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INTERVIEW]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나라 장래 위해 노동법 개혁 시급
…민주당, 총대 매라”
-기업 규제 3법 이어 “집단소송제·징벌적 손해배상도 찬성”
-“공정거래법·상법 문제될 내용 논의 과정서 수정하면 돼”

-“법안 다 읽어보지 않고 당 정체성에 반한다고 비판

-“안철수, 서울시장·대선 뜻 있으면 ‘국민의힘 광장’ 들어와라”
-대선 주자, 외교·조정력·경제와 교육 지식 갖춰야”
김종인 “보수가 뭔지 모르는 사람 많아…지키기 위해 변해야”


[홍영식 대기자, 고은이 한국경제신문 기자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 6월 비대위원장 취임 이후 보수, 시장 경제 가치와 배치되는 듯한 여러 발언들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보수라는 말을 쓰지 말자고 해 보수층의 거센 반발을 샀다. 최근엔 공정거래법과 상법, 금융그룹감독법 등 ‘기업 규제 3법’ 도입 필요성을 주장해 국민의힘 내부에서 자본주의와 시장 경제에 역행한다는 비판들이 터져 나왔다.

그뿐만이 아니다. 김 위원장은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집단소송제, 징벌적 손해 배상 확대 법안에 대해서도 정부의 손을 들어줘 논란을 예고했다. 기업규제 3법, 집단소송제, 징벌적 손해 배상 확대 법안 내용 중 문제가 될만한 부분들은 논의 과정에서 걸러내면 된다고 했음에도 그의 근본적인 정체성이 무엇이냐는 의혹이 나올만하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계열 정당을 오갔고, 1987년 개헌 당시‘경제의 민주화’ 표현이 담긴 헌법 119조 2항 마련을 주도한 그의 전력 때문에도 더욱 그렇다. 김 위원장을 만나 이런 법안들을 찬성한 이유와 내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대선 전략 등에 대해 들어봤다.

▶비상대책위원장에 취임한 직후 보수라는 말을 쓰지 말자고 해 논란이 일었습니다. 보수는 우리가 지켜야 할 소중한 가치가 아닌가요.

“내가 생각하는 보수의 의미는 이겁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보수가 아니라는 거예요. 보수가 시대 상황에 따라 변해야만 지금까지 한 것을 지킬 수 있지 변화하지 않으면 지키지 못한다는 말이죠. 보수라는 용어를 처음 쓴 사람은 영국의 에드먼드 버크입니다. 버크는 ‘프랑스 혁명에 관한 성찰’이라는 책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프랑스 혁명은 너무 과격하다. 그러기 때문에 결국 군사가 지배하는 시대가 올 것이다. 이런 사태를 막기 위해 영국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 조금씩 변화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지요. 우리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우리가 변해야 한다는 겁니다. 한국에서는 보수라는 개념을 잘못 생각합니다. 보수라는 말을 쓰기 시작한 것은 2000년 김대중 정부 중반 새천년민주당이 만들어졌을 때 그쪽 사람들이 국회의원이 되면서 갑자기 이쪽은 진보, 저쪽은 보수로 나눈 거예요. 지금 진짜 보수가 뭔지 모르는 사람이 많아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시대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면 안 됩니다. 지난 ‘4·15 총선’에서 국민의힘의 전신인 미래통합당이 실질적으로 보수 대통합을 했잖아요. 그런데도 선거 성적표는 엉망이 됐습니다. 국민의힘에 소속돼 있는 정치인들이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기반 자체가 무너질 수밖에 없어요. 서울에서 대패했잖습니까. 역대 선거에서 야당이 서울에서 이렇게 대패한 적이 없어요. 여당이 대패하면 그 정권은 무너졌습니다. 1958년 총선에서 자유당이 망했고 1978년 10대 총선 땐 공화당이 무너졌죠. 결국 박정희 전 대통령이 서거했습니다. 국민의힘이 왜 대패했을까요. 지금 수도권 121석 중 국민의힘이 20석도 안 돼요. 그 원인을 보면 대략 알 수 있는 것 아닙니까. 3040 유권자들이 국민의힘에 거부 반응을 보이고 있어요. 이들의 마음이 아직 우리에게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혼란 없이 제대로 대학 교육을 받은 세대입니다. 이 사람들이야말로 지식 수준이 높고 정보 습득 능력도 뛰어납니다. 이 사람들의 지지 기반을 빼앗기는 정당은 성공할 수 없어요. 국민의힘이 뼈를 깎는 노력으로 변화를 일으키지 않으면 망합니다.”

