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포커스]
-오너家 임금 반납·자산 매각·유상증자로 현금 유동성 확보…3조원 자구안 이행 속도
-구조조정 조기졸업 눈앞인데 탈원전 이어 정부 탈석탄 움직임
경영 정상화 ‘찬물’
-미래 먹거리 해상 풍력만으론 자력 생존 역부족…급격한 사업 전환 부작용 우려
정책 암초 만난 두산重 정상화, 이번엔 석탄발전 ‘수출 금지’ 날벼락
[한경비즈니스=안옥희 기자] 두산그룹이 두산중공업 경영 정상화를 위해 다른 자회사와 자산 매각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채권단에서 자금 3조6000억원을 지원받은 두산그룹은 ‘가능한 모든 자산의 매각 또는 유동화’를 담은 자구안을 제출하고 자산 매각에 속도를 내는 중이다. 두산중공업은 8월 2일 골프장 ‘클럽모우CC’ 매각 대금 1850억원 중 일부 비용 등을 제외한 대금으로 채권단에 빌린 돈을 갚기 시작했다.

9월 4일 두산중공업이 경영 정상화를 위해 1조30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결정하고 (주)두산은 두산솔루스·모트롤사업부 매각 계약을 체결했다. 두산솔루스는 진대제 전 정보통신부 장관이 설립해 ‘진대제 펀드’로 불리는 스카이레이크 에쿼티파트너스에 매각하기로 했다.

시장에서는 두산솔루스의 최종 종착지가 한화그룹일 수 있다는 가능성도 제기된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과 진대제 스카이레이크 회장의 친분이 남다르고, 한화그룹은 2015년 스카이레이크로부터 공장 자동화 솔루션 업체인 에스아이티(SIT)를 약 1300억원에 인수했던 적도 있다. 김 회장의 3남인 김동선 전 한화건설 팀장이 최근 스카이레이크에 입사한 것도 한화 인수설을 지속해서 부추기는 요인이다. (주)두산은 또 모트롤사업부도 국내 사모펀드인 ‘소시어스-웰투시’ 컨소시엄에 매각하기로 의결했다.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 등 대주주들은 5740억원 규모의 두산퓨얼셀 지분을 무상으로 두산중공업에 증여했다. 유상증자로 차입금 상환 등에 활용할 자금을 확보하면서 두산그룹이 KDB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등 채권단에 제출한 3조원 규모의 자구안을 조기에 달성할 수 있다는 기대감도 나온다.

◆ 매각은 순항…자구안 조기 달성 기대감

앞서 두산중공업은 비용 절감을 위해 올해 들어 두 차례 명예퇴직을 실시했고 약 350명은 휴직에 들어갔다. 두산그룹 전체 계열사 임원들은 지난 4월부터 급여 30%를, 두산중공업 임원들은 최고 50%를 반납하며 고통 분담에 나섰다. 두산그룹의 오너가인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과 박용만 두산인프라코어 회장도 1분기 급여를 2분기에 대폭 반납했다. 두산그룹이 채권단과 약속한 3조원 규모 자구안이 순조롭게 이행되고 있다는 평가다.

자구안이 순항하는 가운데 알짜 계열사인 두산인프라코어의 매각 작업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당초 현대중공업지주와 한화그룹, 사모펀드(PEF) 운용사인 MBK파트너스가 두산인프라코어의 유력 인수 후보로 거론돼 왔다. 하지만 현대중공업그룹과 한화그룹은 공식적으로 “인수를 검토한 바 없다”고 선을 그었다.

현대중공업그룹은 건설기계업인 현대건설기계와 두산인프라코어의 사업군이 겹치므로 인수하면 건설기계 부문에서 국내 점유율 1위로 도약할 것으로 예상된다. 문제는 1조원대로 추정되는 인수 가격이다. 두산중공업은 두산인프라코어를 사업회사와 두산밥캣 지분을 보유한 투자회사로 분할한 뒤 사업회사만 분리 매각하는 방안을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시장에서는 두산인프라코어 매출과 영업이익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캐시카우’인 두산밥캣을 분리한다면 매물로서의 매력이 떨어져 매각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 때문에 실탄이 두둑한 MBK 등 사모펀드 회사들도 시큰둥한 반응을 보인 것으로 전해진다.

중국법인인 두산인프라코어차이나(DICC) 매각 실패로 IMM프라이빗에쿼티 등 재무적 투자자(FI)들과 벌이고 있는 7000억원대 소송도 두산인프라코어 매각의 변수로 꼽힌다. 대법원 판결에서 두산인프라코어가 최종 패소한다면 주식 매매 대금에 법정 이자, 지연 이자 등을 더한 최대 1조원에 달하는 돈을 지급해야 하기 때문이다.

자구안은 순항하고 있지만 일각에서는 자구안 이행을 위해 두산이 알짜 계열사들을 매각하며 미래 핵심 성장 동력을 잃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두산중공업이 사업 재편 등을 통해 중공업 중심에서 탈피하는 체질 개선은 필요하지만 미래 성장 동력을 모조리 내다 판다면 결국 자생력을 잃지 않겠느냐는 우려다.

