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전략]
-시장이 스토리에 공감할 때 새로운 성공 신화가 시작…‘꿈’이 ‘돈’이 된다
미래 가치가 중요해진 시대, ‘스토리텔링’의 힘을 믿어라 [박찬희의 경영전략]

[박찬희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 최근 자본 시장에서는 ‘PDR(Price to Dream Ratio)’이라는 말을 재미삼아 쓰고 있다. 미국의 전기자동차 기업 테슬라의 예에서 보듯이 숫자로 나타나는 실적보다 ‘꿈’, 즉 미래 가능성을 중심으로 기업 가치를 평가하는 것을 의미한다.

경영 전략은 미래를 구상해 실현하는 일이고 이를 위해 경영자는 투자자들은 물론 다양한 사업 파트너에게 성공 가능성을 인정받아야 한다. 미래 가치에 공감해 돈과 사람이 모이고 이를 바탕으로 더 큰 기회가 만들어지는 ‘선순환’이 작동하면 시장의 기대를 선점한 사업자는 다른 경쟁자들을 압도하게 된다. 구글의 성공이 대표적인 사례다.

사업은 꿈을 ‘돈’으로 만드는 일이지만 그 꿈을 다른 사람에게 이해시키고 동의를 얻기는 매우 어렵다. 투자자는 손실 가능성을 각오하고 돈을 맡겨야 하는데 막상 사업의 세밀한 내용은 잘 모른다(잘 알고 가능성을 믿는다면 직접 사업을 할 것이다).

자기 돈을 자기 마음대로 쓰는 개인 회사면 모르겠지만 투자자의 돈으로 사업을 키우려면 어떻게든 미래 가치와 가능성을 설명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사업의 내용과 미래에 대해 공감할 수 있게 정리해 설득하는 스토리텔링이 필요하다.

◆사람은 세상을 일정한 스토리로 이해


사람은 세상을 일정한 스토리로 이해한다. 정보 자료에 대한 분석적 판단이 중심이 되지만 개인적·사회적으로 형성된 정서적 요인에도 영향을 받는다.

스토리에 질문이 더해지고 현실에 비춰 확인 또는 수정되면 내용은 더 탄탄해진다. 주변의 생각과 조언, 추가적 정보 등이 더해지면서 확신을 얻게 된다. 투자자들은 사업 내용을 해석하고 나름의 생각을 더해 스토리로 구성한다.

투자 전문가들은 조금 더 전문적인 정보를 더해 의견을 제시하고 관련 업계의 기술적·사업적 정보들이 구전(口傳)을 통해, 혹은 미디어를 통해 공유되면서 스토리가 진화한다. 단편적 정보들이 ‘호재’ 혹은 ‘악재’로 시장에 반영되는 기존의 금융 시장 분석과 다른 해석이다.

모빌리티의 예를 들어보자. 전기차와 충전 설비는 이제 일상이 됐고 수소 에너지와 2차전지, 인공지능(AI)과 통신망에 기반한 자율주행, 나아가 항공 운항과 위성 통신을 이용한 통제, 지하 공간 재설계까지 다양한 사업 모델들이 제시되고 있다.

차량 공유, 물류 배송 등 관련 산업의 변화와 사업 기회도 다각도로 논의되고 있다. 아직 몇몇의 단편적 사례들이 있을 뿐 구체적인 사업 실적은 없지만 관련 업체들의 경쟁과 협력이 진행되면서 다양한 미래상과 관련 기술이 제시되고 시장의 투자를 끌어들이고 있다.

여러 개의 미래가 나름의 스토리로 제시되면서 경쟁하는 형국이다. 역사 속의 전쟁은 적을 말살하기보다 승리를 통해 ‘미래 가능성’을 보여줘 다른 세력들을 유리한 조건으로 끌어들이는 정치적 포석이었다.

따라서 승리를 어떻게 해석하고 전파하느냐가 실제 전장의 승패보다 더욱 중요한 일이었는데 나폴레옹은 나름의 스토리텔링을 통해 그의 가능성을 인정받으며 권력의 중심으로 부상했다. 현대 정치의 선거와 여론 조사도 이와 다르지 않다.

사업이 성공하려면 에디슨이 발명한 전구처럼 세상이 모르는 기회를 만들어 남보다 앞서야 한다. 하지만 동시에 투자자와 시장의 눈높이에 맞춰야 하고 일반 대중의 ‘상식과 감성’에도 동의를 얻어야 한다. 투자자와 일반 대중이 사업의 구체적 내용을 잘 모를수록 쉽게 이해하고 동의할 수 있는 스토리가 필요하다.

◆시장과 대중의 눈높이를 받아들여야


무역과 건설로 시작해 현재 세계적 규모의 대기업 집단을 키워 낸 A 회장은 ‘문어발식 그룹 경영과 불투명한 체제’를 비판하는 자본 시장과 학계, 거기에에 편승한 정부의 규제 정책에 불만이 많다.