▶국민의힘의 전통적 지지층은 시장 경제를 잘 지켜 달라는 것 아닙니까.

“시장 경제를 모르는 사람은 없어요. 시장의 경쟁 메커니즘이 잘 기능해야 시장 경제 체제가 잘 작동되죠. 어떻게 변화하는지가 관건입니다. 정당이 일반 국민들의 성향 변화를 제대로 읽고 따라가지 못한다면 성공하지 못해요. 이제 보수 정당이란 소리 하지 마세요. 시대 변화에 맞게 방향을 설정하고 자유민주주의 정당이라고 하면 되는 거지, 왜 자꾸 거기에다가 보수 딱지를 붙이려고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여권이 추진하는 집단소송제와 징벌적 손해배상제에 대해선 어떻게 봅니까.

“작년과 재작년 한국에서 BMW와 폭스바겐 차량 결함 문제가 발생했는데 다른 나라는 소비자들이 보상을 받았지만 우리는 집단소송제가 없어 받지 못했습니다. 소비자 보호를 위해 그런 제도가 필요하다는 얘기가 나올 수밖에 없잖아요.”

▶기업이 악의적 소비자(블랙 컨슈머)들의 표적이 될 수 있고 헌법의 과잉 금지 원칙에 어긋나는 등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많습니다.

“경영하는 사람들이 상품을 제대로 제공하면 그럴 일이 없죠. 소비자를 속이니까 자기네들이 두려운 것이겠지요. 제도적으로 보완할 수 있습니다.”

▶기업 규제 3법에 대해 기업들 우려가 큽니다. ‘문제 될 내용은 입법 과정에서 수정될 것’이라고 했는데 어떤 것이 있습니까.

“감사위원을 분리 선출하자는 것과 주주가 된 지 1년도 안 된 사람들에게 주주권을 행사하게 하는 것 등이 있을 수 있어요. 주주의 주식 소유 기한을 더 길게 잡는 등 수정하면 돼요. 내가 기업인들에게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내가 대한민국 경제에 대해 많이 걱정하고 있다. 우리 경제가 잘못되는 입법은 하지 않을 테니 걱정 말라’고 했죠. 감사위원 분리 선출 문제와 관련해선 지금은 자산 2조원 이상 되는 기업들은 이사 중에서 감사를 선임합니다. 사실 오너가 감사를 뽑는 거죠. 그러니 감사가 제대로 안 됩니다. 기업 경영 투명성을 강조하기 위해 감사를 분리해 주자는 겁니다. 물론 대주주 의결권을 3%로 제한하는 것은 입법 과정에서 어떻게 수정할 것인지 논의할 수 있지만 법안 자체를 반대해선 안 됩니다. 기업 하는 분들에게 묻고 싶은 게 하나 있어요. 불공정에 대한 시민들의 분노가 컸을 때 이를 진정시키려는 노력을 해 본 적이 있느냐는 겁니다. 미국은 ‘월가 점령’ 사태가 일어나자 부호들이 ‘세금은 우리한테 더 많이 걷어가라’ 식으로 나오니 그 사회가 균형 잡히고 안정이 되는 것 아닙니까. 투명 경영을 하고 사회적으로 지탄 받을 일을 하지 않으면 이런 법안들이 다 필요 없는 겁니다. 시장 경제 원리대로만 지키면 아무 문제가 없어요.”

