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곰의 부동산 산책]
- ‘실수요자 우선 정책’이 만든 역효과
- 임대차 보호 2법 역시 공급 막아
부동산 시장에 전세 매물이 실종된 일곱 가지 이유
[아기곰 ‘아기곰의 재테크 불변의 법칙’ 저자]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 시스템에 따르면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 115㎡(34평형)의 지난 6월 전세 거래량은 30건이었다. 그런데 7월에는 11건, 8월에는 10건으로 줄어들었다.

6월 거래 건수 대비 7~8월에 3분의 1로 줄어든 것이다. 더 심각한 것은 1750가구나 되는 이 평형에서 남아 있는 전세 매물이 한 건도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 전세 시장에서 왜 이처럼 매물이 실종됐을까.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 때문이다. 현 정부 부동산 정책의 방향은 실수요자 우선 정책이다. 실수요자를 투자자보다 우대한다는 것은 누구나 공감하고 명분도 좋은 정책이다.

하지만 현실의 세계에서는 의도는 선하지만 결과는 반대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현재의 부동산 정책이 대표적인 사례다.

실수요자를 우대한다는 것은 전세를 주는 투자자에게 상대적으로 불이익을 준다는 것과 같은 의미이기 때문에 시장에서 전세가 줄어드는 원인으로 작용한다.

◆ 전세가 줄어들 수밖에 없는 다양한 원인

현 정부의 실수요자 우대 정책을 살펴보자. 첫째, 규제 지역에서 양도세 비과세(9억원 이상은 양도세 감면) 혜택을 받으려면 2년 실거주해야 한다. 8·2 조치 이전에는 실거주 없이 2년 보유만 해도 1주택자는 양도세 혜택을 받을 수 있었다.

이 때문에 투자 가치가 있는 곳에 한 채만 사 두고 본인은 다른 지역에 사는 것이 가능했다. 이른바 투자와 거주를 분리하는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투자용 주택들이 시장에는 전세 물건으로 나왔던 것인데 8·2 조치 후에는 이런 전략을 쓸 수 없게 되니 전세 물건도 따라서 줄어든 것이다.

둘째, 규제 지역에서 일시적 1가구 2주택 양도세 혜택을 받으려면 1년 이내에 실입주해야 한다.

규제 지역에 1주택을 가지고 있는 실수요자가 갈아타기를 위해 다른 규제 지역의 주택을 취득할 때 1년 안에 실입주하지 않으면 이전에 가지고 있는 주택의 양도소득에 대해서는 양도세 비과세 또는 감면 혜택을 받을 수 없다.

이러니 갈아타기 대상이 되는 상급지는 점점 전세가 줄어들게 되는 것이다.

셋째, 규제 지역에서 주택 담보 대출을 조금이라도 받으려면 6개월 이내에 실입주해야 한다. 대출을 끼고 투자용으로 주택을 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인데 이 역시 주택 담보 대출을 받으면 전세를 놓지 말라는 것이다.

넷째, 대치동·삼성동·청담동·잠실동과 같은 토지 거래 허가 구역 내에 있는 집을 사려면 6개월 이내에 실입주해야 한다. 임대를 줄 목적이라면 거래 허가 자체가 나오지 않기 때문에 전세 물량이 나올 수 없는 것이다.

다섯째, 재건축 대상 아파트에 투자한 사람은 2년 실거주해야 입주권을 준다고 한다. 실거주 요건을 채우지 못한 사람은 현금 청산 대상자가 된다. 이때 청산액의 기준은 시세가 아니라 감정평가액이기 때문에 현금 청산되면 손해가 될 수밖에 없다.

이를 피하기 위해 재건축 대상 아파트의 소유주는 전세가 만기가 되면 연장을 거부하고 실거주하게 될 것이다. 이는 시중에 있는 전세 재고를 줄이는 결과가 된다.

여섯째, 고가 주택을 가지고 있는 1가구 1주택자가 장기보유특별공제를 받으려면 2년 이상 실거주해야 한다. 2019년까지는 3년 이상 보유한 1주택자에 대해 실거주 여부와 상관없이 보유 기간에 비례해 양도소득세 장기보유특별공제 혜택을 줬다.

다시 말해 전세만 주고 있어도 양도세 감면 혜택을 받을 수 있었다는 의미다. 그런데 2020년 매도분부터 2년 실거주한 매물만 양도세 감면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일곱째, 내년(2021년)부터 실거주 기간이 짧으면 장기보유특별공제 비율이 대폭 줄어든다. 예를 들어 주택을 취득한 지 10년이 지난 1주택자는 2020년 말까지 양도하는 주택에 대해서는 2년 실거주만 하면 80%의 장기보유특별공제를 적용받는다.

하지만 내년 1월 1일 이후 양도 주택에 대해서는 10년 보유분 40%와 2년 거주분 8%를 합해 48%밖에 적용 받지 못한다. 80%의 장기보유특별 공제 혜택을 모두 받으려면 기존 2년에 8년을 더해 10년간 실거주해야 한다.

◆ 전세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제로섬 게임

이런 일곱 가지 원인으로 인해 전세 물량이 줄어들거나 추가 공급이 어렵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전세 물량 부족 현상은 모든 지역에서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첫째에서 넷째까지 원인은 규제 지역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이고 다섯째에서 일곱째 원인은 비규제 지역에서도 나타날 수 있는 현상이다.

그런데 9억원이 넘는 매물의 비율이 큰 고가 지역이나 재건축 대상 지역도 주로 규제 지역에 있다. 이 때문에 정부의 실거주 우대 정책이 규제 지역에서의 전세 물량 부족 현상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이런 현상을 가속화할 또 하나의 변수는 임대차 보호 2법이다. 전월세 상한제와 계약갱신청구권은 기존 세입자를 보호할 수 있는 최적의 장치다.

문제는 이런 임대차 보호 2법은 기존 세입자를 보호하는 장치이지 시장에 추가적으로 전세 매물을 공급하는 방법은 아니다. 더구나 임대차 보호 2법이 잘 작동되면 작동될수록 기존 세입자는 이사를 가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시중에 전세 매물이 나오지 않는 부작용이 생긴다.

물론 전세 매물도 줄어들지만 전세를 찾는 사람도 줄어드니 전국 단위로 보면 제로섬 게임에 가깝다. 이런 점을 들어 정부에서는 전세난이 없을 것이라고 공언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모든 국민이 본인이 거주하는 지역에서 계속 거주할 때에만 가능한 이야기다.

다른 지역으로 이사 가는 사람이 생기면 지역별로 전세 수요와 전세 재고의 불균형이 생기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한다.

이에 따라 주택 수요가 많은 지역, 다시 말해 인기 지역은 전세 수요가 꾸준히 늘어나는데 앞서 언급한 7개의 실거주자 우선 정책과 임대차 보호 2법의 영향으로 시중의 전세 매물은 점점 줄어들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가을 이사철에 규제 지역을 중심으로 전세난이 나타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전세를 끼고 주택을 사거나 주택을 사 전세를 주는 것을 어렵게 하면 당연히 시장의 전세 물량이 줄어들게 된다. 전세를 찾는 수요자는 많은데 전세 재고와 공급이 줄어들면 전셋값이 오르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은 경제 원리를 떠나 상식에 속한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92호(2020.08.31 ~ 2020.09.06)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