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시가총액 100조 시대 열린다 'K-게임 폭풍 성장의 비밀']
-‘판교 오징어 배’·‘구로 등대’는 옛말…실적 고공행진에 개발자 처우 개선
-대형사와 중소형사 양극화 심화도
이젠 게임업계도 ‘저녁이 있는 삶’…파격 복지로 개발자 잡기 경쟁
[한경비즈니스=김정우 기자] ‘판교의 오징어 배’, ‘구로의 등대’. 24시간 불이 꺼지지 않는 게임사들의 노동 환경에 빗대 만들어진 말이다. 과거 게임 개발자들은 새로운 게임을 만드는 과정에서 퇴근하지 못한 채 장시간 업무를 지속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이런 게임 개발자들의 강도 높은 노동을 의미하는 뜻을 가진 ‘크런치 모드’라는 용어까지 생겨났다.

하지만 이제는 서서히 ‘옛말’이 돼 가는 모습이다. 게임 산업이 커지면서 게임 회사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개발자들의 노동 환경도 점차 나아졌기 때문이다.

주52시간 근무제 시행에 따른 노동 시간 단축은 물론 다양한 복지와 파격적인 인센티브 제공 등 이전과 크게 달라진 대우를 받는다.

주말 근무와 야근 금지는 이제 기본이다. 최근 주요 게임사들은 대기업을 뛰어넘는 이색 복지를 제공하고 나서는 등 ‘복지’의 대명사로 거듭나고 있다. 주요 게임사들이 운영하는 복지 제도를 보면 입이 벌어질 정도다.

◆게임 성공하면 억대 보너스 받기도


예컨대 엔씨소프트는 직원 건강을 위한 ‘메디컬센터’를 판교 본사에서 직접 운영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업무 때문에 평소 병원에 갈 수 없는 직원을 위해 마련했다.

메디컬센터에는 회사 소속 전문 의사가 상주하고 있고 신경계·내과·소아과·스트레스 질환 등 다양한 진단과 치료를 받을 수 있다. 목욕탕과 찜질방 등이 마련된 스파는 물론 피트니스센터와 골프 연습을 할 수 있는 트랙과 농구·배드민턴 등이 가능한 체육관도 운영한다.

넷마블은 ‘선택적 근로시간제’를 전면 도입했다. 이 제도 시행으로 오후 4시에도 퇴근이 가능해 과거 게임업계에서 불가능했던 ‘저녁 있는 삶’을 누리는 일이 가능해졌다.

넥슨은 임직원들의 자기 계발을 적극 지원한다. 목공예, 도예, 작곡 등을 배울 수 있는 프로그램인 ‘넥슨 포럼’을 운영하고 있다.

펄어비스는 다양한 이색 복지를 운영하며 젊은 개발자들에게 ‘꿈의 직장’으로 불린다. 대표적인 제도가 미혼 직원을 위해 결혼 정보 회사 가입비용을 지원하는 ‘시집장가 보내기 프로젝트’다. 1인당 300만원 한도 내에서 가입비를 지원하고 있다. 이 밖에 반려동물을 키우는 직원들을 대상으로 보험료를 대신 지급하는 제도도 운영하고 있다.

이렇듯 주요 게임사들이 파격적인 복지를 내건 배경은 임직원들, 특히 회사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개발자들의 이탈을 막기 위해서다.

수년 전부터 네이버 등 정보기술(IT) 기업은 물론 금융· 유통사들까지 온라인 강화에 돌입하면서 개발자 모시기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이에 따라 그간 게임업계에 종사하던 많은 개발자들이 회사를 떠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업계 관계자는 “많은 기업에서 서버 유지·보수, 프로그래밍 등 개발자를 채용해 왔고 최근에도 이런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며 “업무가 크게 다르지 않아 게임사에 근무하는 개발자들이 이직하는 사례가 흔하다”고 말했다.

경쟁사로의 이직도 빈번하게 이뤄지는 데 이 경우엔 특히 문제가 된다. 보통 게임은 이를 총괄하는 프로듀서(PD)를 비롯해 프로그래밍 담당자, 기획자 등 여러 명이 팀을 꾸려 손발을 맞추며 제작해 나간다.