▶과거 대기업 1~2세들은 정치권력과 결탁이 필요했지만 지금은 그럴 일이 없어진 것 아닌가요.

“기업 시스템 자체가 과거부터 그렇게 해 왔으니 지속될 수밖에 없는 겁니다. 신문을 보면 ‘김종인이 이십년 전 사고에서 고착돼 아직도 기업에 대한 그런 식의 주장을 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나는 재벌 개혁, 재벌 해체란 단어를 써 본 적이 없는 사람이에요. 재벌을 어떻게 개혁하고 해체할 수 있겠습니까. 내가 얘기하는 건 기업들이 ‘국가가 정한 룰과 관행은 제대로 지켜라’ 이거예요. 조지프 슘페터가 자본주의 발전에서 제일 칭송하는 것이 기업가 정신 아니에요. 그 사람 얘기는 기업에 절대로 사회적인 책임을 요구하지 말라고 합니다. 나라가 정한 법과 제도를 지키면서 이윤을 많이 추구하는 사람이 사회적인 책임을 추구하는 것이라는 얘기죠. 이윤을 추구해야 세금을 많이 낼 수 있고 그 세금을 가지고 정부가 나라 일에 쓸 수 있습니다. 과거 정부가 경제 발전을 위해 기업에 특혜를 줘 재벌 그룹을 형성하게 만든 것은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고 인정합니다. 그러면 기업도 국가가 정한 룰을 지키면서 시장 경제 원리에 따라 기업 경영에만 충실하라는 거예요.”

▶기업 규제 3법에 대해 국민의힘 내에서도 시장 경제 원리에 맞지 않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적지 않습니다.

“국민의힘 내부에서 내가 당의 정체성에 반하는 짓을 하느니, 시장 경제에 맞지 않고 자본주의에 역행하느니 비판하는데 구체적인 내용을 갖고 설명해 보라는 말입니다. 언론 보도가 그렇게 나오니 그런 식으로 얘기하지 말아 달라는 겁니다. 법안 내용도 다 읽어보지 않는 사람들이 피상적으로 얘기하는 겁니다.”

▶기업 규제 3법을 도입한다면 기업들에도 포이즌필(적대적 인수·합병 또는 경영권 침해 시도 발생 시 기존 주주들이 시가보다 싸게 지분을 매입할 수 있도록 미리 권리를 부여하는 제도), 차등 의결권 등 경영권 방어 장치도 마련해 줘야 한다는 주장도 적지 않습니다.

“지금 기업 투명성만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노동 개혁이 시급합니다. 내가 답답하게 생각하는 것은 노동법을 근본적으로 고쳐야 하는데 경제 단체들이 아무도 그런 얘기를 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더불어민주당 사람들에게 국회의원 180석 가까이 차지했으면 나라 장래를 위해 그 법을 고치라고 얘기합니다.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독일 총리는 정권 잃을 각오를 하고 노동 개혁에 나섰죠. 우리 당에서도 솔직히 노동 문제에 대해 제대로 파악하고 ‘태클’할 능력이 없어요. 앞으로 내가 이 얘기를 해 보려고 합니다. 4차 산업혁명 시대로 변화하는 과정에서 노사 관계 문제라는 것이 간단하지 않을 거예요.”
김종인 “보수가 뭔지 모르는 사람 많아…지키기 위해 변해야”
▶기업 규제 3법 다음으로 노동 개혁을 주장하겠다는 얘기인가요.

“좀 기다려 봐요. 나는 권한이 없어요. 그 필요성을 얘기하는 거지. 그런 걸 제대로 할 수 있는 사람을 찾는 거죠. 어찌됐든 나는 우리 경제를 다뤄 본 사람으로서 우리 경제가 좋은 방향으로 가는 쪽으로 일을 하지 나쁜 방향으로 가는 짓은 절대로 안 합니다.”

