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태집 간삼건축 사장 인터뷰
- “선진 병원은 의료·행정 시스템 공간 분리”
“중앙집중식 구조는 바이러스에 취약…병원 설계부터 바꿔야죠”
[한경비즈니스=차완용 기자] 온통 공간에 대한 생각이다. 오래된 건축물이든든 새로 지은 건축물이든 눈에만 들어오면 어떻게 공간을 설계했을지부터 상상한다. 이렇게 40년 가까이를 살아왔다. 바로 국내 최고의 건축사사무소로 꼽히는 간삼건축을 이끄는 김태집 사장의 이야기다.

1983년 간삼건축을 설립한 이후 셀트리온 바이오텍센터, 제주 휘닉스 아일랜드, 한화 인재경영원, 인천시립적십자 재활전문병원, 대구산재병원, 한화미래기술연구원, LG사이언스파크, 파라다이스 시티 등 한국을 대표하는 수많은 건축물이 그의 손을 통해 만들어졌다.

이런 그가 요즘 깊은 고민에 빠졌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사는 곳, 일하는 곳, 노는 곳 등 모든 공간이 전환기를 맞고 있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김 사장은 유독 병원에 대한 고민이 깊다. 바이러스에 감염된 환자들이 직접 찾는 공간이자 바이러스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환자들이 모이는 공간을 ‘어떻게 하면 안전하고 효율적으로 만들까’ 하는 생각에서다.

김 사장을 만나 그가 그리는 건축물은 무엇인지, 또 그가 만들어 갈 병원은 어떤 것인지 물어봤다.

▶ 요즘 병원 설계에 많은 관심을 두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글쎄요. 정확히 말하면 최근에 생각한 것은 아닙니다. 오래전부터 병원 설계에 많은 공을 들여 왔습니다. 병원은 일반 건축물에 비해 하이 레벨의 기술력이 필요한 건축물입니다. 특히 설계가 어렵죠. 지금까지 간삼건축이 설계한 병원이 종합 병원을 비롯해 약 20개 정도, 베드 수로는 1만5000개 정도 됩니다. 특히 요즘 코로나19로 인해 병원의 공간이 변해야 하는 만큼 한 차원 더 높은 기술력을 갖추기 위해 많은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 병원 건축 관련 설계가 어렵다고 하던데요.
“병원 설계를 할 수 있는 건축사사무소는 손에 꼽히죠. 특히 종합 병원이나 특수 병원을 설계할 만한 곳은 국내에 한 4~5군데밖에 없습니다. 병원은 병세에 따라 환자를 구분할 수 있는 병실, 의료진의 처치를 위한 병실의 동선, 응급 상황을 고려한 시설, 병실 목적에 따른 환기 시설 등이 각 병실과 각층마다 달라야 하는 만큼 특수 설계가 필요합니다. 또 첨단 의료 장비를 지원할 수 있는 시스템, 건물 전체를 관리 통제할 수 있는 첨단 정보기술(IT)까지 갖출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단순히 아파트나 빌딩 등을 만드는 획일화된 기술력으로는 불가능하죠.”

▶ 간삼건축의 병원 설계 능력은 어느 정도인가요.
“일단 국내에서 손에 꼽히죠. 개인적인 생각일 수는 있지만 최근에는 우리가 가장 역량이 높지 않나 생각하고 있습니다. 병원 설계의 역량을 좀 더 집중하기 위해 병원 설계 전문 PM(Product Manager) 2개 팀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습니다. 1개 팀당 병원 설계 전문가가 15명 이상 총 30여 명이 근무하고 있죠.”