그래서 보통 팀 단위로 한 번에 다른 회사로 이직하는 일이 종종 발생한다. 그러면 인원이 빠져나간 회사는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게임이 시중에 출시된 이후에도 개발자들이 직접 유지·보수와 업데이트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이런 이탈을 막기 위한 안전핀 중 하나가 바로 파격적인 ‘복지’”라며 “이런 배경에 따라 주요 게임사들이 복지를 꾸준히 강화해 왔다”고 말했다.

◆개발자 노동 환경도 ‘양극화 심화’


연봉 등 처우도 마찬가지다. 회사 그리고 개인마다 차이가 있어 정확하게 비교하기는 어렵지만 전반적으로 계속해서 높아지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업계 관계자는 “매년 취업 사이트에서 집계하는 대기업 연봉 순위를 살펴보면 언제부턴가 넷바블·엔씨소프트 등과 같은 게임사들이 포함되기 시작했다”며 “이런 부분을 감안할 때 게임 산업이 커지면서 개발자 등 직원들의 연봉 또한 늘어났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개발한 게임이 이른바 대박을 터뜨리면 주어지는 인센티브 액수도 어마어마하다. 적게는 수천만원부터 많게는 수억원까지 받는 일도 흔해졌다.

주52시간 근무제 시행으로 업무 부담도 점차 낮아지고 있는 추세다. 과거엔 한 개발자가 여러 업무를 동시에 진행해야 했지만 이제는 달라졌다.

“대형 게임사는 개발자 채용을 늘리면서 한 개발자가 맡는 업무 범위가 좁지만 깊어졌다. 즉 하나의 특정 업무에만 집중하면 되는 구조다. 그래서 충분히 주52시간 근무제를 시행하면서 좋은 퀄리티의 게임을 만들 수 있다”고 한 게임업계 관계자는 말했다.

게임사 내부에서 노동조합(이하 노조)이 만들어지면서 고용 안정성 역시 점차 높아질 것이라고 관측하기도 한다. 넥슨과 스마일게이트 등을 시작으로 최근에는 엑스엘게임즈가 노조를 출범시킨 상황이다.

향후에도 게임사들의 노조 설립이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를 통해 과거 권고사직 등이 횡행했던 게임업계의 고용 불안 문제가 조금씩 나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물론 일각에서는 여전히 갈 길이 멀다는 지적도 나온다. 특히 대형 게임사가 아닌 중소형 게임사는 노동 환경이 예전보다 더 열악해졌다는 지적도 있다. 이는 게임 산업의 구조와도 연관 있다는 진단이다.

전석환 한국게임개발자협회 실장은 “게임 산업 규모가 계속 커지고 있는 것은 대형 게임사들의 실적이 좋아졌기 때문”이라며 “반대로 중소형 게임사는 점차 상황이 어려워지면서 양극화가 심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협회에 따르면 현재 대형 게임사의 매출은 전체 게임 산업 규모의 약 4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매년 그 비율이 높아지는 추세다.

중소 게임사들은 상대적으로 개발이 쉽고 빠른 ‘인디 게임’을 계속 선보이고 있고 그중 하나가 ‘대박’을 터뜨리길 기대하며 돌파구를 찾는 실정이다.

이렇다 보니 중소 게임사에 소속된 직원들은 밤낮 가리지 않고 게임 개발에 매진하는 일이 여전히 흔한 일상이라는 게 전 실장의 설명이다.

그는 “중소 게임사에 소속된 많은 개발자들이 보통 이런 게임들을 1주일에 하나씩 만들고 있다”며 “이런 게임사들은 직원 수가 적어 주52시간 근무제 적용을 받지 않는다. 개발자 수가 부족해 한 명이 기획부터 프로그래밍까지 여러 직무를 진행해야 한다. 늘 시간에 쫓기는 등 오히려 과거보다 더 열악한 환경에서 근무하고 있다”고 말했다.


enyou@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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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93호(2020.09.07 ~ 2020.09.13)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