▶현 정부의 노동 정책에서 무엇이 제일 문제라고 봅니까.

“정규직 비정규직 문제, 해고의 경직성, 노동 시간 등 전부가 현실에 맞지 않습니다. 정규직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양극화 문제를 해소할 길이 없어요. 노조 스스로 앞장서야 합니다. 같은 노동자면서도 임금 격차가 심합니다. 한국은 직장 노조를 택하고 있는데 직장 노조에 가입된 사람은 정규직이죠. 노사협의에서 정규직 노조는 자기네들이 이익 되는 쪽으로만 결정하기 때문에 비정규직은 조금밖에 가져갈 수 없어요. 1930년대 스웨덴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극도로 갈라져 임금 격차가 심했는데 당시 총리가 양쪽을 한 테이블 앉히고 조정해 노조가 임금 인상을 억제하고 억제한 부분을 비정규직에게 주도록 해 해결된 선례도 있어요. 이 문제가 시정되지 않고서는 양극화 해소는 불가능합니다.”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대해선 어떻게 평가합니까.

“솔직히 얘기해 부동산 정책은 안 하는 게 가장 현명하다고 생각합니다. 현 정부에서 부동산 대책을 23번 내놨는데 아무 의미가 없어요. 부동산 정책을 경제 정책으로 하는 나라는 없어요.”

▶시장 기능에 맡기라는 얘기입니까.

“후분양하라는 거죠. 선분양은 투기성을 내포하고 시작하는 거예요. 과거엔 돈이 없으니 집을 많이 짓게 하기 위해 선분양제를 실시했죠. 하지만 지금은 금융회사가 많아요. 주택업자들이 집을 지어 수요자 취향에 맞춰 팔라고 하는데도 죽어도 안 할라고 하는 것 아닙니까.”

▶여권의 잇단 악재에도 불구하고 국민의힘 지지율이 오르지 않는 원인은 무엇이라고 봅니까.

“지지율이 오르지 않는 이유는 아직도 신뢰가 회복되지 않아서 그래요. 아직 국민들은 의심이 많아요. 국민들에게 확실한 신뢰를 주지 못하고 있어요.”

▶대선 후보의 자격과 조건은 무엇이라고 봅니까.

“당면한 문제를 한 번 파악해 보세요. 첫째 개방사회에서 사니까 외교에 어느 정도 지식이 있어야 합니다. 한국 사회는 굉장히 다양해졌어요. 다양성에 대한 인식도 해야죠. 다양화됐기 때문에 조정 능력을 갖춘 사람이 필요합니다. 국민을 먹여 살려야 하니 경제에 관한 조예도 갖춰야 하죠. 나라의 미래를 생각해 교육에 대한 사전 지식을 겸비한 다음 대권 후보가 돼야 이 나라가 발전할 겁니다.”

▶그런 조건을 갖춘 후보가 4~5명 있다고 했는데 누구입니까.

“이름이야 말 못하지.”

▶당 바깥에 있습니까.

“당 내에도, 당 외에도 있죠.”

▶내년 서울시장 보궐 선거에 나갈 후보감을 찾기 위해 여러 외부 인사를 만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성과가 있습니까.

“밖에 소문난 것처럼 많이 만나 보지 않았어요. 서울 시민들이 제대로 수용할 수 있는 후보자를 찾고 있어요.”

▶벤처 기업인들도 만났다고 들었습니다.

“본인들이 희망하는지 모르지만 정치권에 뛰어들어야지 밖에서 희망을 말해 봤자 소용없어요. 국민의힘이라는 넓은 광장을 제공할 테니까 그런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 모두 들어오란 말입니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도 포함됩니까.

“그렇습니다.”

·yshong@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97호(2020.09.26 ~ 2020.10.02) 기사입니다.]