▶ 병원 전담팀을 키우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병원은 사람이 살아가기 위해 꼭 필요한 장소입니다. 하지만 제대로 된 의료 시스템을 갖춘 병원을 만들 수 있는 건축사사무소가 국내에는 한정적이죠. 누군가는 꼭 해야 하는 시설인데 말이에요. 병원 설계가 어려운 이유는 앞서 설명했듯이 사람과 의료 장비 그리고 공간이 어우러지도록 만들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의료 장비는 나날이 발전하고 있어요. 의료 장비가 제대로 사용될 수 있도록 지원하기 위해선 설계 역시 수준을 맞춰야 하겠죠. 결국 설계도 지속적인 연구·개발이 필요한 겁니다. 예를 들면 최근에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의 중입자치료센터 건립을 위한 설계를 하고 있는데, 여기에 들어가는 장비가 원자 동위원소까지 다루는 최첨단 기기입니다. 더욱이 이 기기는 독일과 일본에서 들여오는데 제대로 사용하기 위해선 설계자의 의료 기기에 대한 이해도가 뒷받침돼야만 해요. 전문성이 필요합니다.”

▶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국내 병원 시스템에 변화가 생길까요.
“바뀌어야만 하고 바뀔 겁니다. 현재 K방역이 우수하다고 알려져 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의료진의 희생 덕분이죠. 병원 시스템 자체는 바이러스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종합 병원에 가면 전부 일층 로비에서 등록한 후 각종 검사를 받기 위해 일정 장소로 환자들을 불러 모읍니다. 교차 감염의 위험이 크죠. 이는 현재 대부분의 병원 시스템이 중앙 집중식 체제로 설계됐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바꿔야죠. 바이러스 전파의 위험성이 높아진 만큼 등록과 검사 시스템을 분산해야 합니다. 의료 시스템과 행정 시스템 연결하면서도 공간에서는 분리하는 설계가 필요합니다.”
“중앙집중식 구조는 바이러스에 취약…병원 설계부터 바꿔야죠”
▶ 선진화된 병원 시스템을 운영 중인 곳은 어디인가요.
“현재 한국은 다 비슷합니다. 대부분의 병원 중앙 집중식 체제 시스템이죠. 이는 일본 병원도 마찬가지입니다. 반면 미국과 유럽 등 일부 선진 국가는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죠. 특히 이들 국가들의 병원은 코로나19 사태 이후 빠르게 의료 시스템과 행정 시스템을 분리하고 있습니다.”

▶ 현재 한국의 병원 시설은 어느 정도 수준인가요.
“시설 자체는 나쁘지 않습니다. 특히 최근에 만들어진 병원들은 미국이나 유럽보다 더 좋은 시설도 있어요. 다만 행정과 의료의 시스템을 한데 묶어 사용하고 있는 한국과 달리 선진국은 시스템 자체의 완성도가 높은 것입니다. 결국 처음 병원을 세울 때부터 설계가 잘됐기 때문입니다.”

▶ 하지만 코로나19 사태 이후 K방역이 이슈화되면서 한국의 병원 시스템을 벤치마킹하려는 국가들도 여럿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물론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이 우리보다 못사는 후진국들이에요. 간삼건축만 해도 현재 캄보디아 라오스 경찰청 병원, 국립대학병원 등의 설계를 준비하고 있어요. 아쉬운 이야기지만 미국이나 유럽 등 선진 국가에서는 관심을 보이지 않죠. 오히려 한국의 일부 병원들이 외국 건축가에게 설계를 맡기려고 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죠. 상당히 씁쓸합니다. 우려되는 것이 설계를 할 때 그 나라의 문화를 이해하고 거기에 적합한 의료 시스템을 갖추도록 해야 하는데 해외 건축가들이 국내 시스템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 병원 건축 외에 다른 관심 분야가 있나요.
“공유 마을이요. 시대가 변했어요. 디지털의 발달로 굳이 대도시에 살지 않아도 되는 시대입니다. 집도 부족한데 퇴직하고 굳이 서울에 있을 이유가 없잖아요. 공동체 안에서 각자의 역할을 분배하고 경제적인 자립이 가능한 마을을 만드는 것이죠. 어느 정도 사업 계획과 마을 디자인은 해놓은 상태입니다. 현재는 몇몇 지자체를 비롯해 기업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cwy@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91호(2020.08.22 ~ 2020.08.28)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