적인 경영 행보를 이어 가고 있다. 현대백화점그룹은 천연 화장품 원료 시장 1위 기업인 SK바이오랜드의 새 주인이 됐다고 8월 18일 밝혔다. 현대HCN을 통해 SKC가 보유한 SK바이오랜드의 지분 27.9%(경영권 포함)를 1205억원에 인수했다.

올해만 벌써 둘째 인수·합병(M&A)이다. 지난 5월에는 패션 계열사인 한섬이 기능성 화장품 기업 ‘클린젠 코스메슈티칼’을 손에 쥐었다.

현대백화점그룹은 잇단 M&A를 통해 화장품 원료 생산 제조 판매가 모두 가능한 ‘수직 계열화’를 이뤄 내며 H&B 시장 진출을 위한 준비를 마쳤다. 현대백화점그룹은 오는 10월까지 SK바이오랜드 매각 절차를 마무리할 예정이다. 올 하반기 H&B 시장 공략을 위한 구체적인 전략이 수면 위로 드러날 것으로 관측된다.

◆기술력 갖춘 ‘알짜 기업’ 인수


현대백화점그룹이 인수한 SK바이오랜드는 화장품 원료와 건강기능식품·바이오메디컬 사업을 주력으로 하는 SKC의 자회사다. 천연물을 활용한 추출·발효·유기합성 등의 기술력을 갖췄다.

국내에서 5개 생산 공장(천안·안산·오창·오송·제주)을 보유하고 있고 해외에도 진출했다. 세계 최대 화장품 시장인 중국에서 두 개(하이먼·상하이)의 현지 법인을 설립해 운영 중이기도 하다.

실적도 괜찮다. 지난해에는 연결 기준 매출 1063억원, 영업이익 145억원을 기록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SK바이오랜드는 화장품 원료를 비롯해 건강기능식품과 바이오메디컬 등 성장 가능성이 높은 사업 분야에서 뛰어난 기술력을 갖췄고 꾸준한 수익까지 올려온 만큼 미래가 기대되는 기업”이라고 평가했다.

‘알짜 기업’이라고 볼 수 있는 SK바이오랜드가 M&A 시장에 매물로 등장해 결국 팔리게 된 이유는 현대백화점그룹과 SKC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라는 해석이다.

최근 SKC는 모빌리티와 반도체를 미래 성장 동력으로 제시했다. 바꿔 말하면 ‘선택과 집중’ 차원에서 매각을 결정한 셈이다. SKC는 SK바이오랜드를 팔아 마련한 돈으로 모빌리티와 반도체 중심의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하는 데 박차를 가할 방침이다.

현대백화점그룹은 새로운 성장 동력 발굴이 절실한 상황이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기존 사업, 특히 유통 부문에서의 부진을 만회하기 위해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 따라 백화점의 성장도 장담할 수 없게 됐고 야심차게 진출한 면세 사업에서도 반등의 기미가 좀처럼 보이지 않고 있다. 게다가 네이버와 카카오 등이 실시간 동영상 스트리밍으로 상품을 판매하는 ‘라이브 커머스’에 진출하면서 홈쇼핑 사업에서도 위기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이번 M&A에 대한 오린아 이베스트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이렇게 진단했다. 오 애널리스트는 “부진한 2분기 성적표에서도 나타나듯이 현대백화점은 실적을 개선하기 위한 대책이 필요한 상황”이라며 "기존의 유통 사업과 시너지를 낼 수 있고 성장 가능성까지 높게 평가 받는 H&B 시장 진출로 돌파구를 찾는 모습”이라고 덧붙였다.

◆원료 생산부터 유통망까지 갖춰


방아쇠는 당겨졌다. 현대백화점은 이번 SK바이오랜드 인수 사실을 알리면서 사업 부문을 4개 포트폴리오로 재편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함께 밝혔다.

기존의 3대 핵심 사업인 유통(백화점·홈쇼핑·아울렛·면세점), 패션(한섬), 리빙·인테리어(리바트·L&C)에 H&B를 새롭게 추가한 것이다.

특히 관련 업계에서는 현대백화점이 이번 M&A를 통해 화장품 시장에서의 수직 계열화를 완성한 점을 주시한다. 현대백화점은 지난 5월 한섬을 내세워 기능성 화장품 회사인 클린젠 지분 51%를 인수하며 경영권을 손에 넣었다. 클린젠은 화장품에 의약 성분을 더한 기능성 화장품인 ‘코스메슈티컬’ 전문 기업이다.
유료 방송 팔고 헬스케어·뷰티 기업 인수한 현대백화점그룹
클린젠의 기술 역량을 활용해 한섬은 내년 초 ‘프리미엄 스킨케어’ 브랜드를 시장에 선보일 예정이었는데 SK바이오랜드가 새 식구가 되면서 화장품 원료를 안정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는 ‘지원군’까지 생긴 셈이다.

게다가 이렇게 만든 화장품을 현대백화점의 온·오프라인 쇼핑몰에 입점시켜 소비자들에게 판매할 수 있는 유통망까지 갖추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어떤 브랜드와 전략을 들고나올지 뚜껑을 열어봐야 알겠지만 원료 생산부터 유통까지 자체적으로 가능한 만큼 빠르게 시장에 안착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만약 새롭게 론칭한 화장품 브랜드의 판매가 지지부진하더라도 SK바이오랜드를 활용해 다양한 화장품 기업들에 화장품 원료를 제공하는 방식으로도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

물론 장밋빛 전망만 있는 것은 아니다. 현대백화점의 H&B 시장 성공 가능성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도 있다. 대기업이 풍부한 자금력과 기존에 보유한 유통망을 앞세웠음에도 불구하고 시장 안착에 실패한 사례가 있기 때문이다.

롯데백화점이 대표 격이다. 2016년 자체 브랜드 화장품 ‘엘앤코스’를 론칭했지만 지지부진한 흐름을 보인 끝에 2년 만인 2018년 사업을 중단했다.

물론 롯데백화점은 한국콜마에 제품 생산을 맡겨 화장품을 론칭한 점에서 현대백화점과 차이가 있다. 다만 중소기업부터 대기업까지 수많은 경쟁자들이 이미 존재하는 만큼 후발 주자가 시장에서 살아남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라고 한 업계 관계자는 말했다.


enyou@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91호(2020.08.22 ~ 2020.08.28)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