두산그룹은 정부의 탈원전·탈석탄 기조에 따라 두산중공업을 신재생에너지 기업으로 탈바꿈한다는 전략이지만 신재생에너지 사업의 불안정성과 세계 최고 기술력을 보유한 석탄·원자력 사업 분야의 경쟁력 상실 우려가 아직은 더 큰 상황이다.
정책 암초 만난 두산重 정상화, 이번엔 석탄발전 ‘수출 금지’ 날벼락


◆ 풍력만으론 역부족…석탄발전도 수출 막히나


정부가 탈원전에 이어 탈석탄 정책에 속도를 내고 있는 점도 부담이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최근 한국전력과 국내 금융회사의 해외 석탄 화력 발전 사업 참여를 금지하는 법안을 발의하며 석탄 화력 투자에 제동을 걸고 있다. 민주당의 우원식·김성환·민형배·이소영 의원은 7월 28일 일명 ‘해외 석탄 발전 투자 금지 4법’을 각각 발의했다. 한국전력·한국무역보험공사·KDB산업은행·수출입은행의 해외 석탄 화력 발전소 사업 시행·투자를 금지하는 내용이다.

해외 발전 사업의 경우 한국전력 등 공기업과 국내 대기업, 중소기업들로 이뤄진 ‘팀코리아’가 함께 참여하게 된다. 저탄소 기술인 ‘초초임계압(USC)’ 기술 등 환경오염을 최소화하는 기술력을 갖춘 한국이 ‘해외 석탄 발전 투자 금지 4법’에 막혀 해외 시장을 포기한다면 기술력이 낮은 중국업체로 사업이 넘어가면서 국내 발전산업 관련 생태계가 무너지고 환경에도 오히려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세계 에너지 시장 흐름 변화에 따른 석탄 화력 발주 감소와 한국의 탈원전·탈석탄 정책 여파로 경영 위기를 겪고 있는 두산중공업에 신재생에너지로의 사업 포트폴리오 전환 압박이 전보다 더욱 거세지고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급격한 사업 전환으로 두산중공업이 그동안 연구·개발(R&D) 투자로 쌓아 온 기술력도 무용지물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두산중공업은 탈원전·탈석탄 등 정부의 에너지 전환 정책에 따라 국내 원전과 석탄 화력 발전 신규 사업이 막히자 수출로 활로를 모색하고 있는 중이다. 석탄 발전 수출마저 금지되면 최고 기술력을 보유하고도 이를 수익원으로 활용할 길이 없어지는 것이다. 발전업계에서 탈(脫)석탄 입법의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정동욱 중앙대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는 “두산중공업이 보유한 석탄가스화 복합 발전(IGCC) 기술은 기존 석탄 화력에 비해 효율이 높고 공해 배출이 적은 친환경 청정 발전 기술로 저개발 국가에서 수요가 높다”며 “환경 오염 방지 장치가 구비된 석탄 화력 발전 기술을 바탕으로 해외 사업을 개척할 수 있도록 수출 금융 등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두산중공업은 가스터빈과 풍력 발전 사업 등 신규 사업 매출 비율을 2023년까지 50%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는 계획이지만 아직은 기존 사업 포트폴리오를 벗어나지 못한 상황이다. 최형희 두산중공업 전 대표는 3월 30일 주주 총회에서 “신사업에서 매출이 발생하려면 일정 시간이 필요해 기존 사업(석탄 화력 발전)에서 매출을 최대한 확보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두산중공업은 최근 그린 뉴딜 정책에 발맞춰 해상 풍력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2025년까지 해상 풍력 발전 사업을 연매출 1조원 이상의 사업 부문으로 키운다는 방침이다. 이 때문에 두산중공업은 해상 풍력 등 친환경 에너지 확대가 핵심인 그린 뉴딜 정책의 수혜주로 부상했다.

지난해 국제에너지기구(IEA)가 낸 ‘세계 에너지 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 해상 풍력 시장 규모는 2040년까지 해마다 13%씩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 시장은 그린 뉴딜 정책에 힘입어 가파른 성장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해상 풍력은 발전용 대형 가스터빈 등과 함께 두산중공업의 주력 사업으로 육성되고 있다. 두산중공업은 2005년부터 풍력 기술 개발에 매진해 순수 자체 기술과 실적을 확보한 국내 유일의 해상 풍력 발전기 제조사다. 현재 제주도와 서해 등 전국에 총 79기, 약 240MW 규모 풍력 발전기 공급 실적을 보유하고 있다. 이 중 서남권 해상 풍력 실증 60MW, 제주 탐라 해상 풍력 30MW 등 96MW에 달하는 국내 해상 풍력 발전기는 모두 두산중공업 제품이다.

장밋빛 전망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 문제다. 전문가들은 두산중공업이 친환경 에너지 기업으로 체질 개선에 나서며 신성장 동력으로 풍력 발전 시장을 정조준하고 있지만 아직 원전 사업을 대체할 만큼 수익을 내기에는 역부족이라고 말한다.

사업 실적(트랙 레코드)을 쌓아야 하는데 해상 풍력은 글로벌 기술 수준까지 성과를 내려면 수년간의 연구·개발 기간이 필요하며 독일·덴마크·영국 등 유럽이 주도하는 세계 해상 풍력 시장에서 두산중공업이 경쟁력을 확보하려면 결국 강점을 가진 원자력을 활용하는 방안이 최선이라는 것이다.

특히 세계적인 기술을 보유한 원자력과 풍력을 패키지로 수출하는 방안도 한 가지 방법이 될 수 있다. 정 교수는 “두산중공업의 독자 생존을 위해서는 공적 자금 지원보다 전략적인 수출 지원이 중요하다”며 “풍력 하나만으로는 독일 지멘스 등과 경쟁하기 쉽지 않기에 원자력+가스터빈, 원자력+풍력, 가스터빈+풍력 등과 같이 경쟁력을 갖춘 기존 주력 사업과 신재생에너지 분야 신사업을 묶어 패키지로 해외 진출하는 방안도 고려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ahnoh05@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93호(2020.09.07 ~ 2020.09.13)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