계열사 사이의 협력을 통한 발 빠른 시장 개척, 무역과 해운을 통한 금융 조달을 이해하지 못하고 ‘단순한 사업 구조와 단기 실적’을 요구하면서 유행하는 아이템이 없다고 미래 성장 동력의 한계를 지적하는 투자 보고서를 보면 사업에 대한 무지함에 어이가 없다.

심지어 건설업이 깡패들을 동원해 철거민을 짓밟고 땅 투기를 하는 짓으로 나오는 드라마를 보면 분노가 치민다.

하지만 시장을 설득해야 투자를 유치하고 금융 조달이 가능하다면 그 눈높이에 맞춰 설득할 수밖에 없다.

아니꼽지만 구조 조정과 자산 매각으로 주주 가치에 신경 쓰고 미래형 첨단 기술을 유치해 시장의 흐름에 맞춰 줘야 한다. 여론이 표가 되고 정치와 맞물려 사업의 성패를 좌우하는 세상에서 대중의 평범한 생각을 이해하고 나름의 스토리로 설득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돌이켜 보면 A 회장의 성공도 ‘1000달러 소득 100억 달러 수출’로 상징되는 개발 경제의 스토리에 부응한 결과였다.

시장이 그의 사업 모델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쉽고 간결한 스토리로 투자자의 이득을 설득할 수밖에 없다. 복잡한 기존의 사업 구조 때문에 신사업의 미래 가치가 가려진다면 투자 유치와 감시가 수월한 별도의 사업 단위로 떼어내 운영하면 된다.

세상 물정 모르는 학자들이 아둔한 소리만 한다면 그들에게 맞는 스토리로 나름의 담론(談論)을 제시하는 것이 낫다.

스티브 잡스와 같은 ‘쇼(show)’가 필요하면 그럴듯한 스타 경영인을 키울 수도 있다. 시장과 대중의 무지함을 탓한다고 그들이 반성할 리도 없고 세상과 맞서 이기는 경영자는 없기 때문이다.

자본 시장은 태생적으로 거품 가능성을 안고 있다. 시장 참가자들은 모두 호황에서 돈을 더 벌기 때문에 늘 새로운 아이템을 찾아 시장을 띄우고 표가 아쉬운 정부는 경기 부양과 산업 정책으로 가세한다.

인터넷 붐을 맞아 회사명에 닷컴을 붙이면 주가가 폭등하고 방역 위기에 돈까지 풀리자 바이오 회사가 부각되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어정쩡한 이익을 내면 오히려 미래형 성장주가 아닌 굴뚝 산업과 같은 실적주로 분류될까봐 우려하는 현상도 나온다.

◆미래 가치와 위험 관리의 균형


경영자는 나름의 스토리로 시장의 흐름에 맞춰 기회를 만들어야 하지만 다른 한편 돈줄이 마를지 모르는 상황에도 대비해야 한다. 세계 자본 시장을 주도하지 못하는 한국 기업들에는 더욱 중요한 과제지만 현실은 만만치 않다.

지금은 역사 속으로 사라진 미국의 에너지 회사 엔론은 나름의 스토리텔링으로 미래 가치를 설득해 한때 스타 기업으로 부각됐다.

하지만 위험 관리의 브레이크가 파열돼 초대형 스캔들로 추락해 버렸다. 경영진이 화려한 사업들로 투자를 끌어들이고 거액의 성과 보수를 챙기는 구조에서 식어가는 시장 상황과 부풀려진 실적을 우려하는 목소리는 구석으로 내몰렸다.

권력이 된 관리 통제 부문이 회사를 장악해 기회를 틀어막는 경우도 있다. 아무것도 못하게 움켜쥐고 ‘모든 위험을 막아냈다’며 권세를 키우는 경우인데 한 대도 맞지 않고 이기는 권투가 없듯이 이런 식의 ‘브레이크가 잠겨버린’ 경영은 천천히 망하는 지름길이다.

하지만 가진 것이나 지키려는 용기 잃은 경영자가 당장 편하자고 이들에게 기대는 궁정 정치의 스토리는 동서고금에 무수히 많다.

남들이 모르는 기회를 찾아내 시장과 대중의 눈높이에 맞춰 설득하려면 경영자는 믿을 만한 이야기꾼이 돼야 한다. 믿을 만한 경력과 성공의 기록은 스토리에 믿음을 더한다.
미래 가치가 각광받을 때 거품 가능성을 살피고 돈줄이 마를 때 활로를 찾는 건강한 균형을 위해서는 ‘대세를 거스르는 자유로운 논쟁’을 이끌어 내는 노회한 정치인이 돼야 한다. ‘소신 떨다 잘리면 나만 손해’라고 생각하는 순간 엔진도 브레이크도 망가지기 때문이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92호(2020.08.31 ~ 2020.09.06)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